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 - 십대가 알고 싶은 사랑과 성의 심리학 사계절 지식소설 2
이남석 지음 / 사계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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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을 만날 때면 호기심보다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왕창세일’이나 ‘점포정리’같은 식상함으로 다가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사라진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지만 저절로 읽혀지기를 바라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그래도 ‘한 권으로 끝내는~’ 자극적인 책들은 책이 아니라 종이뭉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 권으로 끝낼 수 있는 건 가전제품의 매뉴얼 밖에 없지 않은가?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도 같은 맥락에서 일단 제쳐둔 책이다. ‘십대가 알고 싶은 사랑과 성의 심리학’이라는 지극히 자극적이고 호기심 넘치면서도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신중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어떤 책일까? 목차를 훑어보자. 열 두 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부터 12장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방법은 없나요?’에 이르기까지 십대들이라면 얼른 읽고 싶을 수밖에 없는 제목들이다.

중학교 1학년 이규린이라는 여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자신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두 딸의 아버지로 자신의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써 나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 장 두 장 읽다보면 가벼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데 초점을 두고 분량과 형식에도 공을 들인 책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감정을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의 분석에 토대를 두고 중학교 1학년 수준에 맞추어 풀어내는 일이 어디 만만한 일인가. 글을 쓰는 저자의 고민과 노고가 고스란히 표현과 문장에 녹아 있다. 책의 형식과 내용은 유기적으로 맞물리게 된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고루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인다.

다만 가장 말하기 쉽지만 가자 어려운 ‘쉽고 재미 있으면서 유익하게!’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간혹 두 마리의 토끼를 다 놓치는 경우도 있다. 아주 재밌있고 유쾌한 책도 아니면서 깊이도 놓치는 경우가 그러하다. 말하자면 쉽고 재미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내용은 어렵고 딱딱할 경우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독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겠지만 이 책은 그 경계선에 서 있는 듯 위태로워 보인다.

우선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구체적인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또 한 가지 이 책은 앞서 언급한대로 끝없이 질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규린이의 질문은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익명의 아이디로 답을 달아주는 사람들을 통해 생각을 키워가는 형식이다. 익숙한 방식으로 책을 읽을 읽는 청소년들에게 낯설음과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답변의 내용이 심리학과 철학자들의 개념적인 설명들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있어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물론 어렵지 않게 다듬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 ‘사랑’의 감정이나 태도를 결정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랑’의 개념에서부터 구체적인 감정의 변화 그리고 키스에서 섹스에 이르는 육체적 사랑까지 다루고 있다.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라는 단체가 엄존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인간의 가장 자연스런 감정과 욕망을 배울 기회가 없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솔직한 질문과 답변들로 가득하다. 그들에게 가장 뜨거운 감자인 ‘사랑’. 제대로 알려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가 아닐까?

이 책은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험한 세상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책도 아니고 봉건적인 순결을 강조하는 책도 아니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자연스런 과정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배울 기회가 없는 청소년들의 가장 큰 질문이자 고민인 ‘사랑’에 대해 답하는 책이다. 한 권으로 ‘사랑’을 끝낼 수는 없지만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답변을 준비한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사랑’을 묻는 아이들에게, 유행가 가사로만 어렴풋이 짐작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 한 권을 읽어보라고 권해도 좋을 만하다. 다만 이 책은 ‘사랑’의 완결판이 아니라 ‘사랑’의 출발이며 실천적 사랑의 멘토 쯤으로 생각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찌 ‘사랑’을 책으로만 배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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