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은 뚱뚱하고 둔해보여서 싫어요


이런 저런 사정으로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어야 할 때가 있다. 대부분은 살짝 놀라며 말한다.


"아직도 019 쓰시네요."


나는 살짝 창피하면서도 알 수 없는 우쭐거림이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네"하고 답하며 슬그머니 전화기를 손으로 가린다. 혹시나 내 휴대전화까지 보면 눈이 더 커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2G폰이다. 그것도 슬라이드. 게다가 더 써프라이즈는 서브 폰이 아니라 메인 폰, 그것도 단 하나뿐인 전화기다. 참고로 21세기를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전자결제는 노트북으로 하면 되고, 검색은 태블릿이 있고, 인스타나 카톡은 안하니까 상관없고.


011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접했다(2020년 6월 12일). 그동안 없애겠다는 엄포(?)는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직접 선언한 것은 처음이다. 구체적으로 올 7월부터 2G폰의 011과 017 서비스는 종료한다. 단 번호는 010으로의 변경을 전제로 내년 6월까지 유지한다. 뭐 요즘 같은 시대에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어느 세상에나 소수는 있게 마련이다. 또한 그들의 사연은 가볍게 무시하기도 어렵다. 번호에 정이 들어서, 스마트폰 전화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공부에 방해가 되어서. 다양한 기능이 도리어 번거러워서. 이유도 제각각이다. 내 경우는 아버지가 처음 개설해준 번호이고 전화기도 단 두 번만 바꾸었고 손으로 터치하는 스마트폰 자체에 거부감이 들어서 싫다. 그건 당신 사정이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여하튼 019도 안심할 수 없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2G 서비스 번호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여전히 약 50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어떻게든 내년 6월까지는 버틸 여력이 있는 셈이다. 그 후에는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작년에 전화기가 고장 나서 결국 번호를 이동해야 하나 고민할 때 중고시장에서 구세주같이 동일한 폰을 구입하여 약 1년 동안 썼다. 그러나 최근 이 전화기가 다시 또 히스테리를 부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 마음에도 커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며 충전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갈아타야 할지, 또 다시 중고 폰을 구입하여 수명연장을 할지 갈등이다. 한 가지 분명한건 010에 거부감은 여전히 크다. 왠지 뚱뚱하고 둔해 보여서다. 019는 날렵하고 산뜻한 느낌인데,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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