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눈치 챈 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굳이 밝히고 싶다, 저 제목은 알라딘 니나님의 서재에서 이 글을 읽고 지은 제목이라는 것을. 

나는 어릴 적부터 고통에 유난히 약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계산법을 누구보다 빠르게 본능적으로 익힌 걸 보면 알 수 있다. 

삼남매 중 막내였던 나는, 오빠들에게는 엄격했지만 나에게만큼은 막내라는 프리미엄과 유일한 여자아이라는 수퍼프리미엄 덕분에 늘 이뻐라 하기만 하는 - 그래도 어렵고 어색하기는 하지만 - 아버지와, 아이들을 매로 다스리는 걸 전혀 달가와하지 않는 열린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같이 혼이 나야 할 때도 있는 법. 그런 순간 나는 다람쥐처럼 엄마의 빗자루 매 손길을 귀신같이 피해 도망을 쳐서, 나중에는 따라다니다가 웃음이 나버려 때리기를 포기했다고 하니, 아마 부모에게 한 번도 맞은 기억이 없다는 내 기억이 맞을 거다. 

그래서였을까. 이후에 내가 몰랐던 폭력들을 하나 하나 마주치게 될 때마다 나는 겉으로 의연하고 담대했다. 엄마 아빠에게도 티를 내지 않았고, 어느 선에서 잊어야 할 지를 재빠르게 계산해서 잠재의식까지도 그렇게 바꿔 버렸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윽고 어른이 되자, 물리적인 폭력이나 고통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나 자신의 마음/정신에서 우러나오는 고통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이것들을 뇌 어딘가에 숨어 있을 비밀장소에 숨기고 손을 털고 담담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어리석게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내게, 망각이라는 인간의 본능이 유용하게 작용하여 케세라 세라 즐기며 잘 살 수 있을 거라 부러 순진함을 가장하면서, 인생을 우습게 봤다. 

'시련의 의미'라고? 일생동안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작가가 말했듯이, 시련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는 것이 좋겠지만 시련이 왔을 때 그것을 또 다른 삶의 구체적인 의미로 승화 시킬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역시 작가가 여러 번 반복하고 있듯이, 그런 사람은 극.소.수. 나는 평생을 극소수가 아니라 대다수에 속하며 살아왔는데.  

삶이 나에게 의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요지라는 건 알겠다만, 내게 아직 삶은, 의미/무의미를 떠나서 온통 뿌옇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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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yours 2010-08-30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침대 밑에 모셔둔 지 일주일.
음. 왠지 용기가 필요한 책.

치니 2010-08-30 15:47   좋아요 0 | URL
음, 개인적으로는 프리모레비의 <주기율표>가 더 마음에 오래 남았어요, 수용소 경험에 대한 회고만 보자면요.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같은 경험을 해도 누군가는 90이 넘어서까지 희망을 전도하면서 살고, 누군가는 (그러니까 프리모레비는 ㅠ) 자살했을까, 그 궁금증이 결국 해소되지 않았어요.
제게는 읽고나서 용기를 얻는 쪽은 당연히 빅터 프랭클의 책인데 공감은 어쩌면 - 잘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 프리모 레비 쪽인 거 같기도 해요. 암튼 moon님, 용기 내셔도 될 듯. :)

다락방 2010-08-30 16:12   좋아요 0 | URL
프리모 레비와 굳이 비교를 하자면 저의 경우에는 치니님과 좀 다른데요,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는 '누군가의 이야기' 같았어요. 감정이입 되는 순간도 있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볼 수도 있는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
그런데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바로 '나의 이야기' 같았어요. 이건 모든 책이 그렇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것인데, 니나님의 서재에도 적었고 또 제가 홈피에 리뷰를 쓰기도 했었지만,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저는 제가 이렇게 그냥 살아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끊임없이 나는 문제가 있어 나는 정신병일거야 라는 생각을 해오고 있다가 이 책에서 그걸 어떻게 알고 너처럼 걱정하는 사람이 있지만 괜찮은거야, 라고 말해주는 기분. 그랬어요.

치니 2010-08-30 16:25   좋아요 0 | URL
네네, 다락방님의 리뷰를 책 다 읽고서 다시 읽어보고, 왜 그렇게 좋아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저라도 그랬겠다 싶어요. 저는 좀 다락방님이랑은 반대의 사람. 그러니까 말하자면, 끊임없이 나는 문제가 있어, 라고 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나는 문제가 없어, 라고 하는 거죠. 이게 바로 문제인 지도 모르는데! ^-^;

다락방 2010-08-30 16:34   좋아요 0 | URL
응..뭔지 알것 같아요.(격렬하게 끄덕끄덕)

다락방 2010-08-30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레미파는 정말 ㅠㅠ 멋져요! 좋다고 하니까 막 사서 읽고 리뷰도 올라오고. 이런 멋진 여자사람들 ㅠㅠ

도레미파는 같은 책을 읽어요. 이 책은 웬디양님만 읽으면 백프로인데! 흑흑.

치니 2010-08-30 16:26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우리 막 조폭 같다, 짜릿해요. 한 명이 하면 쫙 다 해야 하고 막 이런 조직의 룰 같은 거를 느끼니까.

니나 2010-08-30 16:29   좋아요 0 | URL
도레미파라니, 아 난 천재같아요 ㅋㅋ (혼자 자뻑하고 돌아가는 ㅁㄴ양)

치니 2010-08-30 16:31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천재라고 그러고 있는 참이에요, 나 혼자. ㅋㅋㅋ
게다가 천연덕스럽게 ㅁㄴ양이라고 쓰고 있는 거 봐요. 아유 참.

니나 2010-08-30 16:39   좋아요 0 | URL
암요. ㅋㅋ 천연덕스럽지 않고서야. ㅋㅋ 근데 천재라면서 나도 뿌옇기만 해용. 빠직!

2010-08-30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30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녀 2010-08-30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퇴근 30분전 대박삽질 ㅋㅋ

치니 2010-08-30 18:0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퇴근이에요!!!

차좋아 2010-08-31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군요 음... 사실 어제도 봤어요 히히 전 화제의서재 글 위주로 보거든요.
글을 읽어보니 프레모레비,<이것이 인간인가>가 떠오르느데 어젠 <주기율표>가 언급이 됐던것 같아요. 아 위 덧글에도 그렇고.
그러니까 <죽음의 수용소>는 수기가 아니라 소설인가보군요. (응? 난 왜 수기라 생각했지..)ㅎㅎ

치니 2010-08-31 13:30   좋아요 0 | URL
<이것이 인간인가>는 못 읽어봤어요. 제가 읽은 건 <주기율표> 뿐이라서 어제는 그 이야기만 한 거고요. ^-^;

이 책은 예상하신대로 수기에 가까워요. 그렇지만 완전히 수기라고 하기엔 맞지 않는 구석이 있고, 음, 치유의 에세이라고 해두어야 할까요. 자신의 경험담과 정신과의사로서의 조언이 모두 들어 있거든요.

chaire 2010-08-31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 책의 제목만 봐도, 왠지 참 싫다, 하는 기분이 들어요.
죽음의 수용소, 라는 말 자체가, 원래는 은유인데 은유처럼 안 느껴진달까요.
고통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 공감공감..^^

치니 2010-08-31 17:44   좋아요 0 | URL
제목은 아무래도 출판사에서 좀 더 확실한 표현을 위해 바꾼 거 같아요. 원제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인가 그랬거든요. 너무 밋밋하고 눈에 띠지 않는 제목인지라...^-^;
chaire님도 어린시절에 그랬어요? 흐. 왠지 위안이 되네요.

chaire 2010-08-31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저는 도망가지도 못할 정도로 무서워서 무방비 상태로 뒈지게 맞다가,
맞고 나서는 눈을 부라리며 복수를 다짐하는 꽈였어요.

하지만 마음 저 아래바닥에서는 어쨌든 맞는 고통, 타박상과 피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는 데서 공감이 간달까... ㅋㅋ

치니 2010-08-31 18:02   좋아요 0 | URL
아...제가 잠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해를 했군요.
그래도 저보다는 용감하셨던 모양입니다. 저는 무조건 내빼는 겁쟁이 체질. -_-;
 

교보문고.  그 옛날 종각에 있던 '종로서적' 외에는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기억되는 책방. 수많은 사람들의 약속 장소가 되어 주기도 하고 시간 떼우기 장소가 되어주기도 한 곳. 그러나 교보생명 빌딩의 거대함 때문에 나에게는 살짝 만족스럽지 못했던 곳. 이 곳의 새단장 소식이 들렸을 때 뭐든 새단장만 했다 하면 싹 철거(이거 어감 너무너무 안 좋다)하고 으리으리하고 휘황찬란하지만 속 빈 강정같고 멋 없는 현대식 건물 인테리어가 싹 들어서고 왠지 말레이시아나 싱가폴 삘이 나는 Mall 형태로 갈아타는 꼴이 별로였어서, 교보도 그러려나, 시큰둥했다. 

아무튼 세월은 흘러흘러 기다리던 기다리지 않던 재 개장 날짜가 왔나보다. 자주 가는 <마음산책> 네이버 블로그에 이런 글이 실렸다. 

http://blog.naver.com/maumsanchaek/70092708556 

그냥그냥 읽어나가다가 눈이 멈춘 곳. 책.공.방. 

절판 혹은 품절된 책이 나타나면, 왜 꼭 지금 당장 그 책이 읽고 싶어 죽겠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헌책방을 돌아다녀서라도 구하고 말리라, 갑자기 애호가가 되기도 하고 집요해지기도 했던 숱한 기억들이 떠오른다.(물론 실천한 적이 없지요) 

그래, 여기다. 어느 정도 실제 서비스가 원활할 지야 두고 봐야겠지만 컨셉은 참 마음에 드는구나. 어떤 절판본을 새로 만들어달랄까, 고심해볼 생각을 하니 벌써 즐겁다. 친구가 무척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그런데 너무 옛날 책이라면, 새롭게 여기서 제본해 선물해도 좋겠고. 이야, 세상 정말 좋아졌구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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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8-27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7일 재개장을 앞두고 출판관계자들에게 먼저 선보였다는 글을 읽는 순간,
출판관계자들은 참 좋겠다, 했어요. 흑.

치니 2010-08-27 13:44   좋아요 0 | URL
ㅇㅇ 우리가 아는 몇 분도 거기 갔겠다. 그쵸? 흑.

굿바이 2010-08-2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판본을 만들어 준다니 미칠듯이 좋아요! 벌써 리스트 짜서 막 신나하고 있는데, 박완서씨 말처럼 안가본 길이 아름다운 것인지, 안읽은 책은 또 왜 그리 절절한지, 이참에 절판된 사랑도 찾아 달라고 해야겠어요^^ 유후~

치니 2010-08-27 13:4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굿바이님. 저도 리스트 짜고 싶은데 막상 또 잘 생각이 안 나요. 굿바이님 괜찮으시면 리스트 좀 공개 페이퍼로 ~ ㅎㅎ 따라해야지.

헉, 절판된 사랑. 그건 전 안 찾을래요. 흑.

blanca 2010-08-27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월요일에 방문할 계획 세워놓고 혼자 설레고 있어요 ㅋㅋㅋ 기다려 주는 사람은 없지만 책이 많은 곳은 항상 반가워서요. 책공방, 이런 곳도 있군요~

치니 2010-08-27 14:36   좋아요 0 | URL
오, 월요일 다녀오시면 소감 좀 페이퍼로 써주셔요.
저도요, 책이 많은 곳은 늘 반갑더라고요. ^-^ 고양이 생선 그냥 못 지나치는 심정.

2010-08-27 15: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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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15: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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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1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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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16: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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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16: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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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17: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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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0 0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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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0 11: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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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0 09: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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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0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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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마법사 퍼가기 이벤트


2010년 8월 26일 | 치니님을 위한 추천 상품

1Q84 3 다잉 아이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얼굴에 흩날리는 비

'추천마법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걸 본 순간, 나는 예감했다.  앞으로 죽, 이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겠구나.  

다른 건 몰라도 알라딘에서 책을 선택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하는 '내 이웃의 추천'을 어떻게 그냥 넘어가겠으며, 오래전 읽었지만 뇌리에는 '최고의 작가'로 자리매김한 몇몇 작가들의 신간을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도 어찌 호기심이 안 생길까 싶어서.  

자본주의 시대에 마케팅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소비자의 지갑을 얼마나 자발적으로 열게 하는가'라고 할 수 있겠는데, 알라딘이 1등 온라인 서점도 아니고 조금은 어눌한 것 같으면서도 가끔 대박(재작년인가, 이 정부 들어서서 소위 군대 내 금서 리스트가 부활했을 때 했던 이벤트가 그 사례) 혹은 중박을 치는 건 이런 자발성에 기대는 측면이 큰 듯.  

알라딘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강요로 무언가를 산다는 행위를 무척 싫어하고 단순하지만 기본적인 '너무 너무 읽고싶다!' 라는 욕망에 이끌려 사는 행위를 선호한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서재'라는 것도 애증의 기반에서 꾸준히 이용되는 것 같고.  

개인적으로 나는, 다른 구매 행위에서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광고에 현혹되는 편도 아니고 누가 좋다 좋다 해도 내가 싫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번 추천마법사가 살살 부추기면 눈에 별이 뿅뿅 들어오고, 왠지 이런 책들은 안 사면 후회할 것 같고, 그야말로 평소에 나와는 무관하게 생각하던 지름신이 내리기 시작한다.  

아 물론, (다행히도) 보관함에 혹시 하는 마음으로 - 잘 사서 읽지는 않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 잔뜩 올려둔 미스테리물 때문에 마법사는 내 취향을 조금 착각, 그 쪽 분야는 통 크게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딱 2권, 이것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요요 발칙한 (그러나 깜찍한 비서같은) 마법사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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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8-26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심지어 리스트로 나온 다섯권 다 사려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치니 2010-08-26 10:5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부메랑'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군요.

2010-08-26 1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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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6 1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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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6 1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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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6 1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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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8-26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나도 함 해봐야지~

치니 2010-08-26 17:43   좋아요 0 | URL
^-^ 네네, 그나저나 아직 닉넴 못 정하셨나부네.

또치 2010-08-26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왠지 무서워서 안해봤는데... 음... 되게 궁금하긴 해요 ㅠㅠ

치니 2010-08-27 09:22   좋아요 0 | URL
무섭다니, 역시 또치님의 예리한 감각. ㅋㅋ
그냥 클릭 한 번 해보셔요. 으흐흐, 여기서 책 몇 권 보관함에 넣나 보게. 보관함까지는 돈 안 들잖아요 ~

2010-08-27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이시나요, 2010 가을 이라는 오른쪽 끝의 글씨. 

 지독하다 싶게 더운 날들이라 멍 하니 시체처럼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쐬다가, 문득 책을 집어들고 조금 읽다보면 그예 눅지근한 잠에 빠지기 일쑤, 무려 날씨로 인한 난독증이 내게도 오는구나, 그런 생각에 이르게 한 여름이에요. (네, 아직 과거형은 무리) 

 그런데 어제 이 책을 받고 저 두꺼운 '가을'이라는 두 글자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자니, 날씨 핑계로 미룬 독서를 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새삼 들끓어서 반가왔습니다. 우선 목차가 모두 마음에 꼭 들었거든요.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관심이 지극한 사안들만, 누가 창비에 알려주고 딱딱 목차로 올려준 듯한 느낌. 역설적으로 저 같은 사람이 이 시대에 많다는 소리니, 한 편으로는 씁쓸한 일입니다.  

모범생처럼 맨 처음 것부터 읽으려 하는 스스로를 타이르고 - 이 책 외에 읽고 있는 또 다른 책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에서 정성일씨는 '책을 맨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은 적이 거의 없으며 좋은 책은 언제 어느때고 아무 챕터나 열고 들여다봐도 좋아야 좋은 책'이라고 하셨기도 하고 하물며 이런 책이야말로 그러라고 각 챕터를 주제별로 나눈 것 아닌가 싶어서 - 소설난으로 직행했습니다. 

공선옥의 <꽃 같은 시절>은 이번이 연재 3회 째이고,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2회 째인데, 우선은 공선옥의 작품만 읽었어요.(지난 번에는 김애란을 먼저 읽었는데, 이번엔 공선옥을 먼저 읽게 되었다는 건, 아무래도 회가 거듭될 수록 이 쪽이 더 재미날 것 같다는 기대를 유발한다는 것, 공선옥 WIN입니다, 제 맘대로 투표에서. ㅎ) 이 분의 다른 장편소설을 예전에 읽고 약간 실망한 듯한 어투로 리뷰했던 기억이 나는데, 연재물에서는 원래 있던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 같아요. 이 시대에는 소위 운동권 민주 투사가 아니었어도, 평범한 서민이라 해도, 그냥 지나칠 수 만은 없는 수많은 '사태'들이 쏟아져나오는데, 그걸 한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시작하여 두루두루 다 건드리면서도 전혀 산만하지 않게,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뚜렷하게, 나오는 인물이 내용에 충분히 녹아들게끔, 그야말로 읽는 맛 제대로 나게 써주십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전의 그 장편에서는 예의 '너무 뚜렷한 메시지'만 부각되어서 제가 괜스레 거부감을 느꼈던 모양이고요. 

짧은 연재물 하나를 읽고 저녁을 먹자니, 신나게 퍼붓던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선선한 바람이 창가에 휘휘 감돌아요. 이제 그만 가을을 데리고 오겠노라고, 씨익 웃는 것 같은 바람.  

이 가을에는 조금 더 자진해서 늙을랍니다. 빨빨대고 돌아다니기 보다는, 창가의 바람만 조금조금 받아주면서 방 안에서 조용히, 오래오래 책을 읽고 싶습니다. 여름내 펄떡거려야 했던 숨을, 노인처럼 천천히 - 아주 천천히 쉬면서 가다듬고 싶어서 그런가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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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10-08-24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자분자분 늙어야가지 라라라~ 가을과 더불어 채워지는 장바구니~
메인사진 예뻐요 히히

치니 2010-08-24 13:40   좋아요 0 | URL
라라라 ~ 에서 갑자기 포카리스웨트를 떠올리는 저는, 미디어에 찌들은 영혼. ㅋ 메인사진, 사진예술이 뭔지를 보여준달까요.

다락방 2010-08-2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인사진 예뻐요 2

저 처음에 잘 못알아봐서 클릭해서 크게 봤어요. 그랬더니 어어- 멋진 사진이에요. 분위기가 아주 끝내줘요!

치니 2010-08-24 13:41   좋아요 0 | URL
ㅇㅇ 잘 못알아볼 거 같아서, 은근 멋있어 보일라고 절케 올렸죵.
한 학년 아래 친구가 사진을 취미로 해서 찍어준 건데, 좋은 사진이 많더라고요. 앞으로 그 친구가 전용 포토그래퍼. :)

당고 2010-08-24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치니 님 서재에서 가장 먼저 가을을!
지금 내리는 비가 여름의 마지막 비 같은 여운이......

치니 2010-08-24 17:25   좋아요 0 | URL
당고님이다! :)
오늘 날씨는 선선하고 촉촉하고, 가을 성큼. 하지만 전 이제 믿지 않아요, 이 비가 그치면 또 푹푹 찌겠죠. -_-;

프레이야 2010-08-24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마저 정말 미쳐가나 봐요.ㅎㅎ
가을냄새 살짝 느끼게 해주시네요.
자진해서 늙어가시겠다니요. 벌써요?
근데 실은 저도 그래요. 숨쉬기도 숨가빠요.ㅋ

치니 2010-08-25 09:16   좋아요 0 | URL
오늘은 연짱 사흘 비 내려서인지 가디건을 걸쳤는데도 춥다 싶을 정도로 선선해요. 프레이야님 계신 곳은 어떤지요.

평안하게 숨 쉬며 살자구요, 우리 ~ :)

라로 2010-08-2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치니씨~.
요즘 뜸하시네요????
오랫만이라 더 반가운건가????ㅎㅎㅎ
암튼 나도 언젠가 그대의 친구 포토그래퍼에게 신세를 좀 지고 싶은걸??

치니 2010-08-25 09:18   좋아요 0 | URL
힉, ...님이 누굴까 하다가 왼쪽 사진 보고 금방 알았네요. 혹시나 서재 잠시 보류하시는 건가 놀라서 언능 그 집부터 갔다 왔어요. :) 원래 닉넴 정들었는데 움, 왜 굳이 바꾸시려고용?
(참고로 제 닉넴 치니는 중딩 때부터 사용했어염 ㅋㅋ)

언니 페이스북 하시죠? 여기서 그 친구 사진 더 구경하셔요 ~
http://www.facebook.com/album.php?aid=18256&id=1765164004&comments=

pjy 2010-08-25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인사진 분위기있고 좋아요^^ 근데 가을이 오긴 오나요ㅠ.ㅠ

치니 2010-08-26 10:13   좋아요 0 | URL
pjy님, 제 서재에서는 처음 뵙는 거 같네요, 반갑습니다.
가을은 살짝 온 거 같죠? 어제 오늘 서늘한 바람 좋아요 ~ :)

2010-08-26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7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10-08-29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치니님. 뒤늦게 읽고 추천을 눌렀어요. 너무 좋은 페이퍼예요. 가을.

치니 2010-08-30 10:58   좋아요 0 | URL
네꼬님, 오늘은 모처럼 비가 개인 월요일 아침. :) 가을 맞이 잘 하고 계시죠? 글구, 아프지 좀 마요! 떼끼!
 
심야식당 : 부엌 이야기 심야식당
호리이 켄이치로 지음, 아베 야로 그림, 강동욱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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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당시 일본이 카레, 빵, 돈까스, 등등 서양음식을 따라하느라 자존심도 없고 사대주의에 빠져있다는 일반론이 우세했다. 전자제품이나 소형제품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서 원래 그것이 발명된 나라보다 잘 팔고 있다는 소문이야 좀 질투가 나긴 해도 믿었지만 음식만큼은 양보 안했다. 하기야 담배도 양담배를 물었다간 매국노 소리를 듣고 승용차도 외국차를 탔다간 돈에 나라 팔아 먹은 놈 소리를 들어야 했던, 일본 문화 전반 - 영화나 음악 따위를 보려면 암시장을 뒤져야 했던 시절이니, 미식가들이 일식 요리를 즐긴대봐야 사시미, 나머지 요리까지 내 돈 내고 먹을 필요성 따위는 없다고들 생각했다. 그러면서 궁시렁대기를, 지네 음식도 아니면서 그렇게까지 따라하는 게 참 볼썽사납다, 그래봐야 오리지널 같이 되겠느냐. 잘도 그랬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그네들의 음식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즐긴대봐야 식민지 시절 그 입맛과 궁핍한 사정에 걸맞았던 김밥류와 오뎅 정도나 되었을까.

그러면서도 우리가 먹는 라면이 그 쪽에서 왔고, 새우깡은 원래 일본의 대표 스낵이었다거나, 애들이 죽고 못살던 카라멜도 그 쪽 거와 외모까지 똑같더라는 건 감쪽같이 몰랐다. 이미 서양음식의 전반이 일본에 죽죽 들어와서 일본화 된 지 한참 지난 오늘날까지도, 일본에 가서 직접 먹지 않고 우리나라에 변형된 형태로, 특히 이자까야 형태로 들어온 음식들을 먹는 이들은 밍밍하고 별맛없고 이것저것 섞어놓은 음식들 뿐이더라, 정도로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나라고 뭐 다르지 않았지만, 맛은 둘째 치고 내가 처음 일본에 가서 식도락을 해보면서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아이고야 이 사람들 소식한다는 소리 다 개뻥이다, 라는 것. 많이 먹는다, 정말 많이 먹는다. 미국인이 대형 햄버거와 대형 콜라를 끼고 뒤뚱거리니 많이 먹는 걸로 보이는 반면, 일본인은 뭐든 작은 식기에 소담하고 단정하게 음식을 담으니 소식이라 오해 받은 거다. 밥도 많이 먹고 밥 먹으면서 맥주도 많이들 마시고 디저트도 되게 맛난 거 맨날 먹는다. 그리고 계발 또 계발된 수많은 국적불명이지만 일본화된 음식들이 구미를 자꾸 당긴다. 

그리하여 <심야식당>은 공전의 히트, 일본의 백반집이라고 해도 좋을 이 식당에서 취급하는 음식은 보릿고개 시절 정통 일본식에서부터 소위 경양식집에서나 맛볼 수 있었던 웰빙스럽지 않은 양식까지, 다양했고 거기에 단골들이 밤늦게 와서 털어놓는 짧은 이야기들을 버무리는 솜씨가 좋아 나도 4편까지 즐겁게 읽었던 책이다.  

아베 야로에 대한 경의로 칼럼니스트인 호리이 켄이치로가 지은이 이름을 아베 야로라고 하자고 주장했는지, 아니면 그냥 한국의 출판사가 한국의 독자를 의식하여 아베 야로=심야식당이란 공식 하에 켄이치로를 설득, 저렇게 나왔는가 사정은 모르겠지만 명백히, 책을 열자마자 이 에세이를 쓴 사람은 켄이치로라는 걸 알 수 있어서 책의 처음 이미지는 좀 아리송하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람 켄이치로의 글쓰기 방법이 곧 마음에 들었다. 소재를 척척 끌어다 쓰되, 거기에 국한되지는 않고, 과거와 현재를 홍길동처럼 쉽사리 휘적거리고, 그러다 결론은 가끔 아무 것도 아니에요 메롱, 발랄하다가도 또 짐짓 심각해지고, 술 한잔 편하게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만한 아저씨 같아서 얇은 책의 두께만큼이나 부담이 없고, 결정적으로 푸드에세이라는 본업에 충실했다. 아주아주 간단한 레시피와 사진을 떡 하니 대단한 것처럼 뻔뻔하게 올려놓았는데 그게 또 대부분의 게으름뱅이(=심야식당 팬 대다수가 여기에 속하지 않겠는가)에게 아주아주 솔깃하기 때문. 

그리하여 결국, 나 같은 초게으름뱅이도 이런 걸 만들어서 얌냠하고 먹었다는 이야기. :) 간단레시피였는데 따라하니까 그대로 맛이 나서 신기하고 신이 나더라구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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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er 2010-08-1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설이고 있는데, 더 갸웃하게 해요. ^_^ (엇, 별이 네개면..)

치니 2010-08-18 12:0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심야식당>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 또 읽었어도 그걸 좋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 호오가 좀 갈리지 싶기도 하고, 그냥 담백하고 술술 읽히는 에세이 좋아하는 이들은 괜찮겠다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안 읽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책은 아닌 거 같고...저도 갸웃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