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보낸 편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린 로너 엮음, 양희정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곱추에 사자머리(윤택의 머리를 연상하면 되겠다)를 하고 안경너머 명징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람시의 사진은 체 게바라의 사진만큼 인상적이다. 정호승의 ‘서울의 예수’에 실려있는 사진 속 그의 눈빛을 보고 섬뜩했던 기억이 있다. 주관적 느낌이겠지만 세상에 대한 그의 시선은 송곳처럼 날카롭게 보였고 꽉다문 입술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듯 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사진도 그의 삶과 사상만큼 선명하고 확신에 찬 모습이다.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설하고 파시즘에 대항하여 무솔리니의 감옥에서 병과 싸우며 정신 투쟁으로 남은 여생을 보낸 위험한 지식인 그람시는 행복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11년간 감옥에서 그는 <옥중수고>와 <감옥에서 보낸 편지>라는 양대 저작을 남겼다. 
  

  “마르크스라는 지도 위에 상부 구조의 자리를 마련한 거대한 대륙”이라는 옮긴이의 말이 결코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처형 타니아에게 보낸 그의 편지들 곳곳에서 발견되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 견해와 크로체를 통한 견해들은 그람시의 독톡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아내 줄리아와 두 아들 델리오, 줄리아노에게 보내는 편지들은 그람시의 인간적인 면을 드러낸다. 

   린 로너가 엮은 이 책은 다소 긴 ‘서문’이 붙어 있다. 서문에서 로너는 그람시의 생애와 사상들을 보다 일관성있게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고 있으며 이 책만으로 알수 없는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상황과 사상적 배경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옥중수고>를 읽지 못한 나로서는 그람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본문 곳곳에 주석을 달아 놓아 <옥중수고>의 부분들을 인용하고 이탈리아의 당시 상황과 인물들을 소개하는 노력은 이 책을 읽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때로 주석이 사족이 되어 가독성에 방해를 주고 짜증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 책의 주석은 거슬리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파시스트들의 강요된 고립 속에서 그는 혁명의 성공에 버금가는 가장 활발한 지적, 문학적 성취를 이룩해 낸 것이다. 무솔리니 정권에 의해 사고를 멈추도록 유배되었지만 극한 상황에서 오히려 빛나는 한 인간의 영혼을 보여주고 있다.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물론 그 제목과 상황에서 그람시에게 빚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면서도 개인에 대한 보이지 억압과 통제, 사회 현상과 정치 제도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채 우리는 21세기를 맞이했다. 정답이 있을 수 없다는 논리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지켜낸 한 인간의 숭고한 삶에 고개가 숙여진다. 

   ‘헤게모니’라는 개념를 통해서만 만나던 그람시의 모습들은 또다시 내 삶의 자세와 태도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반면교사가 되었다. 로망롤랑의 영향을 받아 자주 반복했던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라는 말은 그가 상황을 견뎌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금언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람시가 남긴 위대한 사상보다 ‘사상의 종점은 행동이다’라고 말한 J. 네루의 말처럼 온몸으로 그의 전 생애를 통해 보여준 삶이 모습이 더 위대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람시의 생애가 보여준 한 마디를 기억해 본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200504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과지성 시인선 294
김기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시인의 등단 무렵부터 시들의 변화 과정을 읽는 것은 재밌다. 시집을 읽는 것은 가슴에 남거나 화자와의 동일시, 상황에의 몰입이라는 단편에 관한 느낌과는 또다른 무게가 있다. 마치 단편 소설 하나하나가 모여 전체 장편을 이루는 피카레스크식 구성법을 이용하는 소설집과 같은 의미로 읽힌다. 전시집과 다음 시집 사이의 시간의 흐름과 시인의 변화를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고 어떤식으로든 그것은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기택의 <소>는 그의 네 번째 시집이다. ‘태아의 잠’, ‘바늘 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에 이은 이 시집은 화해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치밀한 관찰과 묘사가 시인의 가장 큰 무기이다. 특히 김기택은 더욱 그러하다. 잠들고 묻혀 있는 일상속의 작은 변화와 행동들을 시인은 날카로운 감각과 시선으로 그것들을 집어 낸다.

   달팽이 지나간 자리에 긴 분비물의 길이 나 있다
   얇아서 아슬아슬한 갑각 아래 느리고 미끌미끌하고 부드러운 길
   슬픔이 흘러나온 자국처럼 격렬한 욕정이 지나간 자국처럼
   길은 곧 지워지고 희미한 흔적이 남는다
   물렁물렁한 힘이 조금씩 제 몸을 녹이며 건조한 곳들을 적셔 길을 냈던 자리, 얼룩
   한때 축축했던 기억으로 바싹 마른 자리를 견디고 있다

  ‘얼룩’의 전문이다. 사물을 낯설고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 시인의 기본적인 의무라면 김기택은 시인의 의무에 너무 충실하다. ‘단말마로 악쓰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붙어버린 마음을 아무것도 모르는 타이어들이 씽씽 밟고 지나간다’는 표현처럼 타이어 자국에서 시작된 상상력을 개인적 상상력으로 복원시킨다.

  특히 이 시집에서 시인은 모든 사물을 꿰뚫어 보듯, 투명한 상상력으로 지나간 시간들의 흔적과 기억들을 조합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긴 세월은 남편이 되고 아이들이 되어
   네 몸에 단단히 들러붙어
   마음껏 진을 빼고 할퀴고 헝클어뜨려 놓았구나      - ‘아줌마가 된 소녀를 위하여’ 중에서

   불도 없는데 생선 비늘 들썩거린다.
   할머니 얼굴 쭈글쭈글해진다.
   등뼈가 휘어지고 오그라들고 굳어진다.
   거친 숨, 가는 신음이 몸 안에서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깊은 주름을 흔들며 앞니 빠진 아이처럼 깔깔거리는 할머니,
   상한 데 없는 맑고 어린 웃음이 경로당에서 나온다.                   - ‘전자레인지’ 중에서

  위의 두 편의 시에서 인용한 것처럼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시인은 시간의 흐름과 세월에 깊이에 시선을 던져두고 있다.

  
창문이 모두 아파트로 되어 있느 전철을 타고
   오늘도 상계동을 지나간다.
   이것은 32평, 저것은 24평, 저것은 48명,
   일하지 않는 시간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또 창문에 있는 아파트 크기나 재본다.
     ……<중략>……
   전철이 지하로 들어가자
   아파트로 된 창문들이 일제히 깜깜해지더니
   아파트 대신 창문마다 얼굴들이 나타난다.
   내 얼굴도 어김없이 그 사이에 끼어 있다.
   어릴 적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 ‘어린 시절이 기억나지 않는다’중에서


  무엇인가 새롭고 긴장된 감각과 신선함을 보여주는 시를 원한다면 김기택의 시와는 거리가 멀다. 이 시집을 통해 시인은 세월의 깊이와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무원>에서 보여주었듯이 도시생활의 척박함을 ‘주말농장’에 가서 ‘별미’로 표현하며 메마른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인의 말을 읽는다. “너무 건조해서 불면 먼지가 날 것 같은 머리와 가슴. 도저히 시가 나올것 같지 않은 그곳에서 그래도 시가 나오는 이유는 끊임없이 몸을 물고 늘어지며 뒤척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 지루하고 답답한 삶의 압력이 강제로 상상력을 분출키기 때문.” 시는 어디쯤에 서서 우리에게 늘 깨진 유리거울로 눈을 부시게 하고 마른 하늘에서 소나기를 내려 주기도하고 가끔 귀밑을 간질이며 신선한 바람과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슬며시 그의 손을 잡는지도 모르겠다.


200504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군가 다녀갔듯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295
김영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가의 손길은 그것이 스치기만 해도 아름답다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김영태의 시는 아름답다. 이제 칠십의 나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간결하며 투명하다. 평생 미술과 음악, 무용 등 예술 전반에 관한 폭넓은 안목과 관심으로 삶을 이야기한다. 86년 <결혼식과 장례식>으로 그를 처음 만났다.

  
한 아이는 꽃처럼
   밤에 피어 있다
   무척 두려울 것이고
   처음으로 꽃으로 밤에
   피고 있다

   장례식 날엔 비가 내렸다
   멜빵끈을 잡은 환도도 서 있다
   그 옆에 죽은 리스도 서 있다
   솔 답배를 거꾸로 물고
   불을 붙이는 사람도 있다.
   대여섯 명                                - ‘결혼식과 장례식’ 전문

시집 표지의 자화상의 변화 모습만큼이나 시간이 훌쩍 흘렀고 시는 더욱 새롭다.

  
하염없이 내리는
   첫눈
   이어지는 이승에
   누군가 다녀갔듯이
   비스듬히 고개 떨군
   개잡초들과 다른
   선비 하나 저만치
   가던 길 멈추고
   자꾸 자꾸 되돌아보시는가       - ‘누군가 다녀갔듯이’ 전문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이 시에서 시인은 그의 전 생애를 말하고 있는듯하다. 세월의 무게가 아니라도 이 한편의 아름다운 그림을 상상해보면 삶과 죽음의 세계가 동양적 세계관에서 이야기 하듯이 이분법적, 불연속적 세계관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길고 가는 부드러운 곡선처럼 그렇게 하나가 되어 이어져 있는 느낌이다.

  
앞모습은 말을 하지만
   뒷모습은 말이 없다
   인간은 나이들어
   한 장의 뒷모습을 두고 간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다 지나간 뒤에
   남아 있는……           - ‘뒷모습’중에서

라고 말하는 시인의 뒷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제 생을 정리하고 마감하는 시편들이 곳곳에 보여 오히려 슬프다. 그것은 넉넉함이고 부드러움이고 편안함이며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슬프게 닿는다. 생에 대한 철학적 인식과 내면적 고백보다 오히려 무심한 듯 스쳐지나가듯 툭툭 내뱉고 던져놓고 모른척 하는 말하기 방식이 이제 비로소 김영태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더러운 것들 많은 세상에
   중광은 걸레처럼 살다 갔다
   미친 듯 반성하듯 붓 한자루로
   인사동 선천집
   토란국에 빠져다가 기어나온
   동갑내기 떠돌이 파계승은        - ‘괜히 왔다 간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말하며 이승에서의 삶을 ‘소풍’에 비유한 시인 천상병과 ‘괜히 왔다 간다’고 말하고 떠난 중광 스님, 이제는 김영태가 그 동갑내기 떠돌이 파계승을 추억한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는 것일 뿐이다. 모든 문학적 관심이 인간과 삶의 문제이겠으나 그 풀이 방식의 다양성만큼이나 늘 새롭고 반갑고 즐거운 것이 또한 문학이 아닌가.

  
앞머리 짧게 친
   화등잔만한 눈
   망사옷 속
   가슴을 숨기지 못한
   너무 시퍼런
   길이 만나는 곳
   너무 시퍼래서
   어디 두어야 할지 모르는
   저 스무 살!                         - ‘길이 만나는 곳’

  이 시를 마지막으로 인용하고 싶다. 그것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길이 만나는 지점을 김영태는 스무 살 튀어 오를듯 젊고 신선한 여자의 가슴 속에서 발견한다. 그것은 싸구려 곁눈질이 아니라 놀라운 생명의 발견이며 생에 대한 열정일 것이다. 수많은 길들 속에 정답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처럼 내게 주어진 길을 Ч??열심히 걷다 지치면 쉬어 가리라.


200504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 창비시선 242
신대철 지음 / 창비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간에 화제를 뿌렸던 영화 ‘실미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음험한 소문으로만, 작은 목소리로 소리 낮춰 주고 받던 북파 공작원의 이야기를 다룬 소재부터 충격이었으며 그것이 실화였다는 사실은 더더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직도 우리는 진행형의 역사의 상처 속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아프면 아픈채로 시간이 흐르면 그 고통조차 잊고 살기 마련이다.




‘잠들지 못한 눈 무심히 재우는
일자형 눈썹 같은 산 능선에서
지글거리는 불덩이 가라앉히고
수평선으로 넘거가는 붉은 해를
어두워진 가슴으로 받아
밀물에 밀려나오는 사람들


실미도는 물안개에 지워지다 다시 떠오른다 


바람이 서풍에서 북풍으로 바뀔 때
엉클린 물결 거품 물고
날을 세운다, 날에 날을 갈아
단숨에 날아갈 듯
발뒤꿈치 들어올린 무의도로 달려온다              - ‘실미도’중에서


  이 시집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1부와 2부에서 서정과 현장성이 살아 넘치는 시세계를 보여준다. 몽골여행의 기록과 그곳에서 만난 한민족의 모습들이 피나는 역사의 진행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3부로 이어진다. 3부에서 시인은 자신의 아픈 상처들과 기억들을 풀어 놓으며 기나긴 침묵의 시간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GP에서의 경험과 고통의 기억들은 개인적 상처와 진실로 머물러 있지 않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의 역사이며 보편적 진실로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의 다른 이름이라고 본다.


  광주 상무대에서 OBC 교육을 마치고 강원도 XX사단 GOP(General out post:일반전투전초)라 불리우는 철책선에서 군대생활을 시작한 나는 이 시를 읽는 감회가 남달랐다. GOP 근무를 마치고 내려오자 마자 수색중대에 전출 명령을 받고 1050고지에 있는 중대막사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 비현실적이다. DMZ(De-Militarized Zone) 지역에 두 개의 GP(일반전초)를 담당하는 부대였다. 3개월간 수색과 매복, 3개월간 GP작전 투입 훈련, 3개월간 GP근무의 반복 순환 근무였다. GP장의 임무를 수행했던 나는 다른 동기들과 달리 대원들과 함께 먹고 자며 유사시를 대비하며 동고동락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사뭇다른 상황이었지만 영화 ‘프레데터’에 나오는 열추적 장치를 이용한 적의 이동 경로 파악과 손에 잡힐듯 보이는 군사분계선 너머 그들의 행동과 생활모습들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시인의 말을 들어보자.


  GP에 들어와 처음 분계선으로 내려갔을 때 나는 비무장지대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에 당황했다.……나는 지금도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면서 살기 띤 침묵과 고독과 불안이 한덩어리가 되어 눈앞에 둥둥 떠다니던 그 순간들을 잊을 수 없다. 사방에 파놓은 비트를 들락거리며 밤새워 공작원을 넘기고 기다리던 그 하루하루, 그때 나는 살기 위해서 틈만 나면 안전 소로를 확보하려고 자주 분계선을 넘나들었다.……그리고 악몽이 시작되었다. 피투성이가 된 공작원과 GP 요원들이 수시로 찾아왔다.……체험적인 진실과 창조적 진실 사이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시를 버렸다.……이 시집은 오랫동안 아물지 않던 그 몸부림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비무장지대에 떠도는 젊은 영혼들에게 이 시집을 바치고 싶다. 


  물론 지금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였던 비무장지대의 모습이지만 내가 전역한 후 선임하사와 이등병 하나가 지뢰를 밟고 발목 절단 수술을 받은 후 의가사 전역한 사실을 몇 년이 지나서야 다른 소대원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체험적 진실과 창조적 진실 사이’를 넘나들며 창작의 고통과 삶의 진실에 사이의 접점을 찾느라 전력을 기울였을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것이 설령 개인의 정신적 상처가 아니라 치유될 수 없는 우리 역사의 단면일지라도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는 우리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그대를 향한 불가능할것 같은 사랑을 이야기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안개 속에 떠오른 공제선이
문득 남북으로 갈라선다.

땅속으로 잠복호 밀어 넣고
얼핏 눈에 감겨오는 푸른 강줄기
목에 가슴에 두르고
물안개에 싸여 돌아오는 새벽

……<중략>……

잘 가라, 두 깃발 사이
우리 땅 어디에도
있지 않았던 그대여,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泳浩磯?

          -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중에서




200504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렌지소녀 - 소설로 읽는 사랑철학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이정순 옮김 / 현암사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어 보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작가와 제목, 대강의 내용과 출판사 등 객관적 요소들을 두루 살펴보고 책을 산다. 그렇게 선택한 책이 기대했던 내용과 일치하고 그 이상의 감동과 재미를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새로운 정보와 깨달음을 줄 때 독서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때로 즐겁다. 하지만 단 한권의 책만으로 그 작가를 평가하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이다. 요슈타인 가아더는 <소피의 세계>로 문명을 떨쳤지만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소설로 읽는 사랑철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오렌지 소녀>를 그의 두 번째 책으로 선택했다. <소피의 세계>도 물론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한 단상으로 읽혀 질 책이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단순한 연애소설로 읽기 시작했을 때와 정반대의 느낌이다. 소설 형식으로 쓰였지만 이 책은 가장 객관적이고 철학적인 사랑이야기다. 남녀간의 이성적 사랑을 운명이라 믿으며 정신 못차리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물론 그것이 생의 과정이고 가장 화려한 시절일 수 있으나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의 우연성과 감정의 변화를 냉철하게 짚어 나가고 있다.


  “너에게는 우연이나 나에게는 숙명이다(정호승의 ‘첫눈’중에서)”라고 말하는 모든 연인들에게 사실 어떤 조언이나 감정의 절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우습다. 반대로 요즘이야 그런 감정의 편린들만을 따라가는 사랑을 하는 젊은이도 없다고 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오렌지 소녀>는 그의 다른 소설처럼 액자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얀 올리브가 스무살에 만난 오렌지 소녀 베로니카와의 첫 만남, 두 번째 우연한 만남과 기다림 사랑과 결혼으로 이어지는 모든 사람들의 평범할 듯한 사랑이야기가 기본 서사 구조를 이룬다. 미술을 전공한 베로니카와 의사인 얀 올리브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행복의 절정에서 네살바기 아들 게오르그를 남겨둔 채 죽음을 맞이한다. 이 모든 사실은 11년 뒤, 게오르그의 유모차 밑에서 발견되는데,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진행된다. 현재의 15세 소년 게오르그에게 11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미래의 아들에게 전하는 편지라는 독특한 형식의 이야기다. 물론 그 오렌지 소녀는 게오르그의 어머니 베로니카이다. 지금은 외르겐과 재혼해서 살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게오르그는 차츰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야기 시작 부분에서 허블 망원경과 우주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관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죽은 아버지와 교감을 나누기 시작한다. 우리들 삶의 과정과 생에 대한 아이러니가 우주의 변화와 아름다움 만큼이나 계속된다는 사실로 읽힌다. 언젠가 이 모든 것들과의 이별이라는 것은 생의 절대 진리이다. 그 규칙을 피해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지금 이 모든 순간의 삶을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생각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으나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미래의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로는 적당하다. 부모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아들에게 인생에서 사랑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아버지와 그 편지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고 드넓은 우주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그것은 게오르그라는 소설속 소년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모습으로 읽을 수 있겠다.


  누구나 한 번쯤은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고 누구나 한 번쯤은 지독한 이별의 고통을 경험한다. 단순한 생의 규칙이다.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경험하지 못한 사람을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없다. 아픈만큼 성숙해지고 잃어야 얻는다는 단순한 진리는 직접 체험의 과정 속에서 더욱 빛난다. 본격적인 사랑의 의미를 되묻고 진지하게 성찰하는 소설이었다면 오히려 부담스러웠을까? 학생들에게 적당히(?) 권할만한 가벼운 소설이라서 부담없이 피해간다. 본질적인 문제를.

 

 

200505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