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 나쁜 문장 살림지식총서 376
송준호 지음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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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느끼고 생각하는 존재다. ‘느낌’과 ‘생각’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글은 살아가면서 얻은 생각과 느낌을 정리해서 표현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다양하고 풍부하게 느끼고 체계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진정 인간다운 삶은 글쓰기에서 비롯된다. - P. 3
 

  문고판의 특징과 효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소매물도 등대섬에 올라본 사람과 못 올라본 사람.’ 통영에 간다는 말에 친구가 장난스런 문자를 보냈다. 이런 식의 장난으로,「삼중당 문고」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다. 나이를 묻는 것일 수도 있지만 책이 많지 않던 시절에 지적 호기심과 문학에 대한 열정을 채워주던 추억의 문고판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장정일의 시 ‘삼중당 문고’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또 하나의 농담이다.

  이렇게 문고판은 책이 등장한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싼 가격에 다양한 상식과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영국의 ‘펭귄북스’가 문고판의 원조에 해당하며, 독일의 ‘레클람문고’, 프랑스의 ‘크세주문고’가 대표적이다. 시공사의 시공디스커버리총서가 된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발견 총서’등이 국내에 번역되기도 한다. 70~80년대 호황을 누린 문고판은 명맥을 유지하다가 최근들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페이퍼백이 원형이지만 다양한 판형과 독특한 시리즈를 구성해서 독자들을 사로잡는 경우도 많다. 가격과 판형, 분량에 따라 어디까지 문고판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렴한 가격과 휴대의 편리성으로 인해 사랑받는 문고판의 계속되지 않을까? ‘문고판 시리즈의 가능성(http://blog.naver.com/amelrian/150001598908)’을 정리해 놓은 블로거의 글을 참고해도 좋다.

  400권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살림지식총서’는 ‘책세상문고’와 함께 이제 대표적인 국내 문고판 시리즈가 되었다. 100페이지를 넘지 않는 적은 분량에 한 가지를 주제를 간명하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부담없이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커피전문점의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가격으로 책 한 권을 구입해서 읽는 동안 사람들은 책과 친해지고 책읽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 이 시리즈는 ‘네이버 지식in’과 닮았다. 다양한 주제와 편안한 접근성으로 독자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서점을 둘러보다 몇 권쯤 들고 나와도 부담이 없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제한된 분량 때문에 상세한 설명이나 폭넓은 접근이 불가능하다. 또한,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내용을 다루기 어렵다. 말하자면 이 시리즈는 본격적인 책읽기를 위한 관문이거나 가볍고 경쾌한 책읽기를 즐길 수 있는 너른 마당으로 활용하면 좋다.


글쓰기는 인간다운 삶의 시작이다

  이 시리즈의 376권 『좋은 문장 나쁜 문장』은 실전 글쓰기에 필요한 연장통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소설창작’과 ‘글쓰기지도법’을 강의하고 있다. 이론적 토대도 관념적 논쟁도 없다. 정확한 단어와 정확한 문장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읽는 동안 무엇보다도 내 글들을 돌아보았다.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군더더기 없이 명확한 원칙들이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면 개성적인 글쓰기도 불가능하다. 변화는 단단한 기본기를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신만의 문체는 정확한 문장쓰기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참신한 단어와 세련된 문장을 쓰고 나면 이제 연결 문제가 남는다. 당연한 순서지만 단어에서 문장으로 그리고 하나의 단락으로 이어진다. 단락이 모여 한 편의 완성된 글이 되는 동안 부분과 전체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문장부호와 띄어쓰기까지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면 이제 자신만의 글이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거창한 문장론이나 글쓰기 비법을 말하지 않는다. 모든 운동의 기본은 체력이다. 잘 뛰지 못하는 축구선수나 물을 두려워하는 수영선수를 상상할 수 없듯이 단어와 문장의 정확한 활용 즉, 우리말의 사용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면 글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초 체력을 길러준다. 정확하고 참신한 단어, 맛깔스럽고 읽기 좋은 문장이란 무엇인지 알려준다. 실제 생활에서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시인이나 소설가만 글을 쓴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매일 글을 쓴다.

  읽고 쓰는 능력은 현대인의 생존 도구와 같다.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이 무엇인지 구별할 줄 알고 좋은 문장을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처음부터 뛰는 사람은 없다. 걷는 연습을 하고 조금씩 연습해보자. 이 책은 그 연습을 위한 첫걸음이면서 기본적인 원칙이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 자주 틀리는 단어와 용법들이 나열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글을 다시 점검하고 글을 쓸 때 활용할 수 있는 실용서이기도 하다. 자, 그럼 이제 뭐든 써야 할 시간이다.


10012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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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1-25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체의 기초체력은 젬병이지만 글쓰기의 기초체력을 위해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sceptic 2010-01-27 10:40   좋아요 0 | URL
^^ 편안하게 참고하실 만합니다.
 
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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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다윈의 ‘진화론’

  2009년은 다윈 다시보기의 해였다. 탄생 200주년이자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아 ‘진화론’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은 듯하다. 다양한 학문적 논의들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전히 유효한 다윈의 진화론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대적 상황, 사회적 변화에 따라 아전인수식으로 오해되거나 잘못 해석됐던 이론에 대한 정치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과연 다윈의 진화론이 21세기에도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론은 ‘인간’을 중심에 둔 이론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고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철학과 종교 이전의 문제이다. 200년 전, ‘창조론’에 가려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불온한 사상 ‘진화론’.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종교적 관점이므로 논외의 문제이다. 역사는 진보하고 인간은 진화한다. 우리는 항상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 불온하게 비난받아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온한 사상가 다윈의 생각은 이제 인간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이론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2009년에 출간된 『21세기 다윈 혁명』은 각 학문 분야의 다윈 혁명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이런 흐름을 뒤이어 나온 전중환의 『오래된 연장통』은 진화심리학에 관한 국내 저자의 최초 저작이다. 전중환은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행동생태학으로 석사, 데이비드 버스 교수 지도로 심리학 박사 과정을 마친 최초의 진화심리학자이다. 자, 이 책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진화심리학 맛보기

인간의 마음은 경제적 이득을 최대화하게끔 설계되지도, 이성이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역사 속에서 실현하게끔 설계되지도 않았다. 인간의 마음은 인류의 진화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맞닥뜨려야했던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수많은 심리 기제들의 집합이다. - P. 37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국내 소개한 최재천은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통섭원’을 운영하고 있다. 최재천 연구실에 행동생태학을 공부하고 전중환은 『욕망의 진화』로 국내 독자들에게 알려진 데이비드 버스 지도를 받아 진화 심리학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저자의 이러한 이력은 『오래된 연장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 책은 진화심리학에 관한 입문서이다. 데이비드 버스의 저작과 다른 진화심리학 서적들을 탐독한 독자라면 읽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이 무엇인지, 어떤 영역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우리에게 왜 진화심리학이 필요한지, 향후 어떤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인지 궁금한 독자에게는 좋은 안내서로 추천할 만하다. 과학도서의 경우 학문 영역인 아카데미즘과 대중적인 저널리즘의 경계를 허물기가 쉽지 않다. 먼저 저자의 글쓰기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흥미 있는 소재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할 수 있어야 하며, 지적 호기심이나 실용적 관심을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이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심리적 기제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학문이다. 자연선택에 의해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에 충실하도록 설계된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볼 것인지 독자들이 판단하며 읽어 볼 일이다. 이 책을 통해 스티븐 핑거의 ‘빈 서판’ 이론 등 이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이론과 성과를 확인할 수 있고 문제점까지 살펴볼 수 있다.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는 것은 알기 쉬운 사례 중심의 글쓰기 방식 덕이다. 저자는 연예인과 실생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진화 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중심으로 한 학문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재미있고 즐겁게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학문적 성과를 대중들과 함께 나누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자들의 이런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분석이 아니라 해석과 실천의 학문으로!

  이제, 과학은 현상을 분석하는 것으로 만으로는 부족하다. ‘종교는 피할 수 없는 부대 비용’에서 저자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자살폭탄 테러를 ‘반사실적 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해석하고 있다. 자살폭탄 테러와 종교가 상관관계 일수는 있지만 인과관계로 보기는 어렵다. 인간을 중심으로 한 진화심리학은 결국 인간과 인간의 관계 양상, 더 나아가 사회를 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중립적인 가치와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기본적인 학문의 자세이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가치중립적 태도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하기 힘들어 보인다. 실용적 학문으로 현 정부를 슬쩍 언급하는 대목도 엿보인다. 진화심리학의 현재와 미래는 학문적 성과뿐만 아니라 현실에의 적용 가능성에 달려 있을 것이다. 실용성이 학문 발전의 기준이 되는 시대는 불행하지만 새로운 학문 분야가 외면 받지 않고 설득력을 얻으려면 필요성과 존재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심리학을 대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저자의 패기가 신선하고 활기찬 학문의 발전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 풍성한 결과를 독자들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의 성과들을 살펴보고 미래를 전망해보는 기초가 되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은 학문을 발전시키는 토대가 된다.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를 공유한다면 학문간 통섭은 자연스럽게 이루지지 않을까 싶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믿음은 바로 이런 학문적 노력들에 기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물학이 다른 자연과학을 토대로 한 단계 도약했듯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그리고 우리 삶을 둘러싼 다른 모든 지식 분과들은 진화생물학을 토대 삼아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될 것이다. - P. 240


10012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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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미술관 - 그림이 즐거워지는 이주헌의 미술 키워드 30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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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창조성이다. 학문적 성취든 예술 감상이든 창조적인 시각만이 의미를 발견해내고 만들어낸다. 이 창조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앞에서도 말한 직관이다. - P. 7
 

그림 읽어주는 남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기막힌 우연히, 혹은 정해진 운명처럼 사람을 만난다. 이 모든 만남이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잊을 수 없는 추억과 행복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남기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가장 큰 삶의 목적이면서 불행의 시작이다. 우연한 만남이 삶의 방향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주헌의 『지식의 미술관』은 의도적인 만남을 원하는 독자에게 적합한 책이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를 처음 만난 게 10년 쯤 전인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인 한젬마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수없이 암기 위주의 미술 시험을 위한 공부를 벗어나 편안하고 재미있게 그림을 즐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렇게 우연한 만남 때문이었다. 당시에 이 책이 주목을 받았던 것은 예술에 대한 ‘권위’와 ‘지식’에 대한 불편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이전에도 여러 사람이 그림을 이야기했다. 나는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1~3』을 읽고 본격적으로 예술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여러 책과 칼럼을 통해 미술 이야기꾼으로 활약해 온 이주헌의 『지식의 미술관』은 대중적 그림 읽기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진중권의 현란함과 달리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그림을 읽어주는 남자가 바로 이주헌이다.

  이 책은 제목 자체가 모순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림 감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창조성’을 꼽는다. 지식보다 직관을 강조한다. 하지만 지식의 축적과 반복적 경험은 직관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지식과 직관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면서 영원한 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말은 아닐까 싶다. 시작은 가볍게 무엇을 읽어내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나름의 방법대로 읽으면 된다. 그림을 보는 데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답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숨은그림찾기 같은 상징과 알레고리, 화가의 의도와 사회적 맥락까지 읽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손색이 없는 책이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서 이 모은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림을 읽는 30가지 키워드

  이 책의 체계와 구성을 잠시 살펴보자. 전체 서른 개의 키워드를 배열하면서 다섯 개의 묶음으로 유사한 것들끼리 묶었다. 각 장 끝에 생소하거나 익숙한 용어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실제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제시되었다. 똑같은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의 문제는 작가만의 몫이다. 독자들이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더라도 작가의 입장에서는 정확한 사실과 개념들을 재미있고 쉽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의 능력은 바로 거기에서 판가름 난다. 이주헌의 글이 읽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서 밝힌 대로 그림을 읽는 데 가장 중요한 ‘창조성’을 기르기 위해 지식과 경험은 필수적이다. 그 서른 개의 구슬을 어떻게 꿰어야할 것인가는 어쩌면 독자들의 몫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좋은 책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어도 독자들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그림을 감상하고 체험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모두 쓸데없는 잔소리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책은 그림에 관심이 생기는데 체계적인 이론이나 미술사의 지식보다 우선 실제 그림을 통해 즐거운 감상을 시작하고 싶은 독자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나도 꽤 많은 미술 관련서적을 섭렵해서 잡다한 지식의 조각들이 머릿속에 헝클어져 있지만 계속해서 관점과 말하는 방식이 다른 작가의 책을 읽어댄다. 왜냐하면 읽을때마다 같은 그림이 다르게 보이는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나만의 주관적 관점이나 창조적 그림 읽기는 아직 부족하다는 말일 것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읽은 『그리스 귀신 죽이기』에서 박홍규는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들이 여전히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한 그림을 이주헌은 ‘미와 사랑의 알레고리’를 통해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서로 중첩되면서 상반된 부분을 찾아냈지만 창조적인 안목과 나만의 분석을 제시하기는 아직도 어렵게 느껴진다. 지식과 경험이 ‘창조적’ 그림 감상을 방해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르는 게 약이다’는 말을 앞세우며 눈과 귀를 닫고 살고 싶지는 않다면 이 책을 통해 미술관에 놓여 있는 수많은 예술 작품과 대화를 시작해 보자. 그림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사실 이 책에는 조각과 현대의 설치미술까지 언급되어 있다. 수많은 미술의 이론과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재미있게 보았던 그림이나 인상적인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만 기억해도 좋다. 다음에 또 다시 만날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진중권의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겹쳐지고 있지만 잊었던 내용을 다시 보는 즐거움 같은 그림을 조금 다르게 읽는 기쁨은 각기 다른 저자의 색다른 그림읽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이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

  이 책에서 재미있게 읽은 시각상과 촉각상의 차이는 우리가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말이다. 보이는 대로 그리는 사람과 아는 대로 그리는 사람의 우열을 가리자는 말이 아니다. 찰나의 대상도 중요하고 영원한 진리도 중요하다. 작가는 시각상보다 촉각상이 ‘진리의 전달’ 면에서 유리한 이미지라고 말하지만 ‘영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아니, 유한한 우리들의 인생의 관점에서 볼 때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보이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는 현실과 이상의 거리만큼 멀고도 가까운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우리에게 서양 미술에 관한 다양한 지식과 미적 체험을 제공하지만 독자들을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삶의 애환과 굴곡진 역사 그리고 현재 삶의 모습을 돌아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모든 미술관에 박제된 예술품들은 우리들 삶의 감각적 재현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즐기고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어떤 측면을 보다 정밀하게 고민한다는 말이다. 단순한 문화 자본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그러한 시간을 제공한다. 그래서 나는 보는 것이 아는 것이고, 아는 것이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곧 보이는 대로 그려진다는 것은 찰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요, 그것은 필멸의 운명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아는 대로 그려진다는 것은 영원한 질서의 대변자가 되는 것이요, 영생을 약속받는 것이다. 촉각상은 시각상에 비해 이런 ‘진리의 전달’에 보다 유리한 이미지다. - P. 87


10012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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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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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은 ‘상상체 공동체’가 아니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을 전면 부정하는 조정래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다.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추상적으로 조작된 것이 ‘민족’이라는 주장과 신산스런 근현대사를 버텨낸 어른들의 ‘민족’ 개념은 접점을 찾기 힘들다. 그런 측면에서 민족주의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는 훗날 조정래 소설의 중요한 분석틀이 될 것이다.

조정래의 작가 생활 40년을 결산하는 자전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에서 내가 읽어낸 키워드는 ‘민족’이다. 민족에 대한 개념과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조정래의 소설에서 ‘민족’을 지워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삶과 고통스런 역사를 소설에 담아내고자 노력했던 대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의 소설이 주는 감동을 넘어 시대와 현실을 바라보는 눈, 역사인식의 태도, 치열한 삶의 자세, 문학에 대한 경건한 태도가 진하게 배어나는 진지한 목소리 때문이다. 단순히 열렬한 애국심과 한민족에 대한 애정으로만 볼 수 없는 작품들이 그를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민족’을 바라보는 태도와 방향에 따라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독일의 아우슈비츠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레드 콤플렉스이다. 미국의 메카시즘은 시대를 반영한 해프닝 쯤으로 이해될 수도 있으나 대한민국의 이데올로기 대립은 21세기도 여전히 한국 정치와 사회 곳곳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판단기제로 작용한다. 10여 년간 국가보안법 논란에 휩싸였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2005년이 되어서야 무혐의 처리되었다. 이 사건은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과 대립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넘어 우리 민족의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황홀한 글감옥』은 대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등을 통해 한민족의 근현대사를 소설로 담아낸 작가에게 젊은 대학생들은 궁금한 것이 많다. 작품의 내용은 물론 글을 쓰는 방법과 개인적인 호기심까지 다양한 질문을 쏟아낸다. 작가는 애정 어린 답변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와 우리 ‘민족’에 대한 해석을 제시한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진실’만 말하고자 하는 작가는 필연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으며, 기득권을 향유하는 보수 세력과는 갈등하고 맞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소설의 비판정신이며 휴머니즘의 실현이기도 합니다. - P. 36

문학, 아니 소설은 사실(fact)이 아닌 진실(truth)을 말한다고 칠판에 자주 적는다. 사실과 진실의 차이는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만큼 다양하다. 또한 하나의 객관적 사실에 드러나는 진실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은 바로 이런 사실과 진실의 거리를 잘 말해준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로 환원한다면 조정래가 소설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진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결국, 소설적 진실은 ‘비판정신이며 휴머니즘’이라는 작가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면 일단 그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보자.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본문 195쪽)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소설가는 무엇을 쓸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쓸 것인가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태백산맥』열권과 『아리랑』 열 두권을 각각 1주일 만에 읽었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나를 잊고 소설 속을 헤맸다. 그리고 10년쯤 시간이 흐른 후에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22권을 통해 다시 대한민국의 역사 더듬었다. 역사는 사람살이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왕조중심의 거시사든 생활사나 미시사든 선택과 집중의 문제이며 해석과 관점의 문제일 뿐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답하는 조정래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글감옥에서 자유를 찾다.

‘열정은 능력이다’ - P. 96

삶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이다. 내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삶의 도구는 바로 ‘열정’이다. 소설가 조정래의 가장 큰 미덕은 열정이다. 대하소설 세 편을 완성하는 20년 동안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고 매일 써야하는 원고의 분량을 정해놓고 스스로 정해놓은 ‘글감옥’에 갇힌 작가는 과연 불행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가장 큰 자유였고 행복이었다. 열정을 쏟아부을 대상이 있고 그것을 즐길 줄 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조정래의 분명 가장 큰 축복이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짐작한다. ‘현대인들에게 책을 읽힌다는 것은 리모컨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라고 저는 인식했습니다.’(본문 252쪽)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리모컨과 싸워 이기는 글쓰기! 얼마나 치열하고 지독한 싸움이어야 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그가 그려낸 우리의 근현대사는 결국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그 세월 속에 민중들의 지난한 삶이 존재했고 여전히 굴곡진 생활들이 계속된다. 그러나 이 모든 삶이 우리의 역사이고 선조들의 삶이다. 소설을 통해 그가 보여주려 했던 것은 오욕의 시간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생활이며 그 삶의 토대를 만든 역사적 진실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순간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도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조정래는 글쓰기를 통해 자유를 찾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식인의 참된 삶은 자유로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참된 지식인의 삶은 고달프나 그 의미와 보람은 하늘의 넓이입니다. - P. 379 
 

10011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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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박미애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모차르트 다시보기

  천재는 시공을 초월한다는 자명한 사실. 모차르트(1756~1791)는 그 사실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떠난 지 200년이 지났으나 그는 여전히 살아있는 전설이다. 수많은 음악가들이 명멸했으나 모차르트가 남긴 영향은 누구보다 강렬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불운의 천재라는 세간의 평가는 헛말이 아니다. 음악 신동으로 다섯 살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경외와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으나 그의 음악인생이 결코 행복으로 가득했다고 볼 수는 없다.

  독일의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조금 특별한 시선으로 『모차르트』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 대한 미시적 분석과 사회변동에 대한 거시적 분석이 통합될 때 모차르트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어떤 대상이나 현상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오래된 연구 주제이다. 다만 그것을 어떤 합리적 근거와 논리적 기준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문명을 바라보는 나름의 기준과 정확한 관찰과 분석이 이루어져야 사람들은 그 사회학자의 판단을 귀 기울여 듣게 된다. 그런 면에서 엘리아스의 첫 책 『모차르트』을 통해 나는 그의 관점을 신뢰하게 되었다.

  이 책은 사회학적 관점으로 바라본 ‘모차르트의 일생’이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 당시 궁정 귀족과 예술가의 관계, 모차르트의 기질 등이 어떻게 내면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지 살펴 볼 수 있는 책이다. 수많은 모차르트에 관한 책과 영화 자료들이 넘치고 있지만 사회학자의 담담한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는 것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차르트와 그의 시대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눈에 있다.  


사회적 맥락과 천재성

수공업 예술의 시대에 주문자의 취미 규범은 창조자 개인의 예술적 환상보다 더 중요한 예술 창작의 기본틀이었다. 예술가의 개인적 상상력은 체제 내의 주문자 계층의 취미 규범에 맞춰 엄격하게 조종되었다. - P. 65

  궁정 음악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모차르트는 태어나면서부터 음악 속에서 길러졌다. 어떤 재능과 천재성이 있는지 경험하지 못하고 그러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천재적인 예술가라 할지라도 수공업 예술 시대에 궁정 음악가는 왕과 귀족들의 시종에 불과했다. 유럽 연주여행을 통해 찬사를 받지만 그것은 왕과 귀족들이 원하는만큼 지급하는 급료를 받는 일시적인 경외에 지나지 않는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했던 아버지와 달리 모차르트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음악을 원한다. 개인적 상상력보다 주문자 계층의 취미를 우선했던 공급자의 옷이 천재에게 맞을 리 없었던 것이다.

  궁정 사회에 대한 모차르트의 이런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는 그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생계를 책임지고 그의 음악을 인정해 주는 궁정사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고 시민계급으로서 완전한 자유와 예술적 창조성을 발휘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모차르트는 공격적인 인간이었다. 괴팍하고 다혈질의 성격을 갖고 태어났는지 알 수 없으나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지배층에 대한 공격성이 나타났고 훗날의 경력은 이를 증명해 준다.

  자유 예술가로서 충분한 음악적 감수성을 펼쳐냈다고 볼 수 없는 것은 모차르트의 생애와 사회적 상황이 잘 설명해 준다. 결국 모차르트의 천재성도 사회적 맥락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제도적 틀과 한계 때문에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삶을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이해하고 그의 고민과 방황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모차르트는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시대를 읽어낼 수 있는 음악적 코드이다. 그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가 표현하려고 했던 예술적 환상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시대를 이해하고 사회적 맥락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일 것이다.     

저항과 요절

  잘츠부르크에서 다시 빈으로 돌아간 모차르트의 반란은 아버지에 대한 반란이면서 견고한 사회적 구속에 대한 저항이었다. 모차르트의 평생 ‘인정’과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그것이 개인적이고 이성적인 사랑이든 사회적이고 예술적 감수성이든. 하지만 궁정 사회와 아버지의 요구를 벗어나는 것이 모차르트에겐 절체절명의 숙명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이런 모차르트의 상황을 ‘결혼’이 해결했다고 본다. 해방의 완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 말은 반어처럼 들린다. 사랑을 지키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고 싶었지만 상황은 만만치가 않았다. 경제적 곤란과 심리적 고독감은 천재를 지치게 했다. 철저하게 아버지에 의해 관리되었던 미성숙한 어른 모차르트는 이 상황들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35세, 이른 나이에 요절한 모차르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얼마나 많은 혹은 얼마나 뛰어난 곡들을 더 만들 수 있었을까.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지만 사람들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천재 중의 하나가 모차르트이다.

  천재는 한 분야에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개인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기존 체계의 문제점과 한계를 벗어나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아닐까.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교향곡 41번 C장조 KV 551 “주피터”(브루노 발터 Bruno Walter (지휘),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Columbia Symphony Orchestra)를 듣고 있다. 이 곡이 음악적으로 얼마나 완벽한지 당시에 얼마나 충격적 변화를 이끌었는지 알 수 없으나 시대를 거슬러 사회적 구조와 틀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비운의 천재를 생각하며 들었다.


10011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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