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되살아나는 다윈의 ‘진화론’

  2009년은 다윈 다시보기의 해였다. 탄생 200주년이자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아 ‘진화론’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은 듯하다. 다양한 학문적 논의들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전히 유효한 다윈의 진화론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대적 상황, 사회적 변화에 따라 아전인수식으로 오해되거나 잘못 해석됐던 이론에 대한 정치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과연 다윈의 진화론이 21세기에도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론은 ‘인간’을 중심에 둔 이론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고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철학과 종교 이전의 문제이다. 200년 전, ‘창조론’에 가려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불온한 사상 ‘진화론’.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종교적 관점이므로 논외의 문제이다. 역사는 진보하고 인간은 진화한다. 우리는 항상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 불온하게 비난받아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온한 사상가 다윈의 생각은 이제 인간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이론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2009년에 출간된 『21세기 다윈 혁명』은 각 학문 분야의 다윈 혁명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이런 흐름을 뒤이어 나온 전중환의 『오래된 연장통』은 진화심리학에 관한 국내 저자의 최초 저작이다. 전중환은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행동생태학으로 석사, 데이비드 버스 교수 지도로 심리학 박사 과정을 마친 최초의 진화심리학자이다. 자, 이 책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진화심리학 맛보기

인간의 마음은 경제적 이득을 최대화하게끔 설계되지도, 이성이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역사 속에서 실현하게끔 설계되지도 않았다. 인간의 마음은 인류의 진화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맞닥뜨려야했던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수많은 심리 기제들의 집합이다. - P. 37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국내 소개한 최재천은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통섭원’을 운영하고 있다. 최재천 연구실에 행동생태학을 공부하고 전중환은 『욕망의 진화』로 국내 독자들에게 알려진 데이비드 버스 지도를 받아 진화 심리학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저자의 이러한 이력은 『오래된 연장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 책은 진화심리학에 관한 입문서이다. 데이비드 버스의 저작과 다른 진화심리학 서적들을 탐독한 독자라면 읽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이 무엇인지, 어떤 영역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우리에게 왜 진화심리학이 필요한지, 향후 어떤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인지 궁금한 독자에게는 좋은 안내서로 추천할 만하다. 과학도서의 경우 학문 영역인 아카데미즘과 대중적인 저널리즘의 경계를 허물기가 쉽지 않다. 먼저 저자의 글쓰기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흥미 있는 소재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할 수 있어야 하며, 지적 호기심이나 실용적 관심을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이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심리적 기제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학문이다. 자연선택에 의해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에 충실하도록 설계된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볼 것인지 독자들이 판단하며 읽어 볼 일이다. 이 책을 통해 스티븐 핑거의 ‘빈 서판’ 이론 등 이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이론과 성과를 확인할 수 있고 문제점까지 살펴볼 수 있다.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는 것은 알기 쉬운 사례 중심의 글쓰기 방식 덕이다. 저자는 연예인과 실생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진화 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중심으로 한 학문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재미있고 즐겁게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학문적 성과를 대중들과 함께 나누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자들의 이런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분석이 아니라 해석과 실천의 학문으로!

  이제, 과학은 현상을 분석하는 것으로 만으로는 부족하다. ‘종교는 피할 수 없는 부대 비용’에서 저자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자살폭탄 테러를 ‘반사실적 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해석하고 있다. 자살폭탄 테러와 종교가 상관관계 일수는 있지만 인과관계로 보기는 어렵다. 인간을 중심으로 한 진화심리학은 결국 인간과 인간의 관계 양상, 더 나아가 사회를 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중립적인 가치와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기본적인 학문의 자세이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가치중립적 태도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하기 힘들어 보인다. 실용적 학문으로 현 정부를 슬쩍 언급하는 대목도 엿보인다. 진화심리학의 현재와 미래는 학문적 성과뿐만 아니라 현실에의 적용 가능성에 달려 있을 것이다. 실용성이 학문 발전의 기준이 되는 시대는 불행하지만 새로운 학문 분야가 외면 받지 않고 설득력을 얻으려면 필요성과 존재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심리학을 대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저자의 패기가 신선하고 활기찬 학문의 발전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 풍성한 결과를 독자들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의 성과들을 살펴보고 미래를 전망해보는 기초가 되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은 학문을 발전시키는 토대가 된다.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를 공유한다면 학문간 통섭은 자연스럽게 이루지지 않을까 싶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믿음은 바로 이런 학문적 노력들에 기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물학이 다른 자연과학을 토대로 한 단계 도약했듯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그리고 우리 삶을 둘러싼 다른 모든 지식 분과들은 진화생물학을 토대 삼아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될 것이다. - P. 240


10012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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