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하고 안 놀아』는 노마, 영이, 기동이, 똘똘이 등 한 동네에 사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이다.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저마다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게 재미있다. 책을 읽은 뒤에 이야기 속 인물과 비슷한 친구 이름 적기를 했다. 슬기롭고 씩씩한 주인공 노마 옆에는 다들 자기 이름을 적지 않을까 했는데, 진우도 은호도 지은이도 약속이나 한 듯 석규 이름을 썼다. 아이들 말을 들어보니 놀이를 제안하고 역할을 나누는, 말하자면 리더 역할을 잘하는 아이란다. 다만 진우는 “근데 걔 좀 잘난 척을 해요.” 하고 볼멘소리를 덧붙였다.
그런데 『앨머의 모험』을 읽은 뒤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이 책은 엉뚱한 물건들을 배낭에 넣고 여행을 떠난 앨머가 결국 그 물건들 덕분에 모험에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앨머처럼 모험을 떠난다면 배낭에 무엇을 넣을지 목록 작성하기를 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 친구 한 명까지는 같이 가도 된다고 했다. 역시 모두가 같은 이름을 적어 냈는데, 이번에는 석규가 아니라 세준이였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친구가 꼭 같이 있고 싶은 친구는 아닌 모양이다.
“세준이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아요.”
“세준이랑은 안 싸워요. 아무도 안 싸워요.”
“모르겠어요. 그냥 웃겨요.”
모두가 세준이를 좋아한다. 세준이는 외모도 성적도 보통인 평범한 아이다. 마냥 활발한 것도 아니고 이따금 수줍음을 타기도 한다. 그런데도 같은 반 남자 아이들은 세준이와 같은 모둠이 되고 싶어하고 여자 아이들 대부분이 세준이에게 고백 편지를 썼다. 엄마들도 “애가 집에 와서 세준이 얘기를 제일 많이 한다” “어른인 나도 세준이하고는 얘기할 맛이 난다”며 세준이는 대체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사실 세준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 역시 세준이가 좋다.
세준이는 어른들에게는 물론 친구에게도 인사를 잘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특별히 신경 써서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인사를 받으면 답을 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세준이가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의외로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적절하게 대꾸한 뒤에 자기 얘기를 한다. 세준이와의 대화가 즐거운 것은 바로 이런 매너 때문이다.
『만복이네 떡집』은 마음과 달리 자꾸만 못된 말과 행동이 튀어나와 친구가 없는 만복이가 이상한 떡집을 발견하고 친구 사귀는 법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입을 딱 달라붙게 하는 찹쌀떡, 좋은 말을 하게 하는 꿀떡, 남의 생각을 듣게 하는 쑥떡 덕분이다. 같이 책을 읽던 세준이가 자기는 이 떡집에서 파는 떡 중 ‘오래 오래 살게 하는 가래떡’을 사 먹고 싶다고 했다.
“이거 값이 아이들 웃음 아흔아홉 개인데, 너무 비싸지 않아?”
“한 번에 여러 명이 웃으면 되잖아요!.”
역시 세준이는 통이 크구나, 했더니 즐겁게 웃던 세준이가 문득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저희 반에도 욕하고 짝꿍이랑 만날 싸우는 애가 있는데요, 걔가 속마음은 되게 약해요. 근데 그거 다른 애들이 알까 봐 일부러 막 더 세게 하는 거예요.”
나는 깜짝 놀라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엄마가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저도 좀 그런 것 같아요.”
세준이의 인기는 결국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세준이 자신은 친구들의 마음을 다 받아주느라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세준이는 모험용 배낭에 각종 요리 도구와 만화책과 게임기를 넣겠다고 하면서도 친구 이름은 적지 않았다.
“꼭 친구랑 같이 가야 돼요?”
“아니야. 혼자 가면 심심할까 봐 그러지.”
“그럼 혼자 갈래요. 저는 심심한 거 좋아요!”
친구가 많지만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세준이. 이런 세준이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2학년 / 2015년 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