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수의 음악캠프 목요일 2부 코너에는 음악평론가 임진모씨가 나온다. 웬만하면 놓치지 않고 듣는다. 대중음악의 조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유는 말도 안 되고 두 중년의 티격태격이 은근히 즐거워서다. 이번 주(2020년 7월 2일)에는 아티스트의 조건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임진모씨는 즉흥, 도취, 무의식이야말로 예술가가 갖추어야 할 자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을 대하는 잣대가 지나치게 높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얼핏 맞는 말 같으면서도 과연 그런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런 요건이야말로 반사회적 작태 아닌가? 사실 예술가의 정형에 대한 논란은 오랫동안 있어왔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왠지 남들과 다르고 뭔가 특이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들어 이 표준도 바뀌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는 규칙적인 생활로 유명하다. 매일 아침 십킬로 미터 이상씩 뛰고 종종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한다. 글도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써나간다. 마치 수도승처럼.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글이 모범적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부도덕은 기본이고 난폭한 장면도 서슴없이 나온다. 곧 즉흥적이고 도취적이며 무의식속에서 이루어진다. 어쩌면 글속에 불안정한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겉으로는 보다 엄격한 자세가 요구되는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대간 전쟁의 서막


직장을 여러 번 옮겨 다녔다.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라떼만 해도 한번 일터를 정하면 정년퇴직할 때까지 쭉 다니는 게 미덕인 시대라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참고 참고 또 참고 다녔더라면 나 또한 전형적인 꼰대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직은 고단한 일이다. 매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한 다짐은 미련 없이 흔적 없이 사라지자였다. 언제 어떤 일로 그만두게 되더라도 깔끔하게 물러나자. 그러기 위해서는 들어갈 때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일 외적인 것에 관심을 끊고 사적인 인연을 만들지 말자. 오로지 업무능력으로 평가받자. 그러기 위해서는 계약서를 꼼꼼하게 작성할 줄 알아야 한다. 곧 구체적인 직무와 보상을 철저하게 챙겨야 한다. 또한 업무 외 일도 깔끔하게 정리해야 마땅하다.


이순재씨가 구설수에 올랐다. 전 매니저가 해고당하면서 억울한 심정을 방송사에 제보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매니저 업무 외에 생수배달이나 쓰레기 버리기 같은 잡일을 했다고 한다. 첫 반응은 차가웠다. 80대 노부부가 사는데 매니저가 그 정도 일은 해줄 수 있지 않느냐. 전전 매니저까지 나서서 이순재 선생님은 절대 사람 하대하지 않는다. 나는 허드렛일도 기쁜 마음으로 했다며 옹호하고 나섰다. 그러나 핵심은 잡무여부가 아니라 전 매니저가 4대 보험을 포함한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 사실을 이순재씨에게 직접 하소연했다. 답변은 소속사에 알아보라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양측 다 잘못이 있다. 일단 전 매니저의 요구는 사과다. 자신으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하게 되어 불편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을 것이다. 상대가 아무리 유명한 노배우라 하더라도 부당한 건 부당한 거다. 게다가 아무리 관행이라고 해도. 또한 직업인으로서의 최소한의 보장도 받지 못했다. 월급 180만원이 땡이었다. 편의점 알바생도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4대 보험도 적용받지 못했다. 문제는 해결방식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방송사에 제보했을까 싶지만 도리어 일을 키우는 거다. 불합리한 일이 있다면 자료를 모아 노동청에 신고하면 된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이순재 측도 잘한 것은 없다. 구체적으로 소속사의 문제가 더 크다. 전 매니저의 품성 운운하며 개인 잘못으로 몰고 간 것은 전형적인 갑질이다. 다행히 이순재씨께서 기자회견을 포기하고 잘못을 시인하고 상대가 원한다면 진심어린 사과를 하겠다고 한 건 매우 칭찬할 만한 행동이다.


이제 더 이상 나이나 지위를 따져가며 혹은 관행에 따라 굴종적으로 일하는 시대는 지났다. 어쩌면 이번 일은 세대 간 전쟁을 예고하는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부가 없으면 제대로 된 일자리 하나 잡기 어려운 젊은 세대의 분노는 이미 끓어오르고 있었다. 언젠가 그 불길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올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8년 출고되었다가 2020년 다시 돌아온 갤럭시 노트 9. 

가격은 싸졌지만 성능은 그대로다. 


펜이 달린 휴대전화에 대한 로망


휴대폰을 바꿨다. 근 20년 만이다. 최초로 사용한 폰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최신 유행이던 풀더폰이었다. 장마철을 지나며 먹통이 되자 두 번째도 비슷한 폰을 구매했다. 희한하게 또 같은 이유로 고장이 났다. 세 번째로 구입한 건 슬라이딩 폰이었다. 별 생각 없이 고장 안 나고 오래가는 폰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점원이 건네준 전화기였다. 이 폰과는 가장 오래 함께 했다. 정말 직원의 말대로 잔고장없이 근 10년 이상 사용했다. 작년에서야(?) 겨우 회복불가능 상태에 빠져 같은 기종으로 중고 폰을 사서 1년쯤 이용하다 그만 사망하고 말았다.


고민에 빠졌다. 또다시 중고를 사서 2G의 종말을 함께 맞을까, 아니면 이번 기회에 대망의 스마트폰으로 갈아탈까? 사실 내심 조금 더 쓰고 싶었다. 딱히 번호에 애착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휴대전화가 없어서 겪는 불편이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통신사를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은 내게 대리점 직원은 불친절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대신 휴대폰 정보를 알기 위해 찾은 동네 다른 통신사는 친절의 표본이었다. 결국 그 직원 덕에 휴대전화를 바꾸는 것은 물론 번호까지 갈아타게 되었다. 사실 친절도 한몫했지만 갤럭시 노트에 마음이 빼앗긴게 더 컸다. 예전부터 펜이 달린 휴대전화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때마침 특정 통신사에서만 프로모션을 했다. 주인공은 갤럭시 노트 9이다.


2018년 출고된 모델인데 어쩐 일인지 2020년에 재출시되었다. 보급폰인 아이폰SE2를 견제하기 위한 마케팅이라는 설이 있던데. 여하튼 요즘처럼 신제품 주기가 빠른데 굳이 2년 전 모델을 써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내 대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각종 기능을 앞서는 가장 중요한 장점은 바로 라디오다. FM이 본체에 내장되어 있다는 말이다. 데이터 소모 없이 전원만 연결하면 언제 어디서든 라디오 청취가 가능하다.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라디오를 듣나, 굳이 듣겠다면 앱 깔면 되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라디오는 단순한 여흥이 아닌 재난대비용이다. 그 역사 또한 오래되었다. 상상을 해보시라. 인터넷이 끊어진 세상을. 실제로 이런 일이 불과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오로지 의지할 것은 라디오뿐이다.


게다가 이 폰에는 여전히 이어폰 잭이 있다. 또 누군가는 아이팟 운운하며 촌스럽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조용히 다가가 이어폰 잭은 괜히 폼이 아니라 안테나 기능을 한다고 넌지시 알려주겠다. 곧 이어폰을 잭에 끼우면 바로 안테나가 되고 모드를 스피커로 전환하면 근처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다. 불행하게도 상위버전인 갤럭시 노트 10과 10플러스에는 두 기능 모두가 없다. 앞으로도 라디오나 이어폰잭을 장착한 휴대전화는 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번들용 이어폰을 따로 사서 억지로 들을 수는 있다고 하지만 그거야말로 낭비 아닌가? 요컨대, 나는 라디오와 이어폰 잭 때문에 갤럭시 노트 9을 구입했다. 행여 언젠가 수명이 다해 전화나 인터넷 검색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라디오만큼은 살아남을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내게 갤노트 9은 799,700원짜리 라디오인 셈이다.


덧붙이는 말


2018년 출고 당시 가격은 995,500원 (128GB)과 1,155,000원 (512GB) 이었다. 2020년 새로 나온 제품은 128GB 단일로 799,700원이다. 행여 기능이 빠지거나 없어진 것이 있나 살펴보았으나 현재로서는 없다. 심지어 DMB까지 살아 있다. 참고로 이 가격은 특정 통신사에서만 한시적으로 가능하다.


* 이 글은 해당 업체를 포함한 어떠한 단체나 기관의 후원 없이 썼습니다. 직접 구입하여 사용해보고 정보차원에서 올리는 것입니다. 또한 휴대폰의 스펙이나 사양을 알리는 글도 아닙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임을 알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노인들이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은 3대 거짓말중 하나라는 설이 있다. 나머지 둘은 상상에 맡기겠다. 그러나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를 읽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진실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위탁모와 정이 듬뿍 든 질리. 그러나 친모가 아닌 친할머니의 등장으로 예기치 않게 떠나게 되는데. 정작 옮긴 집에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자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한다.


“아줌마, 다 잘못됐어요. 생각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생각대로 되다니? 사는 건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 만만치 않은 일들뿐이야. 세상에 끝이 있다면 그건 죽음뿐이란다. 계속 살아야지, 죽을 수는 없지 않겠니?”


우리는 늘 행복을 갈구한다. 과연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럴 리도 없겠지만. 어쩌면 지루하고 견디기 힘든 삶을 속이기 위해 내세우는 거짓유혹은 아닐까? 요즘 들어 더 그런 망상이 자꾸 든다. 그래 계속 살아야지 세상일이 뜻대로 안된다고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우리는 사망하게 되어 있는데 미리 스스로 부고를 쓸 필요는 없지. 그냥 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흔히 중독하면 떠올리는 게 아편이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해 어느 정도인지 감은 잘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말이 나쁜 뉘앙스라는 건 안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아는 가장 유명한 사람은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말한 칼 막스다. 역설적으로 종교가 그만큼 중독적이라는 뜻이리라.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특히 주목해서 볼 부문은 종교, 구체적으로 교회를 매개로 한 전파다. 왜 유독 교회에서만 대규모 집단감염이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보는 과정에서 비말이 확산되었을 것이라는 추정만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의심이 가는 부분은 핵심 신자들이다. 교회발 전파가 하도 많아지자 기사량도 늘었다. 그 중에 눈에 뜨이는 건 확진자중 한 명이 수요일 오전 8시에 방문해서 저녁 8시 30분까지 머물렀다는 내용이었다. 잘 몰라서 그렇지만 이쯤 되면 거의 하루 종일 교회에 머물렀다는 것 아닌가? 직업이 아닌 이상 이토록 오래 한 장소에 있을 수 있는지? 계속해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가능한지?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으나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바이러스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집단감염의 중심지였던 물류창고나 콜센터, 나이트 클럽 등은 일시적으로 폐쇄조치를 하면 그만이지만 교회는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교회가 한국사회에 새로운 중세시대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