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다른 패션감각을 보여준 박열.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찍은 사진은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유쾌하다고 해서 독립운동의 의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는 37년이었다. 만약 이 시기에 태어나 자란 이들은 일본을 조국으로 여겼을 것이다. 물론 식민지에 살기 때문에 알게모르게 차별을 받았을 것이다. 그중 일부는 부당함을 견디지 못하고 독립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금밤이라도 명줄이 끊어질 것 가던 일본제국주의는 길고도 질기게 이어졌다. 이 와중에 변절자로 나오고 배신자도 생겼을 것이다. 곧 한 문장으로 묶기 어렵다는 말이다.
박열은 그중에서도 독특했다. 적진인 일본에 건너가 폭탄 테러를 모의하다 잡혀들어가서가 아니라 여인과 애정행각을 벌이고 스스로 무정부의자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독립운동가라기 보다는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일왕이 지배하는 군국주의의 모순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종 유쾌발랄하다. 일제를 그린 영화가운데 이토록 상쾌하게 시대를 묘사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독립운동의 의의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일본인 여인과의 연애도 눈에 거슬릴 정도가 아니었다. 그의 말마따나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사귀고 싶을 때 사귀었을 뿐이다.
이제훈의 연기도 좋아지만 역시 압권은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은 최희서다. 전작 <동주>에서는 그야말로 차분한 여성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면 <박열>에서는 펄펄 살아있는 생동감있는 여인을 잘 묘사했다. 한 인물이 이토록 전혀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앞날이 매우 기대된다.
덧붙이는 말
이준익 감독의 영화 코드는 유모다. 주제와 상관없이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도하는 장면이 많은데 <박열>은 그 정점에 있다. 일본이 지배하는 시대라는 강박적 엄숙주의에 주눅들지 않고 마음껏 자신의 개성을 뽐내었다. 게다가 저예산으로. 확실히 재주가 많은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