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진화
데이비드 버스 지음, 전중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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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움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감정일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유전 형질에서 비롯된 모든 행동 양식과 본능적 욕망과 충동들은 ‘적응’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일 수밖에 없는 요소는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그리움인가 아닌가.

  진화심리학은 동물의 생태를 관찰해 온 진화생물학과 더불어 가장 흥미로운 과학의 한 분야이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 상태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한 관심은 당연해 보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보았던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를 권할 만하다. 짝짓기 행동의 원인이나 여자가 원하는 것 그리고 남자가 원하는 것에 대한 책들도 넘쳐난다. 단순하고 자극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책들을 읽었다면 이제 진지한 고민을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남자는 여자를 모르고 여자는 남자를 잘 모른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선풍적인 히트를 기록한 이유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보다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요소에 대한 관심과 해답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남자와 여자의 갈등과 오해는 계속될 것이다. 물론 안다고 문제가 없어지지는 않지만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수많은 분노와 갈등을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과학은 우리에게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주고 수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기능을 담당해 왔다. 진화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우리가 걸어온, 인류가 살아온 세월에 대한 흔적과 패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실제 행동에 나타나는 결과들과 그 결과의 원인들에 대한 깊은 고민과 통찰력을 제공해 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러한 상(像)은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지도 모른다. 남편이 때때로 너무나 쉽게 거의 처음 본 여자와 침대로 직행한다는 사실이 아내를 불편하게 할지 모른다. 아내가 계속해서 짝짓기 가능성을 탐색하고, 다른 남성에게 성적으로 접근해 달라는 힌트를 던지고, 때로는 들키지 않고 남편을 오쟁이 지운다는 사실이 남편을 볼편하게 할지 모른다. 인간 본성에는 경악스러운 면이 있다. - P. 196

  세상에는 불편한 진실들이 많다. 안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그리고 대책이 없거나 막막한 이야기들. 인간 본성에 관한 솔직하고 진실한 이야기들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보다 우리의 행동과 현실에 나타난 문제들을 객관화 시켜 보거나 통찰력을 가지고 관찰하는 일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싶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진실이 있는 법이다. 두렵다고 회피할 수는 없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지, 왜 내 마음은 그렇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을 때 이 책이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여자가 원하는 것, 그리고 남자가 원하는 것, 하룻밤의 정사, 배우자 유혹하기,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성적 갈등, 파경, 남녀의 화합, 여성의 은밀한 성 전략 등 580여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고 진지하게 남자와 여자의 관계들을 살펴보고 있는 이 책을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지기도 하다. 종교에 따라,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인식할 수도 있겠다.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인류학적 관점에서 수많은 시간동안 인종과 국가를 초월해서 시행된 관찰과 면접 등 진화심리학에 관한 연구 결과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나왔고 진행되고 있으나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있다. 과학이 모든 걸 해결해 준 시대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미 2,000년 전에 오비디우스가 이와 똑같은 현상에 주목하여 문자로 씌어진 역사를 통해 이 전술이 줄곧 사용되어 왔음을 기술했다. “소녀들은 시를 격찬하지만 값비싼 선물을 받으려 애쓴다. 아무리 까막눈 멍청이라도 돈만 많다면, 소녀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 오늘날은 진정 황금만능의 시대이다. 황금으로 명예를 사고, 황금으로 사랑을 얻는다.” 우리는 아직도 황금만능 시대에 산다. - P. 207

  돈많은 남자 김중배를 선택한 심순애의 비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0년 전에 오비디우스가 한 말을 기억해야 한다. 돈은 자원이고 안전이며 평화이고 행복이다. ‘금융은 돈이 아니라 행복입니다’라는 논증적 오류를 포함한 광고 카피가 당당하게 대한민국 안방에 울려퍼지는 현실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든 아니든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보다 많은 자원을 보유한 남성에게 끌리는 여성의 본능을 절대로 욕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이 책은 더 이상 ‘사랑’만 먹고 살겠다는 순진한 다짐도, 순애보도 가당치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가 몰랐던 많은 행동 패턴들, 특히 남녀 간의 심리와 행동 방식들은 오랫동안 진화되어온 ‘적응’의 결과이며 욕망에 충실한 유전자의 명령이라는 사실들이 확인된다. 축적된 연구 결과들이 대중적인 책을 통해 이렇게 쉽고 설득력 있게 전해지기도 힘들 것 같다. 인간의 질투에 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질투심을 일으키는 사건은 남성의 경우에는 부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적응적 문제에 직결되는 반면에 여성의 경우에는 자원과 헌신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문제에 직결된다. - P. 259

  이 책을 읽는 내내 충돌하는 것은 세상의 윤리와 도덕 그리고 유전자와 욕망 사이의 충돌이었다. 이 둘 사이에 벌어지는 간극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진화심리학자와 종교인 그리고 윤리학자 사이의 대담과 토론을 준비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상상을 해 보았다. 인간은 끊임없이 교육을 받고 윤리적 가치관을 신봉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교과서와 다른 일들과 상상을 초월한 행동들을 접하게 된다.

  여성들의 배란기에 혼외정사가 급증하는 이유, 동성애에 관한 미스터리, 시간의 따른 변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지만 적응적 측면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까지 재미있고 편안하게 설명되어 있다. 학문적인 관점으로 흘러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주제들을 이렇게 쉽게 풀어낸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는 앞으로도 꾸준히 인간이 접근해야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간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현재와 같은 삶의 형태가 고정된다면 유전자의 정보 자체도 적응적으로 변화하겠지만 현재까지 조상들이 적응하며 살아남은 유전자의 기억들과 인간에게 이미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행동 방식들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인류학자 나폴레옹 샤농이 야노마뫼 족 사람들에게 미국에서는 자유나 민주주의 같은 이상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선포한다고 전하자,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여성을 생포한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이 바보같이 생각되었을 것이다. - P. 424

  전쟁에 관한 야노마뫼 족 사람들의 견해와 미국인들의 견해가 많이 다를까 궁금했다. 그리고 과연 자유나 민주주의와 같은 이상을 위해 미국이 전쟁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 사실일까? 야노마뫼 족처럼 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차라리 생존을 위해 혹은 석유와 같은 더 많은 자원을 위해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면 더 쉽게 이해하지 않았을까?

사랑과 연애, 섹스와 결혼에 관한 남녀의 엇갈린 욕망에 관한 진실이 이 책을 통해 모두 밝혀지긴 어렵지만 많은 의문점이 해소되었다. 정답이든 아니든, 하나의 관점이든 삐뚫어진 시각이든 아니든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겠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이 책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저자의 다음과 같은 바람은 어쩌면 희망 사항일지도 모른다. 화합이라니? 욕망을 절대 화합하지 않는다. 다만 화합을 가장한 채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질 뿐.

진화라는 엄청난 시간대를 고려하는 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의 전체 성 전략 레퍼토리 가운데 유독 하나의 전략을 중시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인간 본성은 우리 성 전략의 다양성에서 발견된다. 인간의 성 전략 레퍼토리에 내재한 다양한 욕망들을 이해한다면 화합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 P. 418


0709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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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올라오는 거 보고서 사려고 계속 보관함에 넣어놨던 책인데 ㅎㅎ
지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비로그인 2007-09-11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부터 굉장히 독특한 느낌을 주어서 잊혀지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상당히 좋은 느낌이군요.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sceptic 2007-09-1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쫌 두껍긴한데...책장도 잘 넘어가고...읽을만 합니다...실망은 없으실듯...싶네요...^^
 
설득의 논리학 - 말과 글을 단련하는 10가지 논리도구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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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드시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이 있다. ‘설득’이 들어가는 책이 그렇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에게 설득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읽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로버트 치알디니 ‘설득의 심리학’을 읽지 않았지만 내용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김용규의 <설득의 논리학>에서 언급하고 있으니 ‘설득’은 심리학을 넘어 이제 논리학까지 범위를 넓혔다. 그러고 보면 ‘설득’은 누구에게나 폭넓게 호기심과 관심을 유도하기 좋은 소재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유혹의 기술은 제목 뿐 아니라 표지에서도 드러난다. <철학 카페에서 문학읽기>의 서체를 그대로 활용한다. 자신감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막힘없이 휘갈려 써 내려간 <설득의 논리학>은 표지에서부터 충분히 독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말로든 글로든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누구를 설득한다. 물건을 파는 사람부터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사람까지 모두가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고 자신의 주장에 동의하도록 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 관심을 갖지 않겠는가? 그 방법과 기술이 심리학이든 논리학이든 독자들은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도구에 흥미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충분한 매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철학과 논리학은 친척이다. 아니, 철학을 위한 도구로서 논리학은 역할과 의미를 지닌다. 철학이 사람과 세상에 대한 고민이듯이, 사물과 언어에 대한 성찰이듯이 논리학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서 훌륭한 역할을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10가지 논리 도구를 제시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발판으로 세익스피어와 베이컨, 셜록 홈즈와 비트겐슈타인, 파스칼과 쇼펜하우어까지 다양한 논리를 선보이며 실증적인 예시와 쉽고 간단한 설명으로 논리학의 매력을 선보인다.

  일상에서 가장 설득 당하기 쉬운 광고의 전략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관심을 갖게 한다. 설득은 논증이라는 단순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저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삼단논법과 세 가지 변형, 배열법과 yes-but 논법, 귀납법과 가추법, 가설 연역법은 익히 알고 있는 방법들이다. 논쟁술과 토론술, 이치논리와 퍼지논리는 생소하지만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저자는 이처럼 다양한 기술을 소개하며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독자들을 설득한다.

  첫째, 쉽고 재미있게! 대중적인 독서가 가능하도록 이 책은 어려운 설명이나 딱딱한 내용들을 최선을 다해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풍부한 사례와 간단하고 쉬운 설명은 이 책을 논리학에 접근하기 위한 유인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한다. 반면에 한계도 지니게 된다. 한정된 분량에 10가지 논리 도구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데 그친다는 느낌이다. 깊이와 넓이에는 한계가 있으며 폭넓은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례가 아니라 공식에 맞아 떨어지듯 한 예문이 대부분이다.

  둘째, 요약 정리가 뛰어나며 기본적인 개념과 원리에 충실하다. 각 장마다 논리의 길잡이 코너를 마련해서 그 장에서 설명한 개념들을 간략하게 다시 정리하고 있다. 필요할 때 꺼내 볼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만 정확하게 개념들을 설명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다는 것이다.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저자는 이 방법들을 배우고 익혀 말이든 글이든 실전에서 사용하면 놀라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훈련과 실전에서 사용여부는 독자에게 맡기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연습해야 하는지 체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셋째, 저자의 문장이다. 다른 분야의 책들도 마찬가지지만 각 학문 분야에서 논쟁점이나 핵심적인 사항들을 소개하는 글들의 성공 여부는 순전히 저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 수많은 철학서들이 난무하고 논리학 책이 넘쳐나지만 옥석을 가리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상황과 목적에 맞는 책을 고르는 어려움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안다. 아카데미즘에 갇혀 지루하고 딱딱한 이론의 나열로 그치는 경우도 있고 알맹이 없이 쉽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남는 것 없이 공허한 경우도 있다. 단순한 소개와 개념 설명만으로 그치는 경우가 그렇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은 것 같지만 뭔가 아쉽고 허전하며 깊이에 대한 욕심이 끊임없이 목구멍으로부터 올라오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저자 김용규의 문장은 깔끔하고 설득적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폭넓은 독서를 바탕으로 풍요로운 알맹이들을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어디쯤 어떤 자세로 서 있는지 나에게 객관적인 판단은 어렵다. 모두에게 필요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할 수 있는 책을 만나기는 어렵다.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난 듯 오랫동안 가슴 설레고 뿌듯하게 한 줄 한 줄 음미하고 두고두고 생각나는 책을 찾아 오늘도 헤매고 있는 나는 누구인지 10가지 논리 도구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0709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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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
수잔 손택 지음, 김전유경 옮김 / 이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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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위한 여러 가지 제안과 방법들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기적인 목적으로 주변 상황을 변화시키고 개인의 안락만을 도모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간의 이타성은 그 유전적 요소에만 기대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인류 사회에 수없이 명멸했던 사람들 중에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생애와 사상은 치열한 현재가 되기도 하고 아련한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어렵고 고통스럽게 걸었던 길들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거닐 수 있는 산책로나 대로가 되어 버린 경우도 많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그를 떠올리고 책을 통해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혁명을 위한 전사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생각과 행동은 편안하지 않은 길을 걸었다. 그 길이 때로 힘겹게 때로 편안하게 보였을지라도 그녀의 생각과 삶의 흔적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 사람은 모두 다원적이다. 일면만이 소개되거나 한 가지로 규정지을 수 없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가장 큰 특지이겠지만 또 다른 모습과 상반된 행동과 생각들이 고루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의외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도 흥미롭게 바라보기도 한다.

  <해석에 반대한다>, <타인의 고통>, <은유로서의 질병> 등에서 보여주었던 수잔 손택은 <나, 그리고 그밖의 것들>이라는 소설집에서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1963년부터 1978년까지 발표되었던 단편들을 모은 책으로 작가로서의 그녀를 만나보게 한다. 학자로서가 아니라 작가로서 살고 싶었던 그녀의 희망대로 훌륭한 문학 세계를 구축했지만 작품 외적인 저작들이 불러일으킨 논란과 사회적 관심과 행보 때문에 그녀의 작품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수잔 손택은 항상 비판적 관점에서 기존의 질서와 틀을 거부했다. 그것이 삶의 질서이든 기득권층이 가진 권력이든 폭력적인 세계 질서든 상관없이 말이다.

  일곱 편의 단편을 통해 작가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일상의 문제를 다루며 개인적 경험을 고백하고 있다. 맨 앞에 등장하는 단편 ‘인형’은 인상적이다. 자기 복제를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그려내지만 일상에서 벗어난 사람의 삶이 결국 행복하다고 말하기 힘들어 보인다. ‘지킬 박사’와 ‘사후 보고’도 마찬가지로 현대인의 일상을 통해 출구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곳으로부터의 탈출과 일탈을 꿈꾸지만 결국 그 한계를 지닌 채 각성의 시간만을 제공할 뿐이다. 뿌리 뽑힌 자아의 모습은 어느 곳에도 쉽게 놓여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혼들’과 ‘베이비’는 미국적인 소설이다.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 정신이 은유와 풍자를 통해 드러난다. 우회적인 비판과 적절한 지적은 소설이 아니어도 좋겠지만 또 하나의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 속에 드러난 작가의 고백들이다. 픽션을 전제로 한 소설에서 작가의 경험을 추론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중국 여행 프로젝트’, ‘안내없는 여행’, ‘오랜 불만을 다시 생각함’과 같은 단편들을 통해 작가의 영혼의 일부를 훔쳐 보았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감성적이고 지적인 태도로 당대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이 발딛고 서 있는 현실을 돌아보는 작가의 태도는 쓸쓸하다. 외로움을 보았다면 작가의 소설을 통한 독자의 지나친 추측일지도 모르겠지만 작가의 눈은 표지 사진보다 깊어 보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잔 손택의 소설집을 읽는 것은 그녀가 다른 책들에서 보여주었던 시선과 생각과 또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나 다양한 시선과 감성과 생각을 벼리며 산다. 그것을 표출하지 못하더라도 말로써 때로는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하도 꿈을 꾸며 살아가기도 한다. 작가의 진짜 꿈은 이렇게 현실보다 작품 속에서 실현되는 현실은 아니었을까?

  제목처럼 ‘나’와 ‘그밖의 것들’ 사이에 벌어진 간극만큼 현실은 부조리하다. 하지만 작가는 결국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현실을 감싸고 꼼꼼이 살펴보고 애증을 간직한채 그것과 함께 하는 것이 작가가 선택한 길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인 경험과 그 속에서 부딪히는 현실 사이에서 작가는 오랫동안 전해오던 외로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비논리적이고 부조리한 현실과 맞서 싸울 힘과 용기도 결국 삶이라고 하는 굳건한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고 믿는다. 내가 발딛고 선 땅 위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휘두를 수 있는 날선 비판의 칼날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를 위해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소설이 소설로 읽히지 않는 그녀의 작품은 그녀의 영혼을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07090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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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5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잔 손택이군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

프레이야 2007-09-05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었던 책입니다. ^^

sceptic 2007-09-07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택 좋아하시면 한 번 읽어볼만 합니다...^^

 
파놉티콘 : 제러미 벤담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4
제러미 벤담 지음, 신건수 옮김 / 책세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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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가 개인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이방인처럼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범죄가 발생한다. -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P. 420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 아니었다면 관심 없었을 파놉티콘을 꼼꼼하게 보고 싶었다. 마침 ‘책세상’에서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이 나왔기에 숨가쁘게 읽었다. 이 책은 영어판이 아니라 1791년에 출간된 프랑스어 판본을 대본으로 삼아 번역했다. ‘제러미 벤담이 프랑스 국민의회 의원 가랑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친구 뒤몽이 요약해서 ‘감시 시설, 특히 감옥에 대한 새로운 원리에 관한 논문’이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내용이다. 벤담이 프랑스에 직접가지 않고도 쉽고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요약한 논문이기 때문에 복잡하고 상세한 건축 시설에 대한 내용들은 전부 생략되어 있으며 파놉티콘의 체계와 운영방식, 특징과 장점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

  벤덤이 주장하는 공리주의와 초기 자본주의를 대표할 만한 건축 형태로서 ‘파놉티콘’을 내세운 푸코의 힘이 아니었다면 다시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근대 이전에 재판과 형벌을 기다리는 장소에서 감금이라는 처벌보다 재사회화의 기능을 떠맡았던 감옥은 사회적 이익을 중시한 공리주의적 성격이 잘 드러난다. 스스로를 통제함으로써 규율화된 인간을 만들려는 전략은 근대의 작동원리로서 현재까지 유효하다.

  21세기의 정보 산업화 사회에서도 이 통제 시스템은 점점 교묘해지고 있으며 역사적 관점으로 살펴볼 때 이러한 시스템의 미래는 여전히 폭력적인 수준으로 발달할 것으로 보인다. 비판적 관점은 차치하고서라도 근대의 작동원리라는 측면에서 ‘파놉티콘’은 미래 사회를 비춰보는 탐조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조지오웰이 예견했던 사회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단순 비교하면서 부정적 관점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개인과 인권이 중시되는 사회가 옳으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논쟁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닐까?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 어떤 삶을 추구하느냐의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넘어 개인의 선택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감독관은 마치 유령처럼 군림한다. 이 유령은 필요할 때는 곧바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드러낼 수 있다.
  이 감옥의 본질적인 장점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파놉티콘(panoptique/panopticon)이라고 부를 것이다. - P. 23


  얼마나 많은 시선과 감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교통카드는 초단위로 사람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으며 길거리와 건물마다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거시적, 미시적 관점에서 거의 완벽하게 피할 수 없는 시선들에 둘러싸여 있다. 개인이든 국가든 서로서로 감시의 눈길을 거두기 힘들만큼 익숙해지고 있다. 유령처럼 군림하고 있는 감독관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공간 속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규율적 제도와 폭력적 시선들은 개인들에게 자기검열 기제로 작동한다. 스스로, 알아서 기어다닌다. 조심하고 방심하고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익숙한 시선들 속에서 무덤하게 지내거나 무시해 버리기도 한다. 개인정보는 이미 공유되어 있으며 사생활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만 먹는다면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정말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커다란 권력이나 힘있는 자의 특권이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혹은 기울이지 않아도 쉽게 알려지는 수단과 방법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벤담은 파놉티콘을 공리적 관점이나 초기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로 제시했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파놉티콘’이 기능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누구에 의한 어떠한 제안이든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합의없이 주장되고 실행되었다면 분명한 폭력이다. 그토록 갈망했던 감시체계의 감시자가 되지 못했지만 벤덤은 자신의 구상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전 재산과 인생을 걸고 올인했다. 이후에 비슷한 형태의 감옥이 지어지고 실행되었지만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파놉티콘 체제보다 월등한 감시체계와 통제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있다.

  불과 몇 백년 동안 사람들의 삶은 빠르게 변해왔으며 그 형태와 기능 면에서 비교를 불허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가 ‘빅브라더’가 되고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병영에 도착하는 순간,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모든 자유를 포기하고 벤덤이 그토록 갈망했던 일망 감시체계의 시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책의 말미에서 그가 주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읽기 전에 적절한 에피타이저로 이 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이 원리는 다행스럽게도 학교나 병영, 즉 한 사람이 다수를 감독하는 일을 맡는 경우에 모두 적용할 수 있다. 파놉티콘 장치를 통해 단 한 사람에 의한 용의주도함의 이점은 다른 체계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성실함보다 더 나은 성공을 보장한다. - P. 70


07090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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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풍경 -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말들은 저마다 자기의 풍경을 갖고 있다. 그 풍경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다르다. 그 다름은 이중적이다. 하나의 풍경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풍경들의 모음도 그러하다. 볼 때마다 다른 풍경들은 그것들이 움직이지 않고 붙박이로 보인다. 그러나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말들이 갖고 있는 은총이다. 말들의 풍경이 자주 변하는 것은 그 풍경 자체에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풍경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자꾸 변화하기 때문이다. - <말들의 풍경>을 시작하며, 1989년 김현

  1990년 겨울에 나온 김현의 <말들의 풍경>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1부 말들의 풍경에서 김현은 최승호, 최승자, 김정란, 김혜순, 곽재구, 박남철, 유하, 황인숙, 송찬호, 기형도의 시에 대해 말하고 있고 2부 보이는 심연과 안 보이는 역사 전망에서는 이성부, 이승훈, 김정웅, 박상륭 등의 작품을 분석하고 있다.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이름들이다. 아득한 스무살 무렵 추억의 언저리를 더듬게 한다. 여전히 건재하게 한국 현대시에 주요 시인으로 남아 있는 이들이 당시엔 재기 발랄한 신인이거나 젊음의 열정을 내뿜을 무렵이었다. 17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충분히 감회에 젖을 만하다.

  고종석은 선배의 책 제목에 기댄 것도 아니고 똑같은 제목으로 책을 묶어 냈다. 영화용어로 ‘오마주’에 해당하는 것일까?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칼럼을 모아 <말들의 풍경>이라 이름 지었다. 법학과 언어학을 공부한 저자의 이력은 글을 읽는데 크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최근에 <모국어의 속살>에서 보여주었던 혹은 지금까지 그가 보여주었던 우리말과 글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비판적 관점들이 이 책에서도 오롯하다. 신문의 칼럼이라는 제한된 분량때문인지 깊이 있고 심층적인 내용을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주제와 인상들을 찾아내 빛을 내고 담아내는 솜씨는 장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신문에 실린 글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려운 말이 없고 저자 나름의 뚜렷한 색깔과 고집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문장들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제목에 걸맞게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분석들이 정확하고 날카롭다. 일상에서 사용되는 우리말의 특징과 한계들, 그 깊이와 갈피를 짚어낸 칼럼들이 하나의 주류를 이루고, 또 하나의 흐름은 인물에 대한 탐색이다. 정운영, 김윤식, 이오덕, 전혜린, 서준식, 양주동 등 우리말과 글을 살려 쓴 사람들의 글과 생각들을 꼼꼼하게 털어내고 제자리에 놓아 본다.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나름의 고집대로 이오덕을 평하거나 김윤식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공감을 할 만하다. 홍승면, 임재경이나 정운영 등 선배들에 대한 인상과 글을 통해 보여주었던 특징들도 재미있었다.

  책으로 묶어내기 전에 분류하고 편집하고 내용을 수정하는 수고를 건너뛰며 날 것 그대로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하는 방식을 취한 점이 독특하다. 각 글 뒤에 연도와 날짜를 밝혀 놓음으로써 당시의 맥락과 상황들을 엮어서 생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해 보일 수도 있으나 정치적 시론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기록의 성격을 지닌다. 그 재미라는 것이 개인이 속한 집단과 사회가 사용하는 한국어의 풍경들에 대한 소박하고 맛깔스런 밥상과 같다. 책을 묶어내는 방식이나 책에 대한 욕심을 조금 털어버린 채(수십권의 책을 냈기 때문에 욕심이 없어 그런지도 모르지만) 소탈하게 엮어낸 <말들의 풍경>은 김현의 그것에 견주어 비교하는 것은 온당치가 않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제 작고할 당시의 김현의 나이를 넘어선 저자가 선배에게 보내는 투정과 질투가 가당치 않다고 했지만 독자가 보기엔 정겹고 즐겁기만 하다.

  김현 선생이 생전에 이촌동 자택을 찾은 제자나 지인들이 돌아갈 때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계시더라는 이야기를 고등학교 때 문예반 동기 녀석한테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한동안 헤어지며 버스에 대고 손을 흔드는 우스꽝스런 짓을 했었다. 그 몇 년 후에 돌아가셨다. 제대로 이해되지도 않았겠지만  선생의 책들을 읽으며 문학에 눈떴다. 감탄과 아쉬움들은 표현이 부족해 말로 다하기 어렵지만 이제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의 시간으로 남아 있다.

  17년이 지난 후 고종석은 <말들의 풍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언어를 바꾸려는 힘과 현실을 바꾸려는 힘의 작동원리가 같지는 않겠지만 언어의 언저리에 서성이며 쑤석거리는 모습으로 남게 될 줄이야…… 한결같은 모습으로 계속될 고종석의 이야기에 여전히 귀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현실은 언어 이전에 있는 것이어서 언어를 바꾸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될 수는 없겠지만, 언어의 비틀림을 응시하는 일은 현실의 비틀림을 살피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 P. 99


0708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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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ptic 2007-09-04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은 아니라서..즐거운 독서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