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구두가 반짝반짝 빛났다. 서너 번의 커튼콜 다음, 기쁨에 찬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웅성대는데, 내 머릿속엔 그의 구두가 반짝이고 있었다. 새까만 구두. 반짝이던 구두.

리차드 용재 오닐 & 세종 솔로이스츠 _ 2008 신년음악회 (고양시)
등장하는 족족 언니들이 다 예뻤다. 오빠들은 다 멋있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나는 벌써 좋았다. 보면대에 가려 오닐 씨가 잘 안 보였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지휘자 없이 똑같은 순간에 연주를 시작할 수 있다니 나는 그저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서로 눈을 자주 맞추었고, 서로 웃어주었고, 같이 눈을 감고 그랬다. 현악기들의 부드러운 협주는, 언 몸을 녹이는 뜨거운 술 같았다. 좋아서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오닐 씨가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 독주자로 나섰다. 그는 생각보다 몸이 자그마했고 생각보다 얼굴이 작았고 생각보다 다리가 길었다. (다리 긴 사람 무조건 좋아요.*_*) 그런데 연주를 시작하자 긴 다리의 포스가 무색하게 몸이 구부정해졌다. 아니 다시 반듯해졌다. 아니 또 구부정해졌다. 다리가 벌어졌다. 모아졌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 바로 했다. 인상을 썼다. 아니 웃었다. 정신이 없었다. 쇼맨십인가?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을 주었다. 그게 아니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비올라가 가장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매직 카펫 라이드' 를 부를 땐 온 방안을 휘젓고 걸어야 하고,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부를 땐 쪼그리고 앉아야 하는 법이다. 그는 자기 몸을 어떻게 해야 바로 그 음이 나오는지 알고 있었고, 아는 대로 했다. 까만 옷을 차려입고 무대에 선 그를 '용재 오닐'이라고 부른다면, 적어도 그때만큼은 ‘용재 오닐’에 그가 들고 있는 비올라를 포함해야 했다. 손이나 머리카락이 그의 일부인 것처럼 비올라도 그랬다.
모짜르트를 연주할 때 그는 장난기가 넘쳤다. 자기가 연주해서 만들어낸 멜로디가 허공으로 어떻게 날아가는지 어깨너머를 흘끗흘끗 바라보는 오닐 씨는 어린이 같았다. 노느라고 바빠서 아무도 보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머리도, 그 멋진 까만 바지도, 일부러 차려입은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 무대에 오르기 전에 신경 쓴 것이 단 하나 있다면, 그건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였을 것이다. 아무도 안 봐도 돼, 이건 나를 위해서야, 하면서 반짝이는 구두를 신었을 거라고 생각하자 나는 그만 멀미가 나도록 그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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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닐 씨, 어젯밤엔 정말 끝내줬어요. 음반을 사려고 보니 사진 속 그대는 맨발이군요. 역시, 그런 거였어. 고마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