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고쿠 쿄주로, 나는 나의 책무를 완수한다. 마음을 불태워라 


일본 문화의 원형


귀멸의 칼날 전 시리즈를 몰아서 다 보았다. 극장 판을 먼저 봤기 때문인지 살짝 위화감이 들었다. 특히 귀살대 맴버중 한 명인 렌고쿠의 비중이 확연히 달라져 놀랐다. 극장에서 볼 때는 거의 주인공급이었는데 정작 본편에서는 별다른 활약이 없어서다. 마치 영화 개봉을 위해 숨겨둔 카드라고나 할까?


여하튼 중요한 건 만화에도 일본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공전의 히트를 친 슬램덩크나 원피스, 혹은 에반게리온이 자기 영역을 고수했다면 귀멸의 칼날은 대놓고 니뽄을 선전한다. 여기서 니뽄은 제국주의의 첫발을 내딛던 시기를 말한다. 흔히 말하는 현대일본의 특징은 이 때 비로소 정립되었다. 곧 사무라이를 고유의 정신으로 계승하여 군국주의 색채를 입힌 것이다. 귀멸의 칼날 귀살대가 초기에는 정통 의복을 입다가 본격적으로 귀신 토벌에 나서면서 군복으로 갈아입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군복은 우리에게도 익숙한데, 그 이유는 한동안 교복으로 입었기 때문이다. 또한 스포일러에 해당되지만 적진을 향해 뛰어들어 죽음을 불사하는 렌고쿠는 가미가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탄지로 귀걸이의 욱일기 문양은 말할 것도 없다.


문화는 생각보다 끈질기다. 사실은 누군가의 의도로 정착된 것이라고 해도 바꾸려고 하거나 문제를 지적하면 거부감이 심하다. 원형을 따져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황당하게 제정된 것임에도. 귀멸의 칼날은 일본의 전통이라고 붙들고 있는 것이 얼마나 낡고 어이없는 것인지 잘 보여준다. 개인은 없고 집단만이 세상의 중심이며 한번 충성을 맹세했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따라야 한다는 야마도 정신이 백년 정도의 역사밖에 안 된다는 걸 일본인들은 알고 있는지? 문제는 그 정신이 대중문화의 형태로 반복 재생산된다는 사실이다.


정직하게 말해 우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소위 한국전통이라고 하는 것들 대부분은 조선시대 성리학에 기반한 유교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제사문화는 대표적인 예이다. 가문을 중심으로 한 파벌은 오늘날까지 사회 온갖 구석에서 이어지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다. 고위 공직자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에게까지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것도 바로 유교문화의 잔존물이다. 원래 남의 눈 티는 잘 보이는 법이다. 렌고쿠와 탄지로의 멋진 모습을 보고 반해 그 정신마저 숭배하게 되는 걸 걱정하면서 우리의 치부에는 눈감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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