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게을렀던 것을 반성하면서 그간 있었던 어린이 고객님들의 사랑스러운 일화들과 내가 읽은 재밌었던 책, 망한 책에 대해 무려 한 시간에 걸쳐 페이퍼를 썼는데 (영문도 모르는 채) 날렸다. 우리집 인터넷 탓일 거다.

 

원통해서 마지막에 쓴 것만 적어 두겠다.

 

"이제 절반 정도 썼는데 배가 고파서 못 쓰겠다. 오늘 점심은 굉장히 맛 없는 계란국과 냉동 흑미밥, 너무 짠 시금치 무침이다. 결국 맛있게 먹겠지. 어쩐지 분하다."

 

쓰고 보니 더 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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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5-12-0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반성 내용 중에 ˝글로 쓰지 않은 생각과 말들은 다 날아가겠지˝ 운운했는데, 뭔가 스스로의 예언이었나!

네꼬 2015-12-09 12:36   좋아요 0 | URL
그래서 썼는데 왜 날아가! 분해!

보슬비 2015-12-09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에 임시저장 기능이 있는데 한번 확인해보세요.~ 가끔 임시저장도 잘 안되는경우도 있지만^^;;

저도 종종 분한일들을 당해서 댓글 남겼어요.ㅎㅎ

네꼬 2015-12-10 12:29   좋아요 0 | URL
임시 저장도 보았는데 아주 깨끗이 날아갔더라고요. 아마 저희 집 문제인 것 같아요. 게을렀던 값이다 하고 있어요. ㅠㅠ 감사합니다. (동지!)

뽈따구 2015-12-0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저도 분해요 ㅠㅠ. 네꼬님 글이 날아가다니!!! ㅠㅠ

네꼬 2015-12-10 12:30   좋아요 0 | URL
뽈따구님, 분한 마음 감사합니다. (이상하네요?) 지난 일은 잊고 새로 잘 해보겠습니다.....

Mephistopheles 2015-12-09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역시 글이란 이렇게 읽기만 해도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거리는 네꼬님을 상상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네꼬 2015-12-10 12:31   좋아요 0 | URL
제 글이 그렇게 생동감! 있었던! 것으로 알겠고, 메피님 댓글도 참 생동감! 넘쳐서 이렇게! 제가 또 분하네요?

Mephistopheles 2015-12-10 12:48   좋아요 0 | URL
그치요 마치....생선같은 글과 댓글이죠....생선이요 생선....그 노라조가 제목지어 부른 그 생선말이지요..

네꼬 2015-12-10 13:16   좋아요 0 | URL
하하. 메피님 기억력 짱이셔 ㅋㅋ

다락방 2015-12-10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ㅠㅠ 어제 바빠서 서재브리핑에 네꼬님 이름 있던것만 살짝 보고..

아 맞다 네꼬님 글썼던 것 같은데? 하고 이리 와봤건만.. 글 날렸다는 거네요. 우앙 ㅠㅠㅠㅠㅠ
분하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네꼬 2015-12-10 17:23   좋아요 0 | URL
몽창 ㅜㅜㅜㅜㅜ 벌이에요 벌. 게을러서 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나 지지 않고 또 쓸 거임!

moonnight 2016-01-30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렇게 분한 일이 제가 모르는 사이 일어났었군요!!! ㅠ_ㅠ;;; 근데, 결국 맛있게 먹겠지. 에서 빵 터졌어요. ㅎㅎㅎㅎㅎㅎ;;;

네꼬 2016-01-30 12:10   좋아요 0 | URL
그랬어요, 맛있게 먹었어요. 이런 바보 같은 나날!!!!!!!!!!
 

문맹이던 H가 어엿한 1학년이 되어 독서교실에 다시 찾아왔다. 1년만의 재회. 매너남 조기 교육을 받는 어린이답게, 체크무늬 반바지에 흰 셔츠, 까만 구두 차림에다 해바라기 한 송이까지 들고 왔다. 나도 정중히 받았다. 


H는 며칠 전에 친구 소개로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게임도 못(못!)하고 읽었다면서 가방에서 엽기 과학자 프래니 한 권을 꺼냈다. 차례를 펼치곤, 요기 요기 요기 요기 요기 요기가 재밌단다. 특히 요기가 재밌다고 해서 선생님도 읽어 보고 싶다고 했더니 문득 나를 바라보며 "같이 읽을래요?" 한다. 8세 남의 "같이 읽을래요?"라니. 


비록 "으스스한 소리"를 "스르르한 소리"로 읽고, "우스꽝스러운"을 차마 읽지 못해(아마도 여기에 진짜 '꽝'이라고 쓰인 걸까? 이렇게 안 어울리게? 하고 생각한 듯) 주저했지만 H의 낭독은 너무나 달콤했다. 같이 읽을래요? 그러고 말고, 그러고 말고. 



나는 이 책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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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숲 2015-09-16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쏘스윗 😆

네꼬 2015-09-17 11:19   좋아요 0 | URL
얼마나 진지하게 읽는지 들었으면 더 스윗하셨을 거예요 *..*

moonnight 2015-09-16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잉 이렇게 사랑스러운 (전문맹;;;)소년!!!♥♥♥♥♥♥♥ 저도 듣고 싶어요. 같이 읽을래요?^^(제 조카아이는 만화볼 때 말해요. 이거 재미있어요. 고모 같이 봐요. 그럴 때도 너무 달콤해서 녹아내리는 고모인데 같이 읽을래요?라니♥♥♥)

네꼬 2015-09-17 11:20   좋아요 0 | URL
전문맹 ㅎㅎㅎㅎㅎ 현재는 쓰기만 반문맹이에요. 어린이가 뭘 권하는 건 왜 이렇게 좋을까요? 그게 뭐든지요. 힝 문나잇님네 조카는 고모 좋아하는구나!

마노아 2015-09-16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렇게 사랑스러운 8세남이라니!!!

네꼬 2015-09-17 11:20   좋아요 0 | URL
제가 녹아요 안 녹아요? ㅠㅠ

뽈따구 2015-09-17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같이 읽자˝ 가 달콤한 말이었다는 걸......... 몰랐어요 >.,.<

네꼬 2015-09-19 12:1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에요. 내내 웃으면서 들었습니다. ^^

그리운남쪽 2015-09-20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꼬님!!
책정보가 필요할 때만 구경하던 알라딘서재를 네꼬님 덕분에 매일 들어오게 되고, 네꼬님의 거의 모든 글에 댓글을 막 다는 다락방님 서재도 어쩔 수 없이(?) 들락거리게 되고, 네꼬님이 일시적으로 절필하시면 금단현상에 막 시달리기도 하다가. 야튼 고마운 게 넘 많아서 이걸 다 어찌 일일이 거론한담, 난감하여 감사의 말도 일년 동안 못 남겼습니다마는. 8세남의 달콤함을 포착한 네꼬님의 사랑스러움을(으윽, 좀 간질) 찬양하지 않을 수 없어 일차로 감사의 말을 짧게(?) 써 보아요. 음...이런, 한 마디면 될 걸. 패...팬입니다!

네꼬 2015-09-21 14:54   좋아요 0 | URL
그리운남쪽님 안녕하세요? 패...팬레터 받은 건가요, 저? (대놓고 좋아 날뜀) 이 댓글은 앞으로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꺼내 보겠습니다. ㅠㅠ 저야말로 감사를 다 못 쓰겠는걸요. 야 네꼬, 너 열심히 좀 써라! (스스로 괜히 말해 보았어요.)

뽈따구 2015-09-2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꼬님 글을 보다가,
다락방님 글을 보게 되고,
다락방님글 댓글을 다는데 로긴 하라길래 하고,
로긴 한 김에 읽은 동화책 남겨볼까 하고 남겼더니......!
˝Thanks to˝ 라는게 있네요! (비록 1%로지만)
두 분 글 보고 책 많이 샀는데...... 아깝습니다!
뒤늦게 Thanks To를 눌렀으나, 이후 구매해야 적용되는는.... ㅡ.ㅡ
담엔 꼭 Thanks To 하고 살래요! ㅎㅎㅎㅎ

네꼬 2015-09-21 14:52   좋아요 0 | URL
이로써 제가 얼마나 다락님을 영업했는지(응?) 다락님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응??) 하하 이거 영광이에요. 앞으로도 열심히 소개해보겠습니다!
 
루카 루카 풀빛 동화의 아이들
구드룬 멥스 지음, 미하엘 쇼버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말 다 알아들었지, 파니?"

(..) 끝에 물음표를 세 개나 찍은 것 같은 그러니까 끝없이 긴 푸딩처럼 길고 말랑말랑하고 달콤하게 '파니???'라고 부른 사람은 없었다. 그 소리는 내 귀에 아주 부드럽게 들리면서 자꾸만 나를 빙긋이 웃게 했다.

엄마가 미체 아줌마한테 전화 좀 하자고 했다. 나는 내 방으로 갔다. 그러나 까치발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래야 '파니???' 하는 소리가 내 귀에서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39-40쪽)

 

이제 파니에게 루카는 학교 친구지만, 남자 친구 '루카-루카'이기도 하다. 물론 둘 사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비밀이다. 학교에서는 보통 때처럼 행동하지만 학교 밖에서는 시간을 정해 통화를 하고 놀이터에서 만나 서로 손을 꼭 잡는다. 이따금 서로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기도 한다. 루카-루카가 파니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아주 빠르게. "빠른 것은 금방 다시 가버렸지만 촉촉한 것은 조금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때, 촉촉한 것은 사라지고 없지만 빠른 것은 여전히 거기 남아 있다.

 

초등학교 4학년 파니의 첫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명확한 이유 없이 어느 순간 루카가 루카-루카가 되었고, 그 다음부터는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전화기 앞에서 안달하며 벨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에 의미를 부여하고, 질투하고 괴로워하는 파니를 응원하면서도 아니 자존심도 없냐 너무 그러면 안돼, 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에 놀랐다. 자존심을 내팽개쳐서가 아니라, 그런 걸 아예 떠올리지를 않아서 파니의 사랑이 진행된다. 어린이의 사랑이 어른의 사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 뿐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이토록 섬세하게 그린 작품은 흔치 않다. 게다가 어린이의 사랑이라고 해서 귀엽게, 기특하게, 풋풋하게 그리지도 않았다. 파니의 엄마 아빠는 간섭하지도 방관하지도 않으면서 파니의 사랑을 지켜본다. 파니의 사랑에 닥친 위기가 다른 이성 친구가 아닌 것도 좋다. 사랑의 외연이 얼마나 넓은가. 작가는 어린이의 세계를 존중하고 있다.

 

파니의 이별도 이렇게 존중받는다. 파니의 슬픔은 그저 밥을 먹기 싫거나 엄마랑 말하기 싫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아빠가 파니를 위로하기 위해 서커스에 데려갔을 때 남들은 모두 깔깔 웃는 장면에서 파니 홀로 눈물을 흘린다.

 

아빠는 무척 당황하며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난 아프지 않았다. 아니, 아팠다. 온통 다 아팠다. 그러나 그 말을 아빠에게 할 수는 없었다.

아빠는 내가 울도록 내버려두려고 하지 않았다. 아빠한테는 내 울음이 너무 크고 너무 길었다. 아빠는 자꾸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나가고 싶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나가고 싶지 않았다. 걸으면서는 잘 울 수 없으니까. (130쪽)

 

아빠는 서툰 방법으로나마 사랑을 담아 파니를 위로한다. 파니는 마침내 배 속의 '돌멩이'가 없어진 것을 안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관계를 마무리하고 마침내 루카-루카가 아닌 루카와 나란히 앉아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파니가 서커스의 우스꽝스러운 부분에서 눈물을 흘릴 때 나도 같이 울었다. 파니는 아빠 덕분에 울음을 그쳤지만 나는 조금 더 울었다. 좋은 어린이문학이 그려내는 세계는 사람을 안심하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 않고 그 일을 해내는 너를 이해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 이번에는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너는 잘해낸 거고, 앞으로도 이렇게 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말을 쓰면서 나는 또 주책없이 울고 있다. 어린이의 눈물인지 어른의 눈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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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08-0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눈물이ㅠㅠ; 남들은 모두 웃고 있는 장면에서 홀로 우는 파니가 너무 ㅠㅠ;;; 어린이의 사랑과 이별을 존중하는 이야기 참 좋아요. 저도 읽어볼래요. ㅠㅠ

네꼬 2015-08-11 17:50   좋아요 0 | URL
ㅠㅠ 눈물 난다오. 나중에 파니가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일 때 얼마나 뭉클한지요. ㅠㅠ

다락방 2015-08-0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아요. 남들이 웃는 장면에거 나 혼자 우는 거요. 제가 그걸 해봤어요. 저 이거 읽어볼래요!

네꼬 2015-08-11 17:50   좋아요 0 | URL
이런 사랑 얘기는 다락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모쪼록!

뽈따구 2015-08-1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가족들을 찐하게 사랑하는데도, 사랑은 왠지 낯설어서.
리뷰를 세 번이나 읽고서야 책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

PS. 뽈따구는 대학교때 별명인데 닉네임으로는 희소성이 있어서 편하게 쓰고 있어요. ^^

네꼬 2015-09-16 18:12   좋아요 0 | URL
뽈따구님, 제 답글이 늦었지만 (왜 이제야.. ㅠㅠ) 사랑은 언제나 두근두근입니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군요...) 그런데 정말이에요. 이 책 읽으시면 두근두근하실지도!
 

 

 

 

 

 

 

 

 

 

 

 

『너하고 안 놀아』는 노마, 영이, 기동이, 똘똘이 등 한 동네에 사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이다.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저마다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게 재미있다. 책을 읽은 뒤에 이야기 속 인물과 비슷한 친구 이름 적기를 했다. 슬기롭고 씩씩한 주인공 노마 옆에는 다들 자기 이름을 적지 않을까 했는데, 진우도 은호도 지은이도 약속이나 한 듯 석규 이름을 썼다. 아이들 말을 들어보니 놀이를 제안하고 역할을 나누는, 말하자면 리더 역할을 잘하는 아이란다. 다만 진우는 “근데 걔 좀 잘난 척을 해요.” 하고 볼멘소리를 덧붙였다.

 

 

 

 

 

 

 

 

 

 

 

 

그런데 『앨머의 모험』을 읽은 뒤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이 책은 엉뚱한 물건들을 배낭에 넣고 여행을 떠난 앨머가 결국 그 물건들 덕분에 모험에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앨머처럼 모험을 떠난다면 배낭에 무엇을 넣을지 목록 작성하기를 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 친구 한 명까지는 같이 가도 된다고 했다. 역시 모두가 같은 이름을 적어 냈는데, 이번에는 석규가 아니라 세준이였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친구가 꼭 같이 있고 싶은 친구는 아닌 모양이다.

 

“세준이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아요.”

“세준이랑은 안 싸워요. 아무도 안 싸워요.”

“모르겠어요. 그냥 웃겨요.”

 

모두가 세준이를 좋아한다. 세준이는 외모도 성적도 보통인 평범한 아이다. 마냥 활발한 것도 아니고 이따금 수줍음을 타기도 한다. 그런데도 같은 반 남자 아이들은 세준이와 같은 모둠이 되고 싶어하고 여자 아이들 대부분이 세준이에게 고백 편지를 썼다. 엄마들도 “애가 집에 와서 세준이 얘기를 제일 많이 한다” “어른인 나도 세준이하고는 얘기할 맛이 난다”며 세준이는 대체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사실 세준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 역시 세준이가 좋다.

 

세준이는 어른들에게는 물론 친구에게도 인사를 잘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특별히 신경 써서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인사를 받으면 답을 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세준이가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의외로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적절하게 대꾸한 뒤에 자기 얘기를 한다. 세준이와의 대화가 즐거운 것은 바로 이런 매너 때문이다.

 

 

 

 

 

 

 

 

 

 

 

 

『만복이네 떡집』은 마음과 달리 자꾸만 못된 말과 행동이 튀어나와 친구가 없는 만복이가 이상한 떡집을 발견하고 친구 사귀는 법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입을 딱 달라붙게 하는 찹쌀떡, 좋은 말을 하게 하는 꿀떡, 남의 생각을 듣게 하는 쑥떡 덕분이다. 같이 책을 읽던 세준이가 자기는 이 떡집에서 파는 떡 중 ‘오래 오래 살게 하는 가래떡’을 사 먹고 싶다고 했다.

 

“이거 값이 아이들 웃음 아흔아홉 개인데, 너무 비싸지 않아?”

“한 번에 여러 명이 웃으면 되잖아요!.”

 

역시 세준이는 통이 크구나, 했더니 즐겁게 웃던 세준이가 문득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저희 반에도 욕하고 짝꿍이랑 만날 싸우는 애가 있는데요, 걔가 속마음은 되게 약해요. 근데 그거 다른 애들이 알까 봐 일부러 막 더 세게 하는 거예요.”

나는 깜짝 놀라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엄마가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저도 좀 그런 것 같아요.”

 

세준이의 인기는 결국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세준이 자신은 친구들의 마음을 다 받아주느라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세준이는 모험용 배낭에 각종 요리 도구와 만화책과 게임기를 넣겠다고 하면서도 친구 이름은 적지 않았다.

 

“꼭 친구랑 같이 가야 돼요?”

“아니야. 혼자 가면 심심할까 봐 그러지.”

“그럼 혼자 갈래요. 저는 심심한 거 좋아요!”

 

친구가 많지만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세준이. 이런 세준이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2학년  / 2015년 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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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약한 속마음, 센 겉행동
    from 뽈따구책방 2015-11-05 16:16 
    어제 아들이 친한 친구가 짝꿍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막 다 속상해서 "왜 그럴까" 싶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네꼬님이 글로 써준 세준이 말이 생각났다. “저희 반에도 욕하고 짝꿍이랑 만날 싸우는 애가 있는데요, 걔가 속마음은 되게 약해요. 근데 그거 다른 애들이 알까 봐 일부러 막 더 세게 하는 거예요.” 와... 이런 말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리고 더불어 아들의 또 다른 친구의 일기도 생각이 났다. "★
 
 
다락방 2015-08-06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준이가 자라면 저 같은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요? 하하하하하


=3=3=3=3=3=3=3=3=3=3=3=3=3=3=3=3=3


네꼬 2015-08-08 09:32   좋아요 0 | URL
이 댓글은 말씀보다 도망 방귀가 핵심이군요!

뽈따구 2015-08-06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진우, 은호, 지은, 석규, 세준이 다 초등학교 2학년일까요? ㅎㅎ
(문득 나이가 궁금해지네요. ^^)

세권다 미리보기가 재미난데, 특히 만복이네 떡 집은 미리보기가 참 재미나네요.
근데 중고책방엔 ˝만복이네 떡 집˝만 없어요. 슬퍼요. ㅜㅜ.

네꼬 2015-08-08 09:35   좋아요 0 | URL
네 저 이야기 속 아이들은 모두 2학년이에요. 각자 성격이 더 잘 보이는 때인 것 같아요. (1학년은 뭐 대화를 하는 데 의의를 ㅎㅎ)

만복이네 떡집은 읽으면 떡 먹고 싶은 부작용이 좀 있습니다. 그림이 사실적인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먹고 싶어져요. 중고 등록 알림 서비스를 받아보시지요!

moonnight 2015-08-06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다. 세준♡ 제 조카아이들도 세준이같은 어린이로 성장했음 좋겠어요. ^^ 한편으론 세준이도 나름 힘들어서 친구 없이 모험을 떠나고 싶어하는 건가 싶어서 안스럽기도ㅠㅠ

네꼬 2015-08-08 09: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세준이가 친구 없이 있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까 좀 걱정을 했어요. 세준 어머님도 그렇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MBTI 검사를 했더니 (나 자격증 있음 엣헴) 자기가 좋아서 친구랑 노는 것 같더라고요. 막 그것도 멋짐. *ㅅ*
 

 

 

 

 

 

 

 

 

 

 

 

 

 

한때는 흙으로 척척 빚어 사람을 만든 하느님이 지금은 송편 하나를 어쩌지 못해 쩔쩔 매고 있다. 얼굴에도 팔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들 예수도 재주 없기는 아버지를 닮았는지, 할머니가 친절히 알려주는데도 멋쩍어 얼굴을 붉힌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은 오순도순 사람 사는 정에 가슴이 더워지고, “원래 심보 나쁜 사람은, 송편 빚어 놓으면 그렇게 못생겼단다.” 하는 할머니 핀잔에 눈물이 핑 돈다. 그래, 내가 못나서 사람을 못나게 빚은 걸 누굴 탓하겠냐, 그래, 내가 미안하다 하시겠지.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의 삽화는 사실 예술적이기보다는 통속적인 그림에 가깝다. 90년대 초반 동네 서점 어린이 책 코너를 휩쓴 ‘소년소녀 명랑 소설’ 그림이 그랬듯, 특별한 기법 없이 단순하고 재미있게 그려진데다 모든 면에 그림이 들어간다. 딱 만화 같다. 이런 그림의 강점은 만만함이다. 하긴 하느님이 우리 곁에서 가난하고 힘들게 산다는 이야기인데 그림이 세련되면 못나 보이고 비장하면 민망했을 것이다. 할 줄 아는 일은 없으면서 툭하면 울고 떼쓰는 천덕꾸러기 하느님, 어둡고 축축한 지하 셋방에서 앓으며 에어컨 있는 아파트에 사는 꿈을 꾸는 하느님 이야기는 세속적이고 평범한 그림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나는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그림보다 더 좋은 삽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아직 통일이 안 되었으니 아직 이 땅에 계실 텐데, 지난 한가위에 하느님은 어디서 송편을 빚으셨을까.

 

 

 

* 계간 『창비어린이』 2014년 겨울호에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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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따구 2015-08-0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만화 같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서 책을 찾아봤어요. 잘 읽겠습니당~ /^^

네꼬 2015-08-04 17:19   좋아요 0 | URL
뽈따구님 (닉네임이 너무 재밌어요 ㅎㅎ) 일단 이 동화가 좋은 작품이에요. 권정생 선생님이 웃긴 것도 잘 쓰신다는 걸 알게 해준 작품입니다. 기회 되시면 꼭 읽어봐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