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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ㅣ 웅진 완역 세계명작 10
케네스 그레이엄 지음, 아서 래컴 그림,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5) 오소리 아저씨의 집 구조를 설명한 부분에서, 웅진 책의 번역을 읽으면 상상이 쉽지 않습니다. 오소리 아저씨의 집을 상상해 보면, 문을 열고 지하로 한참 계단을 내려갑니다. 계단 끝에 중앙 홀이 있고, 그 홀에서 복도가 사방으로 여럿 뻗어 나가며, 복도 사이사이의 벽에도 문이 여러 개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문 중 하나를 열면 따뜻한 부엌이 나옵니다. 또 홀에서 뻗어나간 복도에 들어서면 양편에 문이 여럿 있고, 복도 끝은 또 다른 홀로 이어지며 거기서 다시 복도가 여럿 가지를 칩니다. 마치 미로와 같은 구조지요. 그런데 웅진 책에선 먼저 73쪽에 “중앙 홀이 나타났고, 거기에서부터 터널같이 생긴 긴 복도가 여러 개 뻗어 있었다. 복도마다 신비롭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홀에는 문도 여러 개 있었다. ... 오소리 아저씨가 문 하나를 활짝 열자, 그들은 불을 피운 따뜻하고 밝은 부엌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해놓고(여기까진 문제가 없습니다), 86쪽에는 “식사를 마치고... 오소리 아저씨는... 두더지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복도를 지나니 터널이 나왔다.” 여기서 복도와 터널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앞에선 “터널같이 생긴 복도”라 하고, 뒤에선 “복도를 지나니 터널이 나왔다”고 하고.
원문은 Crossing the hall, they passed down one of the principal tunnels입니다. 여기서 hall을 ‘복도’로 번역했기에 이런 혼란이 생기는데요. 이 hall은 복도가 아니라 앞에서 central hall(중앙 홀)이라고 한 바로 그 홀일 겁니다. 오소리 아저씨와 두더지는 홀을 가로질러서, 사방으로 뻗은 터널, 곧 복도로 들어선 거지요.
6) 오소리 아저씨와 물쥐, 두더지가 말썽을 부리는 두꺼비의 버릇을 고쳐주려고 찾아갔을 때. 이때 오소리 아저씨는 물쥐와 두더지에게, 두꺼비의 운전사 복장을 벗기라고 하는데요.
배저 아저씨는 래트와 모울에게 짧게 명령했다.
“너희들, 어서 저것들을 벗겨.”
토드가 발길질을 해 대고 온갖 욕설을 퍼붓는 바람에 토드를 바닥에 누이고 나서야 제대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래트가 토드를 깔고 앉고, 모울이 운전복을 하나하나 벗겨 냈다. (시공주니어)
오소리 아저씨가 간단히 지시했다.
“자네 둘이 벗겨.”
물쥐와 두더지는 두꺼비를 바닥에 눕히고, 발길질을 하면서 욕을 퍼부었다. 물쥐가 두꺼비 위에 올라타자, 두더지는 하나씩 운전 장비를 벗겼다. (웅진)
웅진의 번역대로라면, 물쥐와 두더지가 세상에, 친구에게 욕을 퍼부으며 발길질을 했다는 거예요. 시공주니어의 번역대로라면 붙잡힌 두꺼비가 저항하느라 욕하고 발길질했다는 것이고요. 원문을 볼까요.
'Take them off him, then, you two,' ordered the Badger briefly.
They had to lay Toad out on the floor, kicking and calling all sorts of names, before they could get to work properly. Then the Rat sat on him, and the Mole got his motor-clothes off him bit by bit, and they stood him up on his legs again.
여기선 kicking and calling의 주어를 물쥐와 두더지로 보느냐, 두꺼비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군요. 언뜻 보기엔 웅진의 번역이 맞은 것 같지만, 문맥을 보면 그렇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They had to lay Toad (중략) before they could get to work properly라는 문장은, “그들은 두꺼비를 바닥에 눕혀야 했다 (중략) 제대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쥐와 두더지는 두꺼비를 바닥에 눕힌 뒤에야 제대로 두꺼비의 운전 장비를 벗길 수 있었다는 거죠. 왜 그랬겠어요? 두꺼비가 kicking and calling... 곧 발로 차고 욕하며 반항했기 때문이겠죠.(아니면 어떡하지. --; 그냥 제 생각이 그렇다는 거예요.)
가시나무님께서 이런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 문장은 <그들은 제대로 일을 하기 전에 토드를 발로 차고 욕을 하면서 바닥에 눕혀야 했다>로 보아야 합니다. kicking and calling 부분의 분사가 <때문에>라고 해석되는 경우가 있지만, 여기서는 아닙니다. kicking and calling의 주체를 They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래트가 토드의 위에 올라타고 몰이 토드의 운전복을 하나씩 벗겼고, 그런 후에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보아야 하죠.
그러니까 웅진 쪽 번역이 옳은 셈이네요. ^^a
7) 두더지와 물쥐가 수달의 아이를 찾으러 밤새 배를 타고 가는 장면.
모울은 조용한 가운데 강물 위로 침착하게 노를 저어 갔다. 곧이어 우묵강이 길게 한쪽으로 퍼져 나가면서 강이 둘로 갈라지는 지점이 나타났다. (시공주니어)
고요한 가운데 두더지는 꾸준히 노를 저었고, 곧 강이 갈라지는 곳에 도착했다. 한쪽으로 역류하는 물줄기가 갈라졌다. (웅진)
둘 다 뭔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아무튼 강이 두 줄기로 갈라졌다는 이야기지요. 원문은 이렇습니다.
In silence Mole rowed steadily, and soon they came to a point where the river divided, a long backwater branching off to one side.
그러니깐 강이 둘로 갈라졌는데, 그 중 한 줄기로 물이 길게 역류해 들어갔다... 이게 뭔 말이지? 아아, 혹시 이것 아닐까요? 두더지와 물쥐는 상류로 거슬러 올라왔잖아요. 상류에서 물줄기가 둘로 갈라졌다면 그 갈라진 두 줄기에서 흘러온 물이 합쳐져 큰 강이 되어야 하는데, 여기선 그게 아니라 갈라진 한 줄기가 큰 강에서 뻗어나간 지류인 거죠. 그래서 큰 강에서 도리어 그 줄기로 물이 흘러가는 거예요. (아닌가? 누가 좀 가르쳐주세요. --;)
8) 감옥을 탈출한 두꺼비가 운하에서 배를 만나는 장면
운하의 모퉁이를 돌자, 말 한 마리가 홀로 터벅터벅 걸어와서는 고민거리가 있다는 듯이 목을 구부렸다. 말의 어깨띠에는 긴 밧줄이 팽팽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말이 걸음을 걸을 때마다 밧줄이 물에 잠겼다. 마구의 다른 부분에서는 진주 같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시공주니어)
운하가 굽이를 도는 곳에서 말이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말이 걸음을 옮길 때 목에 매여 있는 긴 줄이 밑으로 늘어졌다. 줄 끝에서 물이 뚝뚝 흘렀다. (웅진)
이게 과연 같은 문장을 번역한 것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웅진 책의 번역으로는, 이 말이 배와 무슨 상관 있는지 모르겠어요. 원문을 보고 판단하시지요.
Round a bend in the canal came plodding a solitary horse, stooping forward as if in anxious thought. From rope traces attached to his collar stretched a long line, taut, but dripping with his stride, the further part of it dripping pearly drops.
웅진 쪽에서 문장을 과감히 압축, 단순화해버렸네요. 그렇죠?
9) 거의 끝부분, 두더지가 담비 무리를 놀릴 때
“또 권총과 끝이 흰 칼로 무장한 쥐들이 배 여섯 척에 나눠 타고...” (시공주니어)
“권총과 단검으로 무장한 물쥐들이 여섯 척의 배에 나눠 타고...” (웅진)
“끝이 흰 칼”? “끝이 휜 칼”이 아니고?
Six boat-loads of Rats, with pistols and cutlasses, will come up the river...
cutlass는 ‘휘어지고 폭이 넓은’ 단검이라고 합니다. 선원들이 주로 쓰던 거라나요. 왜 해적 나오는 만화에서 본 적 있죠? 그걸 끝이 ‘흰’ 칼로 번역하다니. 뒷부분에도 같은 말이 나옵니다.
래트는 먼저 저마다 옷에 벨트를 두르게 하고, 그 다음에는 벨트에 칼을 꽂게 하고, 그 다음에는 균형을 맞추어 다른 쪽에 끝이 흰 칼을 꽂게 했다. 그러고 나서 권총 한 쌍, 경찰봉 하나, 수갑 몇 개, 붕대와 반창고 조금, 그리고 물통과 샌드위치 통까지 챙겨 주었다. (시공주니어)
먼저 동물마다 허리띠를 차고, 칼을 꽂은 다음, 양쪽에 몽둥이를 꽂아서 중심을 잡게 했다. 그런 다음 권총 두 자루와 경찰관이 사용하는 곤봉 하나, 수갑 몇 개씩을 챙겨 주었다. 붕대, 반창고, 물병과 샌드위치 통까지 준비했다. (웅진)
여기서, 시공주니어 책에 따르면 허리띠 양쪽에 칼을 차서 중심을 잡았고, 웅진 책에 따르면 칼은 한 자루인데 양쪽에 몽둥이를 꽂아서 중심을 잡았어요. 원문을 보지요.
First, there was a belt to go round each animal, and then a sword to be stuck into each belt, and then a cutlass on the other side to balance it. Then a pair of pistols, a policeman's turcheon, several sets of handcuffs, some bandages and sticking-plaster, and a flask and a sandwich-case.
‘끝이 흰 칼’이란 엉뚱한 표현을 빼면 전체 내용은 시공주니어 쪽이 옳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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