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모험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돌이켜 보면 나도 몇 번 그런 적이 있다. 매번 좋은 결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해볼만 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다른 세계가 열린다. 유튜브를 보다 어떤 알고리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오기상의 채널이 메인 화면에 떴다. 비정상회담에 출연하여 유명세를 탄 일본인이다. 그가 전해주는 뒷이야기를 들으며 라스트 찬스라는 제목을 떠올렸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던 오오기는 우연한 기회에 출연 인터뷰 제의를 받았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가 멀쩡한(?)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단지 면접을 해보자는 말에 그만두고 한국에 왔다는 거다. 출연시킬지 말지 결정도 내리지 않았는데. 내심 자신이 있었다고 하는데 유연한 외모와 달리 매우 강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예견대로 출연이 확정되었고 약 1년 6개월 동안 방송에 나왔다. 이후 일본어 강사 일을 하며 지내는 것 같다. 인상적인 말은 외국에 살면서 느끼는 자극을 즐기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해한다. 나도 짧게나마 외국에 살아본 적이 있다. 낯설고 힘들지만 이방인으로서의 묘한 해방감을 느끼곤 했다. 너희들이 하지 못하는 경험을 나는 하고 있단 말이야. 과연 앞으로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자문해본다. 너무나도 타성에 젖어 더 이상 새로운 세계의 문을 두들겨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게 아닌지. 정말 라스트 찬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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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은 뚱뚱하고 둔해보여서 싫어요


이런 저런 사정으로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어야 할 때가 있다. 대부분은 살짝 놀라며 말한다.


"아직도 019 쓰시네요."


나는 살짝 창피하면서도 알 수 없는 우쭐거림이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네"하고 답하며 슬그머니 전화기를 손으로 가린다. 혹시나 내 휴대전화까지 보면 눈이 더 커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2G폰이다. 그것도 슬라이드. 게다가 더 써프라이즈는 서브 폰이 아니라 메인 폰, 그것도 단 하나뿐인 전화기다. 참고로 21세기를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전자결제는 노트북으로 하면 되고, 검색은 태블릿이 있고, 인스타나 카톡은 안하니까 상관없고.


011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접했다(2020년 6월 12일). 그동안 없애겠다는 엄포(?)는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직접 선언한 것은 처음이다. 구체적으로 올 7월부터 2G폰의 011과 017 서비스는 종료한다. 단 번호는 010으로의 변경을 전제로 내년 6월까지 유지한다. 뭐 요즘 같은 시대에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어느 세상에나 소수는 있게 마련이다. 또한 그들의 사연은 가볍게 무시하기도 어렵다. 번호에 정이 들어서, 스마트폰 전화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공부에 방해가 되어서. 다양한 기능이 도리어 번거러워서. 이유도 제각각이다. 내 경우는 아버지가 처음 개설해준 번호이고 전화기도 단 두 번만 바꾸었고 손으로 터치하는 스마트폰 자체에 거부감이 들어서 싫다. 그건 당신 사정이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여하튼 019도 안심할 수 없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2G 서비스 번호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여전히 약 50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어떻게든 내년 6월까지는 버틸 여력이 있는 셈이다. 그 후에는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작년에 전화기가 고장 나서 결국 번호를 이동해야 하나 고민할 때 중고시장에서 구세주같이 동일한 폰을 구입하여 약 1년 동안 썼다. 그러나 최근 이 전화기가 다시 또 히스테리를 부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 마음에도 커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며 충전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갈아타야 할지, 또 다시 중고 폰을 구입하여 수명연장을 할지 갈등이다. 한 가지 분명한건 010에 거부감은 여전히 크다. 왠지 뚱뚱하고 둔해 보여서다. 019는 날렵하고 산뜻한 느낌인데,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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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씨가 대학을 떠날 때 나는 예상을 했다. 그의 입과 글은 이젠 쉴 틈이 없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공장을 풀가동하는 것도 모자라 외근까지 마다하지 않았으니. 국회에서 그가 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철학이 없다. 남들이 써준 원고를 그냥 읽는 수준이다. 비판인지 비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당은 발끈했다. 전 현직 비서관들이 들고 일어나 진중권을 돌려 깠다. 그렇지 않다. 직접 읽고 바꾼다. 조짐이 이상했다. 진 선생의 덫에 걸린 것을 몰랐다니. 옳다구나, 내 말을 그렇게 알아듣는 너희들의 수준이 뻔 하구나. 고치는 것이야 누구나 하는 거다. 내 말의 속뜻은 자기 철학이 없다는 거다. 초안을 짜는 얼개능력이 없다. 앗차 싶었을 것이다. 괜히 벌통을 건드렸구나. 진중권을 지지하는 이들은 쌤통이다, 도둑이 제발 저리구나하면서 ㅋㅋㅋㅋ 하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다. 진중권씨가 문 대통령을 직접 만나 그가 연설문을 고치는지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 또한 그런 의도로 말 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이른바 말씀들을 정리해 보니 자기 철학이 불분명하고 그 때 그 때 분위기에 맞는 겉치레 말밖에 없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마치 <놀면 뭐하니>에서 비가 광희가 신문기자와 인터뷰했다고 오해해서 옛날 사람이라고 놀림 받는 것과 마찬가지 꼴이 되어버렸다. 소셜네트워크에 올린 글을 보고 쓴 기사인데 말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전직이야 그렇다 쳐도 현역 스피처가 아니거든 하며 발끈하는 건 왠지 스스로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느낌을 받았다. 진중권의 말 한마디에 그렇게 흥분할 필요가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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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남에게 권하고 싶어진다. 나만 하기 아까운 생각도 들고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이나 공감에도 감가상각이 있어서, 가령 내가 100만큼 좋다고 해서 다른 이들도 같이 느끼는 건 아니다. 이런 경험을 겪다보면 왠지 스스로도 심드렁해져서 관심이 떨어진다. 


처음 바흐의 음악을 들었을 때, 구체적으로 <마태 수난곡> 전곡을 접했을 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기 전에 알게 되어서. 이후 바흐 전도사가 되다시피 했는데 반응이 다들 좋았던 건 아니다. 물론 그 중에는 진짜로 관심을 가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형식적으로 '아, 그래' 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들을만한 음반을 새롭게 정리했다. 일단 당장 듣지 않을 디스크들은 따로 모아 종이상자에 넣고, 두고두고 들을 목록을 작성하여 눈에 보이는 곳에 두었다. 그 중에는 늘 곁에 있어온 나만의 명반도 있지만 아직 포장도 뜯지 못한 새 음반들도 꽤 된다. 싼 맛에 지른 박스물도 한두 장을 빼곤 제대로 들은 기억이 없다. 만약 코비드 19이 아니었다면 구석에 처박혀 먼지구덩이에서 지냈겠지. 


결국은 혼자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다. 아무리 남들에게 권해도 내게는 나라는 손님이 최고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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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음날 들을 음반 목록을 전날 적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는 취미하면 시간이 남아서 하는 여가생활쯤으로 여긴다. 전문 음악가가 아닌 다음에야 리스트를 정해 꼬박꼬박 듣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집안에 있는 씨디나 엘피, 혹은 카세트테이프 숫자를 세어 본적이 없다. 대략 얼마쯤이라고 짐작을 할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매일 한 장씩 10년 동안 들어도 다 듣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렇다면 최소한 3천 장은 넘는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다 뭔 일이람? 그렇다고 탐욕스럽게 닥치는 대로 사 모으는 타입은 아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산 것을 하나도 버리지 못해 나타난 결과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에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늘었다. 이번 기회에 못다 읽은 책을 더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지만 현실은 그러질 못하고 있다. 일은 일대로 늘고 도리어 자유시간은 줄어든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사라지다보니 몸과 마음은 더 피곤하다.


다행스러운 건 음악은 들으면서 일을 할 수 있다. 주로 클래시컬이다. 가요나 팝을 비하해서가 아니라 가사가 없는 연주곡이어야 집중이 가능하다. 일종의 백그라운드 뮤직이 되는 것이다. 이왕이면 취향에 맞게 분류를 하여 듣고 있다. 작곡가별 혹은 지휘자별로 아니면 장르별로 구분하여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고른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에는 어제 주문하여 받은 에바 케시다의 '이매진'과 '타임애프터타임'을 연달아 들었다. 왠지 우울해질 것 같아 살짝 걱정이었는데 목소리에 의외로 힘이 있고 담백해서 기운이 났다. 저녁에는 클라우스의 '모차르트 피아노 전집'을 들으며 일을 할 생각이다. 과연 스페셜리스트다운 실력을 보여줄지 자못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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