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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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이 끝나고 정운영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가 떠올랐고, 223차 모임 도서표지를 보고 이문구의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가 생각났다. 한국어의 아름다움과 사투리 특유의 특징을 기막히게 살린 ‘재밌는’ 소설과 달리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는 날것 그대로인 ‘몸’을 드러내며 솔직함을 무기로 개별 독자의 몸을 돌아보게 한다.

한 남자의 몸에 관한 68년간의 기록은 색다른 의미를 갖는다. 1944년생 다니엘 페나크가 68세가 된 2012년에 출간한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보다 스무 살쯤 연상인 1923년생으로 설정했다. 경험과 생각 이상의 무언가를 쓸 수 없는 게 작가의 한계라면 이 소설 역시 자전적 경험이 바탕이 됐으리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의 몸은 거의 매일 걷거나 뛰고 오랫동안 서 있다. 중력을 극복하려는 헬서들의 노력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견디며 지나온 시간, 살아낸 인생을 고스란히 몸에 새긴다. 기억은 흐릿해지고 망각과 추억이 뒤섞여도 몸에 남은 흔적들은 어쩌지 못한다.

화자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동성애자 손자 등 오래 산 만큼 가족과 친구와 주변인들과 관계를 맺는다. 죽은 후에 딸 리종에게 남기는 형식의 글들이 간간이 섞여 있으나 두툼한 소설 한 권은 화자의 몸으로 쓴 인생을 표방한다. 그러나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작동하는 몸, 주변인들의 몸에 대해 관찰한 기록, 비올레트의 죽음으로 사라진 몸, 몸이 없는 상상 속의 동생 도도 등 다양하게 맺은 관계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걸어온 길이 삶이라는 자명한 진리를 펼친다. 다니엘 페나크는 거대한 몸의 서사를 표방하고 있으나 어쩌면 우리 몸의 기쁨과 슬픔, 욕망과 한계를 통해 삶의 의미를 묻고 있는 듯하다.

따뜻한 봄나들이가 여름의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으나 남산과 한옥마을, 동대문 성곽길과 낙산공원, 함께 나눈 김밥과 샌드위치와 떡과 과일과 그리시니와 호두과자를 먹은 몸은 기억할 듯싶다. <책읽는 고양이>에서 시작해 밥집을 거쳐 다시 카페에 둘러앉아 계속된 책과 몸에 관한 우리들의 기나긴 이야기들이 울고 웃었던 시간도 우리 몸의 일부가 될 듯하다. 아픈 몸, 어머니의 몸, 건강한 몸, 좋아하는 몸...2분기 주제인 몸과 건강은 즉물적 삶의 실존적 토대다. 오롯이 자신에게 남겨진 몸을 돌보고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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