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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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한숨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어릴 때는 다슬기 잡고 취나물 뜯느라 애달프고 나이 들어서는 막걸리 사다 나르느라 고달픈 인생이었다. 하기야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렇지 애달프고 고달프지 않은 인생이 어딨으랴. 고생이라곤 깃털만큼도 안 해본줄 알았던 찌니들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아니지, 찌니들이 고달픈 게 맞나? 스스로 선택한 것 아닌가? 아닌가? 타고나길 그런가? 그럼 애달픈 게 맞나? 이장의 머릿속이 오뉴월 논바닥의 개구리라도 가득 들어찬 양 시끄러웠다. 이럴 때는 윤선생의 예언도 쓸모가 있다. 이장은 가뿐하게 고민을 멈췄다. 워치케든 되겄제. 이것이 사람구실하기는 어려운 대가리의 결론이었다. (78p)


ㅡㅡㅡㅡㅡㅡ
악담도 쓸모가 있겠거니 하는 말은 이장의 생각이 아니어도 그럴듯하다. 잡초도 생명이고 악담도 잡초거니 하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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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나라는 통증 - 비로소 나아가는 읽기, 쓰기
하재영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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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이라는 용어는 단순한 '언어적 환상'이 아니다. 인간이 오랫동안 애완동물로 치부해왔던 대상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전환의 언어다
(154p)
반려동물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이해하고, 인간 존재 아닌 존재들과도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며 쓰는 작가의 글이다.
나이만 갱신하는게 아니라, 사유도 갱신하고 습관도 갱신해야 인간은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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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 기행 3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 편 유럽 도시 기행 3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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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온하고 행복해보이는 그의 얼굴이 좋았다.
(57p)
유시민 작기가 걸음을 멈추어 바라본 마테우스 슈바르츠의 초상화처럼 그도 평온하게 세상을 보며 세상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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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하고 사랑하라
헤르만 헤세 지음, 신혜선 옮김, 나태주 해설 / &(앤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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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이른 가을 


어느덧 시든 잎들의 냄새가 매캐하고,

곡식 밭은 텅 빈 채, 눈빛도 없이 서 있다. 

우리는 안다, 다가올 날씨가 한 번에 

지친 여름의 목을 꺽어버리라는 걸.


금작화 꼬투리가 바스락거린다. 지금 

우리 손에 쥐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아득한 전설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모든 꽃은 기이하게 길을 잃은 것 같다. 


놀란 영혼 속에 소망 하나 불안스레 움튼다.

생존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기를.

나무처럼 시드는 것을 깨우쳐 알기를,

그들의 가을에도 축제와 색채가 함께하기를.



'때 이른 가을'이란 것이 초가을인지, 아니면 예년보다 일찍 닥친 가을인지, 아니면 인생의 실패나 비극을 말하는 것인지 다만 그것은 시인만이 아는 일일 뿐, 독자의 입장인 나는 몰라도 좋은 일이다. 아무튼, 때 이른 가을,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시들어가고 있고 나아가 죽어가고 있다. 그러한 만상(萬象)을 보면서 시인은 조상(弔喪)하듯이 차근차근 언어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 역시 헤세가 즐겨 다루는 형식인 3연 형식인데 1연과 2연에 객관적인 풍경을 그렸고, 3연에 주관인 감회를 담았다. 이는 동양 한시 형식인 전경과 후정의 기법과 많이 닮았다. 밖으로부터 안으로 잦아들게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시의 분위기는 지극히 고즈넉하고 명상적이다. 역시 마지막 연에서 우리는 인생에 대한 수중한 충고를 만난다, '놀란 영혼 속에 소망 하나 불안스레 움튼다. /생존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기를. /나무처럼 시드는 것을 깨우쳐 알기를, /그들의 가을에도 축제와 색채가 함께하기를.' 이런 구절은 이전의 번역본 시집을 읽을 때는 얼핏 스쳐 읽은 대목인데 이번 시집에서 새롭게, 놀랍게 읽는 구절이다. 뒤늦게 만난 기쁨의 하나라 할 것이다. 



 헤세의 시에 나태주 시인이 해설을 달아놓았다. 헤세의 흔한 시도 있고 새로이 보는 시도 있는데, 나태주 시인이 새롭게 읽고 놀랍게 읽는다는 말씀이 놀랍다. 팔십이 넘은 시인도 새롭게 읽으시며 기쁨을 발견한다는 것. 시보다 더 반가운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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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 평범을 비범으로 바꾼 건축가의 기록법
백희성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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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한 것을 기록하고 답을 찾지 못할지라도 그 질문을 간직한 저자는 세월이 흐른 후에도 자신의 질문을 찾아간다. 그 질문이 익어서 새로운 시야가 만들어지고 예술이 되었다.


 준비 없이 순수하게 맞닥뜨려 보는 실패는 더 이상 실패가 아니다. 나를 전혀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남들은 쉽게 겪어 보지 못한 세계로...... 붓을 먼저 잡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중요한 것 하나를 알게 됐다. 다름 아닌 감정이다.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감정, 이제는 붓뿐만 아니라 여러 도구를 이용해 그림을 그려 본다. 붓과 손이 그림의 도구이듯 세상의 모든 것들은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화가들은 자신의 몸을 붓처럼 이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준비 없는 실패'는 내게 세상 모든 만물이 붓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188p)




준비 없이 실패해도 좋다는 마음은 일종의 패기를 만들어주는 듯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간 저자의 그림과 소설과 디자인과 건축이 그의 패기를 통해 나온 것이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건 모두가 겪은 실패를 피하게 해 줄 수는 있지만, 실패가 주는 교훈과 영감은 놓치게 된다. 모두가 겪는 일반적인 실패라도 충분히 겪어 볼 가치가 있다. 일부러 겪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겪을 수 있다면 겪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192p)


저자는 실패에서 교훈과 영감을 얻었던 사람이다. 실패가 자양분이 된 것이다. 


 스무 살 성인이 되던 날, 아버지께서 해 주셨던 말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이제부터 실패를 뺏기지 마라. 그리고 웬만하면 조언을 믿지 마라."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상한 궤변처럼 들렸다, 실패는 좋은 느낌의 표현이 아니다, 그리고 조언은 좋은 표현이다. 스무 살에 흘려 보낸 뒤로도, 아버지는 매년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버지의 이야기도 기록했다,. 그때의 이야기는 최대한 대화체로 기록했다. 그리고 해마다 그 내용에 대해 추가 질문을 드리고 내용을 보완해서 다시 적기를 반복했다. (1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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