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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ㅣ 웅진 완역 세계명작 10
케네스 그레이엄 지음, 아서 래컴 그림,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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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두 책을 비교하느라,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란 이야기 자체에 대한 말을 못 했네요. 이 책의 아름다움은 이미 많은 분이 써주셨으니 굳이 덧붙여 말하지 않겠습니다. 열두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저는 두더지(모울)가 스산한 겨울날 들판을 헤매다 자신의 옛집 냄새를 맡고, 물쥐(워터 래트)의 격려를 받으며 함께 집을 찾아가는 부분, 그 부분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두더지는 친구와 모험과 햇빛 아래 세상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집 역시 사랑하지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넓히지요. 현명하고 너그러운 물쥐는 친구를 믿고 길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요.
그런데 문득문득 책의 내용이 참으로 교훈적이다, 의도적으로 교훈을 숨겨두었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눈이 멀어가는 아들을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두더지(두더지는 시력이 아주 나쁘죠! 원래 땅 속에 살고요)를 햇빛 아래로 끌어내고, 말썽쟁이 두꺼비의 버릇을 고치고... 원래 아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지은 이야기라니, 그럴 수밖에 없을까요.
또 주인공들의 생활이 너무 영국인 같아요. 두더지, 물쥐, 오소리, 두꺼비가 자연 속에서 먹을 것을 얻지 않고,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지만 햄이니 빵이니 포도주니 하는 걸 먹고살지요. 영국 작가라고는 톨킨, 애거서 크리스티, 롤링 정도밖에 모르는데(--;), 이에 케네스 그레이엄도 더해서, 이들 작가가 다 은근히 보수적이에요. 차별적인 신분 질서, 외국인에 대한 경원, 숲에 대한 공포... 이 책에선 ‘토끼’들을 우둔하고 이기적인 동물들로 묘사하는군요. 주변부에 살짝 등장하는데, 토끼 하면 약하고 수도 많은.... 우리 보통 사람들 같지 않은가요. [반지의 제왕]에서 “하급 인간들”을 노골적으로 멸시하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서 하녀는 (매편에 항상 등장하지만) 늘 주변인일 뿐이고,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는 “동쪽 사람들”에 대한 경계와 의심이 항상 드러나지요. 또 집요정에 대한 착취에 분노한 헤르미온느는 잠시 치기를 부렸을 뿐이고...
음... 이들 작품에 비하면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훨씬 개방적이군요! 교훈도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녹아들었고. 번역이 좀더 좋았다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새로 검색해보니, 맑은창이란 출판사에서 또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냈더군요! 으... 심하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