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는 변함없이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회피심리 때문이다. 곧 각박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싶어서다. 장르와 상관없이 판타지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연하 꽃미남들이 번갈아가며 쫓아오고 절세미녀가 한번만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한다. 안다. 그것이 거짓임을. 천만년 동안 늘 사랑을 추구하는 주인공이 세상에는 없다. 홍상수는 반대지점에 서있다. 구질구질한 일상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미묘하게 어긋하고 자신의 누추함을 감추려는 듯 같은 말을 하고 또 한다. <도망친 여자>도 예외가 아니다.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하는데 어딘가 이상한 감희. 선배와 친구 집을 전전하며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데. 이사 온 사람이 집을 찾아와 고양이 밥을 준다고 시비를 걸고, 딱 하룻밤 함께 잠 어린 남자가 징징대고, 자신의 애인을 빼앗아간 여자와 함께 사과를 먹는다. 지금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벌어질 듯 한 일들인데 왠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것 같아 뜨끔하다. 홍상수는 변함없이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한다. 그게 그의 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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