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본주의 - 지식발전소 01
사이먼 토미 지음, 정해영 옮김 / 유토피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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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류의 발전 단계의 종착역이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고 싶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현재 모습은 철저하게 자본에 종속되어 있다. 앨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에서 역설하듯이 미래 사회에서 부는 단순히 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총체적으로 자본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과 지식을 망라할 수 있는 모든 생산수단과 국적불명의 대규모 자본은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타고 세계화를 이룩하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와 인류의 삶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지만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류는 끊임없이 발전한다고 믿는 몽상가는 이제 많지 않다. 자연선택에 의해 동물적인 진화가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한다고 순진하게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진화와 변화, 진보와 발전 사이에서 인간은 늘 희망을 꿈꾼다. 그것이 헛된 꿈일지라도 우리는 미래가 없는 지금 이 순간을 생각할 수 없다. 지금 힘겹고 고통스러운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비관적인 미래에 대한 전망은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사회구성체 논쟁이 가열됐던 80년대보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서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은 단순히 마르크스의 주장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이 아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현주소는 물론 과거로부터 이행과정을 되짚어본다. 자본주의는 왜 등장했고 어떻게 굴러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알기 쉽고 평이한 내용으로 설명한다. 자본주의의 역사에 관한한 리오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만큼 알기 쉽고 적절하게 설명한 책을 찾기 힘들다. 이 책의 목적은 ‘자본주의의 역사’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현재’에 해당한다. 그 중심에 ‘시애틀’이 놓여있다. 자본주의의 총아인 미국 시애틀 사건을 단순히 성난 군중에 의한 시위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 반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도전 세력들이 어떻게 연합해야 하면 그들이 가진 한계와 모순은 무엇인지 짚어내는 저자의 안목과 비판적 관점은 매섭기만 하다.

  이론적 토대와 경제학에 입각한 논의가 아니라 현실 정치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짚어내는 ‘운동들의 운동’에 관한 논의가 이 책의 핵심이다. 개혁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장단점을 설명하고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에 이르기까지 넓고 다양한 사회적 스펙트럼들을 펼쳐 보여준다. 멕시코의 사파티즘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현실 가능성과 실제 상황 속에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입장과 논리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한 눈에 만만찮은 내공과 논점들을 확인할 수 있다.

  서론 부분에서 앞서 논의되었던 다양한 입장들에 대해 거론하고 있다. 활동가 혹은 학자 입장에서 서술된 책이나 각각을 위한 책들은 조금씩 다른 입장과 관점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쉽고 가볍게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입장들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책이다. 그 흐름과 의미를 개괄할 수 있으며 반자본주의의 미래까지도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하나의 응집된 운동과 현상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숙제가 남겨진다. 또한 이데올로기를 넘어 저항할 수 있는 당연한 논리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은 당연히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우리 모두의 희망을 위해서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산층’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스스로 ‘시민’이라고 믿고 있다. 대다수가 노동자로 살아가며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에 대해 남의 얘기로 믿고 싶어한다. 평등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선 세상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자본에 집착하며 스스로 소외되고 20%가 되기 위해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경쟁의 덫에 치여 죽는다.

  목숨을 걸고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그들에 의해 사립학교법은 무효화되었고 입도선매의 달콤함을 맛본 대학들은 인재의 육성보다 선발에 목숨을 걸고 그들만의 리그를 펼친다. 대학을 졸업하고 놀면서 최소 1억은 있어야 법앞의 평등을 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자본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며 대다수 인간을 황폐화시키고 있지만 저항하기 보다는 순응하며 많은 돈을 벌어 자본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한 태도와 생각 자체가 이미 노예인 줄도 모르면서 말이다. 현실 상황에서 이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전부가 활동가가 될 수는 없을까?

  혼자서 꾸는 꿈은 한낱 백일몽에 불과하지만 우리 모두가 동시에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외면한 채 살아가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잘 길들여진 우리들은 오늘도 내일의 희망과 미래의 꿈을 자본에 맡기고 살아간다. 온 국민이 ‘부자되세요’를 가장 듣기 좋은 덕담으로 외친다. 혁명가 체 게바라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고 했지만 그 리얼리스트의 한계를 이 책에게 묻고 싶다. 어디까지 현실과 타협하며 어디까지 행동하며 살 것인가. 철이 든다는 것은 세상 속에 묻혀 산다는 것이라고 한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남들처럼 사는 게 좋다고도 한다. 하지만 한 번도 그 길이 좋아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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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
성석제 지음 / 하늘연못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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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오래된 본능 중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호기심이 많거나 궁금한 걸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백과사전이 만들어졌고 네이버에는 지식in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별 쓸데없는 잡다한 호기심과 그에 대한 답변들이 사람들의 본능적인 욕망을 일부 잠재운다. 깊이를 더해 전문적인 탐구가 계속되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 성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만족하는 경우도 있다. 주변에 널려있는, 혹은 매일 접하는 신기한 이야기와 사물의 이면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은 정말 재미있다. 그 재미는 박학다식에 버금가는 잡학다식한 저자만의 개인적 관심과 능력이다.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평소 웃음이 많고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신기한 것과 재밌는 것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버릇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소설가로서 소재를 취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능력은 본능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소설이 되고 훌륭한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소설이라는 장르가 고급스런 문화적 취향에서 비롯되기 보다는 단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본능에서 출발했지만 소설이 되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촌철살인의 재미있는 이야기나 신기하고 궁금한 이야기들을 2~3페이지의 짧은 분량에 담아내고 있다.

  워낙 뛰어난 입심과 재치로 무장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소설에서 보여주었던 웃음과 재미는 이 책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재미있는 스토리 중심의 이야기와 일반적이고 관성적인 관점에 비틀어보기 그리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맛깔스럽게 펼쳐진다. 마지막 4부에서는 명칭과 어휘 등 문자에 대한 어원과 뒷얘기들로 가득하다. 부제 그대로 만물상에 온 듯 풍요롭게 즐거운 이야기로 책 한 권이 가득 차 있다.

  “나는 천성적으로 알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다.”라는 저자의 말은 이 책의 성격을 대변해 준다. 소설가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밖에 없는 천성을 타고 태어났으니 성석제는 천상 소설가이다. 그의 수첩에 적혀있었을 그 많은 재밌는 이야기 거리와 잡학 사전 같은 내용들이 이 책의 내용이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읽는 내내 낄낄거리며 혼자 미소짓고 소리내어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공공장소에서 읽을 때는 주변의 시선을 조심해야할 수도 있겠다.

  이 맘 때면  휴가지에서 읽었으면 좋겠다는 책 어쩌구 하는 얘기들이 나온다. 무더운 한 여름 머리 복잡하지 않고 마치 TV를 보듯이 쉽고 재미있게 읽고 싶은 책으로 권할 만하다. 그렇다고 시중에 떠도는 유머집과는 다르다. 유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웃음이기 때문이다. 기 기원과 의미를 깊이 있게 설명하는 내용들은 호기심을 넘어 지식으로 간직할 만한 이야기들도 많다. 저자처럼 잘 웃는 사람, 호기심이 많은 사람에게 선물하면 좋은 책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 알 수는 없다. 알고 싶어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안다고 해도 세상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알고 싶은 대상의 깊이와 폭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재밌는 이야기로 전해지는 것들과 호기심 사이의 본능적인 욕망들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성석제의 이 책은 그렇게 활기찬 생의 재채기와 같다. 유쾌하게 웃고 시원스럽게 박장대소를 터뜨릴 수 있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우리들 삶에 대한 세심한 눈길과 배려처럼 돋보일 때가 있다. 몰라도 스쳐지나가고,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웃음으로 혹은 지식으로 사소함을 전달할 수 있는 것도 당연히 저자의 뛰어난 감각이다. 천상 이야기꾼인 성석제의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로 가득한 <유쾌한 발견>을 발견해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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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비트겐슈타인 How To Read 시리즈
레이 몽크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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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부지깽이를 들고 칼 포퍼를 위협했다는 선정적인 내용 때문에 처음 읽은 책이 <비트겐슈타인은 왜?>였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칼 포퍼는 전체주의와 폭력에 의한 혁명을 혹독하게 비판하며 ‘닫힌 사회’로 규정지었다. 개인주의를 옹호하고 점진적인 개혁에 의한 ‘열린사회’를 꿈꾸었던 이 책의 저자는 초청 강연을 위해 캠브리지에 대학을 방문했다. 10분에 비트겐슈타인이 한 판 뜨자고 덤빈 이유가 궁금해서 펼쳐든 책으로 기억한다.

  철학자의 삶과 기질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시작해서 천재라고 명명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논리-철학 논고>를 읽으면서 참 독특한 형식과 내용의 철학책이라고 생각했다.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명제를 분석하는 장은 어차피 내 능력 밖의 범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포기하고 흐름을 따라 읽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구절을 멋대로 해석하며 전혀 다른 상황에도 적용해보며 내가 얼마나 용감하고 무식하게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 대한 호기심과 사유의 흐름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얼마전 <청갈색책>에 도전했으나 비슷한 낭패감을 맛보았고 다른 방법을 고민하며 날개를 접었다.

  서점에 갔다가 눈에 띠는 ‘How to read……'시리즈를 보고 다시 <How to read 비트겐슈타인>에 또 다시 현혹됐다. 도대체 이 철학자의 매력은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했지만 그의 철학이 주는 매력은 독특하다. 특히 ‘언어에 대한 감각과 개념에 대해서 조금씩 그 의미들을 짚어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이 책에게 감사한다. 하나의 텍스를 간접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에 개인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깨지더라도 일단 부딪히고 만져보고 냄새 맡고 엉겨봐야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뭔가 아쉽고 부족한 부분들이 보인다. 그때, 이런 종류의 책들을 접하면 가뭄에 단비처럼 거의 모든 것들이 흡수되고 이전의 남아있던 의문들과 모호함이 안개처럼 사라진다.

  나머지 시리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의 저작을 읽지 않고 이 책들을 읽는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간접적인 독서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이 읽은 내용의 해설을 엿듣고 그 텍스트를 읽은 것으로 착각하거나 오히려 주관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후기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적 탐구>보다 오히려 그가 생의 마지막에 관심을 가졌던 ‘심리철학’이 보고 싶어졌다. 기회가 될 때마다 부딪히며 생각하고 한 줄 한 줄 음미하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면 기꺼이 비트겐슈타인에게 손을 내밀고 싶다.

  철학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생각하며 철학을 떠났던 비트겐슈타인이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다. 이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의 갈등과 고민 속에서 철학의 문제를 단지 해결해야할 과제 정도로 여겼던 그의 생각들을 짐작하는 데 또 하나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말할 수 있는 것과 보여줄 수 있는 것들 사이의 간극을 아직도 확실하게 정리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언어와 사물과의 관계, 사물들과 사실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그가 가졌던 깊은 고민과 철학적 해결 방법들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고마운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레이 몽크는 영구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비트겐슈타인의 전기도 썼다. 한 인가의 삶과 사상에 대해 지극한 애정과 객관적인 시선으로 독자들에게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해 주는 좋은 안내서를 제공해 준 그에게 감사해야겠다.

  책의 형식과 분량은 가볍다. 비트겐슈타인의 첫 리뷰인 <케임브리지 리뷰>에서부터 <철학적 탐구>에 이르기까지 연대기별로 발표된 저작들을 인용하면서 그의 핵심 사상을 설명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사이사이 그의 생애를 사상과 연결시키고 있지만 평전이 아니기 때문에 간략하게 정리하며 그의 철학적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데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부분들을 발췌하고 그 부분들이 전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레이 몽크의 해설이 전부일 수 없겠지만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날카롭고 예리한 분석과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글쓰기는 읽는 사람들에게 깊은 신뢰감을 갖게 한다. 잘 차려진 밥상이 아니라 숟가락 같은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책이지만 숟가락 없이 밥을 먹기도 곤란하다. 좋은 숟가락은 맛있는 밥을 위해 준비된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070705-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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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근대 망령으로부터의 탈주, 동아시아의 멋진 반란을 위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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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고도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동아시아에 속해있다는 지정학적 사실은 우리 민족 혹은 국가의 운명을 질곡의 세월로 이끌었다. 물론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수동적이고 피학적인 전제가 깔려있으나 수백여 차례의 외침을 받고도 근근이 버텨온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동아시아는 단순히 지리적인 범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근현대사에서 동아시의 역할과 한계 그리고 그 의미를 제대로 규명하는 작업은 여러 사람에 의해 지속적으로 시도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삐뚤어진 시각과 좁은 시야에 갇혀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0세기 초 일본의 군국주의의 군화발에 짓밟힌 민중들과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황된 주장에 현혹된 위정자들이 겪은 동아시아의 역사는 동일하지 않다.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는 또 하나의 시원한 외침이다. 박노자를 벽안의 외부인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학자라고 명명하고 싶다. 한국적이라는 말은 우리의 정체성과 역사에 정통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고 학문적 깊이가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한 개인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주관적이다. 역사에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승리자의 것이든, 민중들에 의한 것이든 모두를 담아내든 하나의 관점은 좁은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관점들이 비슷하거나 방향만 달리한다고 해서 폭넓은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거나 객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박노자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신선하다. 적어도 그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시각과 비판적 관점을 갈망한다.

  독서는 저자와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이다. 의사 소통의 행위로서 독서는 읽는 과정에서 수많은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으며 독자를 깊은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때로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나누고 때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품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진정한 독서가 이루어지고 깊은 감동과 내면의 울림이 이어진다. 독자 개개인의 성향과 역사에 대한 관점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설득력있는 이야기와 사실에 근거한 의견들은 진정 ‘우리가 몰랐던’ 역사에 대해 한 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휴머니즘, 20세기에 대한 기억들, ‘근대’의 문제,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 제국주의와 개인 그리고 양심 등 폭넓은 주제들에 관한 박노자의 단상들은 귀화 한국인 박노자를 가장 한국에 대해 잘 아는 한국인으로 보이게 한다. 단순한 저자에 대한 호감과 감탄을 넘어서 그가 말하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세계 안에서의 모습들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이 된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나 <나를 배반한 역사>에서 보여주었던 시각들이 불편했던 독자라면 이 책 역시 쉽고 만만하게 그의 논리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공감할 수 있는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가장 나쁜 관점은 아닐까? 구석구석 숨어있는 인물들과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 그리고 역사가 흘러온 과정 속에서 그 흐름을 읽어내고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혁명에 관한 논의는 흥미롭다.

  미래 상황에 대한 가정법과 현재의 관점으로 바라본 역사 속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과 미래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자본주의와 개방의 물결은 사회체제 자체를 변화시킬 것이다. 경제개발을 빌미로 부의 양극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모순들을 해결해 나간다 해도 그들의 미래를 그려내기는 어렵다. 또다시 ‘혁명’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과 타당성이 있는 미래다. 한 번 경험한 민중들의 힘과 의지는 향후 두 나라의 사회체제의 변화와 모순 극복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 하나의 가능성만으로 치부하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나 연합이 이루진 적이 없지만 지리적 여건과 문화적 교류 때문에 끊임없는 상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동아시에 대한 박노자의 이야기는 내게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비참하고 우울했던 우리의 역사가 동아시아라는 환경 속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 특히 근대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일본제국주의의 광기에 피 흘리며 쓰러졌던 민중들, 위정자들의 부패와 한계는 여전히 아픈 현재로 남아있다. 단순한 과거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해 알아야 할 내용들이 충실하게 담겨 있는 이 책은 동아시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필요한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070703-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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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인간 사이에 질문을 던지다 - 한국 최고의 과학지성들이 현대과학의 난제에 도전한다!
김정욱 지음, 정재승 기획 / 해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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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문과 지식의 대중화는 인쇄술이라는 혁명 이후에도 꾸준히 다른 방법을 찾아왔다. 축적된 지식과 정보들은 인류의 진보와 진화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지만 일반인들과는 점점 멀어져갔다. 전문적인 학문 영역은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렸고 연구자가 아니면 접근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용어와 개념들로 가득하다. 심층적이고 복잡한 지식의 구조들은 보다 깊고 체계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하지만 학문의 외연이 넓어지고 전문 영역들간의 통섭이 이루어지는 바람직한 현상들 속에서 대중은 외면된다. 무엇 무엇의 대중화는 때대로 유행처럼 번진다. 그것이 철학의 대중화든 수학의 대중화는 과학은 가장 어려운 영역중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청소년들의 필독서로 스테디셀러가 되어버린 이유는 간단하다.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과학의 중요성과 역할 그리고 일상에서 과학이 지니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정재승이 새로 기획한 책 <우주와 인간 사이에 질문을 던지다>는 멋진 제목의 책은 어른들을 위한 <과학콘서트>를 표방하고 있는 듯하다.

  스물일곱 명의 국내 과학자들이 주제별로 일반인을 위한 간단한 강좌를 열었다. ‘한국 최고의 과학지성들이 현대과학의 난제에 도전한다!’라는 부제가 붙어있지만 이것은 편집자의 오버에 불과하다. 한국 최고의 과학자들에 의해 난제가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대의 정상과학이 밝혀낸 첨단 과학의 장면들을 화려하게 소개하고 그 한계와 미래의 전망을 보여준다는 데 의의가 있는 책이다.

  그래서 쉽게 ?와 !를 표지에 넣을 수 있는 주제는 하나도 없다. 이 책에서는 크게 다섯 개의 주제로 열띤 강의가 펼쳐진다. 우주, 자연, 생명, 과학, 인간 - 우리가 과학에 대해 궁금한 가장 기본적인 주제를 가지고 각 분야의 전문 과학자들이 전공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와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들을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더불어 미래의 전망과 계획 그리고 가능성까지 짚어주고 있으니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조금 어렵지만 귀담아 들을 내용이 아주 많다.

  다만 스물일곱 명의 글쓰기가 고르지 못하다는 아쉬움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한 권의 책에서 만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다. 전공 관련 용어들을 설명 없이 사용하거나 생소한 과학적 지식과 개념들을 그대로 노출시켜 이해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글들도 더러 섞여있다. 하지만 정성을 다해 상세하게 전달하려는 노력과 흔적들은 곳곳에 배어있다.

  익히 알고 있는 개념들이나 이제는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주제들도 있기 때문에 모두가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주제들을 바라보는 관점이고 그 의미를 풀어주는 요령이다. 시각의 다양성은 어느 학문 분야에서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과학분야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시선들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뷔페같은 책이다. 겉핥기식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겠지만 주제별로 간단한 워밍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더없이 볼만한 책이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나 진화론의 문제, 의학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동물들의 예술 행위 같은 이야기들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학문의 울타리를 넘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을 만한 책을 전하고 지식을 풀어낼 수 있는, 역량 있는 과학 전문 저술가가 많이 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대체로 외국인의 책을 번역하거나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풍부하고 다양한 독서는 어렵다. 미래를 알고 싶은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아야한다. 진화론에 관한 책들을 좀 더 찾아 틈나는 대로 즐겨야겠다.

  우주와 인간 사이에 던진 질문들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는 책은 아니지만 ‘질문’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우리들의 인식의 폭을 넓혀주고 인문학적 지식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의 틀을 제공한다.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에만 1000억 개가 넘는 별들이 빛난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 그런 은하가 1000억 개 넘는다고 하니 밤하늘에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1000억×1000억 개의 별이 존재하는 셈이다. 지구라는 조그마한 별에 살고 있는 우리 그리고 나를 돌아보는 것은 순순히 상상력의 힘이다. 과학은 지식 이전에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상력의 세계이다. 쿼크 단위의 미시 세계이든 우주와 같이 거대한 세계이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나라는 존재는 점으로도 찍을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070629-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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