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에서 먼지로 - 어느 정원사의 이야기
마크 헤이머 지음, 정연희 옮김 / 1984Books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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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덥다. 나는 이따금 일손을 멈추고 새들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날을 간다. 낫질은 보호복을 입을 필요가 없어 반바지에 가벼운 부츠 차림이다. 미스 캐시미어가 집을 비워, 점심 도시락과 물통을 내려놓은 자리 옆 나무에 셔츠를 걸어 놓았다. 풀을 죄다 베려면 세 번의 아침이 필요하다. 모두 끝내자 풀밭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치운 집처럼 헐벗고 슬퍼 보인다. 풀을 베면 느리게 자라는 꽃들이 풀에 잠식되지 않도록 보호하는데 도움이 된다. 베지 않으면 1, 2년도 안 돼서 군데군데 야생화가 자란 풀 천지의 땅이 될 것이다. 비록 나는 낫을 사랑하지만, 여기가 내 풀밭이라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둘 것이다. 

  (299p)


작가는 정원일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새들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고, 일을 하는 도구를 소중하게 돌보는 과정을 쓴다.  일을 하는 순간을 음미하며 글을 쓰는 듯하다. 정원의 주인인 미스 캐시미어의 행동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음미하듯 글로 옮긴다. 일에 몰두한다기보다 글에 몰두하는 정원사의 글. 

그 글을 읽으며 생명을 돌보는 사람의 이야기에서, 씨앗에서 먼지로 돌아가는 우리 인간의 삶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이렇게 일을 할까? 이렇게 소중하게 음미하며 일을 할까? 음미한다면 소중함이 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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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걸었습니다 - 숲의 말을 듣는 법
김용규 지음 / 디플롯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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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섭리를 따라 생명은 모두 부여받은 자리에서 저마다 자신의 길을 이루어갑니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땅에서 각자 제 본성을 따라 살아가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 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는 삶의 숙제가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숲애서 자기 삶의 숙제를 미루거나 풀지 않는 풀과 나무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도대체 왜 풀어야 할 삶의 숙제가 생명 앞에 놓이는 것일까요? 이제 그 신비를 만날 때가 되었습니다.

 (118p)

 

저자는 숲에서 만난 생명들을 만나며  삶의 경이에 눈뜨고 그 지혜를 우리에게 내어주고 있다. 그 지혜를 통해 삶을 스스로 살고 사랑하며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 삶의 숙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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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와 무히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 청년에게 전하는 21세기 생존 지침
사울 알비드레스 루이스 지음, 최사라 옮김, 최명호 감수, 노암 촘스키.호세 무히카 대담 / 시대의창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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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정확한 과학이 아니에요. 앞으로도 아닐 겁니다. 정치는 때로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내리는 겁니다. 인류가 각자의 관점만 고수하고, 공공의 이익을 통합하지 못하면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이에요. 사회라는 자산이 생존하려면 정치가 작동하야 합니다. 이게 바로 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래된 개념인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에요.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 공동체를 이룹니다. 공동체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생존하려면 '우리'라는 공동체의 존재를 보장해주는 정치의 개입이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만인이 서로 싸우는 정글로 돌아가겠죠.
그래서 나는 정치인들이 가장 심각한 문제가 정치를 타락시킨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본주의 병에 걸렸어요. 지위, 명예, 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를 합니다. 이는 정치에 침을 뱉는 짓이죠. (248p)

ㅡㅡㅡㅡ
정치라는 존재를 살려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공동체로 살아가야 하는 인류는 정치를 살려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만들고, 다시 고치고 다시 만들면서 나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는 정치가 작동하는 것을 보고 있다. 실패하고 비난받더라도 나아가고 있다. 함께 이 짐을 나누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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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실패가 쌓여 우주가 된다 - 김지은 인터뷰집
김지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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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실패하고 있다.
웃음거리로 말할 때도 있지만 창피하다고 느낄 때는 꺼내놓지 않을 때도 있다.
대화에 실패하기도 하고, 하고자 하는 계획에 실패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이해하는데 실패하기도 한다.
저자는 그런 실패의 이야기들을 모아 새로운 우주를 보여준다.
반짝이지 않아도, 반짝여도 우리의 우주는 돌아가고 세상은 더 다채로워진다.
삶과 죽음 사이의 실패들이 모여 살아간다. 살아가는 지점에서 서로의 실패를 보며 서로 다정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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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자 선언 - 공적 슬픔과 타인의 발견
최태현 지음 / 디플롯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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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를 돌아봅니다. 지금처럼 작은 존재들의 권리에까지 이토록 관심을 기울인 시대가 있었을까요? 과거에는 신분이 나뉘었고, 질서는 위계적이었으며, 어린이와 여성은 재산처럼 취급되었습니다. 동물? 자연? 오로지 왕과 귀족의 생명만이 가치 있던 오랜 역사를 지나 겨우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어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오랬동안 모든 존재가 시민은 아니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함을 존중하려고 많은 이가 땀 흘리는 시대는 인류 역사에서 지금이 거의 유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는 특별합니다. 노동과 기후가 충동하고, 장애인 인권과 동물권이 묘한 갈등을 빚고 , 다름과 차별이 복잡하게 얽혀 있더라도, 이는 모두 이 시대가 그만클 모두의 권리를 가장 멀리까지 배달하는 과정에서 모퉁이를 돌자 이제애 나타난 산과 강일 뿐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고뇌를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습니다. 

 윤동주는 <별헤는 밤>에서 패, 경, 옥 같은 '이국소녀'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뒤늦게나마 가느다란 인연이 된 저 나름의 이국소녀들이 있습니다. 별조차  잘 보이지 않는 이 밤에 그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러봅니다. 누군가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고, 해낸 게 뭐가 있냐고 묻는다면 저는 대답하겠습니다.

   역사를 만들고 있어요. 이들은 역사를 만들고 있는 거예요. 질문대신 손을 내밀어보세요. 

       (152p)

 

 작가는 지금의 시대를 좋은 시대라고 말하며 우리의 고뇌마저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다고 한다. 

자랑하기에는 현실의 문제와 무게기 크지만 작가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글이 큰 위로를 준다.

우리는 손을 내밀어 함께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작가의 말이 널리 멀리 퍼져 나가 마주 잡은 손들이 함께 웃을 수 있기를. 그 웃음이 자랑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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