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바람에 창문이 덜컹덜컹한다. 우리가 세든 집은 안방과 바깥방(건넌방도 아닌)이 베란다(도 아닌, 그저 짐 쌓아놓고 빨래 너는 공간. --;)와 부엌으로 빙 둘러싸인 구조라서, 방 안에 있으면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다. 추운 집에서만 살아온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이 집에서 그것 하나만은 마음에 든다. 컴퓨터가 있는 바깥방에선 발이 살짝 시리지만, 양말을 신으면 괜찮다. 그렇더라도 오늘 같은 날은 방 안 공기도 서늘하다. 바람벽을 스치는 소소리바람 소리에 살갗이 오소소 일어서는 것 같다. 황소바람이 새어드나 보다. 밖에 나가면 고추바람에 귀가 시리겠다. 어느 님이 어제 가랑눈을 보았다 하셨는데.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사전]에 따르면,
된바람 : 빠르고 세게 부는 바람. ‘북풍’을 뱃사람들이 이르는 말.
소소리바람 : 회오리처럼 휘몰아 불어오는 바람. 이른 봄에 살 속을 기어드는 듯이 맵고 찬 바람.
황소바람 : 좁은 곳으로 가늘게 불어오지만 매우 춥게 느껴지는 바람.
고추바람 : 살을 에듯 독하게 부는 몹시 찬 바람.
가랑눈 : 조금씩 잘게 부서져 내리는 눈.

* 조선 중기에 들어온 고추의 본래 이름은 고초(苦草)였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쓴 풀’이라고 하겠는데, 옛날 사람들은 고추의 매운맛을 ‘쓰다’고 표현했다. 반면에 ‘맵다’는 말은 고되고 독한 것을 나타낼 때 썼다. ‘고초’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소리의 변화를 일으켜 ‘고추’가 되었다. 고추의 특성인 매운맛이 다른 사물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고되고 독한 일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비유로 널리 쓰이고 있다. 예를 들면 ‘고추 같이 매운 시집살이’ ‘고추바람’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길쭉하고 뾰족한 그 모양에 착안하여 그와 비슷한 모양을 한 사물에도 고추라는 이름이나 별명을 지어 불렀다. 아들을 가리키는 ‘고추’, 끝이 뾰족한 ‘고추감’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에서.

그러니깐 고초 -> 고추 -> (고추의 ‘쓴맛’을 고되고 독하다는 뜻인 ‘맵다’는 말로 표현하게 됨) -> 매운 성질을 지닌 것에 ‘고추’라는 말을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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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룸 2005-02-0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황소바람때문에 추운듯합니다^^
'소소리바람' 이름 이뻐요!! ^ㅂ^ 하지만 창밖에서 소소리바람 치는 소리가 들리면 넘 무서워요^^;;;;;;

울보 2005-02-01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현이 너무 이쁘네요.....

숨은아이 2005-02-01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풀님, 바로 응용하셨네요. ^^
울보님, 비 이름, 눈 이름은 더 이뻐요. ^^
 
마니 마니 마니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 4
조은희 글 그림 / 보림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저는 뭔가 새로운 우주, 새로운 세계 같은 걸 만들어낸 책(소설이든 그림책이든 만화책)을 보면 감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우주, 한 세계를 만든다는 게 창조에 도전하는 일이면서도 상식 수준에서 이해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림책 작가 조은희는 온 우주를 떠돌아다니며 별을 색칠하고 꾸미는 마니마니별의 생명들을 만들어냈어요. 처음엔 36쪽짜리 그림책에 등장인물(?)이 이렇게 많이~? 하고 어지럽다고 생각했지만, 이야기 구조는 전혀 복잡하지 않아요. 다채로운 그림에 단순 명쾌하고도 기발한 글이 면을 꽉 채웁니다. 이 책을 보면 마니마니별이 앞으로 어떤 어떤 별을 만들어낼지 계속 공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00년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입니다. 이 책을 보면서 보림 출판사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조카에게 선물하기 위해 그림책을 고를 때마다 대한민국의 어린이책 출판사들은 다 대오각성해야 해! 하고 부들부들 떨곤 했습니다. 한 차원 높은 상상력을 보여주는 그림책은 다 외국 번역물이고, 우리나라 그림책은 대부분 다 어디서 본 듯한, 그만그만한 것들이며 개중에 독특하다 내용이 충실하다 싶은 건 그림이 다 어둡고 어렵더라구요. 어린아이한테 외국 책부터 보여주어야 하나 싶어 우리나라 작가의 그림책을 고르고 골랐지만, 결국 손들고 국적이 무슨 상관이야 그림이랑 내용이 좋으면 되지 하며 외국에서 들여 번역한 책을 고르곤 했지요. 그러나 4-5년 사이에 국내에서 개발한 그림책도 그 주제와 소재 면에서 매우 다양하고 아름다워졌어요. 어린이 출판사의 기획 수준이 달라졌고, 또 작가들에게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같은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겠지요. 이렇게 신나는 그림책을 발굴해 준 것이 고맙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의 저라면 화면 가득 채운 "까마니"들을 좀 징그러워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래도 이 책처럼 어린이가 마음껏 공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그림책이 좋은 그림책이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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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2-01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보니까 더 보고 싶어지네요..
제가 잘고른건지 모르겠습니다......

반딧불,, 2005-02-0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맞아요. 저도 번역본이 아니라, 창작물을 신경써서 내주는 보림이 참 이쁘답니다^^

숨은아이 2005-02-0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받아 보고 실망하심 어쩌지요? ㅎㅎ
반딧불님,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외국 그림책만 싹쓸이하는 국내 굴지 출판사들의 어린이책 브랜드들 미워!

반딧불,, 2005-02-0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롬요..고롬요.

근데 딜레마는 그럼에도 너무 좋은 책들을 국내 굴지 출판사에서 낸다는 겁니다ㅠㅠ

숨은아이 2005-02-0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좋은 외국 책을 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국내 작가도 육성하라는 말이지요, 머.
 
비 오는 날 집 보기 - 치히로 아트북 3,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와사키 치히로 글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새가 온 날” “이웃에 온 아이”에 이은 치히로 아트북 3권입니다. 원래 1968년에 나왔고, 한국에선 프로메테우스 출판사가 2002년 10월에 펴냈습니다.

“비 오는 날 집 보기”는 앞의 두 책과 달리 친구가 나오지 않네요. 엄마도 나오지 않고, 주인공 토토(?)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뎌 냅니다. 비 오는 날 집에 혼자 있으면 마당의 꽃잎도 왠지 무섭게 보일 거예요. 전화가 따르릉 울리면 커튼 뒤로 달려가 숨지만, 그런다고 전화기 울리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건 아니지요. 하지만 고적한 시간을 견뎌 내면, “혼자서 집 보기 해냈단 말야” 하고,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하나 더 있었음을 알게 될 거예요.

밑그림 선이 분명치 않은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답게 비 오는 날, 사물이 하나하나 또렷이 구분되지 않고 가장자리가 뭉개진 듯한 풍경이 이어집니다. 수채 물감의 결로만 이루어진 그림의 형체는 아이의 마음을 그렸는지 외관을 그렸는지도 역시 잘 구별 안 됩니다. 다섯 살 적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머릿속에 맺히는 심상이 바로 이럴 거예요. 어린이들이 이 책을 어떻게 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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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위의 낙원]은 이마 이치코 걸작 단편집 2권이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대원씨아이에서 나온 걸작 단편집 네 권을 다 보았다. 이제 [환월루기담]만 보면 이마 이치코 순례를 일단 마치게 된다. ^o^ [문조님과 나]는 아마 일부러 찾아서는 안 읽을 테고, [백귀야행]과 [낙원까지 조금만 더]는 연재가 끝날 때까지 지인에게 빌려 읽겠지.

표제작 "모래 위의 낙원"은 환상 시대극 + SF쯤 되려나. 가장 분량이 많은데도(100쪽) 한 편에 다 소화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 요소들을 끌어들인 듯한 느낌. 장편으로 천천히 풀어 나갔다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 이마 이치코의 작품에 줄곧 배어나는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건 바로 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이 작품에도 드러난다.

"여행을 한다"와 "비가 되어라"는 [백귀야행]처럼 다정한 괴담이다. 괴담, 혹은 귀신 이야기가 다정할 수 있다는 건 이마 이치코 작품의 미덕이자 매력이다.

"밤의 숲 아래"는 [백귀야행]에서도 종종 나오는, 폐쇄적인 대가족의 전통 축제(마쓰리)가 소재이자 배경이다. 흔히 농경사회의 전통이 거의 말살되어버린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 축제를 잘 보존하고 즐긴다며 경탄하곤 한다. (우리 농경사회의 전통을 비과학적인 미신이라며 말살해버린 것은 일제와 박정희 정권인데!) 그런데 이마 이치코가 그리는 마쓰리를 보면, 건강한 공동체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기보다는 일가족의 집단 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의식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여 성립하는 미덕이라면 아름답게 봐줄 수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할 때는, 그 희생 덕분에 뭔가 이득을 누리는 사람의 정신도 건강하지 않다. 이마 이치코는 그런 문제의식을 전하고 싶은 걸까?

일본에서는 1997년에, 한국에서는 2000년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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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잼? 먼지로 만든 쨈도 아닐 테고...
“비가 겨우 먼지나 날리지 않을 정도로 조금 내림”([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에서)이란다.
그러니 먼지를 재우는 비가 먼지잼이다.
참, 말도 예쁘다.

비를 가리키는 말 중에 예쁜 것이 많다. 여름철 한창 농사에 바쁠 때 내려서 잠시 한숨 자게 해주는 비는 “잠비”, 가을에 추수한 뒤 비가 내리면 내친 김에 떡을 해 먹는다고 “떡비”라고 한단다.

비가 오기 시작할 때 한 방울 두 방울 툭툭 떨어지는 건 “비꽃”이고, 비꽃이라도 떨어질 때 서둘러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나 빨래를 걷어 비에 맞지 않도록 하는 건 “비설거지”다.

옛날 농사짓는 이들은 모두 시인이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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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1-26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쁜말 배워갑니다......

물만두 2005-01-25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또 하나 배웁니다. 먼지잼... 요거 들어 있는 시를 읽기 바래봅니다^^

숨은아이 2005-01-25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꼭 먼지잼이라도 내릴 듯한 날씨죠. ^^

플레져 2005-01-25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얼마전에 제가 올린 비에 관한 단어들 퍼가셨잖아요 ^^
먼지잼아 날려라~~ 먼지잼 아니면 비꽃이 날릴 것 같은 날씨에요.
지금 날씨, 아주 맘에 듭니다 ^^

숨은아이 2005-01-25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 그래놓고 다 까먹어부렀네요.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