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위의 낙원]은 이마 이치코 걸작 단편집 2권이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대원씨아이에서 나온 걸작 단편집 네 권을 다 보았다. 이제 [환월루기담]만 보면 이마 이치코 순례를 일단 마치게 된다. ^o^ [문조님과 나]는 아마 일부러 찾아서는 안 읽을 테고, [백귀야행]과 [낙원까지 조금만 더]는 연재가 끝날 때까지 지인에게 빌려 읽겠지.
표제작 "모래 위의 낙원"은 환상 시대극 + SF쯤 되려나. 가장 분량이 많은데도(100쪽) 한 편에 다 소화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 요소들을 끌어들인 듯한 느낌. 장편으로 천천히 풀어 나갔다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 이마 이치코의 작품에 줄곧 배어나는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건 바로 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이 작품에도 드러난다.
"여행을 한다"와 "비가 되어라"는 [백귀야행]처럼 다정한 괴담이다. 괴담, 혹은 귀신 이야기가 다정할 수 있다는 건 이마 이치코 작품의 미덕이자 매력이다.
"밤의 숲 아래"는 [백귀야행]에서도 종종 나오는, 폐쇄적인 대가족의 전통 축제(마쓰리)가 소재이자 배경이다. 흔히 농경사회의 전통이 거의 말살되어버린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 축제를 잘 보존하고 즐긴다며 경탄하곤 한다. (우리 농경사회의 전통을 비과학적인 미신이라며 말살해버린 것은 일제와 박정희 정권인데!) 그런데 이마 이치코가 그리는 마쓰리를 보면, 건강한 공동체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기보다는 일가족의 집단 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의식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여 성립하는 미덕이라면 아름답게 봐줄 수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할 때는, 그 희생 덕분에 뭔가 이득을 누리는 사람의 정신도 건강하지 않다. 이마 이치코는 그런 문제의식을 전하고 싶은 걸까?
일본에서는 1997년에, 한국에서는 2000년에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