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박미애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모차르트 다시보기

  천재는 시공을 초월한다는 자명한 사실. 모차르트(1756~1791)는 그 사실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떠난 지 200년이 지났으나 그는 여전히 살아있는 전설이다. 수많은 음악가들이 명멸했으나 모차르트가 남긴 영향은 누구보다 강렬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불운의 천재라는 세간의 평가는 헛말이 아니다. 음악 신동으로 다섯 살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경외와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으나 그의 음악인생이 결코 행복으로 가득했다고 볼 수는 없다.

  독일의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조금 특별한 시선으로 『모차르트』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 대한 미시적 분석과 사회변동에 대한 거시적 분석이 통합될 때 모차르트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어떤 대상이나 현상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오래된 연구 주제이다. 다만 그것을 어떤 합리적 근거와 논리적 기준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문명을 바라보는 나름의 기준과 정확한 관찰과 분석이 이루어져야 사람들은 그 사회학자의 판단을 귀 기울여 듣게 된다. 그런 면에서 엘리아스의 첫 책 『모차르트』을 통해 나는 그의 관점을 신뢰하게 되었다.

  이 책은 사회학적 관점으로 바라본 ‘모차르트의 일생’이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 당시 궁정 귀족과 예술가의 관계, 모차르트의 기질 등이 어떻게 내면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지 살펴 볼 수 있는 책이다. 수많은 모차르트에 관한 책과 영화 자료들이 넘치고 있지만 사회학자의 담담한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는 것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차르트와 그의 시대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눈에 있다.  


사회적 맥락과 천재성

수공업 예술의 시대에 주문자의 취미 규범은 창조자 개인의 예술적 환상보다 더 중요한 예술 창작의 기본틀이었다. 예술가의 개인적 상상력은 체제 내의 주문자 계층의 취미 규범에 맞춰 엄격하게 조종되었다. - P. 65

  궁정 음악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모차르트는 태어나면서부터 음악 속에서 길러졌다. 어떤 재능과 천재성이 있는지 경험하지 못하고 그러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천재적인 예술가라 할지라도 수공업 예술 시대에 궁정 음악가는 왕과 귀족들의 시종에 불과했다. 유럽 연주여행을 통해 찬사를 받지만 그것은 왕과 귀족들이 원하는만큼 지급하는 급료를 받는 일시적인 경외에 지나지 않는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했던 아버지와 달리 모차르트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음악을 원한다. 개인적 상상력보다 주문자 계층의 취미를 우선했던 공급자의 옷이 천재에게 맞을 리 없었던 것이다.

  궁정 사회에 대한 모차르트의 이런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는 그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생계를 책임지고 그의 음악을 인정해 주는 궁정사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고 시민계급으로서 완전한 자유와 예술적 창조성을 발휘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모차르트는 공격적인 인간이었다. 괴팍하고 다혈질의 성격을 갖고 태어났는지 알 수 없으나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지배층에 대한 공격성이 나타났고 훗날의 경력은 이를 증명해 준다.

  자유 예술가로서 충분한 음악적 감수성을 펼쳐냈다고 볼 수 없는 것은 모차르트의 생애와 사회적 상황이 잘 설명해 준다. 결국 모차르트의 천재성도 사회적 맥락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제도적 틀과 한계 때문에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삶을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이해하고 그의 고민과 방황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모차르트는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시대를 읽어낼 수 있는 음악적 코드이다. 그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가 표현하려고 했던 예술적 환상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시대를 이해하고 사회적 맥락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일 것이다.     

저항과 요절

  잘츠부르크에서 다시 빈으로 돌아간 모차르트의 반란은 아버지에 대한 반란이면서 견고한 사회적 구속에 대한 저항이었다. 모차르트의 평생 ‘인정’과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그것이 개인적이고 이성적인 사랑이든 사회적이고 예술적 감수성이든. 하지만 궁정 사회와 아버지의 요구를 벗어나는 것이 모차르트에겐 절체절명의 숙명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이런 모차르트의 상황을 ‘결혼’이 해결했다고 본다. 해방의 완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 말은 반어처럼 들린다. 사랑을 지키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고 싶었지만 상황은 만만치가 않았다. 경제적 곤란과 심리적 고독감은 천재를 지치게 했다. 철저하게 아버지에 의해 관리되었던 미성숙한 어른 모차르트는 이 상황들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35세, 이른 나이에 요절한 모차르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얼마나 많은 혹은 얼마나 뛰어난 곡들을 더 만들 수 있었을까.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지만 사람들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천재 중의 하나가 모차르트이다.

  천재는 한 분야에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개인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기존 체계의 문제점과 한계를 벗어나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아닐까.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교향곡 41번 C장조 KV 551 “주피터”(브루노 발터 Bruno Walter (지휘),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Columbia Symphony Orchestra)를 듣고 있다. 이 곡이 음악적으로 얼마나 완벽한지 당시에 얼마나 충격적 변화를 이끌었는지 알 수 없으나 시대를 거슬러 사회적 구조와 틀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비운의 천재를 생각하며 들었다.


100112-0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