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지 않겠다 창비청소년문학 15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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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이라는 연령과 대상은 모호하기만 하다. 학령으로 보통 중학생부터 대학생 정도를 이르는 말이고 연령으로는 13세에서 23세 정도까지 세대를 가리킨다. 이들은 미성숙한 성인이지만 어린이와 구별된다. 2차 성징을 통해 성인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완전하지 못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 자체가 사회적 계급 체계 안에서 기성세대들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아직 미완의 상태이기 때문에 성인들의 요구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청소년은 세대를 뛰어넘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으며 신선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마땅하다.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래서 항상 진보적이고 머물러 있기보다 변화 가능한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그들은 항상 우리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우울한 표정, 희망 없이 처진 어깨, 매일 반복되는 공부 기계로 명명되는 이들의 일상성을 깨뜨릴 만한 용기와 토대는 마련되어 있는가. 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고 우정과 사랑을 느끼며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는 없을까? 방황과 고뇌가 청소년의 특권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실존적인 것이 아니라 진학과 취업에 국한된 것이라면 얼마나 우울한 일인가. 그런 현실을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우리는 얼마나 불쌍한가.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동문학과 성인문학으로 양분되어 있다. 청소년 문학이 따로 영역 구분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러했다는 뜻이다. 통상적으로 성장소설이라는 이름으로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이나 황순원의 <소나기> 정도가 청소년들에게 사랑 받았다. 청소년들의 사회적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들의 고민을 이해하고 영혼과 육체의 성숙에 따른 문제들을 다룬 본격 청소년 소설이 없다는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대로 육체적으로만 성숙한 미숙아로 바라 본 것은 아닌지.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 기간이나 학생이라는 모호한 명칭으로 그들을 억압하고 구속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로 그들을 바라본다면 강제로 머리를 자르게 하거나 치마 길이가 1cm 짧다고 모욕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숫자로 매겨진 성적으로 한 인간을 평가하는 것도 모자라 전국의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현실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못하는 한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밝은 미래는 없다.

  대학 이름 대신 추첨으로 번호를 붙여 대학 이름을 결정한 것은 68혁명 당시 고등학생들의 참여와 행동으로 얻어낸 것이다. ‘88만원’세대로 명명된 20대는 이제 경제 불황의 책임을 임금 삭감으로 감내하고 있다.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합리와 이성보다 권력과 헤게모니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 그들은 언론관계법을 통해, 교육 개혁이라는 교묘한 경쟁 구도를 통해 그것을 공고하게 유지하려는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현실은 각박해 질 것이며 살아남은 자는 슬픔을 느낄 틈도 없이 경쟁을 위한 경쟁 체제에 돌입해야 한다.

  <나는 죽지 않겠다>는 공선옥의 소설집은 청소년이 주인공이거나 청소년이 화자인 소설들이다. 이 소설집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나 사건들이 청소년‘만’을 위해서 쓰여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구분이나 창작이 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저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로 발간된 이 책은 기성 작가의 본격 청소년 문학이라는 데 의의를 둘 수 있겠다.

  전문 청소년 작가로 등단하거나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성 작가들의 작품들 중 그 대상이 청소년인 경우와 아동 작가들이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경우가 나의 예상 작가층이다. ‘문학동네’나 여타 출판사들도 ‘돈’이 되는지 ‘사명감’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청소년 출판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꼭 필요한 책과 내용들은 무궁무진하다. 이 관심과 열정을 부디 지속적으로 이어가시길 당부 드린다.

  이 소설집에는 6편의 소설이 묶였다. 마지막 보리밭의 여유는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에서 본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념이나 우리 민족의 트라우마가 어떤 식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지는지 잘 보여준 소설이다. 중학생의 입장에서 어른들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표제작 ‘나는 죽지 않겠다’는 학교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은 선택이 아니다. 마치 복권처럼 부모를 선택할 수 없이 태어난 생득적 환경 때문에 차별받거나 상처를 견뎌내야 하는 아이들은 오늘도 아주 많다. 쌍팔년도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감이 조금 미흡하기도 하지만 관심의 대상이나 주제가 많은 함의를 지닌다.

  ‘일가’의 배경은 농촌이다. 우리나라의 청소년은 모두 도시에 거주하지 않으며 전부 학교에 다니지는 않는다. 보다 다양한 계층에서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과 이야기가 필요하다. 삶의 다양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모두가 한 줄 서기에 바쁘고 붕어빵처럼 똑같은 꿈을 꾸며 원하는 게 모두 돈일 수는 없지 않은가.

  ‘라면은 맛있다’와 ‘힘센 봉숭아’는 연작처럼 읽힌다. 알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볍고 재치있는 문장들로 청소년들의 입맛과 눈높이를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여러 가지 문제들을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는 소설들도 기대된다. ‘울 엄마 딸’은 한부모 가정을 다루고 있다. 어머니도 여자라는 사실을 인식해 가는 딸의 목소리를 통해 결국 자신의 미래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소설이다.

완전한 삶은 없다. 어느 시인의 시 구절처럼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것이 인생일 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고 해서 모두 소설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청소년들이 겪는 꿈과 희망, 고민과 방황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해 보려는 시도와 노력은 문학을 통해서 먼저 시작될 필요가 있다. 본격적인 청소년 문학의 등장을 알리는 소설집으로 공선옥의 작품집은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090227-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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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
성석제 엮음 / 창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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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은 글의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하나의 완결된 의미를 드러내는 최소 단위를 문장이라고 볼 수 있다. 국어 문법에서는 형태소를 최소 유의미 단위로 보지만 우리는 통상적으로 문장을 하나의 의미 단위로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미는 하나의 완결된 생각이나 맥락을 의미한다. 문장이 모여 문단을 이루고 문단이 모여 한 편의 완성된 글이 된다. 문장은 그 자체로 생각의 단위를 전달하고 빛을 발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문장들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생각해 보자. 하나의 생각과 그 다음 이어질 내용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고 자세하게 설명되기도 한다. 반복되기도 하고 비유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상상력과 도약을 보여주기도 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하나의 완결된 문장을 쓰는 일만큼 어렵다. 이런 탄탄한 구조와 전체적인 맥락이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될 때 그 글은 읽을 만하다. 문장의 아름다움은 글을 영혼을 불어넣고 구조와 연결 관계는 믿음을 준다. 그것이 소설이든 아니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누리집 ‘문장’에서 문학 집배원 서비스를 하고 있다. 현재는 나희덕이 시를 배달하고 김연수가 문장을 배달하고 있다. 도종환과 안도현이 이미 배달했던 시를 모아 시선집을 냈고 이번엔 성석제가 <맛있는 문장들>이라는 제목으로 배달된 문장들을 묶어냈다. 문학 집배원 성석제가 찾은 문장들은 진짜 맛있다.

  문장을 맛으로 표현했을 때는 그만큼 감각적으로 접근하고 싶다는 말이다. 문학 집배원 서비스는 이메일로 플래시와 함께 시를 낭송해주기도 하고 문장을 상황에 맞게 연출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방편으로 좋은 방법이기도 하지만 고육지책으로 보여 서글프게 보이기도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 책이 필요 없는 사람들은 없다. 다만 좋은 문장들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로 보면 그 뿐일 수도 있겠다.

  현역 작가가 골라낸 문장들은 소설의 일부를 발췌하는 형식이다. 단편 혹은 장편 중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나 문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에 일종의 꽁트 모임집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앞뒤 상황을 전혀 모르는 토막글도 있고 완결된 한 편의 글이 아니기 때문에 맥락이 궁금하기도 하다. 독자들은 출전을 찾아 읽어야겠고 그러다 보면 책을 읽는 습관도 길러지고 재밌는 문장으로 인해 소설의 특별한 맛을 먼저 체험할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든 많은 책들을 읽히기 위한 방편이라면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소설가가 안내하는 대로 맛깔나는 문장들만 모아 놓은 책을 통해 본래 작품의 의도와 전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상 깊게 읽은 부분에 대한 한 소설가의 책갈피일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 문학의 정수라고 볼 수만은 없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많이 읽힌, 또 재미있는 소설들 속에서 골라낸 문장들이기 때문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익숙한 소설가들의 화려한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어 차례를 보면 우리 문학사의 면면을 돌아보고 간혹 고전과 외국 작가의 글들도 만날 수 있다.

  문장이란 무릇 그 사람의 진면목을 드러낸다고 한다. 한 개인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문장이다. 글은 그 사람의 영혼의 밑바닥을 드러낸다. 진실하지 못한 문장은 읽기도 전에 악취가 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깊이와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는 문장들은 읽는 사람에게 글 읽는 즐거움을 전해주고 책이 주는 기쁨을 배가시킨다.

  성석제는 자신이 읽었던 재미난 책의 일부분을 부담 없이 전해주는 것만으로 우리 소설사의 대표적인 작품이 될 만한 문장들을 골라냈다. 특별한 기준이나 엄격한 규칙을 적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유쾌한 문장, 깔끔한 문장, 정제된 내용들을 한 눈에 읽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화장실에서 혹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여행길에, 잠시 머리를 식히는 동안 이 책을 펼쳐 들고 몇 장 넘기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커피 한 잔의 여유처럼, 몇 문장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이나 편안함을 전해줄 수 있는 문장들이 우리 주변에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문학이라고 하는 공통분모 안에서 펼쳐지는 언어들의 향연은 그저 즐겁기만 하다.

  가볍고 쉽게 접근하고 싶은, 상대의 독서이력과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 선물로도 적당해 보인다. 그저 책 자체에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이 책은 그 앞줄에 세워둬도 무방하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문학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문장들 뒤에 붙은 성석제의 간단한 메모와 해설은 사족에 불과하다. 그것은 독자 스스로가 정리할 수 있는 느낌이나 감상이어야 한다. 책을 읽어 줄 수는 있지만 대신 느껴줄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머리로 그 책을 이해하려 하는 요즘 아이들의 방식이 문학을 점점 멀어지게 하는 필수 조건이다. 가슴을 열고 문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전해주지 않는다. 수많은 쓰레기를 양산하는 TV 드라마처럼 말이다.

  봄이 올 것이고 하늘은 맑아지겠다. 따스한 햇살과 향기로운 꽃처럼 때가 되면 알아서 우리를 찾아주는 자연과 달리 글을 읽고 쓰는 행위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엮은이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보석 같은 문장들이 모여 빛을 발한다. 짧다는 아쉬움이 감질나기도 하지만 그 나머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새로운 재미를 문장 안에서 찾고 싶다면 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읽어 볼 수 있는 책이다.


09022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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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인 9색 청소년에게 말걸기 - 생각하라 경험하라 반응하라
김용규 외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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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이라 명명된 나이의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일은 힘들다. 단순한 나이 차이 때문이 아니라 생각의 차이 때문이다. 상황과 입장이 다르고 성장과정과 경험의 차이 때문이다. 세대 간 소통은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다.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에게 항상 희망을 건다고 말한다. 그들이 우리들의 미래이기 때문이지만 기대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기성세대들은 미래의 주역이라고 추켜세우지만 정작 그들의 밝은 미래를 제공하지는 못하고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는다.

  반면에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대부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길들여지고 있으며 국영수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를 깨뜨리기 힘들다. 일단 대학에 입학하거나 졸업 후에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거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너무 늦다. 나 자신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세상을 알아가며 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내가 살아가야할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9인 9색 청소년에게 말걸기>는 여러모로 얄팍하지만 필요한 책이다. 우선 두께가 얄팍하고 내용과 깊이가 얄팍하다. 반면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재미와 무관한 내용이기 때문임을 감안할 때 적당하다고 볼 수도 있다. 어른보다 바쁜 청소년들에게 잠시 짬을 내어 읽어보도록 권할 만큼 적당한 분량이다. 이렇게 작은 시도들이 거듭되고 한두 번씩 고민의 단초를 제공하고 생각을 자극하는 일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거론되는 인사들의 이름도 중요했으리라 짐작된다. 검증된 저자들을 통해 안전하게 기획되었고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지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읽힐지 모르겠다. 당장의 점수도 중요하다. 대입제도 개선 없이는 초중고의 공교육은 개선될 수 없고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구조적인 변화 없이는 공염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거나 끊임없는 경쟁 구도 속에 아이들을 마냥 밀어 넣을 수만은 없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런 종류의 책들은 청소년들에게 자꾸 읽혀야겠다.

  철학, 인권, 과학, 고전, 가치관, 환경, 독서, 여성, 문화라는 아홉 가지 주제를 김용규, 박홍규, 김동광, 정민, 안철수, 안철환, 이권우, 권인숙, 김동식이 풀어냈다. 다양한 분야에서 나름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고 뚜렷한 신념을 지니고 있는 저자들은 해당 분야에 관해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쉬운 말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왜 필요한지 무엇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 책은 입문서에 불과하다. 지독하게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고민에서 비롯된 책으로 보인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이나 읽는다 해도 소설 이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아이들에게 권해줄 만한 책이다. 길쭉한 판형과 간단한 삽화로 지루함을 덜고자 애쓴 흔적이 보인다. 고육지책이라도 좋으니 이런 시도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고 기성세대들도 필요성을 절식하게 인식했으면 좋겠다.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 미래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손놓고 현실주의자로만 살아갈 수도 없다. 보다 나은 미래와 희망을 제시하고 다양성 속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다.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들의 거울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행태와 생각을 보고 배운대로 자신들의 행동과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청소년들이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사회, 자연 환경은 고스란히 미래의 후손들에게 돌아간다. 반성적 차원에서 기성세대의 고백도 필요하고 그들이 알아야 할 과거도 소개해야 한다.

  어른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충고와 조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시대에 청소년들에게 스승이나 선배로서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자. 주체적 인간으로 가치관을 세우고 지혜를 쌓는 일이 지식의 양을 늘리는 일보다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우리는 그들을 대입 중심의 교육제도 안에 통조림처럼 밀어 넣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의 인생을 깎고 다듬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그들의 꿈과 분노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일이 우선이다. 시행착오를 통한 경험을 들려주고 삶의 지혜를 후배들에게 전해 주는 일, 그것이 선배들의 의무이자 역할이다. 올바른 가치관과 비판 정신을 소유한 어른들을 소개해 주는 일이라고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모쪼록 훌륭한 아홉 명의 인생 선배들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고 생각의 화두를 하나씩 얻어갈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 청소년들은 그들에게서 보다 넓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받고 넓은 세상에 대한 관심과 생각의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길들이기’가 왜 위험한 것인지 그것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반성도 해보고 비판도 해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끝없는 보살핌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생각을 재단하고 하나의 틀 속에 가두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어른들부터 반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른들부터 읽고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실천하지 않으면서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080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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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콘서트 2 철학 콘서트 2
황광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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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식은 보수적이다. 젊은 날 한번 익힌 사유와 가치의 체계는 평생 간다. 보수적인 당파의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보적인 인사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그러하다. 한번 지어놓은 사유의 집을 부수어버리고, 그 폐허의 자리에 새로운 사유의 집을 짓는 일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특정의 사유 체계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지독한 두려움을 견딜 수 있는 사람, 그가 곧 철학자다. - P. 113

  우리가 철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이다. 철학을 한다는 말은 의미 자체가 모순일지 모른다. 철학한다는 것은 앎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이고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을 말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철학은 어렵고 머리 아프다고 생각하는 것은 용어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이다. 개념을 이해하고 사유 과정을 통해 철학의 방법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철학사에 관한 지식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트라이앵글에 갇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많다. 모든 학문의 아버지인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스승 플라톤의 차이를 안다고 해서 우리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앎의 태도와 방법은 그 연원을 밝혀 알아야 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사고를 규정하는 모든 것들 속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인류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것들을 더듬다보면 반드시 철학자들과 만나게 된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를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찾아내지만 그 바탕에는 반드시 생각하는 힘이 전제되어 있다. 생각하는 방법, 생각의 대상,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삶 등 우리는 여전히 2500여 년 전의 철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 속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지식의 범위와 크기가 조금 커졌을 뿐이다. 다람쥐의 쳇바퀴처럼 비슷한 일상과 생활 환경 속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만 관심을 가지며 살아간다.

  철학은 단순하게 말하면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고민하는 학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와 타인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정신이든 물질이든, 사람이든 자연이든 사회든. 돈에 소외되어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불행한 현실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고민과 몸부림은 계속된다. 누구나.

  안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는 않지만 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해 왔는지에 대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학교는 여전히 헤게모니를 장악한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 억압과 구속의 습속을 철저하게 길들이고 있다. 일제고사를 부활시켜 전 국민을 한 줄로 세워 등급과 계층을 고착화하고 내면화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괴감과 좌절감을 통해 자신의 한계와 위치를 인정한다. 입시가 끝나고 학교 정문에 내걸린 부끄러운 현수막에 이름이 오르지 못한 모든 졸업생은 행복하지 못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이런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공식을 암기하며 김소월 시의 특징을 정리한 참고서를 통해서만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이 땅의 청소년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교육의 방법과 목적과 방향에 대해 개떼처럼 떠들어대지만 현실은 완고하다. 결과는 참담하다. 점점 불행지며 점점 억압되고 점점 길들여진다. 모두 순종하라, 모두 한 줄로 서라, 20을 위해 80은 희생하라.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 모두 공부만 해라. 수능 성적이 계급이다. 대학 간판이 평생을 좌우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돈이 최고다.

지식은 인류 사회 전체에 이득을 준다. 물질적 자산은 남에게 주면 줄어드나 무형의 지적 자산은 남에게 준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부와 권력은 유한하나 지식은 무한하다. 육체는 죽지만 지식은 영원하다. 지식의 기본은 타인을 배려하는 데 있다.(피타고라스) - P. 27

  피타고라스가 자다가 벌떡 일어나 통탄할 일이다. 황광우의 <철학콘서트 2>는 이렇게 시작한다. 수학책에서 이름을 얻어 들은 피타고라스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저자의 관점이 훌륭하다. 단순히 철학적 지식을 씹어 뱉어주는 친절한 안내자의 역할이 아니다. 피타고라스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생각과 노력들을 점검한다. 그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한 권의 책에서 10명을 다루다 보니 <철학콘서트>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약점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관되게 인류의 역사와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은 책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청소년들을 위해 쓰인 이 책은 몸만 어른이 되어 버린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철학 입문, 교양서로 손색이 없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중요한 것은 생각의 방향이다. 그리고 열린 마음이다. 순종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학교에서 가르친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유의해야겠다. 그것이 길이요, 진리요, 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험한 책들이 더 많이 읽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대상이 인간이건 자연이건, 영웅은 투쟁한다. 그리고 정복한다. 투쟁과 정복, 그 이면에 있는 부정negation의 정신, 이것이 서양인의 정신적 특질의 원형이 아닐까?
…… 불의 앞에서는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저항하라. 저항 정신은 자유인의 권리이자 덕목이다. - P. 37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가르침이 사실은 거짓이다. 영웅이 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저항할 줄 모르고 비판 정신이 없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다. 노예와 같은 삶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되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은 철학자들에게 한 수 배울 수 있다. 그대로 살 순 없다. 적어도 그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았으며 그러한 삶이 어떤 삶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철학자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주저에 대한 해석과 영향을 밝히고 있다. 더 좋은 태도는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저서를 직접 만나는 일이다. 메모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겠다. 제목이야 어떠하든 철학은 우리의 삶에 등대처럼 오롯한 불을 밝혀 주기를. 평생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행복을 찾고 싶다면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의 진정한 즐거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물론 철학자의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불행하지는 않다. 주변에는 이미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학문적 업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진정 행복한 삶과 즐거움을 찾고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배움은 어디에나 있고 책은 최후의 수단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저자가 말한대로 내게는 책은 참 희한한 물건이다. 그래서 또 다시 시간 여행을 떠난다. 물론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꿈을 꾸며.

책이란 희한한 물건이다. 사람의 뇌에서 이상한 전류가 흘러, 그 전류가 사람의 손끝에서 글자로 바뀌고, 글자들이 모여 인간의 감정과 사상을 담아낸다. 책이란 정신의 물질화다. 알라딘이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날듯, 우리는 책이라는 독특한 물건을 타고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 여행을 즐긴다. - P. 235


09022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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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회전, 혹은 혁명 revolution [철학콘서트 2권]
    from 사필귀정 2010-08-16 01:53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리고 믿는다. 그런데 정작 영어 단어 revolution의 유래는 잘 몰랐다. 그 유명한 코페르니쿠스가 꺼낸 말이었구나. 책을 보고나서 알았다. 언론이며 광고에서 발상의 전환이니, 생각을 뒤집니 하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라는 말을 상용어구 처럼 사용해서, 뭔가 흔하다고 생각했나보다. 흔하디 흔한(?) 위대한 과학자. 그러니까, 대단하다는 의식이 보편적이라서 오히려 나의 의식은 이 대단한 코페르니..
 
 
 
한국의 인터넷을 논하다 - 포털.이용환경 그리고 규제
권헌영 외 지음 / 서울경제경영 / 200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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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10여 년 동안 가장 급격한 변화를 꼽으라면 단연 인터넷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제 인터넷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가 되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IT 강국을 표방하며 정보화 산업을 육성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부 주도하에 발전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선 것이 우리나라의 인터넷 환경이다. 모뎀을 이용해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을 사용하던 통신족들이 네티즌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고 90년대 중반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용자들은 미래를 가늠할 수 없었다. 자본이 결합되면서 벤처산업이라는 이름으로 희망의 배를 띄웠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 상태로 접어든 듯하다. 포털로 대표되는 우리의 인터넷 사용 환경은 검색, 뉴스, 쇼핑이 한 번에 해결되는 구조다.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서비스가 한 곳에 모여 다양한 서비스로 확산되는 구조다. 원스톱 사용 환경을 표방하는 포털의 영향력은 점차 강력해지고 있다. 포털에서는 그 외에도 커뮤니티나 블로그, 미니홈피 등 다양한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이용자들은 다양한 컨텐츠를 생산해 내고 있다.

  탄생에서 성장, 정착 과정이 워낙 다이나믹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변화 속도와 흐름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 내일의 인터넷을 예측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인터넷에 관한 수많은 논의들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고 어렵다는 말이다. 통상적으로 그 변화 가능성을 내다보거나 중요한 흐름을 짚고 싶을 때 쉬운 방법이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 지금까지 인터넷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조금은 예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터넷을 論하다>는 ‘인터넷 정책 연구그룹(인정연)’에서 펴낸 책이다. 법학을 전공한 권헌영, 홍승희, 황성기 교수와 사회학을 전공한 배영 교수가 공동 집필한 책이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주제로 쓴 책이 아니라 연구 그룹의 결과물을 묶어냈다. ‘포털, 이용환경 그리고 규제’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인터넷 실명제 문제 등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법적, 제도적 측면과 사회적 현상들을 두루 살펴보고 있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들에 대한 궁금증과 원인과 대책들에 대해서도 고민거리를 제공한다.

  먼저 배영은 ‘인터넷과 한국사회’를 인터넷 포털서비스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의 진화와 포털의 진화는 그 맥을 함께 했다. 이제 문제는 콘텐츠다. 상생의 공간이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 볼 부분이다. 권헌영은 ‘한국의 인터넷 규제 어떻게 전개되어 왔나?’라는 주제로 법률적 측면에서 인터넷 규제가 어떤 흐름과 전개 과정을 거쳐 왔는지 살펴보고 있다. 황성기는 ‘한국에서의 인터넷 규제’라는 주제로 포털 규제를 통해서 본 한국 인터넷 규제의 현재를 조망한다. 봉건제형 인터넷 규제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지 독자들에게 묻고 있지만 답은 우회적으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연 인터넷은 어디로 갈 것인가? 홍승희는 ‘인터넷, 그 새로운 환경과 범죄의 온상?’이라는 주제로 클린 환경을 위한 처벌주의를 다시 고찰하고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네 명의 지상 토론을 정리하고 있다.

  보다 다양한 관점과 주제로 논의가 풍부하게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많은 사람들의 합의가 도출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포퓰리즘에 휘말릴 수는 없다. 소위 ‘최진실 법’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살펴보았는지 그 부작용과 감정적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독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규제할 수 없고 규제해서는 안 되는 공간과 매체의 특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 고민해 보아야 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물론 포털 사업자나 일반 이용자들까지도 관점이 다르다. 이용목적이 다르고 각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인터넷이 어떤 공간이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야 발전적 전망과 규제의 범위와 대상 혹은 규제 자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 이용자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이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인터넷은 산업적 측면이나 사회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에 이어 정치 공간으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2002년을 기점으로 현실로 드러난 웹 2.0 시대의 한국 정치는 규제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인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새로운 공동체의 도구가 될 것인가. 자율적인 규제와 자정작용만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법과 제도적 장치를 이용해서 규제 장치들을 늘려가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모두 동의할 수 있을까?

  한국의 인터넷은 특수성과 다른 나라와 다른 맥락 속에서 발전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전제에서 출발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유지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대안들도 제시될 수 있다. 모두 함께 꿈꿀 수 있는 재밌는 놀이터에 울타리를 칠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함께 소통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특히 정보제공자와 매개자의 애매한 갈림길에 서 있는 포털들의 정체성에 대한 관점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다음과 네이버로 대표되는 두 포털의 변신과 새로운 시도들이 절실하다. 정책이나 규제보다 한 발 앞선 변화는 오히려 그것들을 무력하게 할 수도 있다. 포털과 이용자는 그렇게 더 즐겁게 놀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처음 인터넷에 접속했던 넷스케이프 2.0의 아이콘은 등대였다. 검은 밤하늘을 비춰주던 희망의 불빛처럼 인터넷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환한 희망과 꿈을 현실 속에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꿈이 현실이 되고 다시 현실을 통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090216-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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