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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진화
데이비드 버스 지음, 전중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8월
평점 :
그리움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감정일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유전 형질에서 비롯된 모든 행동 양식과 본능적 욕망과 충동들은 ‘적응’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일 수밖에 없는 요소는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그리움인가 아닌가.
진화심리학은 동물의 생태를 관찰해 온 진화생물학과 더불어 가장 흥미로운 과학의 한 분야이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 상태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한 관심은 당연해 보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보았던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를 권할 만하다. 짝짓기 행동의 원인이나 여자가 원하는 것 그리고 남자가 원하는 것에 대한 책들도 넘쳐난다. 단순하고 자극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책들을 읽었다면 이제 진지한 고민을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남자는 여자를 모르고 여자는 남자를 잘 모른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선풍적인 히트를 기록한 이유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보다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요소에 대한 관심과 해답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남자와 여자의 갈등과 오해는 계속될 것이다. 물론 안다고 문제가 없어지지는 않지만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수많은 분노와 갈등을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과학은 우리에게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주고 수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기능을 담당해 왔다. 진화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우리가 걸어온, 인류가 살아온 세월에 대한 흔적과 패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실제 행동에 나타나는 결과들과 그 결과의 원인들에 대한 깊은 고민과 통찰력을 제공해 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러한 상(像)은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지도 모른다. 남편이 때때로 너무나 쉽게 거의 처음 본 여자와 침대로 직행한다는 사실이 아내를 불편하게 할지 모른다. 아내가 계속해서 짝짓기 가능성을 탐색하고, 다른 남성에게 성적으로 접근해 달라는 힌트를 던지고, 때로는 들키지 않고 남편을 오쟁이 지운다는 사실이 남편을 볼편하게 할지 모른다. 인간 본성에는 경악스러운 면이 있다. - P. 196
세상에는 불편한 진실들이 많다. 안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그리고 대책이 없거나 막막한 이야기들. 인간 본성에 관한 솔직하고 진실한 이야기들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보다 우리의 행동과 현실에 나타난 문제들을 객관화 시켜 보거나 통찰력을 가지고 관찰하는 일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싶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진실이 있는 법이다. 두렵다고 회피할 수는 없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지, 왜 내 마음은 그렇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을 때 이 책이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여자가 원하는 것, 그리고 남자가 원하는 것, 하룻밤의 정사, 배우자 유혹하기,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성적 갈등, 파경, 남녀의 화합, 여성의 은밀한 성 전략 등 580여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고 진지하게 남자와 여자의 관계들을 살펴보고 있는 이 책을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지기도 하다. 종교에 따라,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인식할 수도 있겠다.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인류학적 관점에서 수많은 시간동안 인종과 국가를 초월해서 시행된 관찰과 면접 등 진화심리학에 관한 연구 결과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나왔고 진행되고 있으나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있다. 과학이 모든 걸 해결해 준 시대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미 2,000년 전에 오비디우스가 이와 똑같은 현상에 주목하여 문자로 씌어진 역사를 통해 이 전술이 줄곧 사용되어 왔음을 기술했다. “소녀들은 시를 격찬하지만 값비싼 선물을 받으려 애쓴다. 아무리 까막눈 멍청이라도 돈만 많다면, 소녀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 오늘날은 진정 황금만능의 시대이다. 황금으로 명예를 사고, 황금으로 사랑을 얻는다.” 우리는 아직도 황금만능 시대에 산다. - P. 207
돈많은 남자 김중배를 선택한 심순애의 비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0년 전에 오비디우스가 한 말을 기억해야 한다. 돈은 자원이고 안전이며 평화이고 행복이다. ‘금융은 돈이 아니라 행복입니다’라는 논증적 오류를 포함한 광고 카피가 당당하게 대한민국 안방에 울려퍼지는 현실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든 아니든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보다 많은 자원을 보유한 남성에게 끌리는 여성의 본능을 절대로 욕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이 책은 더 이상 ‘사랑’만 먹고 살겠다는 순진한 다짐도, 순애보도 가당치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가 몰랐던 많은 행동 패턴들, 특히 남녀 간의 심리와 행동 방식들은 오랫동안 진화되어온 ‘적응’의 결과이며 욕망에 충실한 유전자의 명령이라는 사실들이 확인된다. 축적된 연구 결과들이 대중적인 책을 통해 이렇게 쉽고 설득력 있게 전해지기도 힘들 것 같다. 인간의 질투에 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질투심을 일으키는 사건은 남성의 경우에는 부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적응적 문제에 직결되는 반면에 여성의 경우에는 자원과 헌신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문제에 직결된다. - P. 259
이 책을 읽는 내내 충돌하는 것은 세상의 윤리와 도덕 그리고 유전자와 욕망 사이의 충돌이었다. 이 둘 사이에 벌어지는 간극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진화심리학자와 종교인 그리고 윤리학자 사이의 대담과 토론을 준비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상상을 해 보았다. 인간은 끊임없이 교육을 받고 윤리적 가치관을 신봉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교과서와 다른 일들과 상상을 초월한 행동들을 접하게 된다.
여성들의 배란기에 혼외정사가 급증하는 이유, 동성애에 관한 미스터리, 시간의 따른 변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지만 적응적 측면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까지 재미있고 편안하게 설명되어 있다. 학문적인 관점으로 흘러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주제들을 이렇게 쉽게 풀어낸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는 앞으로도 꾸준히 인간이 접근해야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간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현재와 같은 삶의 형태가 고정된다면 유전자의 정보 자체도 적응적으로 변화하겠지만 현재까지 조상들이 적응하며 살아남은 유전자의 기억들과 인간에게 이미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행동 방식들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인류학자 나폴레옹 샤농이 야노마뫼 족 사람들에게 미국에서는 자유나 민주주의 같은 이상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선포한다고 전하자,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여성을 생포한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이 바보같이 생각되었을 것이다. - P. 424
전쟁에 관한 야노마뫼 족 사람들의 견해와 미국인들의 견해가 많이 다를까 궁금했다. 그리고 과연 자유나 민주주의와 같은 이상을 위해 미국이 전쟁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 사실일까? 야노마뫼 족처럼 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차라리 생존을 위해 혹은 석유와 같은 더 많은 자원을 위해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면 더 쉽게 이해하지 않았을까?
사랑과 연애, 섹스와 결혼에 관한 남녀의 엇갈린 욕망에 관한 진실이 이 책을 통해 모두 밝혀지긴 어렵지만 많은 의문점이 해소되었다. 정답이든 아니든, 하나의 관점이든 삐뚫어진 시각이든 아니든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겠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이 책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저자의 다음과 같은 바람은 어쩌면 희망 사항일지도 모른다. 화합이라니? 욕망을 절대 화합하지 않는다. 다만 화합을 가장한 채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질 뿐.
진화라는 엄청난 시간대를 고려하는 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의 전체 성 전략 레퍼토리 가운데 유독 하나의 전략을 중시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인간 본성은 우리 성 전략의 다양성에서 발견된다. 인간의 성 전략 레퍼토리에 내재한 다양한 욕망들을 이해한다면 화합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 P. 418
07091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