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 창비시선 242
신대철 지음 / 창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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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에 화제를 뿌렸던 영화 ‘실미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음험한 소문으로만, 작은 목소리로 소리 낮춰 주고 받던 북파 공작원의 이야기를 다룬 소재부터 충격이었으며 그것이 실화였다는 사실은 더더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직도 우리는 진행형의 역사의 상처 속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아프면 아픈채로 시간이 흐르면 그 고통조차 잊고 살기 마련이다.




‘잠들지 못한 눈 무심히 재우는
일자형 눈썹 같은 산 능선에서
지글거리는 불덩이 가라앉히고
수평선으로 넘거가는 붉은 해를
어두워진 가슴으로 받아
밀물에 밀려나오는 사람들


실미도는 물안개에 지워지다 다시 떠오른다 


바람이 서풍에서 북풍으로 바뀔 때
엉클린 물결 거품 물고
날을 세운다, 날에 날을 갈아
단숨에 날아갈 듯
발뒤꿈치 들어올린 무의도로 달려온다              - ‘실미도’중에서


  이 시집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1부와 2부에서 서정과 현장성이 살아 넘치는 시세계를 보여준다. 몽골여행의 기록과 그곳에서 만난 한민족의 모습들이 피나는 역사의 진행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3부로 이어진다. 3부에서 시인은 자신의 아픈 상처들과 기억들을 풀어 놓으며 기나긴 침묵의 시간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GP에서의 경험과 고통의 기억들은 개인적 상처와 진실로 머물러 있지 않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의 역사이며 보편적 진실로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의 다른 이름이라고 본다.


  광주 상무대에서 OBC 교육을 마치고 강원도 XX사단 GOP(General out post:일반전투전초)라 불리우는 철책선에서 군대생활을 시작한 나는 이 시를 읽는 감회가 남달랐다. GOP 근무를 마치고 내려오자 마자 수색중대에 전출 명령을 받고 1050고지에 있는 중대막사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 비현실적이다. DMZ(De-Militarized Zone) 지역에 두 개의 GP(일반전초)를 담당하는 부대였다. 3개월간 수색과 매복, 3개월간 GP작전 투입 훈련, 3개월간 GP근무의 반복 순환 근무였다. GP장의 임무를 수행했던 나는 다른 동기들과 달리 대원들과 함께 먹고 자며 유사시를 대비하며 동고동락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사뭇다른 상황이었지만 영화 ‘프레데터’에 나오는 열추적 장치를 이용한 적의 이동 경로 파악과 손에 잡힐듯 보이는 군사분계선 너머 그들의 행동과 생활모습들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시인의 말을 들어보자.


  GP에 들어와 처음 분계선으로 내려갔을 때 나는 비무장지대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에 당황했다.……나는 지금도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면서 살기 띤 침묵과 고독과 불안이 한덩어리가 되어 눈앞에 둥둥 떠다니던 그 순간들을 잊을 수 없다. 사방에 파놓은 비트를 들락거리며 밤새워 공작원을 넘기고 기다리던 그 하루하루, 그때 나는 살기 위해서 틈만 나면 안전 소로를 확보하려고 자주 분계선을 넘나들었다.……그리고 악몽이 시작되었다. 피투성이가 된 공작원과 GP 요원들이 수시로 찾아왔다.……체험적인 진실과 창조적 진실 사이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시를 버렸다.……이 시집은 오랫동안 아물지 않던 그 몸부림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비무장지대에 떠도는 젊은 영혼들에게 이 시집을 바치고 싶다. 


  물론 지금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였던 비무장지대의 모습이지만 내가 전역한 후 선임하사와 이등병 하나가 지뢰를 밟고 발목 절단 수술을 받은 후 의가사 전역한 사실을 몇 년이 지나서야 다른 소대원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체험적 진실과 창조적 진실 사이’를 넘나들며 창작의 고통과 삶의 진실에 사이의 접점을 찾느라 전력을 기울였을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것이 설령 개인의 정신적 상처가 아니라 치유될 수 없는 우리 역사의 단면일지라도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는 우리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그대를 향한 불가능할것 같은 사랑을 이야기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안개 속에 떠오른 공제선이
문득 남북으로 갈라선다.

땅속으로 잠복호 밀어 넣고
얼핏 눈에 감겨오는 푸른 강줄기
목에 가슴에 두르고
물안개에 싸여 돌아오는 새벽

……<중략>……

잘 가라, 두 깃발 사이
우리 땅 어디에도
있지 않았던 그대여,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泳浩磯?

          -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중에서




200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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