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 문학과지성 시인선 342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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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연휴 특판을 위한 백화점 ㄷ참치 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매장에서는 백화점 직원들이 판매를 하고 나는 지하 2층 창고에서 매장까지 물건을 옮겨 놓는 일이었다. 때때로 선물용으로 배달되는 참치를 들고 배달을 나가기도 했다. 보름간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는 시간은 지하 창고 불빛 아래 참치 박스들 틈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책을 보았다. 그 때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었던 책이 바로 오규원의 <현대시작법>이다.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이땅에 씌어지는 서정시>,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와 시선집 <사랑의 기교>를 보면서 나는 정호승이나 신경림, 황지우와 또 다른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규원은 내게 그렇게 특별한 시인이었다. 이후 발간된 시집들은 모두 사 보았지만 이론서들은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런 시인이 작고 한 지 벌써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시집 <두두>가 나왔다.

그대와 산
― 서시

그대 몸이 열리면 거기 산이 있어 해가 솟아오르리라, 계곡의 물이 계곡을 더 깊게 하리라, 밤이 오고 별이 몸을 태워 아침을 맞이하리라


  시집을 왜 사서 읽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문법전공 국문과 교수처럼 시는 늘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 있다. 오규원의 시는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시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무색한 오규원의 짧은 시들은 인식 이전의 차원을 보여준다. 언어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인의 마지막 목소리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맑고 깨끗한 이슬과 같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물과 자연의 변화는 시인에게 단순히 경외와 감탄을 자아내지 않는다. 지금 거기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날것 그대로의 이미지를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언어가 보여주는 장면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점에 따라 선택된 장면이고 선택된 언어에 따라 다르게 보여질 뿐이다. 객관적 거리와 표현은 불가능하다. 그것에 도전하는 무모함을 보여주는 시들은 절대 아니다. 시인은 그저 자신의 눈에 비친 풍경들을 간결한 언어의 세계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읽어내는 독자의 마음에 그려지는 하나의 이미지는 이미 시인의 그것과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4월과 아침

나무에서 생년월일이 같은 잎들이
와르르 태어나
잠시 서로 어리둥절해하네
4월 하고도 맑은 햇빛 쏟아지는 아침


  시간은 정지해 버린 듯 멈춰 있지만 4월과 아침은 교묘한 눈빛을 교환하며 4월의 아침이 빚어내는 장면을 고스란히 정지시킨다. 사진조차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오규원의 시들은 단순한 정지화면만을 보여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산과 길

여러 곳이 끊겼어도
길은 길이어서
나무는 비켜서고
바위는 물러앉고
굴러 내린 돌은 그러나
길이 버리지 못하고
들고 있다


  시집의 제목인 ‘두두(頭頭)’와 물물(物物)은 두두시도(頭頭是道), 물물전진(物物全眞)이라는 선가(禪家)의 말에서 시인이 빌려온 것으로, 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도이며,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진리라는 의미라고 한다.

식빵과 소리

식빵을 얇게 썰어
살짝 굽는다
한 조각 위에
버터를 바르고
한 조각을 덧씌워
종이 냅킨으로 감싸 쥔 뒤
아, 하고
입 가득 넣고 깨문다

바싹!

오후
그리고
4시

  동작과 행위들까지 정지해 버리는 시간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미지의 적막을 깨는 소리가 들린다. 바싹! 긴 여운이 남는 소리는 아지만 오후 4시에 들려오는 ‘소리’는 순간 또다시 적막 속으로 사라진다. 이 시집은 크게 ‘두두’와 ‘물물’로 나뉘어져 있다. 유고시집의 특성상 끊임없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시인의 목소리를 연상하자니 죽음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존재의 무(無)로 돌아간 시인과 유작으로 남은 시들이 던지는 화두는 무겁거나 진지하지는 않다. 시인의 의도였는지 알 수 없으나 의미를 넘어서 존재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깨닫거나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자는 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명징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지극히 단순하고 깨끗하게!

고요

라일락 나무 밑에는 라일락 나무의 고요가 있다
바람이 나무 밑에서 그림자를 흔들어도 고요는 고요하다
비비추 밑에는 비비추의 고요가 쌓여 있고
때죽나무 밑에는 개미들이 줄을 지어
때죽나무의 고요를 밟으며 가고 있다
창 앞의 장미 한 송이는 위의 고요에서 아래의
고요로 지고 있다


  고요의 위와 아래를 생각하다가 장미 한 송이가 지고 있는 장면을 떠올려 본다. 고요하지 않은 세계의 이편에서 고요한 세계의 저편으로 건너 간 버린 시인이 남긴 고요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여주려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소란스런 삶의 세계와 대비되는 적막한 죽음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구멍 속으로 사라진 시인이 그립다. 그 구멍은 물론 바닥이 보이지 않을 것이고, 모든 것들은 사라지는 구멍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그의 목소리를, 그의 시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보다 그가 남겨 놓은 시들을 다시 꼼꼼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가 남겨놓은 빈 자리는 작은 구멍 하나만큼 비워 놓고 싶다.

구멍 하나

구멍이 하나 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지나가는 새의 그림자가 들어왔다가

급히 나와 새와 함께 사라지는 구멍이 하나 있다

때로 바람이 와서 이상한 소리를 내다가

둘이 모두 자취를 감추는 구멍이 하나 있다



080327-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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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3-28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에게 마침 필요한 시들! 보관함 냉큼 들어갑니다.
그런데 대단하세요, 그 힘든 알바 중에 짬을 내어 시집 읽으셨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