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론 현대사상의 모험 10
에릭 홉스봄 지음, 강성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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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의 눈으로 바라본 현실은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을 바꿔나갈 추동력을 얻지는 못한다. 현실은 현실일 뿐이고 방법론이나 인식론은 그것으로 그친다. 20세기가 주목한 역사가로 에릭 홉스봄을 손꼽아 보아도 그의 인식은 한계에 그친다. 한 권의 책으로 그의 사상과 생애를 논할 수는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변화를 이끌어 낼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인간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의지와 선택에 의해 실행되지 않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알게된다.

  인생은 불합리하고 공평하지도 않으며 세상은 더욱 더 그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역사를 통한 거시적 안목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와 일상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진리이다. 20세기를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로 명명했던 영민한 역사가인 에릭 홉스봄은 마르크스 역사관의 철저한 적용자이다. 그의 주저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역사론>을 읽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일 수도 있다. 그의 생애를 정리하는 듯한, 역사에 대한 인식 태도와 방법론을 망라한 이 책은 그의 책들을 읽어나가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겠다.

  특정한 사실과 시대적 사실을 다룬 ‘역사’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는 글들을 모은 책이다. 결코 가볍고 만만치 않은 이론들이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한 역사주의 관점이나 아날학파에 대한 날선 비판들은 이 책을 읽기 위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전체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앞부분과 뒤 부분에 제시된 이야기들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결코 가볍지 않으면서도 역사에 관한 에릭 홉스봄의 견해가 잘 피력되어 있고 두고두고 곱씹어 볼만한 수많은 제언들과 통찰들이 빛을 발한다.

  선동적 역사와 이데올로기적 역사는 자기를 정당화하는 신화가 되는 경향을 지닌다. 근대 민족과 민족주의의 역사가 입증해 주는 것처럼, 이것보다 더 위험한 눈가리개는 없다.
  이러한 눈가리개를 없애려고 시도하는 것, 혹은 적어도 눈가리개를 조금 들어올리거나 이따금 들어올리는 것이 역사가의 직무이고, 역사가가 그러한 일을 하는 한 사람들이 배우려 하지 않을지라도 현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어떤 것을 말해 줄 수 있다. - P. 70


  역사를 단순히 지나간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미래를 예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 책에서도 강조하듯이,

역사가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에 대해 실제로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고,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에 대해서는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다. 역사가의 말은 그리 많이 경청되지 않는다. 그것이 역사의 본질적 속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가가 실제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힘을 쏟고 개선한다면, 그리고 조금 더 많이 능력을 알린다면, 사람들은 역사가의 말을 조금 더 들으려고 할 것이다. 역사가는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보여줄 수 있다. - P. 98

고 말한다.

  경제학과 관련된 관심은 인간의 정치나 경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홉스봄은 마르크스의 역사관을 통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그리고 토대가 되는 경제학을 역사 안에 담아내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역사에서 분리된 경제학은 키가 없는 배이고, 역사가 없는 경제학자들은 배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P. 174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사회학적’인 것이거나 ‘경제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학적인’ 성격과 ‘경제학적인’ 성격을 모두 지녔다는 점이 본질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생산 관계와 재생산 관계(즉 가장 광범한 의미의 사회 조직) 그리고 물질적 생산력은 분리될 수 없다. - P. 248


그가 선언적으로 말하는 역사에 대한 강연과 발표, 언론을 게재된 기고문들은 하나같이 현재의 상황뿐만 아니라 우리가 걸어왔던 과거의 시간들을 돌아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들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역사를 때때로 망원경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러나, 미시적인 관점에서 ‘특수사’만을 다루는 역사가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에서 ‘전체사’를 다루는 것이 역사의 임무라고 주장하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하나하나의 관점 속에서 쉽게 그것들을 찾아 조합시킬 수는 없다. 이 책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또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의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는 카Carr의 견해를 우리는 여전히 역사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에 기초한 에릭 홉스봄의 역사에 대한 길잡이와 안내들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태도가 아닐까 싶다. 역사가 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의 문제는 역사가들의 몫이 아니라 당대의 현실을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요구 사항이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주제 밖에서 객관적 관찰자와 분석자로 서 있지도 않고 서 있을 수도 없다. 우리가 옛날 텍스트를 편집하는 것 같은, 오늘날의 공공연한 열정과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을 다루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우리가 처한 시대와 장소에 대한 가정에 빠져 있다. - P. 442


07091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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