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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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는 하나씩의 구덩이를 파고 있다. 그 구덩이에 무엇인 들어있는지도 모르면서 구덩이에서 뭔가 나올 거라는 희망에 기대어 삽질을 한다. 흔히 우리가 ‘삽질하네’라는 속어는 쓸데없는 짓을 하거나 필요없는 짓을 일컫는 말이다. 생각해 보자. 삽질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우리는 모두 삽질을 하고 있다.

  구덩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파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이 목을 조른다. 그 불안감은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것인지 타인과 비교해서 내 삶을 바라보는 기준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누구나 구덩이를 파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의 두 번째 소설로 나온 루이스 쌔커의 <구덩이>는 이현의 <우리들의 스캔들>에서 보여주었던 재미와 감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동출판시장은 많은 출판사들의 관심과 경쟁으로 뜨겁게 달구어져 있지만 청소년을 위한 책들을 살펴보면 사정이 다르다. ‘논술’을 축으로 한국 문학 시리즈나 외국의 고전을 소개하는 시리즈들이 기획되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창작 소설이나 순수문학은 성장 소설을 중심으로 몇몇 작가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이다. 나라말 출판사의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시리즈나 ‘서해 클래식’시리즈 등 출판사들의 기획과 노력 여하에 따라 좋은 책들이 꾸준히 나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는 청소년을 위한 문학 작품의 꾸준한 발굴과 작가의 양성에까지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루이스 쌔커의 <구덩이>는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즐거움이라면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초록 호수 캠프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사건을 중심축으로 과거와 현재가 퍼즐처럼 들어맞는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까지 추리 소설 기법을 사용해서 독자들에게 흥미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한 눈을 팔거나 다른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 소설은 일단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무엇엔가 몰두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성장소설이면서 사회소설, 추리 소설이면서 모험소설의 형식까지 갖추고 있는 이 소설은 하나의 유형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라고 해서 단순하고 교훈적인 내용으로 채워질 거라는 편견은 여지없이 깨진다. 사회적 관점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태도도 점검해 보아야 하고 법의 잣대와 판단으로 청소년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청소년 시기에 겪어야 하는 정신적인 고통과 열악한 현실을 극복하는 과정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누구나 어려움은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고통스런 현실에 묶여있다. 그것을 극복하는 다양한 방식을 안다는 것은 뚜렷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현실 밖에서 얻는 위로와 공감의 시간이 된다. 적극적인 상상력과 그칠 줄 모르는 도전 정신으로 현실을 이겨내려는 주인공 스탠리와 제로의 모험 정신은 나이와 상관없이 즐거운 대리만족의 경험을 선사한다.

  헐리웃 영화에 나옴직한 스펙터클이나 엄청난 상상력은 아니지만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고 현실 상황들이 인과 관계에 의해 정교하게 움직이는 소설은 청소년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지적 호기심을 이끌어 낸다. 어떤 잘못을 했기 때문에 어떤 벌을 받아야하는가에 대한 법과 제도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그들을 이해하는 어른들의 방식과 소외된 아이들에 대한 관심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생각해보고 고민해 볼 수 있는 문제들이 이 소설에는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다.

  현실은 때때로 사막을 건너는 일과 같다. 신기루 속에 희미하게 보이지도 않는 엄지손가락 모양의 산을 찾아 떠나는 제로와 스탠리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좌절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자화상은 아닐까 싶다. 잃어버린 꿈을 찾아 현실의 일탈을 꿈꾸는 어른들에게도 유년시절의 꿈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구덩이>를 읽고 나니 갑자기 삽을 들고 나가 내 마음의 크기만한 구덩이를 하나 파고 싶어졌다. 나는 얼마나 큰 구덩이에 갇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지.


0709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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