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음날 들을 음반 목록을 전날 적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는 취미하면 시간이 남아서 하는 여가생활쯤으로 여긴다. 전문 음악가가 아닌 다음에야 리스트를 정해 꼬박꼬박 듣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집안에 있는 씨디나 엘피, 혹은 카세트테이프 숫자를 세어 본적이 없다. 대략 얼마쯤이라고 짐작을 할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매일 한 장씩 10년 동안 들어도 다 듣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렇다면 최소한 3천 장은 넘는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다 뭔 일이람? 그렇다고 탐욕스럽게 닥치는 대로 사 모으는 타입은 아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산 것을 하나도 버리지 못해 나타난 결과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에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늘었다. 이번 기회에 못다 읽은 책을 더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지만 현실은 그러질 못하고 있다. 일은 일대로 늘고 도리어 자유시간은 줄어든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사라지다보니 몸과 마음은 더 피곤하다.
다행스러운 건 음악은 들으면서 일을 할 수 있다. 주로 클래시컬이다. 가요나 팝을 비하해서가 아니라 가사가 없는 연주곡이어야 집중이 가능하다. 일종의 백그라운드 뮤직이 되는 것이다. 이왕이면 취향에 맞게 분류를 하여 듣고 있다. 작곡가별 혹은 지휘자별로 아니면 장르별로 구분하여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고른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에는 어제 주문하여 받은 에바 케시다의 '이매진'과 '타임애프터타임'을 연달아 들었다. 왠지 우울해질 것 같아 살짝 걱정이었는데 목소리에 의외로 힘이 있고 담백해서 기운이 났다. 저녁에는 클라우스의 '모차르트 피아노 전집'을 들으며 일을 할 생각이다. 과연 스페셜리스트다운 실력을 보여줄지 자못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