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 내게 닥친 절실한 문제로
원전 건설 재개가 확정되었다. 당연히 어느 한쪽은 환호하고 다른 주장을 펼친 이들은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숙의제도라는 과정을 거쳐 시민 배심원단이 판단을 내린 결정이기에 과거처럼 극단적인 반대가 지속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더이상 지진안전지대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원전이란 언제든 재앙의 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오스톰>은 기후변화가 더이상 미래의 재난이 아님을 증명하는 영화다. 영화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대형 허리케인이나 극도의 가뭄현상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화속에서 자연재해는 눈요기에 머물뿐 여전히 기술만능주의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곧 더치보이라는 위성의 개발로 기후는 안정을 되찾았으나 비정상적인 정치인의 농간으로 도리어 파괴의 무기가 되어버린다는 설정을 담고 있다. 과연 그런 테크놀로지가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한 영웅에 의해 지구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사실 이미 인류는 공동의 노력으로 재앙을 막은 적이 있다. 냉장고의 냉매로 쓰이는 프레온가스로 인해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자 즉작 국제회의를 소집하여 생산 자체를 중단한 적이 있다. 일부 과학자는 극단적인 조치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냉매 생산이 중단되자 오존층은 기적처럼 다시 복원되었다. 몬트리올 의정서는 그 결과물이다.
기후변화 또한 원인과 해결책은 이미 드러나 있다.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면 된다. 그중에서도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생산이 핵심이다. 자동차 배기가스는 대표적인 예이다. 문제는 어느 한 나라 혹은 한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전지구가 함께 노력해야 하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여전히 지구온난화를 부정하고 있으며 심지어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도 탈퇴하고 말았다. 공화당 전임 대통령이었던 부시와 마찬가지로 미국식 생활양식을 부르짖으며 엄연한 과학적 사실도 거부하고 있다.
어쩌면 <지오스톰>같은 영화는 트럼프의 입맛에 맞을지도 모르겠다. 기술력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식의 사고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기술만능주의를 신봉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게 닥친 절실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지근한 물에 익숙해진 개구리가 자신이 서서히 죽는지도 모르듯이 기후변화는 우리의 삶을 야금야금 파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