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뿔이 나고 방망이를 든 일본 도깨비와 달리 우리나라 도깨비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한다. 상상 속 존재의 국적이며 생김새를 따지는 것에 시큰둥할 때도 있었지만, 『샘마을 몽당깨비』를 보면 우리나라 도깨비가 요괴처럼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의 이야기에 등장하기에는 아무래도 사람처럼 생긴 쪽이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사람인 버들이를 좋아한 죄로 은행나무 뿌리에 갇히는 벌을 받다 엉겁결에 현대에 깨어난 몽당깨비는 털이 부숭부숭 난 얼굴과 손만 가리면 그냥 땅딸막하고 후줄근한 사람으로 보인다. 텔레비전에 “도깨비가 홀릴 지경”이라며 놀라고 주삿바늘에 털이 곤두서서 줄행랑치는 모습도 친근하다. 글에서나 그림에서나 투박하지만 정이 가는 캐릭터다.


그런데 그림을 들여다볼수록 섬세함에 놀라게 된다. 가는 펜으로 윤곽을 그리고 여러 겹의 선으로 명암을 나타냈는데, 빛과 어둠의 조화가 단조롭지 않게 연출되었다. 주인공이 도깨비이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간이 주로 밤이기 때문에 그림에 색을 입혔다면 오히려 칙칙해지기 쉬웠을 것이다. 버들이의 후손 아름이가 새로운 보호자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달빛이 비스듬히 그들을 비춘다. 이별이 아쉬워 주저앉은 몽당깨비의 굽은 등에는 가만히 어둠이 앉았다. 정성스러운 손길로 그려진 선은 밤을 부드럽게 표현하고 어둠 속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들을 보게 해준다. 도시 개발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가르치기 위해서, “사람들 세상 같아도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기꺼이 벌을 받으러 은행나무로 돌아가는 몽당깨비 이야기에 걸맞은 그림이다. 담백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 계간 『창비어린이』 2015년 봄호에 쓴 것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16-01-31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우리 네꼬님 문학잡지에 글 쓰시는구나. 멋지시다.@_@;(저만 뒷북인걸까요? 죄송ㅠㅠ) 저같은 설렁독자는 무한 감탄하게되는 네꼬님의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 잘 읽었습니다^^

네꼬 2016-01-31 15:18   좋아요 0 | URL
문학잡지에 글 쓴다, 라니 너무 거창해요;; 계절에 하나씩 짧은 글 쓰는 거예요. 너무 게으른 것 같고, 여기저기 흩어지는 것 같고 해서 한데 모아두려고 서재에 적어 두는 거예요. (사실은 지금도 하나 마감해야 되는데 시작이 안 되어서 지난 원고들 보고 있어요... ㅠㅠ 마감이여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