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식당 : 부엌 이야기 심야식당
호리이 켄이치로 지음, 아베 야로 그림, 강동욱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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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당시 일본이 카레, 빵, 돈까스, 등등 서양음식을 따라하느라 자존심도 없고 사대주의에 빠져있다는 일반론이 우세했다. 전자제품이나 소형제품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서 원래 그것이 발명된 나라보다 잘 팔고 있다는 소문이야 좀 질투가 나긴 해도 믿었지만 음식만큼은 양보 안했다. 하기야 담배도 양담배를 물었다간 매국노 소리를 듣고 승용차도 외국차를 탔다간 돈에 나라 팔아 먹은 놈 소리를 들어야 했던, 일본 문화 전반 - 영화나 음악 따위를 보려면 암시장을 뒤져야 했던 시절이니, 미식가들이 일식 요리를 즐긴대봐야 사시미, 나머지 요리까지 내 돈 내고 먹을 필요성 따위는 없다고들 생각했다. 그러면서 궁시렁대기를, 지네 음식도 아니면서 그렇게까지 따라하는 게 참 볼썽사납다, 그래봐야 오리지널 같이 되겠느냐. 잘도 그랬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그네들의 음식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즐긴대봐야 식민지 시절 그 입맛과 궁핍한 사정에 걸맞았던 김밥류와 오뎅 정도나 되었을까.

그러면서도 우리가 먹는 라면이 그 쪽에서 왔고, 새우깡은 원래 일본의 대표 스낵이었다거나, 애들이 죽고 못살던 카라멜도 그 쪽 거와 외모까지 똑같더라는 건 감쪽같이 몰랐다. 이미 서양음식의 전반이 일본에 죽죽 들어와서 일본화 된 지 한참 지난 오늘날까지도, 일본에 가서 직접 먹지 않고 우리나라에 변형된 형태로, 특히 이자까야 형태로 들어온 음식들을 먹는 이들은 밍밍하고 별맛없고 이것저것 섞어놓은 음식들 뿐이더라, 정도로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나라고 뭐 다르지 않았지만, 맛은 둘째 치고 내가 처음 일본에 가서 식도락을 해보면서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아이고야 이 사람들 소식한다는 소리 다 개뻥이다, 라는 것. 많이 먹는다, 정말 많이 먹는다. 미국인이 대형 햄버거와 대형 콜라를 끼고 뒤뚱거리니 많이 먹는 걸로 보이는 반면, 일본인은 뭐든 작은 식기에 소담하고 단정하게 음식을 담으니 소식이라 오해 받은 거다. 밥도 많이 먹고 밥 먹으면서 맥주도 많이들 마시고 디저트도 되게 맛난 거 맨날 먹는다. 그리고 계발 또 계발된 수많은 국적불명이지만 일본화된 음식들이 구미를 자꾸 당긴다. 

그리하여 <심야식당>은 공전의 히트, 일본의 백반집이라고 해도 좋을 이 식당에서 취급하는 음식은 보릿고개 시절 정통 일본식에서부터 소위 경양식집에서나 맛볼 수 있었던 웰빙스럽지 않은 양식까지, 다양했고 거기에 단골들이 밤늦게 와서 털어놓는 짧은 이야기들을 버무리는 솜씨가 좋아 나도 4편까지 즐겁게 읽었던 책이다.  

아베 야로에 대한 경의로 칼럼니스트인 호리이 켄이치로가 지은이 이름을 아베 야로라고 하자고 주장했는지, 아니면 그냥 한국의 출판사가 한국의 독자를 의식하여 아베 야로=심야식당이란 공식 하에 켄이치로를 설득, 저렇게 나왔는가 사정은 모르겠지만 명백히, 책을 열자마자 이 에세이를 쓴 사람은 켄이치로라는 걸 알 수 있어서 책의 처음 이미지는 좀 아리송하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람 켄이치로의 글쓰기 방법이 곧 마음에 들었다. 소재를 척척 끌어다 쓰되, 거기에 국한되지는 않고, 과거와 현재를 홍길동처럼 쉽사리 휘적거리고, 그러다 결론은 가끔 아무 것도 아니에요 메롱, 발랄하다가도 또 짐짓 심각해지고, 술 한잔 편하게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만한 아저씨 같아서 얇은 책의 두께만큼이나 부담이 없고, 결정적으로 푸드에세이라는 본업에 충실했다. 아주아주 간단한 레시피와 사진을 떡 하니 대단한 것처럼 뻔뻔하게 올려놓았는데 그게 또 대부분의 게으름뱅이(=심야식당 팬 대다수가 여기에 속하지 않겠는가)에게 아주아주 솔깃하기 때문. 

그리하여 결국, 나 같은 초게으름뱅이도 이런 걸 만들어서 얌냠하고 먹었다는 이야기. :) 간단레시피였는데 따라하니까 그대로 맛이 나서 신기하고 신이 나더라구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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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er 2010-08-1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설이고 있는데, 더 갸웃하게 해요. ^_^ (엇, 별이 네개면..)

치니 2010-08-18 12:0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심야식당>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 또 읽었어도 그걸 좋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 호오가 좀 갈리지 싶기도 하고, 그냥 담백하고 술술 읽히는 에세이 좋아하는 이들은 괜찮겠다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안 읽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책은 아닌 거 같고...저도 갸웃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