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와 지은이는 1,2학년을 같은 반에서 보냈다. 아이들은 물론 엄마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방과후 활동도 함께 하는 게 많다. 제일 두드러지는 공통점은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다. 아직 저학년이니 성적에 의미를 두긴 어렵지만, 학습능력은 확실히 뛰어난 편이어서 부모님은 물론 학교 선생님들도 꽤 기대를 하고 있다. 특히 연우 부모님은 일찌감치 대학입시까지 청사진을 그려 연우의 학업을 관리하고 있다. 영재원을 비롯해 각종 학원 일정이 꽤 빡빡하지만 연우는 “어려운 걸 배우는 게 좋아요” 하면서 잘 해나가고 있다.
그런데 3학년이 되는 소감을 물었을 때 연우 대답이 심드렁했다.
“교과서를 새로 받았을 땐 좋았는데요, 펼쳐 보니까 수준이 너무 낮아요. 수업도 지루하고요.”
교과서는 원래 학년에 적절한 내용이니 ‘수준이 낮다’는 것은 맞지 않고 ‘나한테는 쉽다’ 정도가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이걸 어떻게 설명하시나, 친구들은 무얼 궁금해 하나 살펴보라고 다독였지만 아직 어린 연우가 “시시한” 학교 수업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지은이의 소감은 사뭇 달랐다.
“긴장되고요, 설레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요.”
“교과서 되게 많다면서. 공부하기 어떨 것 같아?”
“저는 과학이 좋은데 이제 아예 수업 시간에 배우잖아요. 기대가 돼요. 새로 배우는 과목들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사회…… 뭐지? 과부도? 그런 책도 있던데 그게 좀 걱정이에요. 엄청 두껍고 지도만 많거든요. 그것 빼고는 좋아요.”
학교에서 새로운 과목을 가르쳐주신다는 것은 네가 그것을 배울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라고, 그러니 낯선 ‘사회과부도’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지도에도 숨은 원리 같은 것이 있으니 공부하면서 찾아보라고도. 지은이는 “어떤 일의 원리를 아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줌을 연구하자』를 읽을 때 지은이는 똥과 오줌의 차이, 오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아는 것만큼 질문 그림표를 마음에 들어 했다. 오줌을 둘러싼 온갖 질문을 엮은 일종의 마인드맵인데, 지은이는 이 책을 읽은 뒤로 종종 낙서하듯 그림표를 그린다. 『아씨방 일곱 동무』를 읽은 날도 연습장 가득 질문을 적었다. “바느질 상자에는 또 무엇이 들어가지?” “왜 요즘은 인두를 쓰지 않을까?” “일곱 동무, 일곱 난쟁이, 일곱 색깔 무지개,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지은이는 아직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지은이 엄마는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있는 한 보내지 않을 생각이라 하신다. 예습 정도를 넘어선 선행학습 역시 시키지 않겠다고. 그런 엄마의 원칙과 지은이가 학교 공부를 재밌어 하는 것,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인과 관계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국어사전 활용법을 공부한 날, 지은이는 살짝 들떴다. 사전 찾는 방법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된소리의 자리, 이중모음의 자리 등 단어 배열의 체계를 전체적으로 이해한 순간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사전을 뺏어가서는 “선생님, 진짜진짜 복잡한 단어 불러 주세요!” 한다. 단어를 찾기 전에 짐작해 적고 사전에서 풀이를 찾아 비교하는 활동도, 풀이만 듣고 단어를 맞히는 활동도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이다. 힌트도 사양하고 답을 골똘히 생각하는 걸 보니 요 작은 머리에 무엇이 가득할까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냐고 묻자, 지은이는 자기가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라면서 쑥스러워했다. 그래도 계속 비결을 물으니, 공부를 재미있어 하면 된단다.
“공부가 재미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
“제 생각인데요, 공부가 재미있으려면, 공부를 잘해야 되는 것 같아요.”
“앗, 그럼 지금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공부가 재미없어서 계속 못할 수밖에 없어?”
왠지 내가 속이 상해서 따지자 지은이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뭐든지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되잖아요? 공부도 열심히 하면 잘하게 돼요.”
공부 잘하는 요령을 캐물으면서 ‘열심히 한다’는 건 생각지도 않았던 나는 뜨끔했다. 땀 흘리지 않고 득만 보려 하는 사람을 불한당이라 하던가.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1학년 / 2015년 여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