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금자씨 각본
박찬욱.정서경 지음 / 그책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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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한동안 안 풀릴 때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겠지만 짬을 내 글도 썼다. 주로 영화평이었다. 논리적이기보다는 영화광이 느끼는 감상이었지만. 영화 <친절한 금자씨>가 개봉되었을 때 그 시절의 감독 모습이 보였다. 백수시절의 억압이 한순간 폭발한 건 아닌지.

 

사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허점 투성이다.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고 토막토막 끊어져 있다. 현실과 상상이 뒤섞이는 건 물론이고 등장인물도 죄다 괴기하다.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영화는 빛난다. 만약 각본을 먼저 책으로 펴냈다면 정반대가 되었겠지.

 

시나리오는 대사와 지문으로 승부한다. 대화가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하고 배경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책을 접했다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크린에서 빛나는 장면이 어떻게 쓰여졌는지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귀한 선물임이 틀림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대사는 그 유명한 "너나 잘 하세요."였으며 충격적인 컷은 최민식이 밥을 먹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식탁에 부인을 세워두고 범하는 순간이었다. 참고로 이 두 순간은 영화에서 그렇게 극적인 전환점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는 걸 보면 뭔가 모를 혼이 담겨 있어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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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낙소스 창립 30주년 박스 [30CD 한정반]
여러 아티스트 (Various Artists) 연주 / 낙소스(NAXOS)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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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험이 끝나면 모아둔 용돈을 손에 쥐고 동네 앞 백화점 음반가게에 들르곤 했다. 꼭 듣고 싶었던 테이프를 사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가요였다가 나중에는 팝송이었다. 왠지 같은 값이면 외국노래 모음집을 사면 이익을 보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클래시컬 음악에 귀가 뜨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 대체 뭐지 하며 찾아 헤매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다, 겨우 캐논의 변주곡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행히 이 음악이 실린 음반도 찾았다. 내 돈으로 처음 산 테잎이었다. 이후 습관처럼 들러 고전음악 테잎을 사모았다. 할인이라도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거금 만 원(?)을 들고 왕창 사모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애정은 여전했다. 단지 테잎에서 씨디로 바뀌었을 뿐이다. 아주 유명한 음반같으면 눈을 질끈 감고 샀지만 생소하지만 듣고 싶은 음악 앞에서는 늘 망설이곤 했다. 너무 비쌌다. 그 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것이 낙소스 음반이었다. 지명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음악만큼은 수준급인 음반을 일반가격보다 절반 혹은 더 싸게 살 수 있었다. 그렇게 구입한 낙소스 음반이 어느새 백 장이 넘었다. 

 

이제 씨디 시대도 가고 염가보다 더 싼 전집류가 쏟아져 나오면서 낙소스의 전성기도 지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 30주년을 맞아 나온 세트를 산 이유는, 절반 이상은 이미 보유하고 있음에도, 단지 옛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 혹시 미처 들어보지 못한 보물을 발견할까 싶은 설램때문이었다. 결과는 빙고. 역시 낙소스는 배반하지 않는다. 가격면에서도 품질면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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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
사피 야즈다니안 감독, 알리 모사파 외 출연 / 버즈픽쳐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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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서울이다. 구체적으로 종로구 운니동이다. 안국역 근처다. 당연히 기억은 없다. 지금 그곳에 간다고 해도 나를 반겨줄 이는 아무도 없다. 어린시절 내 추억의 동네인 천호동에 가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던 집도 가물가물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20년만에 돌아온 고향. 당연히 낯설다. 희미하게나마 옛 기억을 더듬어간다. 어렴풋이 아는 사람이 나오지만 대부분은 모른다. 그러다 어떤 사람이 자꾸 자기를 아는 척 한다. 대체 누구지? 알고보니 어린 시절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란다. 그런가?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는 머물지 않는 시간에 대한 노스텔지어다. 자신은 20년 전 시간과 장소에 머물러 있지만 이제 더이상 그런 곳은 없다. 억지로나마 정체성을 회복하려 해보지만 변해도 너무 변했다. 그저 향수만 남을뿐.

 

<씨민과 세자르의 별거>에 이은 후속작품이라 그런지 마치 속편같은 느낌을 준다. 전편에서 부인은 어떻게든 이란을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다. 등장인물과 줄거리는 다르지만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에서는 파리에서 20년을 보내고 돌아온다. 과연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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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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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3은 선택을 해야 한다. 문과로 갈거냐 이과로 진로를 정할 것이냐? 비장하게 판단을 하는 듯 싶지만 사실은 우연이 지배한다. 부모님의 의지나 친구의 권유 혹은 선생님의 강권이 지배한다. 그 이유 또한 근거가 약하다. 이과 가 그러면 굶어죽지는 않잖아? 너 수학 못하잖아 어쩔 수 없잖아 문과 가. 불행하게도 나는 후자였다.

 

<로지코믹스>는 철학은 과학은 하나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철학은 형이상학적인 말장난 과학은 엄밀한 숫자 싸움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논리가 서지 않는 철학이 과연 있을 수 있는지, 추상적 가정이 없는 과학이 성립할 수 있는지 떠올려보시라.

 

이 책은 러셀의 일대기인 동시에 과학철학의 역사를 꿰뚫고 있다.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치열하게 펼쳐지는 논쟁을 쫗아가다보면 인간이란 꽤 위대하다라는 감정이 절로 든다.

 

행여 자신이 중학교 때 결정한 진로때문에 지금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에 머물렀다고 후회하는 분이 계시다면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그 틀에서 벗어나시길. 문과든 이과든 그 출발은 같으면 호기심과 배우려는 자세만 있다면 그 어떤 도전도 두렵지 않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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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데모크라시 - 만화로 읽는 민주주의의 시작,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매일의 투쟁 어메이징 코믹스
알레코스 파파다토스 글.그림, 애니 디 도나, 아브라함 카와 지음, 정소연 옮김 / 궁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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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공기와 같아서 잘 작동할 때는 소중함을 모르지만 삐걱대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곧장 위기상황에 빠진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퇴행은 대표적인 예이다. 더 멀리 가자면 전두환 군사정권이나 박정희 독재체제를 떠올리면 된다. 형식적으로나마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것은 1987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그러나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 눈물의 결과인 민주주의를 우습게 여기는 이들이 있다. 특히 권력자들은 말로는 민주를 말하며 사실은 권력욕의 화신이 되어 국민위에 군림하려 든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방법은 하나. 들고 일어나야 한다. 

 

<어메이징 데모크라시>는 민주주의의 기원을 소개하는 책이다. 오랜 중세암흑기를 지나 르네상스 시기를 연 유럽은 새로운 정치 형태를 고민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적합한 제도를 발굴한다. 페르시아를 포함한 거대 집단에 맞서 승리를 일군 소수 아테네인들에 주목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약해보여도 상호 존중에 기반한 민주적 시스템이 오래 갈 수 있음을 알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10년, 정확하게는 9년 2개월의 후퇴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기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언제 또다시 폭압정치가 등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눈 부릎뜨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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