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평점 :
일기의 목적은 무엇일까? 일기는 독자를 전제로 하는가? 일기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객관화하는데 있다. 스스로의 감정과 정리되지 못한 상념들을 적다보면 머릿속에 얽힌 실마리를 풀어낼 수 있다. 일기를 객관적으로 적다는 것은 형식에 대한 모순이다. 주관적인 감상과 생각들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모호했던 느낌과 자신의 태도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는 책을 통해 독서일기를 쓴다. 그러면서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반성하고 사유한다. 도구와 방법은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은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독자의 문제를 살펴보자. 일기는 스스로 살아온 날들의 기록이며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대한 하루하루의 역사이기도 하다. 개인의 일상이든 사회적 현상이든 누적된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고 하나의 흐름과 관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전처럼 펜으로 종이에 적는 형식에서 벗어나 블로그 등 사이버 공간에 공개된 일기는 예상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지극히 사적인 일기의 내용과 형식이 자유로운 소통의 형태로 공유된다면 통상적인 의미의 일기와는 성격이 달라진다.
특히 글을 쓰는 작가나 연구하는 학자, 기자, 연예인 등 공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일기는 책으로 출판되거나 직간접적으로 독자를 염두에 둔 글쓰기의 형태이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혹은 자기 검열을 거치지 않은 글이기 때문에 생생하고 과격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단순하고 거친 생각의 표현과 만나는 일이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 일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인 <박노자의 만감일기>는 또 하나의 사회비평서이면서 박노자의 일상사까지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어서 신선하다. 일기의 내용이 신변잡기적인 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우리, 국가와 민족 그리고 그 경계 넘어 통찰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아니라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픈 성찰이 드러난다. 때로는 분노와 격정을 섞어 때로는 차분한 반성과 이성적 판단이 드러나는 사색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이 돋보인다.
박노자는 스스로 사회주의적 지향점을 지닌 사람이다. 1인 독재나 공산당의 이름을 빌려 국가 권력을 휘둘렀던 스탈린의 방식이 아닌 진정한 사회주의자이다. 이상적인 꿈에 불과하다고 패배주의적 비판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현실 속에서 바꿔나가야 할 부분들이 너무 많다. 지배계급들의 잘못된 행태와 권위주의, 비정규직과 소수자들의 아픔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오슬로에서 생활하면서 한국과 비교되는 장점들, 모국이었던 러시아의 상처들도 박노자의 직접 체험에 의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근대적 물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에 부대끼고 있다. 더불어 함께 사는 행복, 타인에 대한 배려, 소수자에 대한 희생 등 사회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대체로 무심하다. 이기적 가족주의에 매몰된 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들이 처절하기까지 하다.
“아무생각 없이 생활하는 일상 생활, 그것이 악의 근원이다.”라고 말한 한나 아렌트의 말을 곱씹어 본다. 악의 평범성과 일상성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우리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환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내가 살아가는 태도와 나의 사유 방식에 대한 점검이 왜 필요한지 박노자는 묻고 있는 듯하다. 벽안의 러시안이 한국인으로 귀화하여 바라보는 관점이 객관적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항상 스스로를 타자라고 생각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아픈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주류 사회의 아비투스를 향해 부나비처럼 맹목적으로 덤빌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나를 넘어 경계를 허물고 모두 함께 꿈꾸고 변화의 노력을 시작할 때 분명, 미래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다. 박노자도 그런 고민과 사유의 자락들을 일기에 적고 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소통은 시작된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수많은 ‘나’가 존재한다. 그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세계의 변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종교나 학문을 통해 혹은 독서와 명상을 도구로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할 수도 있다. 사유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길가에 낙엽을 쓸어담는 환경미화원의 손길에서 걷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문턱과 계단을 없애는 노력으로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생긴다. 철학적 사유와 예술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인류는 참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 오고 있다. 박노자와 같은 개인적 고민들이 사회적 고민으로 확장될 때 공적인 일기나 책읽기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믿는다. 일기를 통해 그리고 책을 통해 조금씩 변화해가는 사람들의 마음 언저리를 생각해 본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세상에 대한 믿음은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언제든 우리는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딜 마음의 준비가.
08013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