숄로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8
미하일 숄로호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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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현실 사이 - 사회주의 리얼리즘

  삶의 진실에 가장 근접한 갈래는 소설이다. 인간 삶의 정수를 담아내는 데 가장 적합한 방식은 이야기라는 말이다. 문학은 철학과 역사와 더불어 인류의 지혜를 전수한다. 다양한 인간 삶의 모습은 물론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는 문학은 어떤 학문적 성과나 객관적 사실보다 세계의 진실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래서 세월을 이겨낸 문학의 고전들은 인류의 과거를 아프게 드러내며 객관적 진실을 보여준다. 모든 작가는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몸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 통찰력은 위대한 작가들이 가진 공통된 특징이다.

  객관적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사실주의(寫實主義realism)는 이상주의적 계몽주의와 환상적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로 19세기에 탄생한 문예사조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가 탄생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정점에 이른다. 소설은 ‘사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살고 있는 현실을 말해준다. 문학은 현실이며 현실은 그대로 문학이 된다.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다. 위대한 고전은 이런 이야기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문학적 진실을 전해준 작품들이다. 러시아 혁명과정과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겪으면서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이념이란 무엇일까.

  숄로호프의 소설은 우리에게 멀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순히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표피적 사실이 소설에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하지는 않는다. 이 단편들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던 우리의 이야기와 너무 닮았기 때문에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힌다. 이념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혹은 형이 동생에게 총을 겨누는 현실을 우리도 겪었기 때문이다. 그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고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남아 사회적 통합을 방해하고 있다. 상식과 이성으로 풀어나갈 문제들이 색깔론으로 덧칠되고 좌우 이념 대립과 무관한 문제까지도 감정적인 적대감을 드러낸다. 숄로호프의 소설은 과거의 지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아픔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문학은 여전히 현실의 가장 고통스런 부분을 드러내고 작가는 그 고통의 원인과 상처를 극적으로 기록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숄로호프는 작가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작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문학을 통한 미적 경험은 단순히 정서적 아름다움과 안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와 사회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느껴져야 한다. 그래서 한 권의 소설로 한 시대를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책을 고전이라 부를 수 있다. 


러시아, 아물지 않은 20세기의 혁명과 상처

  1917년 11월 7일 혁명에 성공하여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은 1992년 1월 1일 독립국가연합으로 해체된다. 자본주의가 자연스럽게 붕괴한 것이 아니라 농업 국가였던 러시아 혁명의 성공은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보여주었고, 현실적으로 자본주의의 승리를 증명해주었다. 20세기를 붉은 혁명의 성공으로 출발하며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으나 100년도 버티지 못하고 붕괴한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반성과 고찰은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니다.

  숄로호프는 고향 돈 강 유역 카자크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담아냈다. 참혹한 현실, 민중들의 삶이 숄로호프의 관심사였다. 고향의 이야기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6. 25를 통해 양산된 수많은 전후 소설들을 떠 올려 보자. 이념의 대립과 갈등 자체가 인간에게 가져다 준 비극을 설명할 수 있을까? 숄로호프도 가족과 고향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간의 운명’, ‘배냇점’, ‘타인의 피’ 등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비극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이념과 전쟁으로 인한 모순과 비극 때문이다. 러시아 민중과 인류 전체의 비극이기도 한 20세기 역사의 한 페이지로 읽어야 한다.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들의 아픔은 역사적 친연성 뿐만 아니라 인류의 보편성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 아프고 불편한 감정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슬픔’에 대한 보편성 때문이 아니라 길고 지난했던 역사의 인과관계 때문이었다. 그 고리는 여전히 우리들 현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다.

  혁명은 성공했으나 좌절했고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상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숄로호프의 단편선』을 통해 전쟁과 상처, 야만과 폭력이 아니라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하고도 뻔 한 대안을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 넓고 깊은 휴머니즘이 불가능하다면 숄로호프의 소설은 다큐멘터리 기록 필름에 불과할 것이다. 여전히 폭력과 광기에 사로잡힌 시대에서 자유롭지 못한 21세기의 현실을 돌아보자. 숄로호프의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래서 여전히 유효한 지도 모르겠다. 고전은 현실을 비추는 등불이다.


100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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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 창비시선 309
이문숙 지음 / 창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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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이 꾸준히 발행되고 팔리는 거의 유일한 나라, 아직도 출판사마다 시인들이 활발하게 시집을 찍어내고 고정 독자층이 확보되어 있는 특이한 양상을 보이는 나라 대한민국. 그것은 아마도 민족문학에서 시가 차지하는 비중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근대문학 이전에 고전문학은 한시를 중심으로 시조와 가사가 주종을 이루었다. 시는 항상 지배층의 지적 우월성을 표현할 수 있고 학문적 깊이를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17, 18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이 창작되었지만 저급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소설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내용과 어렵지 않은 전달 방식을 가지고 있다. 시가 가지고 있는 고급스런 이미지는 다양한 층위에서 벌어진 문예사조의 부침에 따라 달라지긴 했지만 그 위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이문숙이라는 시인은 『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으로 처음 만났다. 시집을 읽는 동안 시가 가지고 본질적인 특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시의 기능과 효용에 대한 쓸데없는 상념들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이문숙의 시는 요란하지 않고 조용하게 주변을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기교도 없고 특이한 발상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개성 없는 말장난이라는 뜻은 아니다.

악어 쇼

아무도 없는데 돌아보니
악어 한 마리 입을 벌리고 있어

빨간 타이츠를 입은 소냐가
가늘고 긴 손가락을 활짝 폈다가
주먹을 만들어
벌린 입속으로 집어넣어

솜방망이에 불을 붙여
불을 한입 달게 먹고는
또다시 울퉁불퉁한 이빨 사이로 넣어

무릎을 꿇고 천천히 윗몸을 들어올려
잘 휘어진 등 아래로
긴 머리카락을 몇 번 흔들다가
머리를 악어의 커다란 주둥이 사이로

나도 그 속으로 펜을 쥔 주먹을 넣었다 뺀다
(주먹은 잘라지지 않고)
나도 매일 부글거리는 머리를 넣었다 뺀다
(머리는 동강나지 않고)

악어가 입을 다물어 이빨들이 맞물리지 않는 한
악어 쇼는 계속되리라

포만한 악어는 절대 사냥감을 찾지 않는다
벌어진 입을 억지로 닫아주기 전에는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면 좋은 시가 아니다. 적절한 비유와 다양한 의미를 증폭시키는 상징은 시 읽는 즐거움이다. 이 시집의 서시 ‘악어 쇼’는 현실의 변주곡으로 읽힌다. 어쩔 수 없는 ‘쇼’는 계속된다. 두려움과 공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쇼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그것을 즐기고 박수를 칠 것이다.

  견고한 현실의 벽을 두드리는 듯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관찰하는 시인의 눈. 이 시집을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를 듣게 된다. 낯선 언어의 진경이 아니라 익숙한 말들의 투박한 이야기.

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

움직일 때마다 지팡이 땅을 그러쥔다
그 옛날 논골이었다는 이곳
논으로 흘러들지 못한 물소리 저만치 하수구로 흘러간다

그 남자 한 발짝을 들어올리는 동안

여기엔 그 옛날 작은 다랑이논들
물소리에 귀를 열어뒀으리라
왼손이 뒤틀리고 주먹 쥔 듯 오그라진 손을 치켜들고
그 남자

이제 다랑이논들은 노인정에 모인 그들의
이마에나 굵은 굴곡으로 남았다

겨우 그 남자 몸을 일으켜 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
지팡이는 땅으로 뿌리를 뻗고 새순 한 가지
쳐올릴 수도 있었으리라

갑자기 정자 기둥에 붙은 괘종시계가 울린다
무거운 시계추가 왔다갔다한다

치주염을 앓는 누런 이빨의 구름들
가는 귀먹은 노인들의 귓속으로
보공(補空)하듯 쑤셔넣는다


  쉽고 가볍게 읽히는 것은 아니지만 알 수 없는 부호들의 나열도 아니다. 그녀의 시는, 우리의 삶은 어쩌면 ‘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 끝나버릴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찰나의 삶과 죽음.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되는 동안 시계추는 끝없는 왕복운동을 하고 모든 존재는 소멸한다. 그렇게 숨가쁜 세월이 지나가는 어떤 순간, 우리는 겨우 한 걸음을 옮겨 놓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아, 니체의 말이 떠오르는 시 그리고 밤이다. “몇 번이라도 좋다. 끔찍한 생이여, 다시 한 번!”

그 많은 구두들은

어디로 갔을까
부서지는 바닷물에 쓸려갔을까
쏟아지는 흙탕물에 떠내려갔을까
진열장에 놓여 있던 가닥가닥 끈으로
발을 감싸는
양 창자를 꼬아 만든

삶이 막막할 때마다
숫양이 머리를 파묻고 울거나 애무도 받았을

(공원에서 여자의 배를 베고 남자가 누워 있다)
(여자의 보드라운 배를 베고 남자가)
(오목한 배 위에 머리를 대고)
(구불거리는 창자에)

그 발에 딱 맞는 구두들은 어디로 갔을까
동그란 뒤꿈치 뾰족한 발가락 감싸던 그 화려하고 보석 장식이 많은
구두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카메라가 붙잡은 물 위를 둥둥 떠내려가는
구두 한짝

예쁘고도 사나운
벗어 철썩 사내의 뺨을 갈기던
구두들은
그 폭약의 여름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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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반양장) 주니어 클래식 3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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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말씀하시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며,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느니라.”(6장 옹야편) - P. 34 


고전, 어떻게 할 것인가 ; 원전과 2차 저작

  책읽기에도 분산 투자가 필요하다. 신간의 숲을 헤매다 보면 고전을 놓치기 쉽다. 현재를 말하는 수많은 책 속에서 고전은 그윽한 향을 풍긴다. 시간을 견뎌낸 책, 고전은 가장 매력적인 투자 상품이다. 실용적 목적만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역설적으로 고전을 읽어야 한다. 대다수 신간은 고전에 대한 재해석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 권의 책으로 전체를 통찰하고 싶다면 일단 고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안전한 책읽기는 검증된 고전만을 골라 읽는 방법이다.

  그러나 고전은 쉽게 도전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견고한 체제와 정교한 내용이 어우러져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는 책이 고전이다. 또한 고전은 기본적인 개념에서 촌철살인의 문장 하나에 이르기까지 칼날처럼 매서운 기운이 서려 있는 책을 일컫는다. 따라서 책을 읽다보면 반드시 고전으로 수렴된다. 피할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다. 고전은 책읽기의 정수에 해당하기 때문에 나름의 방법을 정해놓고 차근차근 읽어나가야 한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고전읽기를 통해 얻고 있다면 이미 고수의 길에 접어든 독서가이다.

  먼저 접근 방법을 살펴보자. 철학과 동양 고전의 경우 독학이 어렵다. 원전을 해석하는 것은 일반인의 경우 거의 불가능하다. 한문 전공자가 아니면 동양 고전의 원문을 읽을 수 없고, 철학 전공자가 아니면 철학적 용어와 개념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2차 저작을 통해 가볍게 몸을 풀고 준비 운동을 충분히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막연하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고전이다. 지난 시대의 책, 어렵고 딱딱한 책, 재미없고 지루한 책이라는 고정 관념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쉽고 재미있고 유익하게 풀어주는 방법밖에 없다.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클래식’ 시리즈는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배병삼이 풀어 쓴『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는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적절한 2차 저작으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시리즈의 여러 가지 책 중에서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논어’를 읽어보자.

  2차 저작물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게 된다. 첫째, 원문을 모두 소개하지 못하고 저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인용과 편집이 이루어진다. 둘째, 원전의 뜻이 훼손될 수 있고 주관적 해석에 따라 오독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셋째, 구체적이고 부분적인 내용에 집중하다보면 전체를 통찰할 수 능력을 얻을 수 없다. 넷째, 나만의 원전 읽기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

  이밖에도 2차 저작이 갖고 있는 문제점과 한계는 더 지적할 수 있다. 고전의 해설서에 해당하는 책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자와 편저자의 관점이다. 앞서 언급한 전제 조건을 이해한 상태에서 2차 저작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원전을 읽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의 고전을 다양한 시각에서 풀어낸 여러 권의 2차 저작물을 참고한 후 원전에 접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정확하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잘 풀어낼 수 있는 전문가의 2차 저작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각 출판사의 고전 읽기 시리즈를 참고해서 청소년에게 적합한 해설서를 골라보자.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논어’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쉽게 풀어쓴 고전,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를 통해 청소년들은 친근하고 재미있는 고전 읽기를 시작할 수 있다. 2,500년 전의 먼지 묻은 역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의 힘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배병삼은 논어 20장의 각 편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가려 뽑아 알기 쉽고 친절하게 공자님의 말씀을 풀어낸다. 청소년들에게 한발 다가서는 고전을 위해 어설픈 해설이나 단순한 요약본은 사라져야 한다. 진지하고 깊은 울림이 전해지는 방법을 찾아 고전의 즐거움을 알려 줄 수 없다면 읽지 않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은 ‘논어’를 궁금해 하는 학생들에게 읽힐 만하다.


논어, 현재적 유용성 : 정치와 교육 문제

  공자는 ‘관계’속의 인간을 꿈꿨다. 또한,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 공존의 가치를 체득하고 인과 예가 실천적으로 운용되는 세상을 그려냈다. ‘논어’는 바로 그러한 공자의 사상을 담아낸 책이다. 한 두 마디로 논어를 요약할 수는 없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담고 있는 책이라는 것이 배병삼의 주장이다. 특히 정치와 교육 문제에 있어서 공자와 맹자의 말이 자주 인용되기도 하고 비판받기도 한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 고전이기 때문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한 김경일의 이야기를 참고하며 읽는다면 색다른 고전읽기가 될 것이다.

  공자를 보는 관점과 논어를 읽는 방법에 따라 상반된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일단 논어를 알고 접근해야한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고전을 읽는 즐거움에 해당한다. 특히, 정치와 교육 문제에 관해 논어를 해석하는 것은 간단치가 않다. 현재의 관점으로 공자의 시대를 해석할 수도 없지만 시대와 상황 맥락만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공자가 가진 이상과 가치가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으며 그것이 현재적 유용성을 가지느냐의 문제는 2차 저작자의 관점과 원전을 통한 확인 그리고 독자의 판단이 선행된 후에 논의될 수 있다. 이 책을 청소년들에게 읽힐 만한 책으로 추천할 수 있는 것은 정확한 공자의 의도 파악, 논어의 관한 해박한 지식, 시대를 고려한 논어에 대한 통찰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각론이나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과 중립적 자세가 아쉽지만 논어에 대한 저자의 애정까지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청소년들이 공자의 시대와 ‘논어’에 관심을 갖고 ‘논어’를 살아있는 고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읽힐 만한 가치가 있다.

  학생들이 새겨들어야 할, 교육자로서 공자님 말씀을 들어보자. 

공자 말씀하시다. “첫째, 나는 학생이 ‘모르는 것이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지 않으면 깨우쳐 주지 않는다. 둘째, 학생이 ‘말로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틔어 주지 않는다. 그리고 ‘한 모퉁이를 들어 보여 주었는데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이’에겐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7장 술이편) - P. 118

공자 학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다. 첫째는 열린 학교로서의 면모요, 둘째는 엄격한 교육 과정이요, 셋째는 질문하여야만 대답을 내리는 교육 방식이다. - P. 121



100127-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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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장 나쁜 문장 살림지식총서 376
송준호 지음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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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느끼고 생각하는 존재다. ‘느낌’과 ‘생각’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글은 살아가면서 얻은 생각과 느낌을 정리해서 표현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다양하고 풍부하게 느끼고 체계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진정 인간다운 삶은 글쓰기에서 비롯된다. - P. 3
 

  문고판의 특징과 효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소매물도 등대섬에 올라본 사람과 못 올라본 사람.’ 통영에 간다는 말에 친구가 장난스런 문자를 보냈다. 이런 식의 장난으로,「삼중당 문고」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다. 나이를 묻는 것일 수도 있지만 책이 많지 않던 시절에 지적 호기심과 문학에 대한 열정을 채워주던 추억의 문고판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장정일의 시 ‘삼중당 문고’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또 하나의 농담이다.

  이렇게 문고판은 책이 등장한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싼 가격에 다양한 상식과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영국의 ‘펭귄북스’가 문고판의 원조에 해당하며, 독일의 ‘레클람문고’, 프랑스의 ‘크세주문고’가 대표적이다. 시공사의 시공디스커버리총서가 된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발견 총서’등이 국내에 번역되기도 한다. 70~80년대 호황을 누린 문고판은 명맥을 유지하다가 최근들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페이퍼백이 원형이지만 다양한 판형과 독특한 시리즈를 구성해서 독자들을 사로잡는 경우도 많다. 가격과 판형, 분량에 따라 어디까지 문고판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렴한 가격과 휴대의 편리성으로 인해 사랑받는 문고판의 계속되지 않을까? ‘문고판 시리즈의 가능성(http://blog.naver.com/amelrian/150001598908)’을 정리해 놓은 블로거의 글을 참고해도 좋다.

  400권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살림지식총서’는 ‘책세상문고’와 함께 이제 대표적인 국내 문고판 시리즈가 되었다. 100페이지를 넘지 않는 적은 분량에 한 가지를 주제를 간명하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부담없이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커피전문점의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가격으로 책 한 권을 구입해서 읽는 동안 사람들은 책과 친해지고 책읽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 이 시리즈는 ‘네이버 지식in’과 닮았다. 다양한 주제와 편안한 접근성으로 독자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서점을 둘러보다 몇 권쯤 들고 나와도 부담이 없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제한된 분량 때문에 상세한 설명이나 폭넓은 접근이 불가능하다. 또한,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내용을 다루기 어렵다. 말하자면 이 시리즈는 본격적인 책읽기를 위한 관문이거나 가볍고 경쾌한 책읽기를 즐길 수 있는 너른 마당으로 활용하면 좋다.


글쓰기는 인간다운 삶의 시작이다

  이 시리즈의 376권 『좋은 문장 나쁜 문장』은 실전 글쓰기에 필요한 연장통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소설창작’과 ‘글쓰기지도법’을 강의하고 있다. 이론적 토대도 관념적 논쟁도 없다. 정확한 단어와 정확한 문장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읽는 동안 무엇보다도 내 글들을 돌아보았다.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군더더기 없이 명확한 원칙들이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면 개성적인 글쓰기도 불가능하다. 변화는 단단한 기본기를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신만의 문체는 정확한 문장쓰기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참신한 단어와 세련된 문장을 쓰고 나면 이제 연결 문제가 남는다. 당연한 순서지만 단어에서 문장으로 그리고 하나의 단락으로 이어진다. 단락이 모여 한 편의 완성된 글이 되는 동안 부분과 전체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문장부호와 띄어쓰기까지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면 이제 자신만의 글이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거창한 문장론이나 글쓰기 비법을 말하지 않는다. 모든 운동의 기본은 체력이다. 잘 뛰지 못하는 축구선수나 물을 두려워하는 수영선수를 상상할 수 없듯이 단어와 문장의 정확한 활용 즉, 우리말의 사용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면 글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초 체력을 길러준다. 정확하고 참신한 단어, 맛깔스럽고 읽기 좋은 문장이란 무엇인지 알려준다. 실제 생활에서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시인이나 소설가만 글을 쓴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매일 글을 쓴다.

  읽고 쓰는 능력은 현대인의 생존 도구와 같다.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이 무엇인지 구별할 줄 알고 좋은 문장을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처음부터 뛰는 사람은 없다. 걷는 연습을 하고 조금씩 연습해보자. 이 책은 그 연습을 위한 첫걸음이면서 기본적인 원칙이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 자주 틀리는 단어와 용법들이 나열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글을 다시 점검하고 글을 쓸 때 활용할 수 있는 실용서이기도 하다. 자, 그럼 이제 뭐든 써야 할 시간이다.


10012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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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1-25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체의 기초체력은 젬병이지만 글쓰기의 기초체력을 위해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sceptic 2010-01-27 10:40   좋아요 0 | URL
^^ 편안하게 참고하실 만합니다.
 
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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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다윈의 ‘진화론’

  2009년은 다윈 다시보기의 해였다. 탄생 200주년이자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아 ‘진화론’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은 듯하다. 다양한 학문적 논의들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전히 유효한 다윈의 진화론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대적 상황, 사회적 변화에 따라 아전인수식으로 오해되거나 잘못 해석됐던 이론에 대한 정치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과연 다윈의 진화론이 21세기에도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론은 ‘인간’을 중심에 둔 이론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고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철학과 종교 이전의 문제이다. 200년 전, ‘창조론’에 가려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불온한 사상 ‘진화론’.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종교적 관점이므로 논외의 문제이다. 역사는 진보하고 인간은 진화한다. 우리는 항상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 불온하게 비난받아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온한 사상가 다윈의 생각은 이제 인간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이론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2009년에 출간된 『21세기 다윈 혁명』은 각 학문 분야의 다윈 혁명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이런 흐름을 뒤이어 나온 전중환의 『오래된 연장통』은 진화심리학에 관한 국내 저자의 최초 저작이다. 전중환은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행동생태학으로 석사, 데이비드 버스 교수 지도로 심리학 박사 과정을 마친 최초의 진화심리학자이다. 자, 이 책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진화심리학 맛보기

인간의 마음은 경제적 이득을 최대화하게끔 설계되지도, 이성이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역사 속에서 실현하게끔 설계되지도 않았다. 인간의 마음은 인류의 진화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맞닥뜨려야했던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수많은 심리 기제들의 집합이다. - P. 37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국내 소개한 최재천은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통섭원’을 운영하고 있다. 최재천 연구실에 행동생태학을 공부하고 전중환은 『욕망의 진화』로 국내 독자들에게 알려진 데이비드 버스 지도를 받아 진화 심리학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저자의 이러한 이력은 『오래된 연장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 책은 진화심리학에 관한 입문서이다. 데이비드 버스의 저작과 다른 진화심리학 서적들을 탐독한 독자라면 읽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이 무엇인지, 어떤 영역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우리에게 왜 진화심리학이 필요한지, 향후 어떤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인지 궁금한 독자에게는 좋은 안내서로 추천할 만하다. 과학도서의 경우 학문 영역인 아카데미즘과 대중적인 저널리즘의 경계를 허물기가 쉽지 않다. 먼저 저자의 글쓰기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흥미 있는 소재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할 수 있어야 하며, 지적 호기심이나 실용적 관심을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이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심리적 기제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학문이다. 자연선택에 의해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에 충실하도록 설계된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볼 것인지 독자들이 판단하며 읽어 볼 일이다. 이 책을 통해 스티븐 핑거의 ‘빈 서판’ 이론 등 이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이론과 성과를 확인할 수 있고 문제점까지 살펴볼 수 있다.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는 것은 알기 쉬운 사례 중심의 글쓰기 방식 덕이다. 저자는 연예인과 실생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진화 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중심으로 한 학문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재미있고 즐겁게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학문적 성과를 대중들과 함께 나누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자들의 이런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분석이 아니라 해석과 실천의 학문으로!

  이제, 과학은 현상을 분석하는 것으로 만으로는 부족하다. ‘종교는 피할 수 없는 부대 비용’에서 저자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자살폭탄 테러를 ‘반사실적 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해석하고 있다. 자살폭탄 테러와 종교가 상관관계 일수는 있지만 인과관계로 보기는 어렵다. 인간을 중심으로 한 진화심리학은 결국 인간과 인간의 관계 양상, 더 나아가 사회를 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중립적인 가치와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기본적인 학문의 자세이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가치중립적 태도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하기 힘들어 보인다. 실용적 학문으로 현 정부를 슬쩍 언급하는 대목도 엿보인다. 진화심리학의 현재와 미래는 학문적 성과뿐만 아니라 현실에의 적용 가능성에 달려 있을 것이다. 실용성이 학문 발전의 기준이 되는 시대는 불행하지만 새로운 학문 분야가 외면 받지 않고 설득력을 얻으려면 필요성과 존재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심리학을 대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저자의 패기가 신선하고 활기찬 학문의 발전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 풍성한 결과를 독자들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의 성과들을 살펴보고 미래를 전망해보는 기초가 되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은 학문을 발전시키는 토대가 된다.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를 공유한다면 학문간 통섭은 자연스럽게 이루지지 않을까 싶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믿음은 바로 이런 학문적 노력들에 기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물학이 다른 자연과학을 토대로 한 단계 도약했듯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그리고 우리 삶을 둘러싼 다른 모든 지식 분과들은 진화생물학을 토대 삼아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될 것이다. - P.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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