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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이틀 ㅣ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 들녘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케이블 TV에서 “춤추는 대수사선”이라는 일본 경찰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곤 한다. 영화로도 두 편이나 만들어졌는데, 역시 2편은 1편만 못했다. 한 회 한 회 다른 사건이 등장하는 드라마와 영화의 진행 방식이나 구성은 똑같다. 다만 영화의 배경이 좀더 장대하고, 따라서 돈도 훨씬 많이 들였으리라는 것이 다를 뿐. 이 드라마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이 책, <사라진 이틀>의 첫 장(章)을 주도하는 W현 경찰청 수사 제1과 강력계 지도관인 시키 가즈마사를 보고, 바로 “춤추는 대수사선”의 무로이 감독관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경찰의 조직윤리가 중요한 관건이 되는 데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춤추는 대수사선”의 주인공은 지역 경찰서에서 현장을 뛰는 아오시마. 현장의 형사들과 관료적인 본청의 윗선은 사사건건 갈등을 빚는데, 그나마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현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엘리트 경찰로 나오는 사람이 바로 무로이 감독관이다.
“춤추는...”에서나 <사라진 이틀>에서나, 경찰의 상부조직은 초반부터 엘리트 코스를 달려 장차 정치계로 나아가려는 인물들이 장악하고 있다. 경찰의 진짜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는 치안 감독과 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이들은 순경부터 시작하여 평생 가봐야 절대(...는 아닐까? -_-;) 상부에 다다를 수 없다. 참 묘한 일이지만, 우리나라 경찰도 별다를 바 없겠지. “춤추는...”과 <사라진 이틀>은 그런 모순을 까발리고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그대로 인정하고 들어간다.
무로이 감독관에 대한 호감을 떠올리며 첫 장을 읽고 나니 둘째 장에는 야심만만한 검사가, 셋째 장에는 민첩하고 집요한 기자가, 넷째 장에는 한창 잘나가다가 몰락한 변호사가, 다섯째 장에는 고민 많은 판사가,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정년퇴임을 1년 앞둔 복지부동 교도관이 나와 이야기를 끌어간다. 범죄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그냥 끌어가기만 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보여준다. 누구 하나 만만한 삶이 없다. 모두 열심히 제 몫을 다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어느 한순간 잘못 판단하거나, 한 발 삐끗 잘못 내딛기만 하면 수렁에 빠져들 가능성이 충분하다. 매일 밥 먹고 일하고 평범한 듯 살아가는 사람도 그럴 것이다. 유혹은 도처에 있으니까.
첫 장부터 넷째 장까지 등장하는 수사 지도관, 검사, 기자, 변호사는 모두 아내를 살해한 뒤 이틀간 종적이 묘연했다가 자수한 가지 경감 사건을 놓고 누군가와 팽팽한 대결을 벌인다. 이들은 결정적인 기회를 잡은 듯하지만, 결국은 경쟁과 생존 욕구 사이에서 자기 의지를 거역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그 요구에 순응하는 것도 결국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의지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은 점차 따뜻해진다. 사람 냄새를 훅 들이쉬게 하는 결말이 고마워서, 잠시 눈시울이 젖었다.
옮긴이에게 불만 한 조각. 후기에서 옮긴이는 이 책의 원제 半落ち에 해당하는 수사 용어가 우리말에 없어, “사라진 이틀”로 옮기기로 했다고 썼다. 그럼 半落ち가 어느 경우에 무슨 의미로 쓰는 말인지 설명해 주었으면 좋았을걸. 半落ち란 말이 어떻게 해서 “사라진 이틀”이 되는지 알 수가 없잖아? 엠파스에서 검색해본 결과 半落ち는 “한오치”라고 읽으며 '아직 100% 자백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사라진 이틀 | 원제 半落ち
요코야마 히데오(橫山秀夫) 지음, 서혜영 옮김 | 들녘(코기토)
일본에선 2002년 발표. 한국에선 2004년 출간.
작년에 물만두님 이벤트에서 받은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