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거녀는 사실 두 명이다. 동거녀 1은 나의 페이퍼에 곧잘 등장하는 그녀이고, 동거녀 2는 현재 부산에서 검사시보를 하고 있다. 내려오기만 하면 잠자리도 제공해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무엇보다 매일 접하는 부산의 사기꾼 아저씨 아줌마와 주먹 깨나 쓰는 청년들의 이야기도 들려주겠노라 (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외로움에 몸서리치기 때문이라는 걸 나도 알고 동거녀1도 안다) 호언장담하는 말에 넘어가 주기로 하고, 금요일 밤 KTX를 타고 부산에 갔다.
부산역에 내려서 보니 여긴 과연 부산. 전철 노선도에 이름이 '자갈치'인 역이 있다. 삼치가 유명했다면, "삼치"역이 되었을까? "다음 역은 삼치, 삼치역입니다." 그랬다면 입맛 좀 다셨을 텐데.
동거녀와 눈물의 재회를 하고, 다음날은 부산의 명물 '밀면'을 먹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가게에 적힌 설명에 의하면, 한국전쟁 당시 북쪽 지역에서 온 피난민들이 고향의 냉면을 너무너무 먹고 싶지만 메밀은 구하기도 어렵고 비싸기 때문에 밀가루를 이용해 면을 뽑아서 냉면처럼 만들어 먹으면서 '밀면'이 탄생했다고 한다. 나는 원래 함흥 회냉면을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 제일 비슷하려니 생각하고 비빔밀면 (물론 大) 한 그릇을 시켜 먹었다. 쫄깃하고 새콤달콤하고 맛있었다.
맛은 있었지만 계란이 반쪽보다 작은 게 나와서 좀 야박하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2005년 APEC 정상회담이 열렸던 '누리마루'라나 하는 곳을 갔는데, 대통령들이 모여 있던 회의실은 물론 다과를 나눈 경치 좋은 응접실(!)조차도 기념관으로 만들어 들어가지도 못하고 구경만 하게 해놔서 어리둥절했다. 그들이 썼던 집기며 일반에 판매한 기념품(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도 전시해놨는데, 나로서는 이 모든 것이 어리둥절한 데다가 이 많은 인력이 (내가 본 것만도 댓 명의 요원들이) 거길 지키고 있는 것도 못마땅했다. (투덜투덜 잔소리가 길다.) 여하간 그래서 기념관에선 쳇쳇 소리를 내며 얼른 나와, 조금 걸었다.
등대를 보는 것도 좋고, 바닷가에 자리잡은 도시를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해운대로 가는 길 :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카메라 배터리는 전사. 휴대폰에 의지해야 해서 너무 아쉬웠다.
6월 중순의 해운대에는 부대낄 정도도, 한적할 정도도 아닌 적당한 사람들이 모여 일광욕을 즐기거나 바닷물에 발을 (일부는 허리까지) 담그고 놀고 있었다. 바닷바람은 적당히 건조하고 차가웠다. 부산엔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과감하게 드러누워 일광욕을 하는 이들도,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고 기타 치고 노래 부르며 노는 이들도, 근육을 씰룩거리며 괜히 해변을 왔다갔다하는 이들도 다 외국인들이었다. -_- 아무튼 그 틈에 잠시 이 고양이도 바닷가에서 노는 시간을 가졌다. 폐에 바닷바람을 잔뜩 잔뜩 채우면서.
모처럼 신나게 놀고 잠시 부산 시립미술관에 들러 신소장품전을 구경했는데, 상설전시까진 못 봐서 모르겠지만, (그냥 보기에도) 좋은 그림이 많이 있어서 좋았다. 휴식을 취하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고양이들의 천국,
자갈치시장!
'혼수용', '선물셋트' 이런 것도 다 고양이를 위한 말인듯! *_*
끝없는 생선의 물결에 정신이 다 혼미했다.
겨우 정신 수습하고 회타운에 안착. 위의 사진에 있는 광어, 우럭, 놀래미 씨는 아래와 같이 변신.
부산의 소주 시원과 함께!
싸고 맛있는 회와 매운탕을 배불리 먹고 나와 느긋하게 걷다 보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저 멀리 솟대가 보였다. 응? 솟대? 죄인들이 여기로 도망오나? 하고 다가가서 보니.
!!! 참으로 고양이를 위한 솟대로다!!!!!!
그런데 부산엔 사연 많은 사람이 많은 걸까? 부산을 떠나기 전 커피를 한잔 하려는데, 밖에 있는 플래카드가 눈길을 끈다.
난 이런 게 어쩐지 울컥하다.
부산엔 바다도 있고 생선도 있다. 대한민국 제 2의 대도시라고들 하지만, 고양이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여길 만하다. 이번엔 시찰로 마쳤지만, 다음엔 꼭 확실히 접수해야지. 그러면 내가 부산시민들 억울한 사연 다 들어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