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숨
김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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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여행을 가더라도 허투루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낯선 인물을 만나더라도 작품 속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이야기의 주요한 배경으로 설정시킨다. 작가의 일상 속 경험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취미활동이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의 취미가 되고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깊은숨』에는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한 편 한 편이 마치 작가의 삶인가? 라고 착각할 정도로 푹 빠져든다. 작가의 프로필을 보니 요가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작품 속 화자도 요가를 즐겨하거나 요가를 더 공부하고 싶어 인도로 떠나는 장면들이 작품에 등장한다. 

 

『깊은숨』 이라는 책 제목은 우리에게 결코 가볍지 않을 내용들을 전개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도 남는다. 보통 '깊은숨'은 복식 호흡을 할 때 쓰는 방법이다. 요가를 할 때 '깊은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책 제목을 보더라도 작품 속 화자들이 '요가'를 매개로 서사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도 있겠다 싶다. 요가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복식 호흡법의 '깊은숨' 말고도 고독, 안도 등과 같은 뭔가 고민거리를 끌어안고 풀리지 않는 숙제를 어렵게 해결하고 나서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감정의 표현도 될 수 있겠다 싶다. 깊은숨을 내뱉을 정도로 풀리지 않는 숙제들이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게이, 레즈비언, 호모섹슈얼과 같은 성소수자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작품 속에 등장시킨다. 특히 마지막 단편소설인 「코너스툴」에서는 주인공이 소설가로 등장한다. 본인이 레즈비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체성을 밝히길 꺼려한다. 출판업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순간 모든 밥벌이가 막힐 것을 알기에 가슴앓이하며 스스로 분노를 삭히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을 꾀한다. 젊은 신인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한다. 그 젊은 신인작가는 다름아닌 자신이 유일하게 이성으로 편한하게 대했던 책방집 남자 주인의 딸이기도 하다. 이처럼 작가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노골적으로 성소수자들의 고뇌와 불편한 사회적 시선을 드러낸다. 

 

또한 그동안 금기 시 되어 왔던 '해외입양'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해외에 입양아를 보내는 국가 중에 최고라는 자료를 본 적이 있다.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찾아오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자료가 남아 있으면 그나마 육체적 부모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반사라고 한다. 해외로 입양 보낼 정도면 얼마나 기구한 사연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자료가 변변치 않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다. 

 

소설가 김혜나님의 7편의 단편소설을 모아 놓은 『깊은숨』을 읽으며 공감되는 부분이 참 많았다. 아버지를 찾기 위한 작품 속 화자의 이야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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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령 1
전형진 지음 / 비욘드오리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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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영조 임금 때 '금주령'이 선포되었다고 한다. '금주령' 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작가는 허구의 인물들을 불러내어 당시 조선 영조 시기 권력의 지형을 그려내고 있다. 권력의 정점에는 오늘날도 마찬가지게지만 '돈'이 자리잡고 있다. 술을 빚어내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돈'이 움직이게 되고 그 돈은 검은 손으로 들어가게 된다. 막대한 돈을 거머쥔 권력자들은 자신의 수하에 많은 사람들을 두게 되고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한다. 드러내지 않고 숨은 곳에서 검은 돈을 모으는 일들은 지금의 조폭을 방불케 하는 검은 조직이 도맡아하게 된다. 

 

『금주령』은 검은 돈과 검은 조직을 밝혀내기 위한 영조 임금의 전력이며 어명과 국법을 신조로 삼은 소수의 정의로운 신하들이 바위에 계란 치듯 고전분투하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이 작품은 조만간 드라마로도 제작된다고 하니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늘 그렇지만 재물과 권력을 탐하는 자들은 작품 속에서 그들이 내뱉는 언행들이 가볍기 마련이다. 반면 자신의 신조를 지키며 불의에 항복하지 않고 목숨조차 아까지 않는 의인들은 말이 곧 성품이며 성품에서 빚어낸 언행을 통해 독자들에게 감명깊게 자리 매김할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울산도호부 지역에서 산곡주라는 모두가 인정하는 술을 빚어내는 양일엽이라는 산곡주의 당주이며 또 한 부류의 인물들은 영조 임금의 총애를 입고 검은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장붕익 판서와 그와 함께 하는 금란방 의인들(강찬룡,나경환, 박영준, 이학송, 이규상)이다. 

 

독자들은 소설 속 인물들에 늘 반하기 마련이다. 혼탁한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고결한 인품을 유지하며 희생이 뒤따른다하더라도 대의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는 인물들에게 자신을 감정을 이입하며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으나 앞으로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투영하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는 늘 주인공이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지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데 위에서 말한 산곡주의 당주 양일엽과 금란방의 대표격인 장붕익은 비참한 죽음을 당한 다는 것이 여느 소설, 영화와 큰 차이점이 있다. 악당, 권력에 빌붙어 지내는 간신배들은 역시나 소설 속에서도 떵떵거리며 산다.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요리조리 법들을 잘 피해 다니며 자신들의 부를 채워가는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소설 속 분위기나 오늘날 아니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와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권력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게 법들을 이용하며 사람들을 자신의 밑에 두어 이용한다. 소설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역사 이래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늘 욕심과 탐욕에 치우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금주령』 1권은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산곡주의 당주 양일엽은 끝까지 술을 빚는 비기를 감추었기에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헸고 자신이 일군 평생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겨야 했다. 금란방의 대표격인 장붕익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을 찍힘으로 또한 비참한 죽음을 당한다. 검은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모인 금란방 조직은 바람 앞에 등불처럼 나약하기 짝이 없게 된다. 그나마 양일엽의 아들 양상규와 그의 처가 깊은 산속으로 피신하게 되고 금란방의 이학송과 이규상은 목숨을 건지며 앞으로 어떤 반전이 일어나게 될까 단서를 남겨둔다. 

 

『금주령』 2권을 다 읽어봐야겠지만 검은 조직과 싸우는 일은 늘 힘든 일이며 권력과 재물을 탐하지 않고 소신껏 살아가는 이들은 어느 시대나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연 영조 임금의 금주령이 결실을 맺을까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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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러티
콜린 후버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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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비극적인 죽음에서 시작된 부부의 비극적인 최후

 

책 띠지에서 보는바와 같이 아마존 차트에서 연일 진기한 기록을 세우고 있는 소설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출간된지 불과 얼마되지 않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듯 하다. 저자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가 보여주듯이 책장을 덮을 때까지 왜 그들은 각자 자녀의 죽음을 두고 오해하며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야 했을까 싶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독자들도 읽어보면 알겠지만 반전의 반전을 보게 된다. 그리고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체 이야기의 뒷 이야기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버리는 저자의 배려심(?)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주인공 '배러티'는 왜 오랫동안 뇌사 판정을 받은 식물인간의 흉내를 내며 살아야했을까? '적대적 글쓰기'라는 새로운 소설쓰기 기법을 통해 자녀를 잃은 고통과 아픔을 해소하려고 했다면 이 사실을 왜 남편 제러미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자신이 쓴 '자서전'은 단지 소설이었다고 일치감치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자녀에게 가진 모성애는 비뚤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남편 제러미가 자신이 쓴 꾸며낸 자서전을 보며 오해했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한 배러티는 자신의 침대 아래쪽 마루 널판지 한 부분을 뜯어내 남편 제러미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숨겨둔다. 그리고 이 편지를 또 다른 주인공 로웬이 읽게 된다. 

 

배러티를 대신하여 소설을 마무리 짓고자 제러미의 집에 들어간 로웬은 배러티의 '적대적 글쓰기' 기법으로 쓴 배러티의 자서전을 읽으며 실제 이야기인양 받아들인다. 배러티를 희대의 살인마로 여긴다. 쌍둥이 딸을 죽이고 심지어 마지막 살아남은 아들 크루도 죽일 악한 사람으로 여긴다. 로웬의 확신은 배러티의 자서전을 읽으며 더 확신을 갖게 된다. 제러미, 로웬 모두 배러티가 쓴 '적대적 글쓰기'의 기법으로 쓴 '자서전'을 읽고 배러티를 오해하고 배러티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가 이런 걸까. 주인공들의 심리가 복잡하게 얽히며 돌아간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착각이 들 정도로 배러티를 악한 대상으로 철썩같이 믿게 하며 이야기를 읽게 만든다. 그리고 의외의 단서를 통해 모두가 판단한 것들이 잘못되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단 몇 줄의 문장을 통해서. 콜린 후버라는 작가의 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만약,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많은 이들이 뇌사 판정을 받고 식물인간으로 오랫동안 연기하며 살아간 배러티에 대해 시종일관 비난하며 지켜보다가 막판에 입을 떡 벌린 정도로 자신이 잘못 판단했음을 후회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반면,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이라고 생각했던 제러미에 대해 많은 이들이 오히려 혼동하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를 통해 가정 안에서 겪었던 고통과 아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노력했던 배러티. 그 노력의 결실로 많은 작품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가정에서는 물질적인 부유함을 안겨주었지만 결국은 그녀의 글쓰기가 자신을 비극으로 이끄는 도구가 될 줄이야....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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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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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부터 생소했다. 이미지가 낯설었다. 덩그러니 석류가 등장하고 메뚜기처럼 보이고 뭔가 했더니 소설 속 단편소설 <릴리의 손>이었다. 그러고보니 석류도 단편소설 <고기와 석류>에 등장하는 식인종에 가까운 '그 녀석'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먹거리 석류였다. 첫 번째 좋아하는 것은.... 놀라지 마시라. 썩은 시체.

 

트로피컬이 무슨 뜻인지 몰라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자신있게 '열대의..' 라고 한다. 열대지방의 열대? 네이버 사전 뜻을 찾아봤더니 역시나 열대 지방에서 입는 천, 옷감 이런 뜻이었다. 표지 전체의 이미지 느낌이 역시나 열대 느낌이 나는 것 같다. 책 속 단편소설인 <새해엔 쿠스쿠스>도 모로코 사막 지방에서 먹는 요리였다. 작중 주인공은 헬리코터맘의 등살에 못이겨 어찌어찌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엄마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엄마의 바람대로 살아가지만 결국은 현실에서 오는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렸을 적 이불 속에서 즐겨 보았던 모로코 밤 하늘을 쫓아 훌쩍 바람처럼 사라진다. 쿠스쿠스를 입에 담고 현실을 도피하여 새로운 인생을 향하여 말이다. 

 

조예은 작가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순간 4차원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참 난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등장인물은 사람인데 배경은 죄다 현실 세계가 아닌 보다 한 차원 높은 이상 세계를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릴리의 손>은 서기 2200년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갑자기 땅에 빈 틈이 생기고 커다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 주인공은 또 다른 지구 세계로, 아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지구로 다시 빨려 들어가고 주인공의 영혼이 바뀌고. 그러면서 손수건을 통해 머나먼 과거의 자신의 흔적을 더듬는 장면을 통해 기계와 인간이 함께 공생해 가야 하는 미래의 지구의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도 기후위기라는 말이 피부로 와 닿을 정도로 지구 곳곳에서 100년 만에 가문이 생기고 폭우가 생기면서 많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듯이 <가장 작은 신>에서도 초특급 울트라 미세먼지가 공습해 오는 미래의 지구의 모습을 맞딱뜨리게 된다. 메세먼지 경보음이 울리고 사람들은 미세먼지 방독면을 필수품을 챙기며 일상의 외출이 화생방 훈련을 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 와중에도 공기 정청기를 판매하는 다단계 업체들은 사람들을 속이고 속이는 영업 전략을 펼치며 '먼지의 신'이라는 가짜 상품을 팔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을 주변으로 펼쳐진 세상은 암울하기 그지 없다. 고독사를 걱정해야 하고, 각종 기후 위기로 늘 질병을 걱정해야 하며 늘 익숙했던 세상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지만 그 와중에도 변함이 없는 것은 인간이라는 속성 그 자체다. 세상과 등지며 살아가며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상태 속에서도 결국에는 위기 속에 인간이라는 본성은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고 인간을 구출해 내는 것은 곧 인간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코로나 펜데믹을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도 소설 속 주인공들이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앞으로 영원히 생각지도 못하는 질병과 더불어 함께 지내야 하는 암울한 현실, 기후 위기가 이제는 최우선 해결 과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땜방식으로 대충대충 임시처방으로 넘겨야 하는 현실,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고립과 고독, 치열한 경쟁과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누가 과연 나의 이웃이 되어 줄련지... 그럼에도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사람의 본성' 이다!

 

『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 회복' 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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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 - 귀농하고픈 아들과 말리는 농부 엄마의 사계절 서간 에세이
조금숙.선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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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지망생이 귀농을 하겠다고 선언하다!

 

귀하디 귀한 아들 놈이. 그렇게 공부시키고 이제 세상이 알아주는 벼슬을 목 전에 두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귀농을 하겠다는 아들이 있다면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영혼을 갈아 변호사 되겠다며 노력은 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막상 오래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그래도 한 번 변호사 시험에 도전해 봐야겠다며 토할 때까지 책을 펼치고 노력했었는데 결국은 낙방하고 이제서야 가슴 한 켠에 숨겨 놓았던 귀농의 꿈을 살며시 풀어 놓는 아들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 보면 엄마나 아들이나 모두 착찹하고 고요 속에 뭔가 불안함이 맴돌지 않을까 싶다. 

 

하던 공부 때려치우고 이제 부모가 계시는 시골에 가서 농사 지으면 살겠다고 자신의 생각을 편지지에 꾹꾹 눌려 보낸 아들과 처음에는 놀라는 가슴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아들과 속 마음을 터 놓고 편지를 왕래하면서 그간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안쓰러움과 함께 힘든 길인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당차게 설계하며 포부를 말하는 아들이 믿음직스러워지고 이제는 귀농한 선배의 마음으로 궁금한 점을 물어오는 아들에게 누구보다도 더 차근하게 좋은 팁들을 알려주는 엄마의 서신 왕래가 읽는 내내 마음을 뜨겁게 하고 정겨운 모자간의 관계를 느낄 수 있어 시골에 혼자 계신 어머니를 더욱 생각나게 한다. 

 

귀농이 인생의 실패의 흔적이 아님을 청년 아들은 일치감치 깨닫는다. 겉으로 보이는 외양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혹독한 로스쿨 공부와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느꼈다.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삶도 깊숙히 드려다보면 불행이며 자신의 주체적인 삶이 아닌 쫓기는 삶임을 누구보다도 청년 아들은 더 잘 안다. 자신을 숨기기보다 남들에게 있어 보이려고 하기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농부의 길을 걸어가고자 엄마와 아빠를 설득한다. 아니 호소하며 먼저 귀농의 길에 접어둔 부모를 이제는 자신이 팔을 걷어 도와드리겠다고 요청한다. 

 

즉흥적인 결단이 아닌 것은 신혼 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와도 오랫동안 귀농에 대해, 앞으로 미래에 펼쳐질 자신의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결국 찾아던 종착지는 시골임을 서로가 재차 확인하며 시골에 있는 부모에게, 시부모에게 정중히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모습 속에 일찍 철이 든 청년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잠시 잠깐 머무는 농촌의 풍경과 오랫동안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야 할 농촌은 분명 다르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에 고생이라는 단어를 마음팎에 새기고 청춘이라는 무기로 한 번 도전해 보겠다는 의기양양한 모습에 일흔에 가까운 노부모도 고생길 훤한 귀농의 길이지만 힘차게 응원하며 편지를 갈음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이들이 살아갈 시골 농촌의 풍경이 아름답게 보여진다. 내 손에 흙 묻힐 상황이 아니니 그저 바라보는 입장에서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청년이지만 고생과 위험 부담을 안고 그렇지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과 도전 의식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농촌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노력이 더욱 눈부시게 아름답게 보여진다. 앞으로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 차원에서도 농촌은 6차 산업이라고 하지 않았나! 세상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 되고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일에 황무한 농토가 있는 시골에 뜻있는 젊은 청년 부부가 맨 몸으로 뛰어 들어간다고 하니 편지의 내용이 마냥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이왕 새로운 삶을 살기를 각오한 청년의 마음 속 다짐이 담긴 글에는 뭔가 투박하지만 당찬 느낌이 담겨져 있고 오랜 세월 어미로 지금은 10년 넘게 귀농하여 농부로 살아가는 엄마의 편지 글에는 노련함과 인생의 묵직한 의미가 담겨져 있어 고개를 저절로 끄덕여짐을 느낀다. 청년의 엄마는 젊었을 때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환경에 대한 필요성을 알고 소박하게 환경 운동을 해왔던 실천가이기도 하다. 환경에 관해 다양한 부분에서 고민한 흔적들이 편지글에 보여진다. 틈틈히 깊은 독서의 흔적도 보인다. 유배지에서 마련한 초라한 방을 사유재로 이름지으며 언행과 삶을 정돈했던 다산 정약용의 예를 빗대어 비록 귀농의 삶이라할지라도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아들에게 우회적으로 조언해 주고 있다.

 

그 엄마의 그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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