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능력 문학과지성 시인선 336
김행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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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규원이 보여주었던 언어의 명징성은 서정시가 도달할 수 없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했다. 맑고 투명하며 일상적이고 진부한 의미를 벗어난 시어들 간의 긴장과 비약은 상상력의 한계와 절정을 보여주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명제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든 언어가 보여주는 세계는 유한하며 그 인식의 한계는 개인의 앎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데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김행숙의 시집 <이별의 능력>은 <사춘기>에서 보여주었던 발랄함과 형식들을 조금 더 밀고 나아갔다. 언어는 손에 잡히는 대상과 사물 그리고 세계에 대한 명명법이다. 존재의 형식보다 내용이 앞선다. 그러고 나면 눈에 보이는 구체적 대상들이 아닌 세계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해진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보여주었던 가상 현실의 세계는 인간의 상상이 빚어낸 극한의 세계다. 장자의 ‘호접몽’이든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든 상관없이 명칭과 해설이 아니라 만져지지 않는 혹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부단한 낚시질.



  발이 미운 남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나의 무용수들. 나의 자랑.

  발끝에 에너지를 모으고 있었다. 나는 기도할 때 그들의 힘줄을 떠올린다.

  그들은 길다. 쓰러질 때 손은 발에서 가장 멀리 있다.


  표제시로 제시된 ‘발’은 이 시집에서 보여주는 세계의 단면이다. 구상과 추상의 간극과 대립은 그림에서 보여지는 부분과 애써 설명하고 싶은 부분들에 대한 연민이다. 발을 보며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보여주거나 만들어가는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시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독자와의 공감 여부를 떠나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시의 한 단면이라면 김행숙의 시는 존중되어야 한다. 언어가 펼쳐 보여주는 찬란한 프리즘의 세계처럼 화려하게 혹은 날카롭게 사물과 세상의 이면들을 속속들이 집어내는 감각은 시인 고유의 영역이다. 좋다거나 싫다는 감상 이전의 문제이다. 다만 소통의 문제가 남는다.

  단일한 사물과 사건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 양상과 감정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언어 실험이나 이미지의 극한을 보여주는 시를 독자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독자, 즉 문학 소비자를 염두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우리가 들여다보고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은 그리 넓고 크지 않다. 독자와의 공감이 시의 미덕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김행숙의 시들은 나름의 빛깔과 향기로 빛날 수 있다.

비에 대한 감정

그날 비는 감정적으로 내렸다

젊은 코끼리가 온 힘을 모아 코를 휘두르듯이
초목이 출렁이듯이

마침내 낙타가 해진 무릎을 꺾고 아무것도 담지 않은 눈빛을 던지듯이
낙타의 등에서 기절초풍할 비단이 펼쳐지듯이
중국 도자기가 굴러 떨어지듯이

그날 자동차들은 비단에 휘감겨서 아름다웠다
커브 길에서
상욕이 튀어나왔다

그날 나는 감정적으로 비와 대립했다
함께 하늘을 올려다본 사람들이 저마다 가슴을 쳤다
아, 입을 벌렸다

코끼리의 위대한 코에 감겨 공중 부양된 저 아이들이 꺄르르 꺄르르 웃고
마침내 앙, 울음을 터뜨리듯이

그날 비는 감정적으로 내렸다
마지막까지 내렸다


  장마 기간에 내린 수많은 빗방울 속에 나는 무엇을 보았으며, 어떤 장면들 보아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시인의 시선과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문제이며 전달의 문제로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비에 이입된 화자의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경험을 공유할 수도 없다. 객관화 된 표현이나 매끈한 표현들을 원하는 독자들의 입맛을 달래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관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손과 발의 거리처럼 닿을 수 있으나 가장 먼 거리에 놓인 신체의 부분들처럼 그것들의 연장선에 놓인 세계는 닿을 수 없는 거리만큼 생경하고 이물스럽다. 시에 대한 평가와 영역에 한계는 없다. 그것들이 놓인 자리와 앞으로 놓일 자리만큼 다양하고 풍요로움을 기대해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더 휘저어라. 나는 충분히 섞이지 않았다. 나는 생각 못한 알갱이처럼 남아 있어서 목에 걸리고

  길고 외로운 팔을 욕조 밖으로 늘어뜨리는 것이다. 당신의 목욕시간은 너무 길어, 당신은 소리치는 것이다.

  아주 길어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나는 소리치는 것이다. 식사시간보다 목욕시간보다 더 길어지면 긴 것, 연약한 것, 갈 곳 없는 것, 사라지는 것,

  그리고 극단적인 기침이 어디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사람 많은 곳에서 사람 아닌 것처럼 구부리고

  구부렸다, 폈다, 구부리는 운동 속에서 나는 계속 되지 않는다. 나는 불연속적으로 사람들 속으로 사람들을 떠난다.


0708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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