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관용과 카리스마의 지도자
아드리안 골즈워디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욕망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수많은 영웅이 탄생한 것은 시대의 요구와 변화 때문이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개인의 노력으로 인류의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상황과 군사적 힘을 지닌 사람들의 능력과 판단은 대단히 중요한 역사의 흐름을 결정한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탄생한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회와 정치적 상황을 배우고 익히며 권력과 힘의 논리를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영웅이 된다. 인류 역사에 명멸했던 수많은 영웅호걸에 대한 우리의 판단과 예찬적 태도는 이미 확정된 결과에 대한 편향을 드러내는 심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산더와 더불어 유럽의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영웅을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나 카이사르를 떠올릴 것이다. 기원전 유럽의 역사를 풍미했던 카이사르는 우리에겐 문화와 역사적 상관 관계가 적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적은 없겠지만 문명의 충돌과 교류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1년 365일인 달력을 처음 만들어 사용했던 카이사르력을 우리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중간에 수정보완 작업이 이루어지기 했지만. 카이사르가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났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유래를 카이사르에서 찾는다.

  어쨌든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카이사르를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가는 역사가들의 몫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지나간 시대와 인물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하겠지만 기원전에 살았던 인물에 대한 호기심과 그 시대의 사실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계속 될 것이다. 다만 문학가와 달리 역사가의 책은 가공의 사실을 흥미위주로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블랭크는 사실에 기초해서 메워질 것이며 앞뒤 상황 맥락이나 인과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에이드리언 골즈워디는 역사가이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소설이 아닌 역사이다.

  일단 책의 외모를 살펴보자. <잊혀진 병사>라는 두툼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루비박스의 의도는 분량과 단행본 그리고 책의 가격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고민을 했을 것이다. 860여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의 책을 국판(152×218mm)보다 조금 작게 만들었다. 어쩌란 말인가. 책을 겨우 한 손에 거머쥐고 책장을 넘기기도 힘들다. 전체 3부로 이루어져 있으니 팔릴만한 책이면 얇고 가볍게 세 권으로 분권을 했겠지만 그 정도의 대중성을 확보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외모가 조금 빠진다. 지나치게 두껍워 부담스러웠고 이럴 경우 책등이 갈라지는 현상은 필수적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없어보인다. 갈라지면 갈라지는대로 그냥 봐야한다는 단점이 있다. 책은 일단 내용이 중요하지만 외모도 무시할 수 없다. 가독성을 고려해서 판형과 종이의 두께와 재질이 결정되고 디자인과 커버를 고려해야 한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겠지만 담고 있는 내용에 알맞은 외모도 겸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편년체로 기술되어 있다. 한 인물의 평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카이사르라는 인물을 정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마치 한 편의 거대한 장편 서사시를 보는 듯하다. 워낙 극적인 생애와 이력을 지닌 인물이기 때문에 카이사르의 행적 자체가 하나의 역사서로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책들이 나와있고 앞으로도 이 책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풍부하고 다양하게 해석되고 재조명을 받고 있다는 것은 카이사르라는 인물에 대한 중요성을 입증하는 예가 된다. 카이사르가 하지도 않은 “브루투스 너마저도……”라는 말을 만들어낸 세익스피어의 희곡도 카이사르에 대한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장군으로서 그를 판단하는 것은 주어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당시의 역사적, 정치적, 군사적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카이사르 스스로 쓴 <갈리아 전기>나 키케로의 저작들, <내전기> 등 다양한 인물들이 쓴 당시의 역사와 전쟁과 사료들을 모아 카이사르의 일대기를 구성하는 일은 힘겹고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는 이 지난한 과정들을 훌륭하게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집정관이 되기까지 기원전 100년부터 59년까지를 1부로, 갈리아의 전쟁시기인 기원전 58년부터 50년까지를 2부로, 내전을 거쳐 독재관이 되기까지 기원전 49년부터 암살당하는 44년까지를 3부로 나눠 서술하고 있다. 실제 사건과 객관적 정황들을 각종 사료에 의해 제시한 다음 이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중간중간 삽입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다소 어색하고 딱딱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카이사르의 삶 자체가 주는 극적인 긴장감과 다양한 변주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길고도 험난한 한 로마인의 이야기는 유럽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의 고뇌와 당시의 정치적 상황들 그리고 부족간의 갈등과 알력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 인물에 대한 보고서이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쟁 서사시이며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참고서이다.

  파르살루스 전쟁장면과 루비콘 강을 건너는 장면 그리고 클레오파트라와 강을 따라 남쪽으로 배를 타고 여행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까지의 카이사르의 고뇌를 수에토니우스는 “주사위는 던져졌다(iacta alea est)."(P. 622)라고 표현했다.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측면에서만 다루어진 면이 아쉽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남자로서 그리고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었을 나이에 그간의 힘겨웠던 시대와 세월을 따라 클레오파트라와 배를 타고 떠나는 카이사르의 심정이 어떠했을 것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렉산드리아 전쟁을 마치고 이집트를 떠나 카파도키아의 파르나케스를 속전속결로 처리한 후 개선식을 장식한 간결한 문구 ‘VENI VI야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P. 732)는 대리인에게 보낸 편지를 내용을 인용한 것이었다. 

  로마의 문화와 구체적인 생활모습 등의 내용을 생략하고 카이사르라는 한 인물에게 초점을 맞춘 이 책은 철저하게 그리고 상세하게 한 인물의 생애를 추적하는 것으로 잡다한 인물에 대한 평가를 대신한다. 너무나 잘 알려져 있고 반복되어 온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평가라는 측면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한 인간의 삶을 추적함으로써 ‘카이사르의 관용’과 카이사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을 풀어내고 있다. 독자들이 개인적으로 그려놓았던 카이사르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이 책은 아주 비교적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카이사르의 행동과 삶을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알 수 없는 흔적들과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대한 서로 다른 평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고 이 책 이후의 책에 기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08012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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