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경찰이 망치로 부쉼 | 할 말은 하고 살자
2005.11.05

 

 

[쌀 비준안 국회 상임위 통과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로 향하던 농민이 몰고 가던 차량을 경찰이 망치로 부쉈다. 차유리에 '폭력경찰이 망치로 부쉼'이라고 적혀 있다. 오마이뉴스에서 윤성효 기자 기사에서 [펌]]

 

거의 대부분의 시위 현장에서 경찰은 절대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다만, 과격한 시위를 막다 보니 약간의 불상사가 있었다고 말한다. 결국 과격한 시위 때문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 책임은 젊음을 억제하지 못한 의경 또는 전경에게 있다고 말한다. 즉 경찰관들은 책임없고 의경 등이 제대로 진압수칙을 지키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여기서 시위대 책임이냐 경찰 책임이냐를 말하지는 않겠다. 경찰이나 군대가 있게 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로 그 답을 대신한다. 그리고 경찰이나 군대가 그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를 보았으면 하는 말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것은 이곳 대한민국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군대나 경찰 그것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것 하나는 말하고 넘어가자. 자꾸 의경 또는 전경에게만 책임 돌리는 것은 제 얼굴에 침 뱉는 거다. 계속해서 그런 일이 있는데도 왜 제대로 하도록 만들지 못하냐 이 말이다. 무슨 자랑이라고 계속 같은 핑계를 대는지.


아무튼 아무리 그것이 불법이라 딱지를 붙일만한 일이라 해서시위 용품이나 시위대가 소유한 물건을 파손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나 난 그런 일을 정말 수도 없이 봐 왔다. 건물 안에 들어와서는 컴퓨터, 유리창, 책상 등을 다 부시질 않나, 아무 관련 없는 물건들도 집어가거나 깨버리질 않나, 시위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차량, 음향기기 등을 두들겨 깨려 하질 않나...참 엿 같은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시위는 그 목적이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난 생각한다. 그것이 비록 정권이나 자본, 그리고 가진 자들이나 또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시위를 자세히 들어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에게 주어진 양심과 사상, 사회 정치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의견과 그것을 보여줄 행동의 자유의 표현일 뿐이다. 그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비난하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경찰은 어떤가 ?


경찰은 집회 시위를 통제하거나 제한하거나 또는 금지해야 한다는 사고로 꽉 짜여진 것 같다. 그 사고는 경찰이 주도하여 만든 현행 집시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고, 실제 경찰서에 가서 집회신고를 하러 가면 경찰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난 집시법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를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일몰 이후(야간), 일출 이전 집회는 안 된다 ? 대사관 앞은 안 된다 ? 주요 도로 행진은 안 된다 ? 주거 지역이라 안 된다 ? 학교가 있어서 안 된다 ? 다른 단체가 신고 되었으니 무조건 안 된다 ? 전력이 있어서 안 된다 ? 이는 집시법을 제멋대로 해석하거나 의도적으로 잘못 말한 것일 뿐, 정확히 따져보면 절대 그렇게만 해석될 근거는 없다.


다음으로 국가는 의무 복부라는 이름으로 전경 또는 의경을 시위 진압에 사용하여,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다. 이는 이미 국제노동기구에서 지적받은 것이고 노동부도 이를 인정하고 있는 바이나, 오로지 국가의 필요에 따라 그들을 도구로 계속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복종만이 있다. 어린 그들은 어쩔 수 없다고 시키니까 그런 거라고 말하지만(물론 그렇지 않는 애들도 있다. 저게 인간이야 싶을 정도로 시위대를 공격하는, 겁이 나도 그럴 때는 나도 살의를 느낄 정도다) 어쩔 수 없어도 따르게 만들어 버리는 것. 참 잔인한 일이다. 국가는 피해간다. 젊은 그들이 어쩌다 실수한 것이라고 하면 그만이니까. 책임을 져도 그들이 지면 그만이니까. 얼마나 좋은가 ? 동정도 얻을 수 있다. 그들도 시위대들의 친구이자 자식인데 어찌 그럴 수 있냐면서 떠들어 대던 말. 우습지만 참 잘 먹혀들어간 말 아니던가 ? 서로를 다치게 하게 만든 자들은 뒤에 숨어 있는데도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그런 자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으면서 말이다.


아무튼, 앞서 말한 대로 경찰이 시위대 차량을 방패나 곤봉, 그리고 도끼(아마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운송하역노조가 파업할 때 여의도에서 레미콘 차량을 도끼로 부수고 다녔던 게 바로 경찰이다. 영등포 경찰서였을 것이다.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강변하던 초급간부의 말에 치를 떨었었다), 망치로 부수고, 음향기구 나 현수막을 부수고 찢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비록 시위 현장에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누군가의 소유이다. 그들이 설사 불법한 시위라는 평가를 받는 행동을 했더라도 그것들은 온전히 보존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거기에 무슨 긴 설명이 필요할까 ?


게다가 이미 그런 것들은 고정되어 있는 것들이어서 그것을 다른 곳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으면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차량을 도로 한 가운데 놓아두면 그것이 도로교통법을 위반하였다고 할 텐데, 그렇다고 그 차량을 망치로 도끼로 부수어 버려야 할 것인가 ? 그런데 왜 저 모양으로 만든단 말인가 ? 위 차량을 부순 것은 전경이라고 한다. 그에 손에 망치를 들려 준 것은 누구인가 ? 그는 어떤 죄책감이라고 느꼈을까 ? 시키니까 그냥 했을까 ? 그렇다면 그는 이 사회에서 어떤 삶은 살아가는 사람이 될까 ? 시키니까 하는 사람을 길러내고 거기에 공권력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준 이 사회는 또 도대체 어떤 빌어먹을 사회이며, 또 앞으로 어떻게 될까 ?


결국 관할 경찰서(부산 강서경찰서)에서 잘못을 시인하고 모두 배상하기로 했단다. 참 파손된 차량은 한두 대가 아니라 십여 대라고 한다. 이번 일은 그렇게 정리되었지만 불행하게도 경찰은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참 기분이 그렇다. 시위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시위진압 훈련을 중심으로 하는 시위진압기동대라는 것이 존속하는 한 말이다.


시위가 많다는 것은 권리 의식이니 하는 것들이 커져서였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을 제대로 담아 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물리력이 행사되는 시위가 많다는 것은 그것이 아예 없어서 일 것이다.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노동 분야에서도 그런 시위가 많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법과 제도와 그것을 움직일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있더라도 운용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이지 않을 때도 무척이나 많다. 그래서인지 난 그런 시위에 대해 함부로 비난하지를 못한다. 또한 많이 다치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비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대부분이다. 모쪼록 시위는 경찰과 같은 집단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두어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경찰 역시 인권 경찰의 모토를 들고 나왔으니 절대 섣불리 어느 한편에 서려고 해서는 안 된다(물론경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요구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데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남더러 이기주의라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침묵이야말로 가장 큰 이기주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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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1-08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시위=범죄라는 등식을 이 놈의 국가가 워낙 잘 만들어놔서(제도, 정서, 인식)
저런 짓들을 잘 하는거 같아용..

숨은아이 2005-11-08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서, 인식, 그거 중요하죠...
 

흔히 나와 너가 아닌 다른 남자를 가리킬 때는 “그”, 여자를 가리킬 때는 “그녀”라고 쓴다. 실생활에서 말로 할 때는 그이, 그 사람, 그 애, 그 여자, 그 남자 하는 식으로 쓰지만 글로 쓸 때는 그/그녀가 완전히 정착되었다.

예전에는 성별 구별 없이 , 그이(‘그’를 좀 높여서 하는 말)라고 했다 한다. ‘그 사람들’이란 뜻인 그네도 오래전부터 쓰였을 것이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은 “그니”란 표현도 쓰는데, 그니는 그이의 경기도 사투리라 한다. 그런데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에 따르면, 신문학 초창기에 이광수, 김동인 같은 소설가들이 그/그녀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영어의 he를 ‘그’로 옮기고, she는 일본어 彼女(かの-じょ)를 본떠 ‘그녀’라고 번역했다.

“그녀”라는 말은 이제 아주 친숙해져서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긴 하지만, 가만히 글자의 모양새를 뜯어보면 볼수록 기이하다. 우선 “그”라는 토박이말에 “녀(女)”라는 한자어가 붙은 것도 어색하고, 그 남자는 그냥 “그”라고 하는데 여자만 굳이 “그녀”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 우리말에는 명사, 대명사에 성별 구분이 없다. 아, 욕에는 있구나. 그놈, 그년. -.-

하긴 토박이말과 한자어가 한데 어우러져 생긴 말도 많다. 한참 동안 할 때의 한참도 한+참(站)으로 된 말이고, 감감소식도 감감+소식(消息)으로 이루어졌다. 관자놀이도 관자(貫子)+놀이, 난장판도 난장(亂場)+판...

그러니 어차피 널리 정착된 “그녀”란 말을 굳이 쓰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래도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녀 대신 “그미”라고 쓴 작가도 있다. 하지만 그미는 그리 널리 쓰이진 않는다.

나는 그녀란 말보다, “그”라는 성별 구분 없는 말이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진 게 더 못마땅하다. 뒤집어 말하면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 3인칭 대명사의 대표어가 된 셈이다. 영어에서 남자를 뜻하는 man이 ‘사람’을 대표하는 말인 것과 같다. 전에 보니까 고려대 여성주의 교지인 <석순>을 만든 후배들도 그게 못마땅했는지, 남자를 가리킬 때는 “그남”이라고 썼다. 하지만 이 말이 널리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그” “그이”를 성별 구분 없이 쓰고, 여자와 남자를 구별해서 표시해야 할 때는 “그 여자”나 “그녀”, “그 남자”라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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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1-0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냥 그라고만 쓰는 경우가 많다네. 그런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혼동하기 쉬울 것 같아 작가들 먼저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게 뭐 어때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서...

숨은아이 2005-11-08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 언니, 이름표 그림이 바뀌었네요? 호오, 신비스러워라. ^^ 뭐, 이런 문제는 강요할 수도 없고, 그냥 나름대로 쓸 밖에요.
따우님, 공부 안 해요? (ㅎㅎ, 한자어로는 궐자, 궐녀라고 썼다네요, 옛날부터.)

숨은아이 2005-11-08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일하는 날은 컴 앞에서 놀기도 하는 날? ^^

urblue 2005-11-08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녀'라는 말이 싫어서 안 씁니다. 그 내지는 그네 정도가 좋아요.

숨은아이 2005-11-08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오호홋~
블루님/그렇죠. 사실 그동안은 그냥 썼는데요, 이제부터는 가려서 쓰려고요.
 

요즘은 단무지를 “다꽝”이라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몇 년 동안 주위에서 다꽝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내가 스무 살 무렵 되었을 때만 해도 반대로 “단무지”라고 하는 사람이 주위에 거의 없었던 걸 돌이켜보면 참 놀라운 일이다. 일본어에서 온 말을 꽤 많이 우리말로 다시 다듬었지만, 그중에서도 “단무지”와 “도시락”만큼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고 본다.

가만 들여다보면 단무지는 참 잘 만든 말이다.
우선, 무를 썰어서 식초와 설탕으로 절였기 때문에 단맛이 난다.
그래서 맛이 나는 , 단무. (짠맛이 났으면 짠무라고 했겠지. ㅎㅎ)
그리고 ‘지’는 절인 채소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치의 치, 장아찌의 찌도 다 ‘지’에서 왔다.
따라서 단무로 만든 , 단무지.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 만들었다.

그런데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을 보니,
다꽝, 제대로 쓰자면 다쿠앙(たくあん)이란 이름의 유래도 꽤 재미있다.
고구려의 택암(澤庵) 스님이 일본에 건너가
무를 소금과 식초와 설탕에 절인 반찬을 처음 만들었고,
일본 사람들은 스님의 이름을 따서 그 반찬에 이름을 붙였는데,
택암의 일본식 발음이 바로 “다쿠앙”이라는 것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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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 2005-11-08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모토 무사시와 관계가 있었던 澤庵(보통 다쿠안으로 발음하는 것 같더군요)선사의 창안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물만두 2005-11-08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바람돌이 2005-11-08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흠....

숨은아이 2005-11-08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정무진님/다쿠안이란 스님이 미야모토 무사시 시대에도 있었던 모양이군요.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에서는 일본의 "고승대덕전"이란 책에 이렇게 나와 있다고 합니다.
만두 언니, 바람돌이님, 뭡니까? ^^

瑚璉 2005-11-0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의 주장 중에는 조금 검증해보아야 할 것 같은 것들이 있더군요. 혹시 확인되는 것이 있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숨은아이 2005-11-08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정무진님/네, 그렇습니다. 혹시 다른 정보 알게 되시면 알려주세요~

릴케 현상 2005-11-08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사시 만화에서 봤는데^^

숨은아이 2005-11-09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일본의 민간에서는 무사시 시대의 다쿠안설이 더 유력한가 보군요.

panda78 2005-11-09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사시 만화에서.. ^^;;;
숨은아이님, 방금 택배 아자씨가 박스 가져가셨어요. ^^
내일 들어갈 것 같아요. ^^

숨은아이 2005-11-10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오늘 오겠네요. 고맙습니다~
 

하청노동자들을 생각하며... | 할 말은 하고 살자
2005.11.02

 

전남 순천에 있는 현대하이스코에서 일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섰다. 그들은 이미 해고되었다. 해고 이유는 단 하나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체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하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을 딱 펴들면 노동자는 노동3권을 갖는다고 적혀있다(제33조 제1항).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들 맘이니, 내가 노조 보기 싫어서 회사 하기 싫다는 데 어쩔 거야 하고 폐업해버리면 그만이다. 그것이 노동3권을 짓밟기 위한 것이라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그가 다른 곳에서 회사를 또 차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노동조합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폐업하고는 다른 곳에 가서 회사를 차리는 것. 이것을 위장폐업이라고 한다. 자본가는 자본 축적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뛴다. 그러니 노동조합 만들자 폐업하면 그것은 거의 위장폐업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위장폐업 중에서도 더 악질적인 것이 바로 하청업체의 위장폐업이다. 도급으로 하청회사와 계약을 하지만, 그 도급은 위장도급이다. 일의 완성 과정에서 도급인이 시시콜콜 감놔라 배놔라 해서는 안되고 일의 완성을 기다려 대가를 지급하면 되는 것이 도급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원청회사 노동자에게는 감놔라 배놔라 하면서 하청회사 노동자한테는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그것은 웃기는 소리다. 직접 하지 않는다고 ? 아하 ! 그렇구나. 회사가 어떤 경영방침을 정해두고 대표이사나 사장이 직접 나서서 감놔라 배놔라 하지 않고 과장이 나서서 하면 그것은 회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과장이 하는 것이다 ? 원청회사가 직접 나서서 노동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는 않고, 하청회사가 그렇게 하니 원청회사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 ? 도급이 더 많은 이윤을 주지 않는다면 도급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도급을 준다는 것은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 주기 때문인데, 그런데도 아무런 책임은 없다 ? 이윤은 더 가져갈 권리는 있되 책임은 없다 ? 

원청회사는 배째라다. 하청회사(인력공급업체가 정확할 것이다. 인력을 공급하고 그 대가로 일정비율을 챙기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중간착취자라고 할 것이다)는 널리고 널렸으니, 도급 계약서 하나로 모든 책임을 피할 수 있다. 하청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면 도급계약을 해지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하기도 전에 하청회사는 알아서 긴다. 폐업한다. 그래도 된다. 그런 하청회사야 언제든지 다시 만들 수 있으니까. 노동조합을 절대 인정하지 못한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으니 원청회사에 확실히 잘 보인 것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원청회사는 말한다. 하청노동자의 사용자는 하청회사니, 우리보고 뭐라 하지 말라.

현대하이스코가 딱 그렇다. 도급으로 이윤을 뽑을만큼 뽑기는 할 테지만 그들에게 이윤을 가져다주는 하청노동자의 일에는 관심없어 보인다.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테면 맘대로 하라고 한다. 아주 당당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 대법원은 하청노동자의 주장을 받아 주지 않는다. 하청회사에 취직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계약직 노동자, 하청 노동자, 그리고 소위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는 노동3권은 법전 속에 죽어 있는 글자일 뿐이다. 그들은 더 이상 말할 데가 없다. 그런 그들이 행동에 나섰다. 그들은 생존의 문제를 가지고 행동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라는 구호 속에는 하청노동자의 삶과 생존에 대한 어떤 것도 없다. 대한민국의 기본적 경제질서인 자본주의는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법도 외면한다. 소위 공권력이라는 집단은 늘 그래왔듯이 또 그렇게 할 것이다. 

저항권이라는 것이 있다. 저항권이라는 것이 국가나 사회가 더 이상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할 때, 국민이 자기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실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법원은 그 적용을 엄격히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 사회 자체는 늘 저항권이. 그 적용은 매우 엄격하다지만, 하청노동자들은 국가로부터, 사회로부터, 적극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생존권마저 박탈당했거나 늘 그럴 위험에 처해 있다. 정부는 자본가들은 불법이라고 엄단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 공권력과 법원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하겠지만, 그들은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장이 멈추고 손실이 얼마라고 무엇이 파괴되고 폭력사태가 어쩌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만 개거품을 물지 말고 그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개거품을 물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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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이나 순댓국 따위, 고깃국물에 밥 말아 먹는 음식에는 다대기라는 양념이 딸려 나온다. 고추, 마늘 등등 갖은 양념거리를 잘게 다진 그것을 넣어야 고깃국물을 느끼하지 않고 얼큰하게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다대기”란 말이 왠지 순수한 우리말이 아닌 느낌이 들어 사전을 찾아봤더니, 역시나 일본어인 다다기(tata[叩]ki)에서 온 말이라 한다. 그럼 이걸 뭐라 하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에서 보고 알았다. 바로 “다지기”였다.

다지-기
「명」「1」고기, 채소, 양념감 따위를 여러 번 칼질하여 잘게 만드는 일. 「2」파, 고추, 마늘 따위를 함께 섞어 다진 양념의 하나. ¶설렁탕에 다지기를 풀다. §「3」흙 따위를 누르거나 밟거나 쳐서 단단하게 하는 일. ¶이 정도 건물을 지으려면 다지기 공사만도 몇 달이 걸린다.§ (표준국어대사전)


하하, 한 글자 차이로 그 뜻이 분명하게 다가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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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1-07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지기!!!

인터라겐 2005-11-0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양념장이라고 했는데.. 다지기!! 머릿속에 넣어 둘께요

숨은아이 2005-11-07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식당에서 "다지기 좀 주세요" 하면 못 알아들으실 것 같죠? ^^ 당분간은 병행 사용해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