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은 ‘상상체 공동체’가 아니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을 전면 부정하는 조정래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다.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추상적으로 조작된 것이 ‘민족’이라는 주장과 신산스런 근현대사를 버텨낸 어른들의 ‘민족’ 개념은 접점을 찾기 힘들다. 그런 측면에서 민족주의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는 훗날 조정래 소설의 중요한 분석틀이 될 것이다.

조정래의 작가 생활 40년을 결산하는 자전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에서 내가 읽어낸 키워드는 ‘민족’이다. 민족에 대한 개념과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조정래의 소설에서 ‘민족’을 지워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삶과 고통스런 역사를 소설에 담아내고자 노력했던 대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의 소설이 주는 감동을 넘어 시대와 현실을 바라보는 눈, 역사인식의 태도, 치열한 삶의 자세, 문학에 대한 경건한 태도가 진하게 배어나는 진지한 목소리 때문이다. 단순히 열렬한 애국심과 한민족에 대한 애정으로만 볼 수 없는 작품들이 그를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민족’을 바라보는 태도와 방향에 따라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독일의 아우슈비츠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레드 콤플렉스이다. 미국의 메카시즘은 시대를 반영한 해프닝 쯤으로 이해될 수도 있으나 대한민국의 이데올로기 대립은 21세기도 여전히 한국 정치와 사회 곳곳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판단기제로 작용한다. 10여 년간 국가보안법 논란에 휩싸였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2005년이 되어서야 무혐의 처리되었다. 이 사건은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과 대립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넘어 우리 민족의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황홀한 글감옥』은 대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등을 통해 한민족의 근현대사를 소설로 담아낸 작가에게 젊은 대학생들은 궁금한 것이 많다. 작품의 내용은 물론 글을 쓰는 방법과 개인적인 호기심까지 다양한 질문을 쏟아낸다. 작가는 애정 어린 답변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와 우리 ‘민족’에 대한 해석을 제시한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진실’만 말하고자 하는 작가는 필연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으며, 기득권을 향유하는 보수 세력과는 갈등하고 맞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소설의 비판정신이며 휴머니즘의 실현이기도 합니다. - P. 36

문학, 아니 소설은 사실(fact)이 아닌 진실(truth)을 말한다고 칠판에 자주 적는다. 사실과 진실의 차이는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만큼 다양하다. 또한 하나의 객관적 사실에 드러나는 진실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은 바로 이런 사실과 진실의 거리를 잘 말해준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로 환원한다면 조정래가 소설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진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결국, 소설적 진실은 ‘비판정신이며 휴머니즘’이라는 작가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면 일단 그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보자.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본문 195쪽)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소설가는 무엇을 쓸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쓸 것인가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태백산맥』열권과 『아리랑』 열 두권을 각각 1주일 만에 읽었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나를 잊고 소설 속을 헤맸다. 그리고 10년쯤 시간이 흐른 후에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22권을 통해 다시 대한민국의 역사 더듬었다. 역사는 사람살이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왕조중심의 거시사든 생활사나 미시사든 선택과 집중의 문제이며 해석과 관점의 문제일 뿐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답하는 조정래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글감옥에서 자유를 찾다.

‘열정은 능력이다’ - P. 96

삶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이다. 내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삶의 도구는 바로 ‘열정’이다. 소설가 조정래의 가장 큰 미덕은 열정이다. 대하소설 세 편을 완성하는 20년 동안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고 매일 써야하는 원고의 분량을 정해놓고 스스로 정해놓은 ‘글감옥’에 갇힌 작가는 과연 불행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가장 큰 자유였고 행복이었다. 열정을 쏟아부을 대상이 있고 그것을 즐길 줄 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조정래의 분명 가장 큰 축복이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짐작한다. ‘현대인들에게 책을 읽힌다는 것은 리모컨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라고 저는 인식했습니다.’(본문 252쪽)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리모컨과 싸워 이기는 글쓰기! 얼마나 치열하고 지독한 싸움이어야 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그가 그려낸 우리의 근현대사는 결국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그 세월 속에 민중들의 지난한 삶이 존재했고 여전히 굴곡진 생활들이 계속된다. 그러나 이 모든 삶이 우리의 역사이고 선조들의 삶이다. 소설을 통해 그가 보여주려 했던 것은 오욕의 시간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생활이며 그 삶의 토대를 만든 역사적 진실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순간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도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조정래는 글쓰기를 통해 자유를 찾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식인의 참된 삶은 자유로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참된 지식인의 삶은 고달프나 그 의미와 보람은 하늘의 넓이입니다. - P. 379 
 

10011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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