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1
쓰루타니 가오리 지음, 현승희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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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책을 보다보면 묘한 위화감에 휩싸인다. 등장인물 가운데 악인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악당 같아 보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식으로 애두르고 만다.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진다>는 이 전형을 보여준다. 남편이 죽고 혼자 살며 아이들에게 서예를 가르치는 할머니, 서점에서 알바 하는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떠한 접점도 없어 보이는데 웬일로 친구(?) 사이가 된다. 계기는 남성 동성애 만화. 두 사람은 서로를 배려하며 우정을 쌓아 가는데. 깨닫는다. 이런 일은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구나. 갈등없는 무릉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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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고쿠 쿄주로, 나는 나의 책무를 완수한다. 마음을 불태워라 


일본 문화의 원형


귀멸의 칼날 전 시리즈를 몰아서 다 보았다. 극장 판을 먼저 봤기 때문인지 살짝 위화감이 들었다. 특히 귀살대 맴버중 한 명인 렌고쿠의 비중이 확연히 달라져 놀랐다. 극장에서 볼 때는 거의 주인공급이었는데 정작 본편에서는 별다른 활약이 없어서다. 마치 영화 개봉을 위해 숨겨둔 카드라고나 할까?


여하튼 중요한 건 만화에도 일본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공전의 히트를 친 슬램덩크나 원피스, 혹은 에반게리온이 자기 영역을 고수했다면 귀멸의 칼날은 대놓고 니뽄을 선전한다. 여기서 니뽄은 제국주의의 첫발을 내딛던 시기를 말한다. 흔히 말하는 현대일본의 특징은 이 때 비로소 정립되었다. 곧 사무라이를 고유의 정신으로 계승하여 군국주의 색채를 입힌 것이다. 귀멸의 칼날 귀살대가 초기에는 정통 의복을 입다가 본격적으로 귀신 토벌에 나서면서 군복으로 갈아입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군복은 우리에게도 익숙한데, 그 이유는 한동안 교복으로 입었기 때문이다. 또한 스포일러에 해당되지만 적진을 향해 뛰어들어 죽음을 불사하는 렌고쿠는 가미가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탄지로 귀걸이의 욱일기 문양은 말할 것도 없다.


문화는 생각보다 끈질기다. 사실은 누군가의 의도로 정착된 것이라고 해도 바꾸려고 하거나 문제를 지적하면 거부감이 심하다. 원형을 따져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황당하게 제정된 것임에도. 귀멸의 칼날은 일본의 전통이라고 붙들고 있는 것이 얼마나 낡고 어이없는 것인지 잘 보여준다. 개인은 없고 집단만이 세상의 중심이며 한번 충성을 맹세했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따라야 한다는 야마도 정신이 백년 정도의 역사밖에 안 된다는 걸 일본인들은 알고 있는지? 문제는 그 정신이 대중문화의 형태로 반복 재생산된다는 사실이다.


정직하게 말해 우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소위 한국전통이라고 하는 것들 대부분은 조선시대 성리학에 기반한 유교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제사문화는 대표적인 예이다. 가문을 중심으로 한 파벌은 오늘날까지 사회 온갖 구석에서 이어지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다. 고위 공직자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에게까지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것도 바로 유교문화의 잔존물이다. 원래 남의 눈 티는 잘 보이는 법이다. 렌고쿠와 탄지로의 멋진 모습을 보고 반해 그 정신마저 숭배하게 되는 걸 걱정하면서 우리의 치부에는 눈감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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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부 부작용이 있더라도 얻는 이득이 훨씬 크다. 그러나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이후 부작용이 잇따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게다가 같은 방식의 얀센마저 동일한 증상, 곧 혈전이 발생하면서 마음을 굳혔다. 


에이지(AZ) 백신은 맞지 않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치명적인 하자가 있기 때문이다. 곧 사소한 부작용이 아니라 심각한 질병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이득의 크기도 다시 따져보아야 한다. 코로나 19가 병으로 연결될 가능성과 만에 하나 에이지 백신을 접종하고 나타날 문제 사이에는 등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둘 다 확률 문제지만 분명한 건 하나는 대비가 가능하지만 다른 하나는 불가능하다. 곧 코로나는 예방할 수 있지만 접종후 부작용은 피하지 못한다. 일종의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 상황이 된다. 


가장 좋은 대안은 아스트라제네카를 보류하고 화이자나 모더나로 접종할 수 있을 때까지 예방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과연 정부가 그 기간동안 충분한 백신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지만. 이 글을 쓰는 오늘(2021년 4월 15일) 덴마크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영구 접종 중단을 선언했다. 보건 담당자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매우 드물지만 중대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으로 혈전이 생길 가능성은 4만 명 중 1명꼴이다” 


그동안 우리는 강압적인 거리두기와 과학적 확신으로 국민들을 길들여왔다. K 방역 운운하던 정부의 정책은 그렇다 쳐도 과연 의사를 포함한 과학자들이 제대로 된 의견을 내고 있는지도 의심이다. 이제 진짜 전문가들이 답할 차례다.


기사 출처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584&aid=0000013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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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쏘는 방정식 - 삶이 풀리는 수학 공부 지노 사이다 수학 시리즈 1
수냐 지음 / 지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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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주사위를 던지지 말고 방정식부터 세워라 


오랜만에 100분 토론을 보았다. 지나치게 좌편향되어 있어 한동안 꺼리던 프로그램이었다. 어제(2021년 4월 14일) 주제는 부동산. 여와 야를 대표하는 정치인과 학자 한 명이 토론자였다. 현 정권이 워낙 이 문제는 무능해서 편들어 줄 수 없는 분위기임에도 진행자는 열심히 정부를 옹호했다. 뻔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본 이유는 주진형씨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권시절 박해를 받아 쫓겨났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그의 본분은 금융이었다. 사회자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이 죄다 감성적 언어를 내뱉는데 반해 그만큼은 숫자를 고수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해서 보기 좋았다.


방정식은 한동안 수학의 보편공식이었다. 등식으로 연결된 이 원칙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과간계로 이루어진 세상의 모든 과정은 수식으로 정확하게 표현된다. <톡쏘는 방정식>은 이처럼 영원할 것 같던 이야기를 술술 풀어간다. 단지 수학뿐만 아니라 예술과 문명에 이르기까지. 그렇다고 가벼운 잡담 위주로 책을 꾸미지는 않았다. 이른바 수학포기자나 나 같은 성인 호기심쟁이들을 위해 방정식의 원리를 친절하면서도 엄격하면서도 알려준다. 


동시에 방정식의 한계도 지적한다. 양자역학이 등장으로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우주는 붕괴하고 만다. 이제 더 이상 답은 수식을 풀어 해결하는 게 아니라 확률적이며 분명한 이유도 없다. 매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확실한 정답이 아니라 근사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인공지능은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정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모든 새로움은 과거의 토대위에 세워지는 법이다. 아직도 여전히 방정식이 적용되는 경우가 더욱 많다. 하다못해 설렁탕 한 그릇을 먹더라도 비교우위를 따져 결정한다. 최선을 대해 골라도 맛없는 설렁탕을 먹을 수 있다. 아무리 맛집이라도 그 날 재료가 안 좋았거나 주방장의 컨디션이 꽝이면 소용이 없다. 하물며 자신의 인생이 걸린 진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섣불리 주사위를 던지려고 하지 말고, 방정식을 세워라. 그래야 후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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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는 바보였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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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궁금했다. 히가시노 게이고 다작의 비결이. 그는 늘 뭔가를 끊임없이 쓰고 있다. 마치 스티븐 킹처럼. 물론 그 중에는 형편없는 작품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좋다. 구체적으로 잘 읽힌다. 독자로서 그보다 더 좋은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 소설 쓰는 짬짬이 에세이도 꽤 쓴다. 대부분은 연재물이라 중구난방이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작가의 성장사를 온전히 볼 수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졸업무렵까지. 문제는 창작의 비밀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수많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모티브가 될 만한 소재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웃고 떠들고 시시 껄렁 농담을 해댄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다. 공부에 그다지 취미를 붙이지 못했지만 친구들은 끔찍이 좋아하는. 그러면서도 이왕이면 일류대학에 지원하는 게 폼이 나 보여서 겁도 없이 게이오대학(우리나라의 연세대학쯤 된다) 시험을 봤지만 보기 좋게 낙방. 재수 끝에 간신히 지방대학에 이 지망으로 붙은 걸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베스트 10에 들 정도로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기억하는. 사실 그게 바로 게이고다. 일상으로 가장한 비범함이라고나 할까? 


와세다 대학(우리나라로 치면 고려대학교)에 합격하고도 별다른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도 통과되었다고 허세를 떨며 이런 지저분한 학교인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거라는 망발을 해대는 무라카미 하루키보다는 훨씬 인간적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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