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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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삶이 역사다. 하루하루 이어지는 인류의 삶이 대나무의 마디처럼 굳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삶이 현대사라고 생각한다. 먼 훗날 나도 역사의 일부가 될 것이니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도 물론 중요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들을 사회적 현상이라고 하며 그것들은 고스란히 미래의 결과가 된다. 기록된 역사는 평가를 받을 것이고 다음 세대의 현실로 이어진다.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지금 벌어지는 일에 대한 원인을 밝히는 일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모든 일의 결과는 아니지만 나비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다. 씨줄과 날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역사를 하나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는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결과를 분석하는 일도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대안도 달라진다. 역사는 그래서 중요하다. 다양한 관점과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역사는 항상 승리자에 의해 서술된다. 지금도 그렇다. 현실 정치권력은 집권당과 선출된 대통령에 의해 좌우된다. 대의 민주주의는 간접 민주 정치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출된 민의도 어차피 사람에 의해 움직여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사는 투표에 의해 정확하게 실현되는 것일까? 누구에 의해 권력을 움켜진 사람들이 승리자인가? 그 승리자들은 패배자에게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

  선거와 투표에 의해 승자와 패자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국민으로 나눠진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국민의 손에 의해 선출된 권력은 국민의 눈치를 보고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 행위를 해야 한다. 전자민주주의 시대에는 선거와 투표 방법도 달라져야한다. 간접민주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금까지 시행하던 선거와 투표 방법을 바꿔 즉각적으로 민의가 정치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저비용으로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포퓰리즘과 의식 없는 대중들, 선전선동 등 예상되는 문제가 적지 않지만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다함께 고민하고 실현 가능한 대안들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홍구의 역사 인식과 태도는 명확하다. 일관성과 다양성은 서로 모순되는 성향이다. 따라서 일관성을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하지만 나는 한홍구가 가진 일관된 역사인식 태도와 방법에 대체로 동의한다. <대한민국史> 등 그의 저작과 인터뷰를 통해 접한 역사학자 한홍구의 관점은 진보적이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논의를 모아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고 근현대사의 결절점을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현재의 문제에 대한 또 하나의 해법이다. 과거 청산 문제를 비롯하여 현재 정치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과 통찰은 그 대안을 모색하는 토대가 된다.

  특히 뉴라이트라는 단체에서 근대사를 왜곡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호도하는 문제는 우리의 삶의 근원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이다.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새는 안정감 있게 하늘을 비행한다. 피비린내 나는 좌우 이념대립이 아직도 진행형으로 계속되는 나라에서 생존과 직결된 문제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만 했던 과거는 불행한 현재를 낳았다. 한홍구는 이 문제들에 대해 철저한 고증을 거쳐 조목조목 그들의 허황된 주장과 왜곡된 안목을 비판한다.

  나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을 즐기고 싶은 국민은 아무도 없다고 믿는다. 역주행의 시대에 마음을 다지면 한국 현대사를 이야기하는 한홍구의 마음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한홍구의 <특강>은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으로 포문을 연다. 간첩 조작 사건, 언제나 공사중인 토건족의 나라, 민영화 논란, 광우병 괴담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괴담의 사회사, 일본순사에서 백골단 부활에 이르는 경찰 폭력의 역사, 사교육 공화국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들을 꼼꼼이 돌아본다.

  하나의 사회적 현상에는 오랜 역사적 기원이 숨어있다. 어떤 이론이나 주장에 따라 전체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역사적 토대를 점검한다. 실증 사례와 역사적 상황들은 현실의 문제들을 조망하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을 지켜보아야만 하는지 의아스럽다. 당연히 누려야 하는 국민들의 헌법적권리들은 권력의 개가 되어 짖고 있는 경찰과 검찰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다. 언론 통제가 시도되고 교육은 불공정한 게임이 지속되고 있다. 가진 자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의 ‘절정’의 한 구절이다.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진 않다. 다만 움직여 현실을 바꿀 의지와 행동이 부족하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모두의 고민이 각자의 자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더불어 함께’는 그 다음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촛불을 ‘몸에 밴 민주주의의 역동성’이라고 평가하며 희망을 끈을 놓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의 저력과 상식을 믿고 싶다. 한발 더, 조금 더 움직일 수 있다면 변화는 가능하고 우리는 그렇게 발전해 왔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역사의 교훈이며 현실에 대한 냉정한 안목과 비판적 관점이다. 희망은 그곳에서 싹트는 작은 풀꽃이다.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며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09051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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