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함께 - 다섯 지식인이 말하는 소통과 공존의 해법
신영복 외 지음, 프레시안 엮음 / 프레시안북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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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이 땅에 참언론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답은 각기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피상적이고 원론적인 수준에서 언론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요구하는 독자들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찌 보면 모든 언론에서 ‘객관성’이 가능한가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하나의 관점은 하나의 태도이다. 편향된 관점의 언론이 사람들의 눈과 입을 대변한다면 건전한 비판 기능과 다양한 시선들은 사라지게 된다.

  시장점유율과 언론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소위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 언론의 태도와 입장은 정치권력과 사회현상에 대해 일관성 있는 입장을 표명하지 못한다는데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 특정 집단이나 사회적 소수자가 아닌 소수 기득권의 이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부끄럼 없이 자임하고 나선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언론을 통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계급과 입장과 상반된 태도와 의견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착각한다.

  우민화된 대중은 다중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사회를 보는 눈과 귀가 흐려진다. 사회 변혁의 힘과 추동력은 하나로 결집되지 못하고 그들만의 리그가 반복된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의 힘에 기대어 한미FTA나 경제성장만이 나의 생활을 개선해 줄 거라는 막연한 환상을 품는다.

  인터넷은 탈근대를 향한 마지막 비상구가 될지도 모른다. 종이신문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고 정보의 제공과 분석 능력은 독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여론의 형성과 독자들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실천되고 끊임없이 고민되어야 마땅하다. 오마이뉴스나 프FP시안과 같은 매체의 등장은 새로운 대안 언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나가고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며 우리가가 믿고 있는 세상에 대한 시선을 교정해 줄 필요가 있다. 판단은 물론 독자의 몫이 될 것이다.

  한겨레는 출판을 겸하고 있다. 프러시안도 출판을 선언했다. 그 첫 번째 책으로 출판된 <여럿이함께>는 창간 5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시대의 지식인 다섯 명의 특강을 정리했다.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이 그들이다. 이들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우리 사회가 나갈 방향과 미래 삶의 지표들을 올바로 제시하고 있다는 믿음 또한 순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비판적 관점에서 미처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나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들에 대한 성찰을 통해 독자들의 눈을 열어줄 수 있는 실마리는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매년 봄에 한겨레 창간 10주년을 기념하면서 매년 특강을 책으로 묶어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을 펴냈다. <여럿이 함께>도 프레시안의 창간 5주년과 함께 독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나섰다. 진보와 개혁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와 대안을 제시하는 이들의 말과 행동은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보다 큰 진폭을 가질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녀야 한다.

  대립과 갈등의 시대에 진정한 ‘소통’에 방점을 찍은 신영복, 한미FTA의 대한 반론을 제기하며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김종철, 민주화 운동이 현실적인 ‘정치’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최장집, 시민운동을 블루오션이라고 주장하는 박원순, 한반도 통일의 해법을 제시하는 백낙청의 목소리는 저마다 큰 울림과 공감을 이끌어 낸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과 진실 사이를 가로지르는 눈과 귀를 열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섯 명의 대표적 지식인의 몫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들 모두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 시대를 살아내는 힘은 우리에게서 나온다. 정치와 권력을 목적으로 자본의 힘과 본질을 호도하는 신문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전해줄 수 있는 언론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한 권의 책이 주는 힘은 1년치 신문에서 발견하지 못한 인식의 힘과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대중의 눈과 귀를 씻어주고 미래의 삶에 대한 전망과 현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과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철저하게 개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아니라 <여럿이함께> 나아갈 수 있는 여유과 자세를 바라보게 해야 한다. 그것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방법이며 삶의 목표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럿이함께> 걷다 보면 길은 그 뒤에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과거가 우리에게 제언한 유일한 교훈이다. 미래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할 시공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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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티의 지층들 - 현대사회론 강의
이진경 엮음 / 그린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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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더니티라는 개념은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 궁금했다. 21세기의 관점에서 우리가 말하는 모더니티는 한 시대를 통어하는 개념일 수 있을까? 지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개념은 분명하게 달라질 것이고 미래의 관점에서 오늘은 또 어떤 이름으로 규정될 지 흥미롭다. 한 시대에 속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시대정신’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우리가 쉽게 선택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과거에서 그 의미와 해답을 찾는 것이다. 역사적 관점은 오늘의 현상들을 밝혀내고 미래를 예측하거나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중의 하나이다.

  이진경이 편저한 <모더니티의 지층들>은 ‘모더니티’라는 개념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이다. 제목에 드러나듯이 모더니티는 하나의 방법과 관점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개별 학문들 간의 통섭이 불가능하다면 연구자들의 결과물을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밖에 없다. 이진경은 모더니티를 일단 이렇게 정의한다.

모더니티, 혹은 근대성이란 근대적 형태의 합리성을 뜻하고, 그것은 계산가능성을 그리고 계산에 따른 통제 가능성을 그 원리로 한다. - P. 38

  사회적 현상으로 이 개념을 이해할 때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적 삶과 생활 방식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그 본질과 근원을 파악하는 일이 이 개념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우리가 보통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근대 이후의 사고방식이며 그것은 계산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겠지만 계량화하거나 수치화된 숫자를 통해서 이해하고 인과성을 바탕으로 인식하는 것이 통상적인 방법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은 물물교환의 대체 수단으로 인식되는 화폐가 등장한 이후의 삶의 양식을 돌아보게 한다. 중세적 삶의 양식에서 벗어나 인클로저 운동 이후의 근대적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지점을 근대의 출발로 보아야 한다. 편저자인 이진경은 근대성의 이론에서 이런 개념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있다. 합리성이나 과학혁명 혹은 근대사회와 근대성의 개념을 공리주의와 연계시켜 ‘근대성’의 개념을 밝혀 놓았다.

  근대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의 공리계나 노동의 체계를 중심으로 화폐의 권력을 점검하고 계급이론을 설명한다. 이수영과 한경애, 조원광의 글들은 각각의 개념을 하나의 주제로 잡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 전체가 열 네 개의 강좌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더니티라는 개념을 중심축으로 정교하게 조합되어 있다. 같은 연구 공간의 연구자들이기 때문에 중복과 접근 방식의 한계는 일정부분 감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화폐나 노동의 체계, 계급이론이라는 작은 주제들이 근대성의 관점에서 다뤄지고 있지만 문화적 현상이나 역사적 관점들이 치밀하고 정교하지 못한 부분들이 보인다.

 하지만 일관성과 통일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여러 명의 연구자들에 의해 쓰여진 책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꼼꼼하고 폭넓은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문장이나 내용도 잘 다듬어져 있어 산만한 느낌은 없다. 한경애가 쓴 ‘화폐의 권력, 반화폐의 정치학’ 일부이다.

기억하자. 시간은 금이라는 말은 시간에 대한 찬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그것은 인간의 활동을 시간 단위로 구매해야 하는 자본의 조건이며, 그 시간을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기 위한 자본의 명령이고, 인간의 모든 활동을 노동으로 바꿔 가치를 생산하려는 자본의 욕망이다. 그러나 화폐가 삶의 목표가 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활동을 노동으로 바꾸려 하고, 노동하지 않는 시간조차 스스로를 더 좋은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투자하며 시간은 금이라는 자본의 명령을 내면화한다. - P. 121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화페나 시간의 중요성에 대한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생활에 침투해왔는지 그것들의 기능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자본의 속성과 문제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절대적 영향력과 그 대안들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근대적 사회 체제와 현대 자본주의에 관한 문제로 이어진다. 특히 어린이와 주거공간에 관한 문제는 흥미롭다. 근대 도시의 기원과 건축에 관한 논의도 재미있고 이동과 정착의 사회학도, 폴리스의 정치학도 고개를 끄덕이며 읽힌다. 눈에 띄는 몇 개의 문장이다.

우리는 17세기 이래로 거리에서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 안으로  쫓겨 들어가야 했던 역사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순수함을 만끽할 수 있다고 선전되는 놀이공간과 훈육만을 권장하는 학교공간의 분리, 그리고 이 양쪽을 동시에 손에 쥐고 아이들을 휘두르는 어머니의 가정. 이 안에서 움직이는 ‘어린이만을 위한 문화’란 과연 중세 유럽의 거리에서보다 더 많은 웃음과 행복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일까? - P. 200

노동자계급에게 ‘가족주의’란 19세기의 박애주의자들이 코뮨주의자들의 위협에 대항하면서 노동자들의 욕망을 포섭하고, 그들의 생활을 가족으로 영토화하기 위하여 고안한 계급적 전략의 이름이다. - P. 230

  제도화된 학교와 도시 소시민들의 기본적인 삶의 토대인 가족주의가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 혹은 그것들은 우리 삶을 어떤 형태로 바꿔 놓았는지 무수히 많은 반성과 대안의 모색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게 굳어졌다. 당연하게 믿어왔던 모든 것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지금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직결된다. 외부자의 시선과 내부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들의 한계와 모순들을 고민해 볼 수 있는 화두를 제공한다.

  문제는 결국 현재의 자본주의와 미래의 자본주의로 옮겨지고 생명 윤리와 경제학의 관계 그리고 소수자와 제국, 다중의 문제를 종착역으로 삼는다. 결국 모든 논의들은 지금, 우리들의 모습으로 요약된다. 그것들의 발원지를 확인하고 주변에서 흔히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원인과 결과들을 파악하고 미래의 문제들을 고민하는 긴 과정이 지루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정치와 권력이 생겨나고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화폐가 등장하고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그밖의 모든 것들이 자본에 수렴되는 지난한 과정들이 인류의 역사에서 ‘근대’라고 명명되는 불과 몇 백년간의 과정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깊이 있고 폭넓은 사색이 없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나와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삶은 계속되고 자본주의는 영원할 것이라는 순진한 희망을 버리고 현실을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불편한 진실들을 계속해서 외면할 것인가? 끊임없이 분화되고 다양해지는 개인과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들은 계속되어야 한다. 근대를 넘어 탈근대 자본주의로 질주하는 우리들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것이 설령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근대가 동일성으로 구축된 시공간이라면, 탈근대는 다양성을 지향한다. 탈근대 자본주의는 차이들을 부정하거나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차이들을 긍정하고 그것을 유효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배열한다. 자본의 세계화는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를 찬양한다. - P.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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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8-0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보관함에 담아두어야겠군요ㅎㅎ
 
권인숙 선생님의 양성평등 이야기
권인숙 지음, 유지연 그림 / 청년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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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평등’이란 용어 자체도 남성이 용어의 앞에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양성평등’으로 바뀐 지 오래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나이와 지역을 불문하고 여성에 대한 시각과 편견은 거의 유전형질처럼 변형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역사와 문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그것이 차별인줄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자아이에게는 빨간색이나 분홍색 옷을, 남자아이에게는 파란색 옷을 사준다. 집에서부터 “아니, 여자애가~~”, “넌, 남자가 말이야~~”로 시작되는 잔소리나 훈계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도 남자 아이는 의사 역할을 여자 아이는 간호사 역할로 성역할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각인하기 시작한다. 학교에 입학하면 더욱 심각해진다. 여학생은 문과 남학생은 이과가 적성에 맞는다는 진로 지도에서부터 각종 생활지도나 암묵적인 시선과 제약에 이르기까지 현실의 벽은 견고하고 두텁기만 하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각종 고시에서 여성들의 우수성이 입증되지만 반대로 공정한 경쟁시험이 아닌 채용 경쟁에서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 결혼이나 출산 등과 관련된 문제들은 개인의 문제를 벗어나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근본 원인이나 대책보다는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심각한 출산율 저하에 대한 접근 방법과 시각 그리고 사회적 합의나 대책들이 오히려 더 심각해 보인다.

  권인숙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독자들은 이제 나이가 제법 들어가는 세대일 것이다. 미국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여성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세대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양성평등 이야기>는 시각과 입장의 차이에 따라 동일한 문제를 다르게 본다는 특징이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왜 잘못 되었냐고 이야기하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읽혀져야 한다.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습적인 사고방식과 보이지 않는 편견은 암보다 무섭다. 누가 가르치지 않았어도 부모의 역할과 관계를 학습했거나 학교나 사회에서 잠재적으로 습득한 방식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중학생 딸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딸에게 이야기하듯이 편안한 설명 방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부모가 먼저 읽어야 할 것 같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물론 필독서로 권장할 만하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고치지 않은 생각과 행동들을 돌아보게 한다. 더구나 미래에 여성 문제는 단순히 차별과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이와 차별은 다르다. 남성과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 양성평등에 대한 기본적인 전제이다. 할머니, 어머니, 누나, 여동생, 딸에 대한 생각이나 시각과 다른 여성에 대한 그것이 다르다면 이 책을 통해 그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어머니의 희생, 외모지상주의, 남자와 여자의 성, 노동 현실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평등하거나 대등한 대우를 받지 않는 곳이 대다수이다. 우리가 생각할 문제는 단순하게 여성을 ‘보호’하거나 ‘배려’하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수십 년 전에 비해서도 지금은 물론 여성들의 권익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많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의 차별과 편견들이 숨어 있다. 인간의 범주에서조차 제외되던 여성의 문제가 이제는 평등이라는 문제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버려야할 많은 선입견과 뿌리 깊은 관습적 사고들이 아직도 많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내면화된 의식과 무관하지 않으며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았던 수많은 기득권들도 이런 이유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뒤처진 공부를 보충하고 다양한 문화적 경험도 중요하지만 이번 방학에는 이 책 한권을 부모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일 것이다. 생활과 습관 속에서, 우리의 관념 속에서 얼마나 실천하느냐의 문제는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과 현실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는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예들이 책에 언급되어 있지만 그들과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사회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다.

  타자의 시선이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으로 만들어지기 위한 노력과 실천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며, 교육의 현장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다. 지나친 피해의식이나 대책없는 비난도 문제지만 관습적인 태도나 무의식적인 행동들은 반드시 점검해야 할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저자의 생각과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 쯤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의식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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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7-26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에요.내가 뭘 나이가 들어가는 세대야..^^

sceptic 2007-08-01 11:13   좋아요 0 | URL
나이들어 가는 세대 맞잖아요...^^

비로그인 2007-07-27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정내에서의 여성의 자리도 생각해야할게 많지요.

sceptic 2007-08-01 11:12   좋아요 0 | URL
물론이죠...가정에서는 훨씬 더 심각하죠...모든 양성평등의 출발은 가정에서부터가 아닐까 싶어요...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0
고미숙 지음 / 책세상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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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시대는 근대인가? 현대인가? 아직도 전근대와 근대적 특징들이 혼용된 사회를 살아가면서 시대적 구분이나 특징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규정짓고 구별짓는 것은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비판적 반성이며 미래를 꿈꾸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

  근대를 기점과 특징에 대한 허다한 논의들 중에서 고미숙의 책은 이채롭다. 먼저 접근 방법을 살펴보자. 당시의 문헌과 신문과 잡지를 뒤적인다. ‘대한매일신보’나 ‘독립신문’ 혹은 신채호의 <독사신론>을 꼼꼼히 짚어낸다. 그리고 미셸푸코의 <성의역사>나 <광기의 역사>, 가리타니 고진의 ‘병이라는 의미’, 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 아노 카렌의 <전염병의 문화사>를 통해 현재적 의미를 분석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당시의 문화적 현상이나 시대적 특징을 찾아내는 혜안을 가지려면 일단 기준과 특징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사회과학적 접근 방법이 아니더라도 당대를 읽어나가기 위한 노력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저자 고미숙은 그 특징을 세가지로 요약했다. 민족, 섹슈얼리티 그리고 병리학이다.

  먼저 민족이라는 원초적 개념과 민중들에게 파급되는 과정 그리고 교묘한 은유와 무의식적 믿음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민족담론은 여전히 굳건한 뿌리를 가지고 해체 되거나 변화의 조짐들이 일반화 되고 있지 않다. 여전히 한의 정서가 민족의 보편적 정서라는 사실이 학교 교육 현장에서도 거론되고 있으며 국가와 민족은 개인의 권익에 우선한다는 사실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기원과 뿌리를 확인하는 작업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대안은 자연스럽게 찾아질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맹목적인 종교 수준의 믿음은 두렵기만 하다.

  두 번째로 섹슈얼리티의 문제는 단순하게 ‘근대’의 특징이라고만 규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근대로의 이행기에 보여지는 특징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가의 현상에 주목한다. 근대계몽기의 성담론은 조선 후기에서 이어진다. 여성 자체를 국민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시대에서 섹슈얼리티에 주목하는 사회로의 변화는 급격한 변화를 야기한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여성이 분리되고 국가에 대한 충애를 바탕으로 국민이 되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로 병리학과 기독교의 문제이다. 수잔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는 이 부분에 대한 좋은 참고 도서가 될 것이다. 고미숙은 목욕탕과 병원, 교회를 근대의 성소라고 표현하고 있다. 문명개화하기 위한 위생과 병원에서 벌어지는 분리와 배제, 격리과 수용은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적 기독교의 수용이 결합된다.

  고미숙의 이 책은 재미있다. 주제를 다루는 방법과 문장을 이끌어 가는 힘이 남다르다. 딱딱하고 분석적인 어조로 지루하게 이끌어가면 대개 지치고 무료해지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짧은 분량에 대한, 가볍고 흥미있는 책이 되겠다는 사명감이 투철하다. 그렇다고 논의의  초점이 무디거나 건성건성 넘어가는 법은 없다. 특유의 사유 방식과 근대를 다루는 폭넓은 사고는 저자만의 고유한 특징이 된다.

  문명과 지식을 가로지르는 유목민의 모습을 고미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책들 속에서 이 책은 또 한 번 고미숙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근대’가 왜 중요한 것인지, 우리들의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그 연장 선상에 놓여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즐거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볍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민족과 섹슈얼리티 그리고 병리학이라는 주제와 별개로 맺음말에서 저자는 ‘기차와 인터넷’으로 분량에 대한 아쉬움과 다루지 못한 주제에 대해 미련을 말하고 있다. 근대의 상징으로 기차를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맹목의 질주와 직선의 이동. 인터넷은 21세기의 기차이다. 그것이 또 다른 탈근대의 징후로서 현대를 특징짓는 기호가 될 것인가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주체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낯설고 이질적인 장 속에 능동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뿐이리라.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상과학영화 <공각기동대>가 바로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로 우리도 마무리를 하자.
  “네트는 광대해” - P. 172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주인공 소녀는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나 <나비효과>처럼 결국 수많은 네트들의 연결은 현실의 한 칸만을 되돌리거나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현재를 이루고 있는 모든 틀 전체가 흔들리고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광대한 네트에 대한 인간들의 도전과 모험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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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6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는데 없으면 불편한 존재로 자리잡았네요.
역사가 짧아서인지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그래서인지 배려가 부족하고 상처내는 일들이 많아서 불쾌할 때가 많아요.

sceptic 2010-01-31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 때문이 아니라 익명성때문이죠...관계 자체가 불연속이니까요...

반딧불이 2010-01-2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내용을 잘 요약해주셔서 마치 책 한권을 다 본듯 합니다. 그래도 책은 읽어야겠지요? thanks to~ 수잔 손택 여사의 책은 <질병으로서의 은유>가 아니라 <은유로서의 질병>입니다.

sceptic 2010-01-31 21:03   좋아요 0 | URL
오타 수정 감사합니다. ^^
 
대한민국 개조론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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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를 쓰려고 제목을 치다가 오타가 났다. ‘대한민국 개좆론’이라고. 무의식적인 손가락의 실수지만 키보드를 두드리다 혼자 웃고 말았다. 우연한 오타가 그런대로 말이 된다. 육두문자가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대다수의 정치인들을 혐오한다. 모두 꼴보기 싫다는 단무지형 정치 혐오증에 가까운 증상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병이 아닌가 싶다. 일천한 민주주의 역사를 바탕으로 고도 압축 성장을 하느라 좌충우돌 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모습은 위태롭기만 하다. 하지만 우수한 민족성 덕분인지 난파의 위기를 견뎌내며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고 싶다. 아니 그렇다.

  이런 믿음조차 없다면 대한민국에 살 수 없다. 현재의 정치 상황에 대한 오호의 감정을 넘어 냉정한 판단력과 비판 능력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사람들도 있고 지금 이대로의 대한민국을 만끽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들만의 리그와 독주가 계속될 경우 과연 이대로 좋은가? 당신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당신들은 대한민국의 1%쯤 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20% 되는 사람들일까?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의 <대한민국 개조론>은 정치인으로서 나름대로 힘겹게 또 갖은 방법으로 욕을 먹어가며 버텨내고 있는 유시민의 모습은 안쓰럽다.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서 우리나라 정치풍토에서 신념과 지조라는 말을 꺼내기도 우습지만 그걸 지켜내려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그가 보수이든 진보이든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신념에 대한 ‘진정성’이다. 정치인은 누구나 말을 바꿀 수 있고 생각이 달라져서 정치적 행보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도 올바른 정신이 박힌 유권자라면 그의 진정성을 보고 판단한다. 수많은 변절자로 낙인찍힌 정치가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시민의 말과 행동들에 대한 지지 표현도 아니다. 다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타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본적이 몇 번이나 있나 돌아보았다.

  그렇게 옳은 얘기를 저렇게 싸가지 없게 말할 수 있느냐고 비아냥거리던 동료 의원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유시민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싸가지 없어도 좋다. 나는 내 갈 길을 가자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태도와 방법을 수정해 보자고 생각했을까 궁금하다. 복건복지부 장관을 지내면서 그가 무슨 일을 저질렀고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면 된다. <대한민국 개조론>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의 비망록이며 대국민 보고서이며 참았던 억울함에 대한 변명이다.

  그의 말이 다 옳지는 않다. 독자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먼저 그의 진정성이다. 언제든 정치를 그만 둘 각오를 하고 누구보다도 국민여러분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 토해내는 그의 육성은 한 번쯤 귀기울여 들을만하다. 한나라당 지지자든 민노당 지지자든 노빠든 상관없다. 옳은 이야기에 대해서 냉정하게 들어보고 차갑게 비판할 수 있는 독자들에게는 알아두고 들어보아야 할 만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올해는 대선 정국이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도 흥미롭게 혹은 잔혹하게 또는 가장 혐오스럽게 펼쳐질 예정이고 이미 서막이 올랐다. 절치부심 한나라당이나 길거리에서 지갑을 주었던 열린우리당이나 여전히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민노당이나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달리는 기호지세의 형국이다. 유시민이 어떤 역할을 하든 정치인으로서 어떤 행보를 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대한민국의 전직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격으로 말하는 그의 이야기는 들어 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 유시민은 국민여러분을 왕으로 자신은 신하로 비유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으로 당연한 주장이고 정치인들이 투표가 끝나기 전날까지만 내세우는 말이기도 하다. 임금이고 왕인 국민에게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아뢰는 말에 거짓이나 사심이 담겨 있다면 누가 그의 말을 듣겠는가. 자신을 과대 포장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선전물로 활용하기 위한 책이라면 독자들이 먼저 눈치 챌 것이다.

“대한민국은 밖으로는 세계화 시대의 선진통상국가로 나간다. 선진통상국가로 성공하기 위해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를 건설한다.” - P. 33

  이 한마디가  이 책 전체를 요약한다. 선진통상국가와 사회투자국가라는 양 날개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대한민국을 상상하는 유시민을 상상한다. 나머지 각론에 대해서는 책의 내용에 관한 개인적인 판단과 객관적 자료와 검증이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에 보다 엄밀한 분석과 국민들의 동의와 정치권의 야합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고 실천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서 뭔가 바뀌기를 바라지만 않는다면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도 있겠다. 사학법은 거꾸로 돌아가고 국보법은 여전히 존재하며 연금개혁은 서로 못 본체 한 지 너무도 오래되어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국민들께도 말씀드립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왕이 왕 노릇을 못하고 누군가의 수렴청정을 받게 됩니다. - P. 122

  조중동의 기사가 자신의 생각이고 한겨레의 칼럼이 내 이야기가 되어 논쟁한다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패배주의! 누구의 수렴청정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국민들에 대한 발칙한 경고와 불만이 은근히 드러나지만 사실이다. 빌헬름 라이히는 그것이 궁금해서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썼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믿는 수많은 노동 계급은 어찌하여 조선일보의 주장을 자신의 머리로 착각하는 것일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와 지도자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수준입니다.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은 곧 국민의 수준이라는 말씀입니다. 남명 조식 선생처럼, 저도 정치적 사망을 각오하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 - P. 262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굴원의 <어부사>로 시작한 이 책은 남명 조식 선생의 ‘단성소’를 되새기며 끝맺는다. 너무 먼 얘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문제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유시민의 이야기는 정치적 투정도 언론에 대한 불만도 국민에 대한 객기도 아니다. 그래서 참고 들을만했다.

070723-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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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줄을 읽으며 웃다 셋째줄에서 단무지형을 '단순무지형'으로 읽었어요.
그런데 단무지형은 뭔가요?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집에 있지만 안 읽었는데
한번 실망하면 더이상 기회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겠지요.

sceptic 2007-07-24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무지는...단순무식지랄..의 준말이라고 알고 있는데...아닌가요?ㅋㅋ
그책도 읽을 만한데요...

kdh6390 2007-07-2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이글 제 블로그에 올리면 안될 지 문의 드립니다. 제 블로그는 아래랍니다.

http://www.mediamob.co.kr/BACH2138/blog.aspx

sceptic 2007-07-2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관없는데요...^^...예전에 어떤 사람처럼 별것도 아닌걸 가져다 리포트 장사하는 사이트에서 파시지만 않는다면...ㅋㅋ...농담입니다...

kdh6390 2007-07-25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식의힘님 고맙습니다. 저도 님과 같은 고민을 한 적이 많습니다. 님의 글은 pdf파일로 올려 보겠습니다. 블로그관리자에게 복사방지기능을 달아 돌라고 해도 반영이 안되어서 제 블로그에 실린 다른 분에 대해서도 미안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알라딘에 서평쓰시는 분들 글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재삼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BACH2138드림~~~~~~~~~~

sceptic 2007-07-26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넘 신경쓰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