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아무 서른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십대가 저물어 갈 무렵이었을 것이다.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를 보면서 르네 마그리트와 에셔의 그림과 판화들을 만나게 되었다. 예술적 감수성과는 무관하게 그림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4차 교육과정 세대라는 핑계 아닌 핑계가 아니라 미술 실기 시험을 위해 조각도로 비누파기와 몸 비틀며 정물화 그리기 이외에는 도대체 학창 시절의 미술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둔감한 미학적 감성 탓이겠지만 어느 순간 그림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전시회에 가서 어슬렁거리거나 예술 관련 서적을 뒤적거리는 것 이외에 특별한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에도 손이가고 미술사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라루스 출판사에 펴낸 <서양미술사Ⅰ~Ⅶ>가 기억에 남는다. 도판과 해설이 적절하지는 않다. 지나치게 문장이 어렵고 일반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들이 많다. 하지만 시대별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7권에 걸쳐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어 볼 만하다.

  예술은 지식이 아니다. 조이한과 진중권의 <천천히 그림읽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읽어’준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무장정 그림을 보고 느끼라고 주문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다. 첫 번째 단계는 물론 관심이다. 관심없는 대상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에 관심을 갖고 보고 싶은 혹은 읽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할 만한 책이다.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본다. 두 가지 태도를 보이는데 우선 나처럼 문외한의 경우 머릿속의 지식과 잣대를 들이민다. 일명 확인사살이다. 내가 아는 게 맞는지, 책에서 읽은 혹은 주워 들은 것들을 좌판처럼 펼쳐 놓는다. 배경지식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 점검한다. 그림을 보러 왔다고 하기보단 공부하러 온 느낌이다. 작년 덕수궁에서 전시된 합스부르크 왕가 컬렉션 <비엔나미술사박물관전>이 그랬다. 왕가의 족보를 꼼꼼히 들여다 보고 모델이 된 인물들의 관상을 보고 누군지 꼼꼼이 들여다 봤다. 초상화의 경우 그렇게 보는게 굳이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피곤했다. 미술관에 왔나? 공부하러 왔나?

  두 번째 방법은 그냥 보는 거다. 그림을 읽는 게 아니라 보고 즐기는 마음으로 본다. <유럽 현대미술의 위대한 유산전>이 그랬다. 구상 작품 보다 추상의 경우가 더욱 그렇고 고전보다 현대 미술이 더욱 그렇다. 이 경우 그림은 놀이가 되고 관람은 가벼운 볼거리를 위한 산책이 된다. 잘못된 관람 태도라고 볼 수도 없고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두 가지 태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어렵다.

  사실 미술 작품에 대한 독자 혹은 관객들의 태도는 각양각색일 것이다. 소장하기 위한 극소수의 사람도 있고, 미술관에서 주마간산격으로 평생 한 번 진품을 대략 몇 십초 간 감상하는 데 그치는 경우도 있다. 미술사를 전공하거나 비평을 위한 감상자도 있을 것이다. 누구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보고 즐기는 독자의 입장이라면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 자체가 무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전 미술 작품의 경우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이 책은 미술관에 가기 전에 천천히 읽었으면 좋겠다 싶은 책이다.

  도상학의 예비 단계와 묘사 단계를 거쳐 해석의 단계에 이르는 과정은 우리들 머릿속에 각인된 각 시대별 흐름과 특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 서양 문화의 전체를 조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신화와 종교, 정치와 사회, 사상과 학문 등 풍부한 배경지식과 상징, 알레고리를 모두 풀어내는 일은 전문가의 순준에서 요구되는 그림 독해법이다. 하지만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바로크 양식의 그림들은 색채와 구성 빛과 선이 주는 감동만으로는 그림을 제대로 읽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주문자에 의한 그림들은 화가를 장인 수준에 머물게 했고 표현과 창작을 시작한 진정한 의미의 예술로 탄생하기 까지 미술은 오랜 시간의 세월의 변화를 겪어왔다. 어느 예술 장르가 그렇지 않을까마는 미술 또한 앞선 시대의 극복과 시대 정신의 반영이라는 숙명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읽어내는 안목과 지식들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전체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호학적 관점의 예술 분석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 6장 ‘그림에는 요란한 의미의 움직임이 있다’만 진중권이 집필했다. 나머지는 전부 조이한의 글이다. 공동저자가 당연하나 진중권의 이름을 끼워 책의 소비층에게 다가가려는 출판사 혹은 저자들의 의도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이한의 글은 감각적이며 쉽고 편안하다. 본문 내용과 도판의 위치도 크게 어긋나지 않고 내용의 흐름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1,2장은 형식과 내용의 대비로, 3,4장은 개인의 심리와 사회의 대비로, 5,6장은 여성주의와 기호학의 관점으로, 7장은 현대미술에 할애하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각 부분의 내용들이 적절하고 그림을 읽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안내서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림을 읽는 비법을 제공하는 책은 아니지만 처음 그림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함을 전해줄 수 있는 책이다. 그림이 재미없거나 무엇을 보아야 할 지 어떻게 보아야 할 지 망설이는 사람을 위해서도 좋은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겠다. 호기심은 관심을 낳고 관심은 애정을 만든다. 애정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머리에서 가슴까지 훈훈한 기운을 불어 넣어 주기도 한다. 그것은 예술이든 사람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080225-02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게다예요 2008-02-25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책은 99년판이라 표지가 다르네요. 저도 이 책 꽤 재밌게 읽었는데, 그땐 공부하듯이 꼼꼼하게 읽었던 것 같아요. 저도 진중권이 공동저자라고 하기에 고개를 갸웃하긴 했던 거 같아요. 그의 색채가 묻어나는 책은 아니니까요. 반가워요. ^^

sceptic 2008-02-25 16:56   좋아요 0 | URL
네...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워낙 아는게 없고 문외한이라 읽을 때마다 새롭고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 문화는 어떻게 현실에서 도망가는가? , 컬리지언 총서 13
이택광 지음 / 이후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문화는 음악이나 미술 혹은 영화나 사진 등 예술의 한 장르나 어떤 특정한 생활양식을 이르는 말로 이해된다. 이러한 개념은 자연 상태와 상반된 것으로 이해되며 물질적, 정신적인 인간의 역사적 축적물을 통괄한다. 종교나 언어, 풍습, 행동 양식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와 개념은 폭넓게 정의되고 사용된다.

  문화의 영역과 범위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인류가 축적해 온 모든 생활 양식과 삶의 태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문화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도 힘들다. 그 범위와 개념이 포괄적이기 때문에 문화는 대단히 모호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택광은 문화 비평을 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와 문학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이 분석이 타당하게 보이는 것은 문화를 만들어가는 한국인에 대한 성찰과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화는 그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자연 상태가 아닌 인간의 모든 인위적인 행위가 만들어 낸 현상들과 행위들은 문화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대중성을 확보한 영화나 만화, 드라마 음악, 소설 등은 한 사회의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이것을 우리는 문화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구체적인 문화 현상들을 이택광은 몇 가지 개념들로 묶어 내면서 하나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는 바로 이러한 문화 현상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의 결과물이다.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듯이 ‘서사의 무덤에 새겨진 묘사라는 비문’ 우리 사회의 문화 현상들을 서사와 묘사의 차이점을 통해 기발하게 분석해내고 있다. 그것은 모범답안처럼 제시되는 리얼리티는 문화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순수-참여 논쟁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저자의 의도에서 비롯된다. 단순하게 고급문화와 하위문화를 구분하거나 현실이 어떻게 문화 현상에 반영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왜’ 반영되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와 결합된 문화 상품들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고 리얼리티의 문제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서사가 죽어버린 시대에 가상현실에 대한 묘사가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화와 정치는 다르다. 현실생활에서 140억을 가진 유인촌의 재산 3분의 1은 부인이 가진 현금이다. 이것은 문화예술인으로 분류되는 유인촌과 무관한 현실적인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가 아닌 문화와 예술 행위를 통해 환상과 신기루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그것은 몽환적 환타지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거짓이다.

  저자는 자본과 결합한 문화의 상품화를 철저하게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 전제 조건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우리는 허위의식을 가진 채 실제 현실과 문화 현상 사이의 모호한 환상을 쫓게 된다. 보수주의는 문화를 통해 음란한 환타지를 만들어준다.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들이다.

  저자의 말대로 서사가 초월의 욕망이라면 묘사는 환상적인 비극에 불과하다. 묘사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치밀하게 재현한다. 서사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서사가 죽고 묘사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래서? 재현된 욕망의 판타지가 펼쳐진다. 그것이 사실이든 환상이든 중요하지 않다. 스펙터클과 포르노그라피,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친구와 텔미썸딩 등 우리들 눈에 비치는 모든 문화는 현실로부터 탈주한다. 현실과의 미세한 차이는 반복되고 정착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집요한 시도는 문화 현상과 관객들의 끊임없는 질주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제임스본드와 오우삼을, 이문열과 이인화를, 김영민과 강준만과 김용옥과 김지하와 이진경과 진중권과 김규항을 분석한다. 앞서 펼쳐놓은 영화와 소설이 보여주는 우리 사회와 문화 현상들을 거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면 이제 대중 속에 어필하고 있는 작가들을 점검한다. 단순하게 글을 잘 쓰거나 필력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비교 대조되는 사람들도 결국 문화 상품으로 포장되어 ‘잘 팔리는’ 욕망하는 기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저자의 날선 비평들은 긍정과 부정의 문제가 아니다. 2002년에 출판된 이 책은 세기말의 징후들을 읽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자료가 될 것이다. 이제 시간이 또 한참 흘렀지만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모든 문화라는 이름의 상품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의식과 생활과 현실을 녹여내고 있다. 모든 것을 팔아치우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모든 문화는 재편되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어리석은 이념 공방이 아니라 내가 소비하고 있는 문화는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 것인가 그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이 한 권의 책으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왜 이런 분석과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의문은 조금 풀리는 듯하다.

  내용과 무관하게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는 경험들이 - 지나간 영화에 대한 추억들, 사라진 여배우들, 현재에도 건재한 글쟁이들 - 가능했던 책이다. 이 책도 소비의 대상이지만 무엇이 같고 다른지, 그 의미와 논리는 무엇인지 믿을만한 저자의 눈을 잠시 빌려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될 것이다.


080222-0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들뢰즈의 극장에서 그것을 보다
이택광 지음 / 갈무리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책 좀 읽었다는 장석주가 질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을 읽다가 울고 싶었다는 고백을 읽은 적이 있다. 이해하지 못하거나 육화되지 않는 책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철학적 기초가 부족하거나 번역상의 어려움, 관념적인 용어에 대한 이해 부족 등 이유는 다양하다. 앎과 지식으로 내면화 되지 못하는 철학과 사상은 무의미하다. 현대 철학이든 고대 철학이든 사유의 방식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인 언어에 대한 문제만 남겨 놓는다면 쉽게 해결될까? 비트겐슈타인처럼 명징한 논리학으로 언어를 분석하기만 하면 철학적 명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들뢰즈나 가타리, 라캉과 푸코에게 빚지고 있는 현대 철학의 이론들은 명민한 철학자만의 몫은 아니다. 이택광은 <들뢰즈 극장에서 그것을 보다>라는 책을 통해 들뢰즈를 무기로 들고 나왔다. 대상은 전방위적 ‘문화현상’들이다. 문학에서 영화에 이르는 다양한 예술 장르와 사회 현상들을 아우르는 잣대로 삼는 것은 현대 철학의 분석틀이다.

  문화비평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가 정착된 것은 80년대의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붕괴로부터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다. 좌우의 대립이나 민주와 독재의 대결 구도,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가 붕괴되면서 사회 현상은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정신적 아노미 현상처럼 이념을 대신하는 자리에 문화가 등장한다. 이론적 토대위에 굳건하게 버티고 서 있는 현실에 대항하기 위한 도구는 책과 펜이다. 읽고 쓰며 실천과 행동으로 다양성을 표방하는 세대에게 탈주와 회귀를 읽어내려는 노력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 이택광은 영문학을 전공한 후 영국으로 날아가 발테 벤야민을 연구했고 문화이론을 공부했다.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로 그를 만났다. 그림 이야기나 하며 소일을 할 만큼 안온한 현실에 발딛고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2002의 그를 만나는 일은 신선하다. 개인적인 관심과는 무관하지만 시대를 돌아보는 일은 단순히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는 후일담이 아니라 현재를 알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지적 이력을 추적해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탈주와 회귀, 차이와 반복, 시뮬라크르 혹은 욕망과 분열, 증식, 글쓰기 등의 생소한 용어들에 대한 개념들을 그가 이해한 방식들로 풀어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하게 철학적 개념과 용어에 대한 해설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과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하기 위한 좋은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를 보지 않았거나 카프카의 <성>, <심판>을 읽지 않았거나 밀란 쿤데라의 <느림>을 모른다면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없어진다. 어떤 책이든 한계가 있겠으나 이 책은 실제 상영된 영화, 출판된 영화들을 바탕으로 이론의 잣대를 들이밀기 때문이다. 들뢰즈나 가타리가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듯이 이택광의 방식은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

  편협한 문학이론이나 철학의 개념들을 억지로 끼워 맞춘다고 예술 혹은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달라지진 않는다. 거대담론은 언제나 구체적 문화현상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일반 독자나 관객의 입장에서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은 어쩌면 무의미한 노동에 가깝다. 즐거운가? 재밌냐? 로 요약되는 이야기를 바라보는 관점은 그들만의 리그로 끝날 우려가 있다.

  가장 최근의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라는 다소 동떨어진 책을 통해 그를 만났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글이 안내하는 혹은 그가 걸어온 관점의 변화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흥미있는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개별 철학자들의 개념이나 이론들을 내면화하고 그것들을 실제 문화현상에 적용하고 분석하려는 개인적인 흥미와 관심들을 이해할 필요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면 혹독한 비판일까? 육화되지 못한, 한국적 풍토와 개념으로 전환되지 않는 사상은 낯선 이방인의 몸짓일 뿐이다.

  어쨌든 저자의 관심과 노력은 흥미롭다. 그가 이해한 개념들 사이를 따라 걷다 보면 현실밖의 현실들이 더 실감나는 시뮬라크르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것이 영화이든 소설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혹은 사유하고 있는 세상의 어떤 일면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것은 저자의 도움 없이도 걸을 수 있지만 그와 함께 걷는 길이 그리 낯설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이어지는 이택광의 <한국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는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다. 하나의 사물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일은 내게 언제나 커다란 즐거움이다.


080221-021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책소개)『이미지와 생명, 들뢰즈의 예술철학』
    from 도서출판 그린비 2008-08-11 14:32 
    ‘생명의 철학’으로 다시 읽는 들뢰즈『시네마』—탈인간의 가능성을 창조하는 예술의 역능 『이미지와 생명, 들뢰즈의 예술철학』클레어 콜브룩 지음 정유경 옮김|도서출판 그린비|갈래 : 철학, 인문발행일 : 2008년 8월 5일 | ISBN : 9788976823151신국판변형(150*220mm)|304쪽리좀 총서의 네 번째 권으로서 들뢰즈의 독특한 이미지론을 통해 철학과 영화 그리고 예술의 역능을 살핀다. 살아 있는 인간 신체가 이미지화하는 능력으로 세...
 
 
 
리스본行 야간열차 문학과지성 시인선 341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의 모든 아침은 찬란하기만 하다. 눈부신 아침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눈을 뜨며 살아있음을 감사할 때가 있다. 이른 새벽에 헤어지는 친구의 뒷모습이 쓸쓸해보이기도 하지만 눈을 뜨면 또 하루가 시작된다. 현실은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거나 외롭거나 혹은 침묵하거나.

  황인숙의 <리스본行 야간열차>는 다양한 장면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장면들, 삶의 구석구석을 헤집는 눈과 날선 감각들, 둥글고 부드러운 시선보다 음울하고 어두운 감각이 신선하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장면과 사물은 색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의 본질은 언제나 대상과 시선 그리고 언어에 놓여있다고 믿는다. 시인의 시선은 남들과 다르지 않다. 다만 같은 대상에서 무엇을 읽어내는지 어떻게 표현하는지 독자들은 그의 시선을 따라갈 뿐이다. 사소함에서 위대함을, 무심한 것에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은 삶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방법은 다양하다. 삶의 형태만큼이나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어떤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시인의 개성이고 시의 특징이 된다.  

산오름

친구와 북한산 자락을 오른다
나는 숨이 찰 정도로 빨리 걷고
친구는 느릿느릿,
그의 기척이 이내 아득하다
나는 친구에게 돌아가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기를 몇 번, 기어이 친구가 화를 낸다
산엘 왔으면, 나무도 보고 돌도 보고
풀도 보고 구름도 보면서 걷는 법이지
걸어치우려 드느냐고
아하!
친구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걸으려는데
어느 새 획획 산을 오르게 되는 나다
땀을 뚝뚝 흘리며 바위에 앉아 내려다보면
멀리서 친구가 느릿느릿 올라온다
나무도 데리고 돌도 데리고
풀도 데리고 구름도 데리고.

  여전히 느린 발걸음으로 걷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욕심도 없고 큰 소리로 말하지도 않는다. 북한산에서 도봉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산과 하늘을 무심하게 보고 있다. 그는 나무도 돌도 풀도 구름도 데리고 산에 오르리라. 아득한 거리에 있는 사람을 재촉한다고 해서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보폭과 속도가 있다. 앞과 뒤가 아니라 걷는 목적과 태도가 다른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가끔씩 무릎을 치게 되는 것이다.

여름 저녁

조금쯤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을 듯한
먼 하늘에
태양이 벗어놓은 허물
둥실 떠 있다
조금쯤 바람 빠진 듯
맥없이 부푼 주홍빛 풍선
맥놀이 퍼지는 하늘

“그래, 이대로 이렇게 사는 거지, 뭐!”
버럭 중얼거리며
어리둥절하다
뭘?
몰라, 가슴 쓰리다.

  황인숙의 시의 특징을 한 마디로 잡아내기는 어렵다. 아니 어느 누구의 시도 마찬가지다. 군데군데 가슴을 쓰리게 하는 복병이 숨어 있는 삶처럼 그 혹은 그녀가 그러하듯이 이대로 이렇게 사는 게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만족과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독자의 모습이다. 이대로가 아니라 다른 삶을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선문답하듯 모른척 외면하기도 한다. 삶을 계속된다. 여름 저녁에도.

카페 마리안느

“누군 저 나이에 안 예뻤나!”
스무 살짜리들을 보며 중년들이 입을 모았다
난,
나는 지금 제일 예쁜 거라고 했다
다들 하하 웃었지만
농담 아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앞날이 훠언한
못생긴 내 청춘이었다.


  내 청춘은 못생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청춘은 어떠했을까? 앞날은 훤하지만 눈앞은 캄캄했던 청춘의 뒷골목을 회상한다. 나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나이는? 그것도 지극히 주관적이겠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확인하고 뒤돌아보는 시간을 이렇게 잠깐씩 가질 수 있는 것은 황인숙의 시가 아니라도 독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

  청춘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카페도 있겠고, 이쁘고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절도 있겠지만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는 것은 현재를 비춰보기 위함이다. 과거와 미래의 연속선상에서 현재는 찰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 들어감에 따라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청춘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사라져간다.

  동네 고양이에 대한 시인의 애정과 관찰로 만들어 낸 시편들이 읽을만하다.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고양이는 시인이 되고 시인은 고양이가 된다. 언어는 매개가 되어 진경을 선보이고 독자들은 순간 쏟아지는 졸음에 고개를 떨군다.

깊은 졸음

뒤로도 양옆으로도
벽을 훑내리는 비바람 소리
방충망에 걸러져
방 안 깊숙이 들이치는 빗가루들
등덜미에 잔소름으로 맺힌다
산란한 빗소리
속수무책.

  산란한 빗소리에 대상과 목적 없이 속수무책이라는 사자성어로 끝내버린 ‘깊은 졸음’은 정말 속수무책이다. 그 빗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그 빗소리를 들으며 외로운 섬처럼 떠 있거나 흔들리는 사람들의 가슴은 속수무책이다.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맡기거나 상황을 즐기는 것 뿐이다. 졸음처럼 쏟아지는 빗소리를 가만히 들어볼 밖에.


080219-019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니 2008-02-1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관함에 담아둔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못 봤습니다.
덕분에 얼른 사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가네요.

sceptic 2008-02-19 21:16   좋아요 0 | URL
천천히, 즐겁게 음미하세요...
 
일본지식채널 -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본의 모든 것
조양욱 지음, 김민하 그림 / 예담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되는 일본은 우리와 특별한 관계에 있다. 지정학적으로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역사적으로 결코 가깝게 지낼 수 없는 나라가 일본이다. 국가 간의 교류나 외교가 개인 간의 관계처럼 감정적으로 처리될 수는 없지만 어떤 형태로든 과거사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근대화 초기에 식민지 시절을 경험한 우리 역사는 일본에 대한 객관적 거리와 시선이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식민지 사관의 논리나 민족 사관의 논리나 그것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논의를 떠나서 일본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21세기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불과 60년을 겨우 넘기고 있다. 일제의 잔재는 우리 생활과 문화 곳곳에 뿌리 깊게 배어 있다. 특히 언어처럼 사회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지닌 경우 쉽게 바뀌지 않는다. 황대권의 <빠꾸와 오라이>처럼 일본어의 잔재를 굳이 찾아서 정리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일본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용어들은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라면이나 초밥 등 음식에서부터 닌텐도, 도요타에 이르기까지 우리들 일상에서 일본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조양욱의 <일본 지식 채널>은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 생활, 문화, 언어, 정치, 역사, 사회를 대표하는 핵심 키워드를 정리한 책이다. 하나의 키워드를 한 장의 사진과 함께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의 판단과 대상에 대한 인상이 간략하게 부연되고 있지만 주된 내용은 용어에 대한 설명이다. 이 책은 잡다한 박물지와 같다. 108 단어를 통해 일본이라는 나라를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잡다하고 일반적인 수준의 피상적인 상식에 불과한 내용들은 실망스럽다. 일본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특정 분야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지도 없고 지나치게 많은 양의 정보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우선 제목을 살펴보자. ‘지식 채널’은 명백한 표절이다. 무임승차를 거두기 위한 제목 선정은 책 전체에 대한 인상을 구겨 버린다. 독특하고 참신한 책이 아니라 잘 팔리고 있는 책의 제목을 등에 업고 무임승차하겠다는 발상은 출판사나 저자의 입장에서 안전한 선택일 수 있지만 독자의 양미간에 주름을 잡아준다. ‘지식 채널’은 EBS에게 맡겨 놓았으면 좋을 뻔했다.

  또한, 군데군데 저자의 보수성과 편견들에 눈살을 찌푸린다. 다음의 인용문을 보자.

일본에는 “마누라와 다다미는 새것일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다. 새 마누라가 좋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다미는 볏집을 엮은 바닥 부분의 위에 골풀로 만든 거죽을 표면에 붙이는데, 새 다다미는 이 골풀의 향기가 신선하다. 일본인들은 새 다다미의 향기나 피부에 닿는 감촉에서 신선함을 느끼며 행복에 젖기도 한다. - P. 51

  일본의 속담을 인용하고 있지만 여성에 대한 배려나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 자체가 의심스러워 어이가 없는 표현들이 군데군데 눈에 띤다.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일 수 있으나 ‘새 마누라가 좋은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는 저자의 말은 문맥상 웃음을 유발할 목적이 아니라면 심각한 수준이다. 문제는 단편적인 견해들이 일본 문화에 대한 적절한 평가나 객관적인 판단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일본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개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거나 특별한 안목과 관점이 없는 단순 설명은 지루한 박물지에 불과하다.

  일본어를 우리말의 발음으로 적고 일본어를 병기하고 있는 각 장의 제목을 보자.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간략한 제목들이 붙어 있지만 그 어휘나 대상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는 장들이 많다. 그것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이나 설명을 읽어가면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쉽고 간단한 문장이기 때문에 가독성은 뛰어나지만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부족하고 그것에 대한 이면적이 이야기와 문화적 배경들을 설명하고 있지만 감동은 없다. 마켓 포지션은 잡학 사전 쯤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사서 읽고 싶은 생각은 없는 책이다.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본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피상적으로 혹은 간단하지만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는 것도 있다. 정보 제공의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지만 아쉬운 면이 훨씬 많은 책이다. 목적에 따라 일본에 대한 잡다한 지식과 정보가 필요할 때 손쉽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이기는 할 것 같다.


080217-0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