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 - 십대가 알고 싶은 사랑과 성의 심리학 사계절 지식소설 2
이남석 지음 / 사계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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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을 만날 때면 호기심보다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왕창세일’이나 ‘점포정리’같은 식상함으로 다가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사라진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지만 저절로 읽혀지기를 바라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그래도 ‘한 권으로 끝내는~’ 자극적인 책들은 책이 아니라 종이뭉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 권으로 끝낼 수 있는 건 가전제품의 매뉴얼 밖에 없지 않은가?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도 같은 맥락에서 일단 제쳐둔 책이다. ‘십대가 알고 싶은 사랑과 성의 심리학’이라는 지극히 자극적이고 호기심 넘치면서도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신중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어떤 책일까? 목차를 훑어보자. 열 두 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부터 12장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방법은 없나요?’에 이르기까지 십대들이라면 얼른 읽고 싶을 수밖에 없는 제목들이다.

중학교 1학년 이규린이라는 여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자신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두 딸의 아버지로 자신의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써 나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 장 두 장 읽다보면 가벼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데 초점을 두고 분량과 형식에도 공을 들인 책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감정을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의 분석에 토대를 두고 중학교 1학년 수준에 맞추어 풀어내는 일이 어디 만만한 일인가. 글을 쓰는 저자의 고민과 노고가 고스란히 표현과 문장에 녹아 있다. 책의 형식과 내용은 유기적으로 맞물리게 된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고루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인다.

다만 가장 말하기 쉽지만 가자 어려운 ‘쉽고 재미 있으면서 유익하게!’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간혹 두 마리의 토끼를 다 놓치는 경우도 있다. 아주 재밌있고 유쾌한 책도 아니면서 깊이도 놓치는 경우가 그러하다. 말하자면 쉽고 재미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내용은 어렵고 딱딱할 경우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독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겠지만 이 책은 그 경계선에 서 있는 듯 위태로워 보인다.

우선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구체적인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또 한 가지 이 책은 앞서 언급한대로 끝없이 질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규린이의 질문은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익명의 아이디로 답을 달아주는 사람들을 통해 생각을 키워가는 형식이다. 익숙한 방식으로 책을 읽을 읽는 청소년들에게 낯설음과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답변의 내용이 심리학과 철학자들의 개념적인 설명들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있어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물론 어렵지 않게 다듬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 ‘사랑’의 감정이나 태도를 결정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랑’의 개념에서부터 구체적인 감정의 변화 그리고 키스에서 섹스에 이르는 육체적 사랑까지 다루고 있다.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라는 단체가 엄존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인간의 가장 자연스런 감정과 욕망을 배울 기회가 없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솔직한 질문과 답변들로 가득하다. 그들에게 가장 뜨거운 감자인 ‘사랑’. 제대로 알려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가 아닐까?

이 책은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험한 세상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책도 아니고 봉건적인 순결을 강조하는 책도 아니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자연스런 과정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배울 기회가 없는 청소년들의 가장 큰 질문이자 고민인 ‘사랑’에 대해 답하는 책이다. 한 권으로 ‘사랑’을 끝낼 수는 없지만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답변을 준비한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사랑’을 묻는 아이들에게, 유행가 가사로만 어렴풋이 짐작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 한 권을 읽어보라고 권해도 좋을 만하다. 다만 이 책은 ‘사랑’의 완결판이 아니라 ‘사랑’의 출발이며 실천적 사랑의 멘토 쯤으로 생각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찌 ‘사랑’을 책으로만 배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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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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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정의를 외치고 싶을 때다 있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정의로운 세상에 살고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자. 20대에 혁명을 꿈꾸지 않거나 40대에도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을. 우리는 사춘기를 거치고 세상을 알아가는 사회화 과정에서 수많은 혼란을 겪는다. 부모의 영향, 가족들의 태도, 가정환경, 교우관계를 통해 형성된 가치관은 사회를 보는 논리가 갖추어지면서 지독한 모순과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개인의 도덕적 기준과 인생의 목표에 따라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눈도 변한다. 세상을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구별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체계와 가치를 내면화하고 그 안에서 행복과 자유를 꿈꾸는 보수적인 경향의 사람들이 있고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보수와 진보를 몇 가지 기준과 가치관의 차이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 공평한 경쟁이 불가능하다. 그만큼 노력하고 움직이지 않으며 안 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나 조직이든 변화를 꿈꾸기 위해서는 고통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경제적 정의는 도덕적 정의에 우선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모든 것은 ‘돈’이 결정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물질적 가치는 모든 것에 우선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정의’에 대한 논의는 무성했다. 철학적 관점에서 윤리학의 접근이 개인이나 실생활의 규범적 가치에 관한 문제였다면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정의는 주로 분배와 자유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라면 행복의 원천이 되는 문제들을 살펴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이 이야기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는 바로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정의와 관련한 오늘날의 주장은 거의 다 번영의 열매나 고난의 짐을 어떻게 분배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논의를 지배하는 사고는 행복과 자유다. 그러나 경제적 분배의 옳고 그름을 주장하다 보면, 어떤 사람이 도덕적 자격을 갖추었고 왜 그러한가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 P. 24

최근 ‘공정사회’라는 화두가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이 용어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그 기준과 내용이 다르고 원칙과 방법이 제각각이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공정함’에 대한 합의가 없었고 ‘공정함’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각각 공정한 사회를 꿈꾸고 자신은 최소한 그 피해자가 되지 않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의 정의란 무엇인가.

미국과 하버드에 대한 콤플렉스가 아니라면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되기 힘든 책이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이다. 대학생을 상대로 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이야기는 쉽고 간명하다. 사례 중심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고 철학적 관점에서 정의를 정의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조금 다른 미국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며 그들의 전통과 가치를 이해하지 않으면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수준에 그칠 우려가 있는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인의 정의감을 가장 심하게 건드린 것은 내 세금이 실패를 포상하는 데 쓰인다는 점이었다. - P. 30

한국 사회의 도덕적 해이는 정치와 재벌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만들었고 그것을 권력과 자본을 소유하기 위한 무한 경쟁 사회로 이끌고 있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대한민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확인하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확인했던 책이다. 마이클 샌델은 이 책에서 ‘미국인의 정의감’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한국인의 정의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까. 과연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한국적 가치란 무엇일까.

이 책은 결국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싶은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을 것이다. 도대체 한국 사회의 지향점은 어디이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미국 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철학적 관점을 확인하는 데 그치고 만다. 전체 10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에서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시장과 도덕, 아마누엘 칸트, 존 롤스, 소수집단우대정책, 아리스토텔레스, 충직 딜레마, 정의 공동선에 대한 저자 특유의 비판적 해석이 돋보인다. 1강의 ‘옳은 일하기’는 이 책 전체의 프롤로그에 해당한다. 행복과 자유와 미덕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는데 강의 내용 곳곳에서 이 관점들이 가진 장점과 한계 그리고 반론들을 제기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친 관점에서가 아니라 각각의 관점들이 가지는 효용성과 한계를 함께 고민할 수 있다. 저자는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미덕’에 방점을 찍는다. 정의는 극단적인 공리주와 자유지상주의 관점이 아니라 ‘미덕’이 주는 관점에서 정의를 설명한다.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판단과 기준이 아니라 ‘정의’의 문제를 인간 사회에서 고민해 온 다양한 도덕적, 철학적 관점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의 ‘정의’란 무엇인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하게 합의를 통해 규정지을 수도 없고 이론적 기준과 잣대로 판단할 수도 없다. 우리 사회의 지향점과 미래 사회의 가치가 무엇인지 오늘도 한국사회는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과연 ‘공정사회’가 어떤 기준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 실현 가능한 것인지, 그것은 또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 책의 1강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각자 답해보자. 그것이 바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의’에 대한 정의이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이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다 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 P.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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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논증법 -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4가지 실전 논리
최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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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 많은 논증과 오류의 이름을 외우는 대신에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바로 자비로운 태도다. 그런 태도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내 머리가 나쁜 것을 탓할 필요가 없다. 착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만 가지면 누구나 논리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논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 - P. 13

“당신 계속 그렇게 말하면 이따 방송 끝나고 나하고 토론 좀 해야돼!”

이 멘트는 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어느 정당의 국회위원이 한 말이다. 앞뒤 맥락을 잘라 잘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토론 프로에 나와 말문이 막히지 방송 끝나고 토론을 하자는 말을 하는 국회위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터넷에서 ‘어록’으로 떠돌던 토론 프로그램의 찌질이들이 여전히 국회위원 뺏지를 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을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우리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의견이 대립되고 논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말싸움에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과 논쟁에서 이겼다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제압하는 게 논쟁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오류와 억지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은 이미 논쟁에서 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

우리 사회가 참된 민주주의 사회라면 건전한 토론 문화와 이성적인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질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내 생각도 수정될 수 있고 나의 주장도 철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별을 따기보다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좋은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내용과 형식 그리고 난이도 등 책을 권할 때는 수많은 생각들이 오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씩 부담없이 누구에게나 이 책 한번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책을 만난다. 최훈의 『변호사 논증법』이 그렇다. 좀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싶은 통쾌하고 시원한 책을 만난 기쁨이 크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모든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생각이 다른 사람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상대를 설득하고 내 주장을 펼치는 과정에서 보다 나은 문제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닫힌 마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고집하고 절대 물러서지 않으며 항상 내가 옳다는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 찬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과는 논쟁이 되지 않는다. 조롱과 풍자, 경멸과 욕설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토론과 논쟁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이 부족했거나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저자는 ‘자비로운 태도’ 즉, 착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역지사지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설득할 수 없으며 자신은 절대 설득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과 같다.

이 책은 제목처럼 변호사의 논쟁 방법을 빌려 오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논리학의 범위 안에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고 주의해야 하는 원칙들이기 때문에 어렵거나 난해한 방법이 아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변호사의 논증법 네 가지는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 + 역지사지의 원칙’, ‘근거제시의 원칙 + 근거 확인의 원칙’, ‘입증 책임의 원칙 + 입증의 권리 원칙’, ‘논점 일탈 금지의 원칙’이다. 이 원칙들은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실전 논리와 방법들이 전제가 된다. 이 원칙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실제 생활에서 주의한다면 우리는 논쟁의 달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은 그런 목적을 가지고 쓰여졌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재밌게 구성되어 있다.

입증의 책임이나 주장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 애매모호와 정의, 전문가의 견해, 논란이 되는 근거, 인신공격, 감정, 유비, 인과, 일반화 등 국어시간이나 철학, 논리 시간에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들을 실제 사례 중심으로 설명한다. 이 책은 말하자면 실전 논쟁에서 이길 수 있는 비법들이 속속들이 소개된 책이다. 훈련과 실전의 적용은 물론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흔히 범하는 실수를 지적하고 왜 그것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설명한다. 저자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논쟁의 달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논거를 통해 주장하고 오류를 줄여야 한다.

이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논리적인 사람이 되고 싶을 때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관련 분야의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이고 둘째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라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마음가짐의 문제이고 태도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귀가 없는 사람과 논쟁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마찬가지로 귀를 막고 떠들어 봐야 당신은 어느새 말이 통하지 않는, 논쟁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저자의 목소리는 가장근본적인 마음 자세부터 바로 잡아야 함을 강조한다. 복잡한 논증이나 오류는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해야 하는 기술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매일 전쟁 같은 일상을 견뎌낸다. 가족과 친구는 물론이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논쟁에서 이기는 법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말은 뱉고 나면 주어 담을 수가 없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상대를 이기는 논쟁의 비법이 아니라 보다 겸손해지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마음을 배웠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생긴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듣고 논리적 오류를 범하지 않는 정확한 어법으로 상대방에게 설득력 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또 하나의 개인적인 다짐이다. 자 이제, 잠시 침묵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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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나의 선택 실험실 - 선택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 100가지 심리실험
쉬나 아이엔가 지음, 오혜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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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피천득 옮김)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일요일 점심, 자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고민했을 많은 사람들에게 짬짜면이 추가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선택지가 세 개로 늘었을 뿐 사람들은 여전히 자장면, 짬뽕, 짬짜면 중에서 괴로워한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은 인생을 후회의 고통에 빠뜨린다. 그것은 음식뿐 만 아니라 대학의 전공, 직업, 결혼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반복된다. 어쩌면 삶이란 선택의 결과물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 그때 그걸 선택했다면……’하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 보았으리라.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도 많다.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보자. 내 인생길을 바꿔 놓은 ‘그것’은 무엇일까?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판단력을 갖추고 있을 것 같은 우리 인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모순투성이임을 금방 깨닫게 된다. 이성적 판단에 근거해서 투자를 결정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 같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나심 탈레브의 『블랙스완』,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쉴러의 『야성적 충동』 등은 바로 이런 인간들의 경제 행위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심리학은 말할 것도 없다. 불완전한 인간의 심리를 다룬 『생각의 오류』, 『클루지』, 『거짓말의 진화』, 『가스등 이펙트』 등 수많은 책들이 넘친다. 인간의 마음은 그만큼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쉬나 아이엔가의 『쉬나의 선택 실험실』의 원제는 ‘선택의 예술The art of choosing’이다. ‘선택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 100가지 심리실험’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이 책은 실제 다양한 심리 실험을 통해 실제 사례를 보여준다. ‘선택’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선택의 과정과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재미있는 것은 경영학을 전공한 저자가 ‘선택’을 심리학자 이상의 수준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블링크』,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이나 『체크!체크리스트』의 저자 아툴 가완디가 언급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르지만 분야가 다른 저자들의 혜안이 빛난다.

이 책도 한국적인 교육풍토나 지적 토양에서는 나오기 힘든 저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간 경계를 허물고 17살부터 문,이과를 나누는 교육과정을 통합하고 인문학에 새로운 인식과 교양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최재천 교수가 통섭원을 설립하고 이런 학문적 풍토를 바꾸기 위해 노력중이지만 교육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결국 우리 사회도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닐까?

쉬나 아이엔가는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내 선택의 심리, 선택의 기술, 선택의 함정, 선택의 역설을 통해 결국 ‘인생은 선택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선택하는 자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그의 에필로그는 이 책에서 저자가 보여주었던 ‘선택’에 관한 수많은 논의들에 대한 자연스런 결론이다.

선택한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다음 시간, 다음 해, 또는 그 너머를 살짝 엿보고 거기서 보는 것에 근거해 결정을 내린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나 아마추어 점쟁이다. - P. 419

우리는 매일매일 선택의 연속인 인생을 산다. 선택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인생의 비밀을 아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왜 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그 선택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으며 미래를 예측하고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의존적이고 게으른 천성 탓에 누군가 모든 것을 결정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근대 이전에는 운명론적 세계관이 지배했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고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모든 운명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성이 발달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선택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이 가장 불행하다는 데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누구보다도 즐거운 마음과 올바른 선택을 통해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만 그 선택의 유혹에 대처하는 방식과 결과를 받아들이는 마음 자제는 개인과 몫이다.

이 책을 통해 사회적 선택이나 집단 선택의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개인의 선택에 맡길 문제가 아니라 집단지성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목적에 대한 사회적 선택은 특정 위치에 있는 개인에게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양한 사회적 제도와 시스템이 갖추어진 듯해도 우리가 신경 쓰고 감시하지 않으면 산으로 가는 배를 함께 타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선택에서 시작해서 선택으로 끝나는 우리들의 인생을 성찰하고 싶다면 이 책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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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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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지 같지만 어디서에도 같지 않은 것은?”

비에 젖은 일요일 오후를 산책하다가 하루에 4시간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절대 몰입의 독서를 위한 2시간, 운동을 위한 1시간, 아무것도 안하고 하늘만 쳐다보는 1시간. 노동의 순환 사이클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요일 오후에 느끼는 아쉬움과 월요일에 대한 부담은 비슷하리라. 하지만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시간이 늘 부족한 사람이 있고 시간이 늘 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시간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도 여유를 즐기는 사람이 있고 한 가지 일도 못하고 늘 허덕이는 사람도 있다. 단순히 개인의 능력 차원을 넘어 시간에 대한 주관적 개념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수수께끼 하나를 풀어보자.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에서 던진 질문이다. 어디든지 동일하지만 어디에서도 다른 것은 질문 자체가 모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 중 하나인 클레아르쿠스는 『수수께끼의 이론』이라는 책에서 질문 놀이인 그리포스(griphos: 수수께끼 게임)를 특히 많이 다루었다고 한다. 이런 질문을 통해 다양한 논리들을 거쳐 소크라테스의 대화로 발전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궤변법의 기술이 고의로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며 경멸했다. 어쨌든 이 질문의 정답은 바로 “시간”이다.

겨우 몇 백 년 전만 해도 인간의 삶이 이렇게 바쁘고 번잡스럽지는 않았다. 전근대 사회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동안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변했는지 살펴보면 가히 혁명에 가깝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문명은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인간의 삶도 그만큼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시간의 개념이 달라진 것만은 사실이다. 분초 단위의 시간으로 잘게 쪼개진 일상에서 우리의 삶도 그만큼 바빠졌고 여유가 없어졌다. 놀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한 휴식을 취하는 삶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1938년 6월 레이던 대학에서 하위징아가 쓴 이 책은 인간의 역사와 문화에서 ‘놀이’의 개념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인간의 특징을 나타내는 많은 말들 중에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말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위징아는 ‘놀이는 문화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문명을 이루기 이전 상태 즉 동물적 본능에 가까운 것이 바로 ‘놀이’라는 말이다. 일과 놀이를 구분할 때 그 놀이가 아니라 놀이의 개념은 우리들 삶의 곳곳에 숨어있다는 뜻이다. 하위징아는 놀이의 일반적 특징을 옮긴이 이종인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1. 놀이는 특정 시간과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자발적 행동 혹은 몰입 행위이다.
2. 자유롭게 받아들여진 규칙을 따르되 그 규칙의 적용은 아주 엄격하다.
3. 그 자체에 목적 있고 일상생활과는 다른 긴장, 즐거움, 의식(意識)을 수반한다.
4. 질서를 창조하고 그 다음에는 스스로 하나의 질서가 된다.
5. 경쟁적 요소, 즉 남보다 뛰어나려는 충동이 강하다.
6. 신성한 의례에서 출발하여 축제를 거치는 동안 자연스럽게 집단의 안녕과 복지에 봉사한다.

즉 놀이는 자유로운 행위이며 자유 그 자체이다. 이러한 특징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경쟁적 요소이다. 어린이들의 단순한 놀이에 해당하는 파이디아(paidia)와 경기에 해당하는 아곤(agon)이 결합된 의미가 바로 ‘호모 루덴스’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즐거운 경기에 몰입하는 자유로운 행위를 즐겼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하위징아는 12장에 걸쳐 놀이의 본질과 개념과 특징은 물론이고 법률, 전쟁, 시, 철학, 예술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신화 창조나 서양 문명과의 관계를 살핀 후 현대 문명에서 발견되는 놀이의 요소로 책을 마무리한다.

이제 고전이 되어버린 다소 딱딱한 문장의 책을 천천히 읽은 것은 김종휘의 『대한민국 10대, 노는 것을 허하노라』는 책을 보다가 한경애의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가 생각났고 하위징아의 원전을 꼼꼼히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2차 저작물들이나 이 책에서 비롯된 다양한 이론과 시각들이 풍성하고 이어졌다. 지금도 인간의 본능에 가장 역행하는 교육과정을 밟고 있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 관한 책을 보다가 이 책이 떠 오른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제대로 놀아 본 적이 없는 아니 제대로 놀 줄 모르는 많은 어른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위징아는 이 책에서 노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본질적 특성을 이해하고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인류문명의 역사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독자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듯하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왜 사는가. 그리고 인간의 모든 행위 속에 내재한 놀이 본능을 어떻게 충족시키며 즐기고 있는가. 아무리 바쁘고 일 속에 파묻혀 사는 듯해도 모든 인간은 늘 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놀이를 만들 줄 알고 경쟁하며 그 안에서 질서를 창조하고 행위 자체에 몰입하기도 하며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놀이가 아닌가. 그렇게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로 놀이로 바꿀 수 있는 창조적 상상력과 능동적인 행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자, 이제 월요일이다. 또 일주일을 어떻게 놀아볼지 즐거운 고민을 해봐야겠다.

진정한 놀이는 프로파간다를 모른다. 놀이 자체가 그 목적이며 놀이 정신은 행복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100829-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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