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관계심리학 살림지식총서 279
권수영 지음 / 살림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다가 핸들을 꺾으며 정리되기도 하고 말없이 사라지던 뒷모습이 생각나기도 하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끊임없이 죽어가도 계속해서 태어난다. 인류는 끄덕없이 유지되며 아직도 오히려 좀 더 죽어줬으면 좋겠다. 쾌적한 지구를 위해서는 아직도 인구가 너무 많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구덩이를 파고 홀로 매몰되어 있는 듯 하지만 지구의 반대편까지 여섯 단계의 법칙에 따라 연결되어 있다. 넓고도 좁은 세상에서 우리는 한 번도 대면하지 않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문제는 사람의 숫자나 관계의 망이 아닐 수도 있다. 그 관계를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와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이러한 인간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해 보면 우리의 일상과 만나게 된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린왕자가 말한 것처럼 길들인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들이는 과정에 ‘동의’가 생략되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부모 자식 간이나, 부부 사이, 친구 사이,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다. 길들여지고 싶지 않은데 길들이려는 사람이 있고 길들여지고 싶은데 길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모두 불행해진다.

  이러한 ‘관계’는 맺어진다고 표현하는데 특히 한국에서의 ‘관계’는 조금 특수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문화적 특성의 차이이기도 하다. 대선 후보들이 무슨 무슨 ‘향우회’로 똘똘 뭉쳐진 모임에 나가 한 표를 구걸하는 모습은 코미디에 가깝다. 21세기에도 고향이 같은 사람들의 힘은 그만큼 막강한 것이다. ‘관계’는 그렇게 인위적인 선택이 아니라 우연적인 필연에 의해 발생한다. 그 첫 번째 관계가 가족이다.

  그래서 가족들은 서로에게 가장 큰 ‘사랑’을 나누어 주기도 하지만 죽음과도 같은 가장 큰 ‘고통’을 주기도 한다. 특수 관계라는 말로 규정짓기에 우리에게 가족은 너무 큰 멍에와도 같다. 부모형제 모두 마찬가지다. 독립적인 개인이나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선진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끔 부러울 때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문화의 불편부당함과 부자유스러움은 목을 죄는 사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혈연과 지연에 의해 묶여 사는 우리의 모습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아주 느리고 점진적인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가부장제와 장자중심의 문화에 제도적인 변화가 도래하고 있다. 호적법이 바뀌고 결혼이나 가족제도에 변화가 밀려오면 우리는 더 이상 근대 혹은 전근대적인 ‘관계맺음’에서 자유로워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경계를 인식하거나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거나, 부당하게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공격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P. 38

  관계는 이렇게 취향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며 선호도도 다르다. 특히 ‘효孝’나, ‘우애友愛’ 등으로 묶인 사람들은 말로 형언하기 힘든 집착과 소유의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한국인의 관계심리학>이라고 하는 매력적인 제목의 책은 핵심을 짚었지만 별 생각은 없어 보인다.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에서 보여줬던 탁월한 분석이나 정리를 목적으로 한 책은 아니지만 결론이 애매하다. 한국인 사이의 ‘관계’의 의미를 밝히고 그것을 나누는 ‘경계’가 인간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경계’와 윤리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따로 또 같이’ 문화를 만들어 왔던 우리를 돌아본다. 결국 한국인의 관계를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사람 사이에 힘의 균형을 이룬 ‘경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안전하기 위해 담을 높이 쌓아 올릴 것이 아니라, 함께 하면서 공감하고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관계가 공존할 수 있도록 남을 배려하는 바로 ‘관계적인 경계’가 필요하다. 우리의 존재 밑바탕에 경계와 경계의 사이를 관계로 메울 수 있어야 한다. - P. 93

고 정리하는 저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  고민한다. 아니, 우리가 더 고민한다. 사람들에게 한참 회자되었던 정현종의 ‘섬’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한 시가 된다. ‘가고 싶다’는 욕망은 결국 가지 못할 것이라는 안타까움에 대한 열망이자 영원한 시지프스의 신화가 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071022-1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