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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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아가는 동안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은 기쁨보다 슬픔일 것이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아픔과 고통, 후회와 절망으로 버무려져 있다.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환희의 순간을 시나 소설로 기록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작가는 많지 않다. 쉽게 말해 사랑할 때 보다 이별 후에 우리는 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쓰고 내면의 풍경을 돌아보게 된다는 말이다.

  천운영의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은 지나치게 속물적인 제목이다. 소설이라는 장르의 출발 자체가 고급문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유행가 가사같은 제목으로 일단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대중적이라고 해서 모두 비속하거나 예술적이라고 해서 전부 난해하고 어려운 것은 아니다. 모든 작가들의 영원한 숙제인 예술성과 대중성의 절묘한 조화는 이루어내기 어려운 경지임에 틀림없다. 천운영의 소설집은 제목으로 판단컨대 충분히 대중적이다.

  이렇게 속단하고 책을 구입한다면 후회하기 십상이다. 그의 전작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지만 처음 대하는 사람들이라면 애절한 연애소설 쯤으로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의도야 어찌됐든 천운영의 소설은 이전에 그녀가 보여주었던 이야기들에서 한 발 내딛고 있지만 커다란 범주에서 보면 그녀만의 색깔을 완고하게 고집하고 있다. <바늘>과 <명랑>을 통해 내가 만났던 그녀의 모습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고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다.

  여러 평론가들과 독자들의 충분한 주목을 받을 만큼 그녀의 소설들은 매혹적이었으며 특별했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글에 묻어나는 도발적인 시선 때문이었고 길들여지지 않은 외로움과 자유로운 상상 때문이었다. 여성성을 폭력적으로 드러냈던 단편들과 집요하고 치밀한 관찰의 결과물들을 세세한 묘사를 통해 보여줬던 단편들이 사실적이면서 독자들에게 불편한 진실들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실에 대한 충실한 보고서일 수도 있고 감추어진 진실과 드러나지 않는 시선에 대한 거울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 작가이다. 천운영은 삶이 드러내는 우울과 고통을 드러내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독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끔찍하거나 잔인하기 때문에 눈감아 버리고 싶은 현실이 아니라 쉽게 감지되지 않는 영역들과 굳이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천착하는 태도는 그녀를 다른 작가들과 구별짓게 한다.

  단편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는 2007년 이상 문학상 수상 후보작으로 먼저 만났다. 노파의 누드를 찍는 소년을 본 작중 화자의 느낌은 지독한 편견과 독선에 대한 허망한 패배처럼 보인다. 카메라의 피사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작가의 시선은 프레임 안에 고정될 수밖에 없다. 장록 속에서 죽어가는 아이의 숨소리가 귀에 들릴 듯한 ‘그녀의 눈물 사용법’은 영과 육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부조리가 빚어내는 아픈 상처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도 순수하지도 않다. 누구나 장롱 속에 감추어 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눈물을 유발하는 요인일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알리의 줄넘기’는 혼혈 2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1인칭 화자인 여자 아이 알리는 유머를 잃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한다. ‘내가 데려다 줄게’는 태생적 소수자인 알리와 다르게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사람이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자살을 결심한 사내를 통해 우울한 삶의 단면을 드러낸다. ‘노래하는 꽃마차’와 ‘후에’에서는 가족 구성원의 부재를 통해 결핍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쓴 것’과 ‘백조의 호수’는 오히려 완벽해 보이는 인물의 이면을 들춰낸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거칠게 보이지만 그녀의 솜씨는 고통의 흔적이며 상처가 만들어낸 선명한 생채기의 모습이다.

  또 하나의 세계를 넘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도 있고 지금까지 보여줬던 모습을 더욱 구체화할 수도 있겠지만 천운영은 이제 한 걸음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감추어진 욕망과 그것이 욕망인 줄도 모른 채 억압된 것들에 대한 고단한 열망들을 보여줬다면 이제 그것들을 안아줄 수 있는 여유과 작은 희망의 씨앗들을 심어야 하지 않을까? 버려진 것들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와 아픔을 보여줬으니 이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혹은 그 이전의 모습들이 간직한 꿈과 만나고 싶다.

  ‘바늘’에 찔릴 것 같은 예리함과 섬세함으로 무장한 그녀의 문장들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새로움과 특별함에 대한 강박증을 벗고 독자들도 그녀의 색다른 모습들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과 밝음의 세계에 식상한 독자들에게 천운영의 소설은 별미와 같다. 그 독특함을 기대하는 독자이거나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하는 독자이거나 <그녀의 눈물 사용법>은 대조적인 관점으로 읽혀지겠다.


08020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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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 때 보았네
이윤기 지음 / 비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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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의 시 ‘그 꽃’ 전문이다. 시는 누구에게든 강렬하고 매혹적인 인상을 남긴다. 개인적인 친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윤기는 고은의 시 한 구절을 그의 책 제목으로 삼았다. 나이와 세월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 짧은 시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생을 살만큼 살아본 경지가 아니면 쉽게 뱉어낼 수 없는 언어이다. 많은 함의를 지닌 시는 여러 사람에게 다양한 울림을 주고 변주된다. 승리와 패배, 젊음과 늙음, 기쁨과 슬픔 등 상승 곡선과 하강 곡선의 끊임없는 교차가 이루어지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는 어느 한 시기에서든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산문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산문집은 누구가 쓸 수 있고 쓰는 사람마다 다양하며 특별한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수필이라고 하는 가장 어려운 장르의 글을 가장 편안하게 묶어내는 방식이 바로 산문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잡다한 이야기와 번다한 말들로 개인의 감정을 포장하거나 거추장스런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포장지로 손쉽게 이용되는 산문집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고 주관적 관점과 감상이 한 권 넘치게 흐르는 것도 반갑지 않다.

  다만 특정한 분야에서 혹은 색다른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줄 자신이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혹은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가 그러하다. 개인적인 취향이기 때문에 산문집은 보다 보편적인 정서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이나 공통 관심사를 가진 분야의 이야기들이라면 다른 어떤 책보다 재밌을 수 있다. 이윤기의 산문집 <내려올 때 보았네>는 고은의 시 구절을 제목으로 달았지만 탈속의 경지를 보여주는 내용으로 묶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리스 로마신화>나 <그리스인 조르바>의 번역가로 먼저 떠오르는 이윤기는 소설가이면서 신화학자이기도 하다. 조희봉의 <전작주의자의 꿈>을 보면 이윤기에 대한 저자의 각별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소설과 산문은 물론 무려 200여권이 넘는 번역서를 모두 구해서 읽는 전작주의를 실현하려는 책벌레 조희봉의 특별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적인 부분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그가 번역서나 소설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산문집에서는 한 사람의 진솔한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솔직하지 못한 글도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의 사건이나 평범한 사물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우리는 저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확인한다. 이윤기도 마찬가지다. 생활인으로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여행을 통해 그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새로움이라는 측면보다 인간 이윤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한 분야를 올곧은 태도로 평생 투자한 사람의 여유와 신념을 엿볼 수 있는 이윤기는 뚜렷한 사회적 신념이나 문학에 대한 분명한 색깔을 드러내는 작가라고 볼 수 없다. 다만 책에서 언급한대로 명창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주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온전히 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열정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작가이다. 글과 책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사람을 사귀었고 올라갈 때 보이지 않던 꽃이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저자를 이렇게 표현한다면 일면의 모습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람을 어떻게 한 두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나와 생각이 같은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는 것이 사람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공감대이며 소통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의 자세이다. 이윤기는 적어도 마음이 열린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것에 대한 소회나 일본에 대한 태도에서 개인적으로 못마땅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직한 태도는 눈여겨 배울 만한 부분이다. 동시대의 작가를 이해하고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각자가 모두 자신의 노래를 분명하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부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의 문을 열게 된다. 백인백색이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신념과 목적을 가지고 부른다면 일단 희망이 보이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나만의 노래가 소음과 공해가 되지 않도록 나와 너의 관계를 즐겁게 하고 모두 함께 부를 수 있는 합창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나는 지금 올라가고 있는지 내려가고 있는지 조차 분간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바람의 숨결과 나무의 손길, 꽃의 아름다움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나이 들어감의 증거가 아니라 또 다른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증거라고 믿는다.


0802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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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8-02-0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가지고 있어요. 이윤기 할아버지 넘 좋아요.^^

sceptic 2008-02-02 12:17   좋아요 0 | URL
^^ 네...훌륭한 번역가로 기억에 남는 소설가로 남으시겠지요...
 
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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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의 목적은 무엇일까? 일기는 독자를 전제로 하는가? 일기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객관화하는데 있다. 스스로의 감정과 정리되지 못한 상념들을 적다보면 머릿속에 얽힌 실마리를 풀어낼 수 있다. 일기를 객관적으로 적다는 것은 형식에 대한 모순이다. 주관적인 감상과 생각들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모호했던 느낌과 자신의 태도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는 책을 통해 독서일기를 쓴다. 그러면서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반성하고 사유한다. 도구와 방법은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은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독자의 문제를 살펴보자. 일기는 스스로 살아온 날들의 기록이며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대한 하루하루의 역사이기도 하다. 개인의 일상이든 사회적 현상이든 누적된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고 하나의 흐름과 관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전처럼 펜으로 종이에 적는 형식에서 벗어나 블로그 등 사이버 공간에 공개된 일기는 예상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지극히 사적인 일기의 내용과 형식이 자유로운 소통의 형태로 공유된다면 통상적인 의미의 일기와는 성격이 달라진다.

  특히 글을 쓰는 작가나 연구하는 학자, 기자, 연예인 등 공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일기는 책으로 출판되거나 직간접적으로 독자를 염두에 둔 글쓰기의 형태이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혹은 자기 검열을 거치지 않은 글이기 때문에 생생하고 과격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단순하고 거친 생각의 표현과 만나는 일이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 일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인 <박노자의 만감일기>는 또 하나의 사회비평서이면서 박노자의 일상사까지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어서 신선하다. 일기의 내용이 신변잡기적인 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우리, 국가와 민족 그리고 그 경계 넘어 통찰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아니라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픈 성찰이 드러난다. 때로는 분노와 격정을 섞어 때로는 차분한 반성과 이성적 판단이 드러나는 사색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이 돋보인다.

  박노자는 스스로 사회주의적 지향점을 지닌 사람이다. 1인 독재나 공산당의 이름을 빌려 국가 권력을 휘둘렀던 스탈린의 방식이 아닌 진정한 사회주의자이다. 이상적인 꿈에 불과하다고 패배주의적 비판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현실 속에서 바꿔나가야 할 부분들이 너무 많다. 지배계급들의 잘못된 행태와 권위주의, 비정규직과 소수자들의 아픔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오슬로에서 생활하면서 한국과 비교되는 장점들, 모국이었던 러시아의 상처들도 박노자의 직접 체험에 의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근대적 물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에 부대끼고 있다. 더불어 함께 사는 행복, 타인에 대한 배려, 소수자에 대한 희생 등 사회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대체로 무심하다. 이기적 가족주의에 매몰된 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들이 처절하기까지 하다.

“아무생각 없이 생활하는 일상 생활, 그것이 악의 근원이다.”라고 말한 한나 아렌트의 말을 곱씹어 본다. 악의 평범성과 일상성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우리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환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내가 살아가는 태도와 나의 사유 방식에 대한 점검이 왜 필요한지 박노자는 묻고 있는 듯하다. 벽안의 러시안이 한국인으로 귀화하여 바라보는 관점이 객관적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항상 스스로를 타자라고 생각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아픈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주류 사회의 아비투스를 향해 부나비처럼 맹목적으로 덤빌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나를 넘어 경계를 허물고 모두 함께 꿈꾸고 변화의 노력을 시작할 때 분명, 미래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다. 박노자도 그런 고민과 사유의 자락들을 일기에 적고 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소통은 시작된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수많은 ‘나’가 존재한다. 그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세계의 변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종교나 학문을 통해 혹은 독서와 명상을 도구로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할 수도 있다. 사유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길가에 낙엽을 쓸어담는 환경미화원의 손길에서 걷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문턱과 계단을 없애는 노력으로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생긴다. 철학적 사유와 예술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인류는 참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 오고 있다. 박노자와 같은 개인적 고민들이 사회적 고민으로 확장될 때 공적인 일기나 책읽기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믿는다. 일기를 통해 그리고 책을 통해 조금씩 변화해가는 사람들의 마음 언저리를 생각해 본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세상에 대한 믿음은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언제든 우리는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딜 마음의 준비가.

08013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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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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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소원

적막의 포로가 된다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한 시인의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그의 한 시절과 만나는 일이다. 시인은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며 살아온 시간들과 바라본 사물들, 떠오른 생각들로 언어의 집을 짓는다. 그것이 한 권의 시집이 되어 독자에게 읽힌다. 그래서 한 권의 시집을 읽다보면 시인의 눈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과 내면의 풍경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독서가 말없는 저자와의 끊임없는 의사소통 과정이라면 시읽기는 시인의 정서와 교감하는 통음通音의 과정이다.

  특히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의 시집은 더욱 그러하다. 그에 대한 사전 정보와 배경지식이 있고 다른 시를 통해 그와 만난 적이 있다면 매우 친숙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시인의 시를 읽게 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시를 통해 널리 알려진 시인 안도현의 <간절하게 참 철없이>는 이전의 시편들에서 보여주었던 모습들과 새로움이 중첩된다. 나는 그를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만났다. 2004년에 나온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에 이르기까지 안도현의 시는 변함없이 연탄불의 따스함을 바탕으로 한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자연에 대한 따스한 시선들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 훈훈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세상에 대한 애정없이 어떻게 시를 쓸 수 있을까마는 안도현의 시선은 여전히 축축하다. 물기어린 시선으로 때로는 나약하게 때로는 간절하게 대상을 관찰하고 훈훈한 숨결로 감싼다. 이해되기 전에 전달되는 시의 특성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문학적 변모와 변화의 기대까지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소수 독자들의 바람일지 모르지만 아직 이른 판단이기도 하다.

병어회와 깻잎

군산 째보선창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 시켰더니 병어회가 안주로 나왔다

그 꼬순 것을 깻잎에 싸서 먹으려는데 주모가 손사래 치며 달려왔다

병어회 먹을 때는 꼭 깻잎을 뒤집어 싸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입 안이 까끌거리지 않는다고


  이번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에서도 시인 특유의 잠언투의 문장과 주관적 판단과 감성에 기댄 시선들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특히 ‘백석(白石) 생각’이라는 시를 쓸 정도로 이번 시집에는 음식에 관한 시가 많다. 사라지는 것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잊혀져가는 수많은 음식에 관한 추억과 아련한 기억들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관계 맺었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잘 나타난 시편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익숙한 음식들인 수제비, 무말랭이, 닭개장, 민어회, 에서부터 먹어본 적도 없는 예천 태평추, 건진국수, 전어속젓, 콩밭짓거리 등 다양한 음식들이 입 안에 침을 고이게 한다. 음식은 오감을 자극하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것들을 지나간 시간들과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서 아슴하게 들추어낸다. 짙은 아쉬움보다 붉은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시들이 이 시집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오래된 발자국

시골 서점 책꽂이에 아주 오랜 시간 꽂혀 있는 시집이 있다
출간된 지 몇해 째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시집이다
시인이 죽은 뒤에도 꼿꼿이 그 자리에 꽂혀 살아 있다
나는 그 시인의 고독한 애독자를 안다
본문은 펼쳐 읽지 못하고 제목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날마다 시집 귀퉁이만 밟아보다가 돌아서던 그를 안다
햇볕의 발자국을 가진 사람을 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망각을 담보로 한다. 시인의 시도 잊혀질 것이고 수많은 책꽂이에 꽂혀 칼잠자는 낡은 책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제각기 다른 자세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들 속에서 안도현의 시가 빛을 발하는 것은 앞서 말한 대로 대상에 대한 부드러운 시선 때문이다. 따뜻하게 감싸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사람과 자연과 그리고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언어로 무장한 채 살아가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 대한 애정과 또 다른 관심들도 이어지길 바란다. 진심으로 간절하게 나는 ‘참 철없이’ 살고 싶기 때문이다.


080127-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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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 2008-01-2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에서 저도 '가을의 소원'이 제일 마음에 와 닿았는데 여기도 그렿네요,
반갑습니다.
가을이 되면 친구들에게 들려주려고 아껴 두겠습니다,

sceptic 2008-01-29 22:15   좋아요 0 | URL
그렇죠...그냥 전달되는 시들은 마음이 먼저니까...공감할 수 있다면 더욱 좋구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관용과 카리스마의 지도자
아드리안 골즈워디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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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욕망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수많은 영웅이 탄생한 것은 시대의 요구와 변화 때문이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개인의 노력으로 인류의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상황과 군사적 힘을 지닌 사람들의 능력과 판단은 대단히 중요한 역사의 흐름을 결정한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탄생한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회와 정치적 상황을 배우고 익히며 권력과 힘의 논리를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영웅이 된다. 인류 역사에 명멸했던 수많은 영웅호걸에 대한 우리의 판단과 예찬적 태도는 이미 확정된 결과에 대한 편향을 드러내는 심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산더와 더불어 유럽의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영웅을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나 카이사르를 떠올릴 것이다. 기원전 유럽의 역사를 풍미했던 카이사르는 우리에겐 문화와 역사적 상관 관계가 적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적은 없겠지만 문명의 충돌과 교류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1년 365일인 달력을 처음 만들어 사용했던 카이사르력을 우리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중간에 수정보완 작업이 이루어지기 했지만. 카이사르가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났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유래를 카이사르에서 찾는다.

  어쨌든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카이사르를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가는 역사가들의 몫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지나간 시대와 인물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하겠지만 기원전에 살았던 인물에 대한 호기심과 그 시대의 사실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계속 될 것이다. 다만 문학가와 달리 역사가의 책은 가공의 사실을 흥미위주로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블랭크는 사실에 기초해서 메워질 것이며 앞뒤 상황 맥락이나 인과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에이드리언 골즈워디는 역사가이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소설이 아닌 역사이다.

  일단 책의 외모를 살펴보자. <잊혀진 병사>라는 두툼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루비박스의 의도는 분량과 단행본 그리고 책의 가격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고민을 했을 것이다. 860여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의 책을 국판(152×218mm)보다 조금 작게 만들었다. 어쩌란 말인가. 책을 겨우 한 손에 거머쥐고 책장을 넘기기도 힘들다. 전체 3부로 이루어져 있으니 팔릴만한 책이면 얇고 가볍게 세 권으로 분권을 했겠지만 그 정도의 대중성을 확보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외모가 조금 빠진다. 지나치게 두껍워 부담스러웠고 이럴 경우 책등이 갈라지는 현상은 필수적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없어보인다. 갈라지면 갈라지는대로 그냥 봐야한다는 단점이 있다. 책은 일단 내용이 중요하지만 외모도 무시할 수 없다. 가독성을 고려해서 판형과 종이의 두께와 재질이 결정되고 디자인과 커버를 고려해야 한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겠지만 담고 있는 내용에 알맞은 외모도 겸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편년체로 기술되어 있다. 한 인물의 평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카이사르라는 인물을 정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마치 한 편의 거대한 장편 서사시를 보는 듯하다. 워낙 극적인 생애와 이력을 지닌 인물이기 때문에 카이사르의 행적 자체가 하나의 역사서로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책들이 나와있고 앞으로도 이 책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풍부하고 다양하게 해석되고 재조명을 받고 있다는 것은 카이사르라는 인물에 대한 중요성을 입증하는 예가 된다. 카이사르가 하지도 않은 “브루투스 너마저도……”라는 말을 만들어낸 세익스피어의 희곡도 카이사르에 대한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장군으로서 그를 판단하는 것은 주어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당시의 역사적, 정치적, 군사적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카이사르 스스로 쓴 <갈리아 전기>나 키케로의 저작들, <내전기> 등 다양한 인물들이 쓴 당시의 역사와 전쟁과 사료들을 모아 카이사르의 일대기를 구성하는 일은 힘겹고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는 이 지난한 과정들을 훌륭하게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집정관이 되기까지 기원전 100년부터 59년까지를 1부로, 갈리아의 전쟁시기인 기원전 58년부터 50년까지를 2부로, 내전을 거쳐 독재관이 되기까지 기원전 49년부터 암살당하는 44년까지를 3부로 나눠 서술하고 있다. 실제 사건과 객관적 정황들을 각종 사료에 의해 제시한 다음 이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중간중간 삽입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다소 어색하고 딱딱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카이사르의 삶 자체가 주는 극적인 긴장감과 다양한 변주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길고도 험난한 한 로마인의 이야기는 유럽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의 고뇌와 당시의 정치적 상황들 그리고 부족간의 갈등과 알력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 인물에 대한 보고서이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쟁 서사시이며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참고서이다.

  파르살루스 전쟁장면과 루비콘 강을 건너는 장면 그리고 클레오파트라와 강을 따라 남쪽으로 배를 타고 여행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까지의 카이사르의 고뇌를 수에토니우스는 “주사위는 던져졌다(iacta alea est)."(P. 622)라고 표현했다.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측면에서만 다루어진 면이 아쉽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남자로서 그리고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었을 나이에 그간의 힘겨웠던 시대와 세월을 따라 클레오파트라와 배를 타고 떠나는 카이사르의 심정이 어떠했을 것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렉산드리아 전쟁을 마치고 이집트를 떠나 카파도키아의 파르나케스를 속전속결로 처리한 후 개선식을 장식한 간결한 문구 ‘VENI VI야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P. 732)는 대리인에게 보낸 편지를 내용을 인용한 것이었다. 

  로마의 문화와 구체적인 생활모습 등의 내용을 생략하고 카이사르라는 한 인물에게 초점을 맞춘 이 책은 철저하게 그리고 상세하게 한 인물의 생애를 추적하는 것으로 잡다한 인물에 대한 평가를 대신한다. 너무나 잘 알려져 있고 반복되어 온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평가라는 측면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한 인간의 삶을 추적함으로써 ‘카이사르의 관용’과 카이사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을 풀어내고 있다. 독자들이 개인적으로 그려놓았던 카이사르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이 책은 아주 비교적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카이사르의 행동과 삶을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알 수 없는 흔적들과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대한 서로 다른 평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고 이 책 이후의 책에 기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08012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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